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A+] 백석과 정지용 작품 중심으로 1930년대 시세계과 모더니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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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A+] 백석과 정지용 작품 중심으로 1930년대 시세계과 모더니즘 분석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1930년대 시세계와 모더니즘

Ⅱ. 백석과 정지용의 시세계
1) 백석의 시세계
1. 언어감각과 기법
1.1. 토속적인 소재의 사용
1.2. 사설 투의 어투
1.3. 방언의 사용
2. 고향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난 작가의식
3. 정리
2) 정지용의 시세계
1. 정지용의 언어적 감각
-정지용의 바다시편 중 ‘바다 1’을 중심으로-
1-2 언어감각을 통한 이미지의 구축
1-3 언어감각을 통한 리듬의 구축
2. 고향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난 작가 의식
3. 정리

Ⅲ. 나가며

본문내용

시각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려 하는 것이다. 백석의 공간은 고향이라는 데에 의문을 가지기 힘들지만, 정지용에서의 공간이 왜 고향인가의 의문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병적인 헤매임’의 시인 정지용의 시 창작 내면에 자리한 것은 고향이었다. 고향을 떠나 다른 공간을 동경하면서도, 그의 내면에는 인정과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고, 그 중심에 가족과 고향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대에 살았던 두 시인의 시에 같은 공간이 나타난다는 점이 의미를 지니고, 그러면서도 시에 나타나는 고향의 모습이 다르다는 데에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이에 시인의 삶과 시대를 연관 지어 볼 때 공간으로서의 고향을 주목하는 것이다.
Ⅱ. 백석과 정지용의 시세계
1) 백석의 시세계
지금까지의 발견된 자료만을 놓고 본다면 백석은 적어도 1930년부터 1961년까지 문학 활동을 한 셈이다. 따라서 그가 문학 활동을 전개한 기간은 약 30여 년이 되며, 이 때 시 100여 편, 소설 3편, 기타 번역시와 번역소설, 번역수필을 비롯하여 창작수필, 동화, 평론 등을 각각 수편씩 발표하였다. 이렇듯 그의 문학 활동은 문학의 전 영역에 걸쳐 이루어졌으나 이 가운데서 가장 주목받을 만한 분야는 다 알다시피 시 분야이다. 따라서 일단 백석의 시 세계를 중심으로 하여 그의 문학 세계를 엿보고자 한다.
백석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여성〉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만주 신징에 잠시 머물다가 만주 안둥으로 옮겨 세관업무를 보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면서 글을 썼으며, 6·25전쟁 뒤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이후에는 시집을 펴내지 못했다. 그 뒤 발표한 시로는 〈통영 統營〉(조광, 1935. 12)·〈고향〉(삼천리문학, 1938. 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학풍, 1948. 10) 등 50여 편이 있다.
그의 활동 시기는 대략 1930년대에 두드러진다. 지금까지 발견된 백석의 시작품을 총 123편으로 볼 때 1935년에서 1939년까지의 작품이 89편으로, 백석이 의욕적으로 시작활동을 한 시기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백석이 시집이 발간되던 1936년은 모더니즘의 영향이 문단 전체를 압도했던 때라고 할 수 있다. <정지용시집>이 발간되고, 김기림의 <오전의 시론>과 <기상도>등이 발표되어 모더니즘의 이론과 창작 기법을 보여주었던 환경 속에서 백석이 모더니즘의 이론을 그의 창작 기법에 적용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백석의 이미지즘 차용은 단순한 기교 차원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민족의 구체적 삶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백석의 시는 대체로 고향과 연관된, 토속적 세계에 토대를 두어 그 당시의 가장 보편적이며 구체적인 생활 현실을 이미지즘의 방법과 결속시킨 것이다. 서구화의 격랑을 피할 수 없을 1930년대에, 전통적인 것을 외면하지 않은 채 그 둘을 변증법적으로 통일한 것에 백석 시의 참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백석의 시 세계를 ‘언어감각과 기법’과 ‘고향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타나는 작가의식’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1. 언어감각과 기법
백석의 시는 우선 문체상의 개성이 다른 시인들에 비해 매우 뚜렷하다. 그가 즐겨 쓰고 있는 기법들은 대개 회고체, 방언체, 구어체, 의고체, 연결체, 만연체, 아동어투의 독백체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토속적인 정서를 풍기며 구사된다. 이제 몇몇 시들을 통해 이러한 백석의 시에 대한 특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1.1. 토속적인 소재의 사용
백석의 시에 대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토속적인 소재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향수를 일으키는 고향의 모습이나 정경들이 사실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시인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인데, 고향인 정주의 정경과 일반적인 고향의 모습도 많이 나타나있다.
山턱원두막은뷔였나 불빛이외롭다
헌깁심지에 아즈까리기름의 쪼는소리가들리는듯하다
잠자려조을든 문허진城터
반딧불이난다 파란魂들같다
어대서말있는듯이 크다란山새한마리 어두운 곬작이로난다
헐리다남은城門이
한을빛같이훤하다
날이밝으면 또 메기수염의늙은이가 청배를팔려올것이다
<定州城> 전문
<정주성>은 백석의 데뷔작으로 이후에 씌어진 많은 시들에서처럼 이 시에서도 그의 고향은 어김없이 드러나 있다. <정주성>에서 ‘헐리다 남은 城門’, ‘잠자려 조을든 城터’는 고구려 때에 말갈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고주(古州)의 장성과 그 옛터를 가리킨다. 이 성은 정주군 아이포면에서 시작하여 강계군 설한령까지 약 170리에 이른다. 이렇게 우리는 백석의 시 속에서 그의 고향의 모습들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백석의 시에는 우리네 옛 고향을 느끼게 해 주는 토속적인 소재들로 ‘원두막’, ‘헌깁심지’, ‘아즈까리’, ‘메기수염의 늙은이’, ‘청배’ 등이 나온다. 시골 장날에 ‘청배’를 팔러 오는 ‘메기수염의 늙은이’의 모습 등 근대화와는 무관한 건강하고 단란한 토착 민중들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 이처럼 시인은 토속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그 자신의 토속적인 정서를 드러내려 하고 있다.
1.2. 사설 투의 어투
백석의 시를 보면 짧은 시도 있긴 하지만, 긴 서사시가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우난골族> 전문
명절날나는 엄매아배따라 우리집개는 나를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있는 큰집으로가면
얼굴에별자국이솜솜난 말수와같이눈도껌벅걸이는 하로에베한필을짠다는 벌하나건너집엔 복숭아나무가많은 新里고무 고무의딸李女 작은 李女
열여섯에 四十이넘은홀아비의 후처가된 포족족하니 성이잘나는 살빛이매감탕같은 입술과 젖꼭지는더깜안 예수쟁이마을가까이사는 土山고무 고무의딸承女 아들承동이
六十里라고해서 파랗게뵈이는山을넘어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된 코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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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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