목차
1. 序 言
2. 本 言
가. 恐怖가 戰場에 미친 영향
1) 핵(核)에 대한 恐怖
2) 중공군의 참전과 그들의 인해전술(人海戰術)
에 대한 恐怖
3) 세계 여론과 공산권에 대한 恐怖
나. 언론이 전장에 미친 영향
** GULF전에서는 어떻게 했나? **
3. 結 言
2. 本 言
가. 恐怖가 戰場에 미친 영향
1) 핵(核)에 대한 恐怖
2) 중공군의 참전과 그들의 인해전술(人海戰術)
에 대한 恐怖
3) 세계 여론과 공산권에 대한 恐怖
나. 언론이 전장에 미친 영향
** GULF전에서는 어떻게 했나? **
3. 結 言
본문내용
돌아야 했다. 기자들을 통제하고 길들이기 위한 최초의 통제수단이었다.
기자들에게는 야전 자켓과 내피, 야전 하의, 슬리핑 백, 탄띠, 수통, 화학전 캡, 야전배낭, 붕대, 가스마스크, 아트로핀 주사기, 화학전보호의와 구두, 가글, 헬밋이 지급되었다. 이 군장을 다 짊어지면 움직이기 조차 힘들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이러한 조치는 군에 통제를 받지 않으면 죽는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간접적인 통제방법을 사용하였다.
풀 기자제도는 미군의 중앙군사령부에서 마음대로 운영했기 때문에 기자들은 불평이 많았다.사우디아라비아에는 기자는 많이 있었지만 전선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제한되었다. 갈 수 있다고 해도 미군 당국에서 지정한 장소만 갈 수 있었고, 미군과 같이 생활할 수도 없었다.
물론 모든 기사는 검열을 받아야 송고할 수 있었다. 어느 현지 부대장은 휴대용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는 읽기가 어렵다고타이프라이터로 친 원고를 요구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 이라크 국경선을 따라 동서로 연결되는 도로에는 헌병이 배치되었다. 이들에게는 최우선적으로 기자를 저지하라는 명령이 내려갔다.
뉴욕타임스의 에릭 슈미트, 존 키프너, 크리스 헤지스 등 세 기자가 이 도로에서 한 미군병원을 취재하려 했다가 체포되었다. 워싱턴 포스트와 AP 통신사의 기자와 영국의 BBC 방송의 취재팀 6명을 포함하여 프랑스인 사진기자도 체포되거나 억류당했다.
그렇다고 모든 기자들이 미군의 작전계획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US NEWS AND WORLD REPORT지의 편집부장 데이비드 거겐은 지상전이 시작되기 2주전에 연합군의 공격목표를 알아냈고, 미해병대의 상륙작전도 없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스스로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의 다른 언론매채도 여러가지 정보를 입수했지만 모두 미군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공개하지 않았다.
NEW YORK TIMES의 말콤 W. 브라운 기자는 걸프전의 스타로 떠오른 F-117A스텔스 전투기 기지를 방문했다.
그는 기사를 작성해서 그를 에스코트하는 장교에게 첫번째 검열을 받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이 통과되었다.
이 원고는 비행단 본부로 제출되었다. 비행단 본부에서 다시몇 개의 단어를 고치라는 지시가 전달되었다. 즉 gibby(충동적인)라는 단어로 조종사를 표현했는데 이는 호전적(好戰的)인 단어로 적당치가 않으니 proud(자랑스런)로 고치라는 것이고, 원고에는 F-117A를 "전폭기"로 표현했는데 이를 "전투기"로 고쳐 쓰라는 연락이었다.
마감시간에 쫓긴 두 기자는 비행단장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의 기사는 다란에 있는 이테네셔널 호테로 보내진 것이 아니라, 미국 본토의 네바다주 토너퍼에 있는 F-117A 기지본부로 보내졌다. 이 기지의 보안장교는 군사기밀을 누설한다는 이유로 그 기사를 보류시켰다. 결국 그 기사는 작성된 지 24시간이 지난 뒤에야 김이 다 빠져서 검열을 통과했다.
미 제1기갑 사단을 취재하던 LOSANGELES TIMES의 도우 젤 기자는 군당국의 검열로 일할 의욕까지 상실하였다.
"내 원고는 나를 따라다니는 에스코트 장교의 검열을 거쳐 제1기갑사단의 공보장교에게 넘겨지고, 공보장교가 그 원고를 본 다음, 사단 참모장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그 다음에 그 원고는 다시 7군단 공보장교에게 보내져 다시 검열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원고는 중앙군사령부로 가서 검열을 받았습니다. 검열을 거칠 때마다 원고는 가필되고 새로운 해석이 추가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고 전역한 데이비드 헤크워드 예비역 대령은 전장 기고가로서 뉴스위크지를 위해 취재를 하다가 기막힌 꼴을 당했다고 술회하였다.
"미군병사들이 소총에 총검을 꽂고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이번에 실제전투보다 더 많이 미군이나 사우디 아라비아군으로부터 총뿌리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기자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미군사령부의 검열과 통제를 벗어나려고 했다. 많은 기자들이 미육군 또는 해병대원으로 위장하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많은 기자들이 체포되었다. 12시간이나 일선부대의 영창에 갖혀있던 기자도 있었다. 어떤 기자는 이렇게 한탄했다. "나는 일선에서 시간의 3분의 2는 MP의 눈을 피하는 데 썼습니다. 결국 취재시간은 3분의 1 정도밖에 안되었습니다."
3.結 言
북한은 전 세계의 국가 가운데 언론과 TV가 철저하게 통제당하며 국가에서 지시하는 것만 보도한다. 따라서 국민여론 형성도 국가의 의도대로 이끌려 간다. 전선의 비참한 모습은 각 가정에 비춰지지도 않겠지만 우리의 시각으로 북한의 국민 여론을 보아서는 안된다.
국가가 선전선동(宣傳煽動)의 매체로서 역할을 담당하여 옛날 독일의 Hitler가 하듯, 소련의 Starlin이 하듯, 전젱에 광분하여 뛰어들게 만들 것이다. 국가의 노력과 군대의 전투력 집중이 가능하고, 중공군이 하듯 한 전선 뚫기 위하여 인해전술도 불사할 것이다.
적의 선전매체는 월남 및 소말리아에서와 같이 잔인하고 비참한 전장의 모습을 골라 TV 스크린을 통해 집중적으로 비춰줄 것이다. 우리 자체내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미국이 자국군대의 과감한 전투력 투입을 주저토록 하기 위하여, 방송과 TV를 포함한 전 선전매체를 이용하여 집중적인 선전 공격을 가할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와 미국 및 세계의 TV 스크린이 월남, 소련의 체첸 침공, 소말리아 사태와 같이 국익과 전쟁승리에 아랑곳없이 특종을 찾아 전혀 예측하고 계산되지 않은 자극성 보도를 할 때 국군과 미군의 전투수행 능력이 어떻게 될까?
군사적 식견과 자제(自制)가 없는 무절제한 보도는 정부로 하여금 국민의 눈치를 보게 하고 힘을 못쓰게 만든다. 군대의 고급지휘관은 결전의 호기를 포착하고도 인명 피해가 많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전투력 사용에 눈치를 보게되고 소신있는 부대 지휘를 하지 못하므로서 결국 전투에서 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직업군인들은 평소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포와 두려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전례를 통해 연구분석하여 대처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언론과 긴밀한 협조를 실시하여 군사작전에 지장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사전에 강구해야 한다.
기자들에게는 야전 자켓과 내피, 야전 하의, 슬리핑 백, 탄띠, 수통, 화학전 캡, 야전배낭, 붕대, 가스마스크, 아트로핀 주사기, 화학전보호의와 구두, 가글, 헬밋이 지급되었다. 이 군장을 다 짊어지면 움직이기 조차 힘들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이러한 조치는 군에 통제를 받지 않으면 죽는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간접적인 통제방법을 사용하였다.
풀 기자제도는 미군의 중앙군사령부에서 마음대로 운영했기 때문에 기자들은 불평이 많았다.사우디아라비아에는 기자는 많이 있었지만 전선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제한되었다. 갈 수 있다고 해도 미군 당국에서 지정한 장소만 갈 수 있었고, 미군과 같이 생활할 수도 없었다.
물론 모든 기사는 검열을 받아야 송고할 수 있었다. 어느 현지 부대장은 휴대용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는 읽기가 어렵다고타이프라이터로 친 원고를 요구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 이라크 국경선을 따라 동서로 연결되는 도로에는 헌병이 배치되었다. 이들에게는 최우선적으로 기자를 저지하라는 명령이 내려갔다.
뉴욕타임스의 에릭 슈미트, 존 키프너, 크리스 헤지스 등 세 기자가 이 도로에서 한 미군병원을 취재하려 했다가 체포되었다. 워싱턴 포스트와 AP 통신사의 기자와 영국의 BBC 방송의 취재팀 6명을 포함하여 프랑스인 사진기자도 체포되거나 억류당했다.
그렇다고 모든 기자들이 미군의 작전계획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US NEWS AND WORLD REPORT지의 편집부장 데이비드 거겐은 지상전이 시작되기 2주전에 연합군의 공격목표를 알아냈고, 미해병대의 상륙작전도 없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스스로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의 다른 언론매채도 여러가지 정보를 입수했지만 모두 미군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공개하지 않았다.
NEW YORK TIMES의 말콤 W. 브라운 기자는 걸프전의 스타로 떠오른 F-117A스텔스 전투기 기지를 방문했다.
그는 기사를 작성해서 그를 에스코트하는 장교에게 첫번째 검열을 받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이 통과되었다.
이 원고는 비행단 본부로 제출되었다. 비행단 본부에서 다시몇 개의 단어를 고치라는 지시가 전달되었다. 즉 gibby(충동적인)라는 단어로 조종사를 표현했는데 이는 호전적(好戰的)인 단어로 적당치가 않으니 proud(자랑스런)로 고치라는 것이고, 원고에는 F-117A를 "전폭기"로 표현했는데 이를 "전투기"로 고쳐 쓰라는 연락이었다.
마감시간에 쫓긴 두 기자는 비행단장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의 기사는 다란에 있는 이테네셔널 호테로 보내진 것이 아니라, 미국 본토의 네바다주 토너퍼에 있는 F-117A 기지본부로 보내졌다. 이 기지의 보안장교는 군사기밀을 누설한다는 이유로 그 기사를 보류시켰다. 결국 그 기사는 작성된 지 24시간이 지난 뒤에야 김이 다 빠져서 검열을 통과했다.
미 제1기갑 사단을 취재하던 LOSANGELES TIMES의 도우 젤 기자는 군당국의 검열로 일할 의욕까지 상실하였다.
"내 원고는 나를 따라다니는 에스코트 장교의 검열을 거쳐 제1기갑사단의 공보장교에게 넘겨지고, 공보장교가 그 원고를 본 다음, 사단 참모장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그 다음에 그 원고는 다시 7군단 공보장교에게 보내져 다시 검열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원고는 중앙군사령부로 가서 검열을 받았습니다. 검열을 거칠 때마다 원고는 가필되고 새로운 해석이 추가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고 전역한 데이비드 헤크워드 예비역 대령은 전장 기고가로서 뉴스위크지를 위해 취재를 하다가 기막힌 꼴을 당했다고 술회하였다.
"미군병사들이 소총에 총검을 꽂고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이번에 실제전투보다 더 많이 미군이나 사우디 아라비아군으로부터 총뿌리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기자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미군사령부의 검열과 통제를 벗어나려고 했다. 많은 기자들이 미육군 또는 해병대원으로 위장하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많은 기자들이 체포되었다. 12시간이나 일선부대의 영창에 갖혀있던 기자도 있었다. 어떤 기자는 이렇게 한탄했다. "나는 일선에서 시간의 3분의 2는 MP의 눈을 피하는 데 썼습니다. 결국 취재시간은 3분의 1 정도밖에 안되었습니다."
3.結 言
북한은 전 세계의 국가 가운데 언론과 TV가 철저하게 통제당하며 국가에서 지시하는 것만 보도한다. 따라서 국민여론 형성도 국가의 의도대로 이끌려 간다. 전선의 비참한 모습은 각 가정에 비춰지지도 않겠지만 우리의 시각으로 북한의 국민 여론을 보아서는 안된다.
국가가 선전선동(宣傳煽動)의 매체로서 역할을 담당하여 옛날 독일의 Hitler가 하듯, 소련의 Starlin이 하듯, 전젱에 광분하여 뛰어들게 만들 것이다. 국가의 노력과 군대의 전투력 집중이 가능하고, 중공군이 하듯 한 전선 뚫기 위하여 인해전술도 불사할 것이다.
적의 선전매체는 월남 및 소말리아에서와 같이 잔인하고 비참한 전장의 모습을 골라 TV 스크린을 통해 집중적으로 비춰줄 것이다. 우리 자체내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미국이 자국군대의 과감한 전투력 투입을 주저토록 하기 위하여, 방송과 TV를 포함한 전 선전매체를 이용하여 집중적인 선전 공격을 가할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와 미국 및 세계의 TV 스크린이 월남, 소련의 체첸 침공, 소말리아 사태와 같이 국익과 전쟁승리에 아랑곳없이 특종을 찾아 전혀 예측하고 계산되지 않은 자극성 보도를 할 때 국군과 미군의 전투수행 능력이 어떻게 될까?
군사적 식견과 자제(自制)가 없는 무절제한 보도는 정부로 하여금 국민의 눈치를 보게 하고 힘을 못쓰게 만든다. 군대의 고급지휘관은 결전의 호기를 포착하고도 인명 피해가 많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전투력 사용에 눈치를 보게되고 소신있는 부대 지휘를 하지 못하므로서 결국 전투에서 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직업군인들은 평소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포와 두려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전례를 통해 연구분석하여 대처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언론과 긴밀한 협조를 실시하여 군사작전에 지장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사전에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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