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개념
Ⅲ.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요인
Ⅳ.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에 대한 이론적 해석
Ⅴ.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실태
Ⅵ. 한국의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사례
Ⅶ. 외국의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사례
Ⅷ.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해결방안 모색
Ⅸ.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 극복을 위한 제언
Ⅹ. 결론
참고문헌
Ⅱ.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개념
Ⅲ.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요인
Ⅳ.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에 대한 이론적 해석
Ⅴ.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실태
Ⅵ. 한국의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사례
Ⅶ. 외국의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사례
Ⅷ.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의 해결방안 모색
Ⅸ. 교실붕괴(학급붕괴, 학교붕괴) 극복을 위한 제언
Ⅹ.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서 묶어두는 것은 공동체와 문화이다(Gardner, 1991)
공동체적 기억이나 가치의 부재는 학교의 무 규범화나 규범의 소통이 두절되고 있다는 무정부적 상황의 도래를 예견하는 것이다. 가치가 일방적으로 전달되거나 소중히 여겨야할 공동체의 중심적 가치관이 박제된 채로 남아 있다면 그 사회는 위험한 사회에 직면해 있다는 증거이다. 맥킨타이어는 전근대의 오랜 기억과 전통이 급속하게 소멸한데서 오늘의 학교의 공통된 기억 상실증이 공유되고 있지 못한데서 근대학교의 도덕적 질병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맥킨타이어는 우리 각자가 “인식하든 안하든 전통을 담지하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MacIntyre, 1981).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들 개개인은 이야기의 한 부분을 이룬다. 우리는 이야기의 한 부분이면서 우리가 태어나면서 전통과 접목되는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 이야기를 불가피하게 경청하지 않으면 안된다. 개인은 출발부터 전통의 일부분에 속하기 때문에 인격교육은 공동체와 얽혀 연결되어 있다. 학교붕괴를 막는 견고한 공동체는 좋은 삶에 의해 의미지어진 것을 규정하고 구현해 준다. 공동체주의자들은 학교붕괴의 해결을 공동체와 전통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부흥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확실히 인간과 사회에 대한 현대적 사고의 두드러진 특징은 개인의 소외와 문화적 해체에 갇혀 있다. 학교붕괴에서 보여주는 불안정과 해체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은 역으로 지위, 성원의식,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깊은 관심을 수반한다(Nisbet: 1953). 최근 벨라(Robert Bellah)와 그의 동료들은 공동체 정신이 아주 종종 개인주의에 의해 손상을 입어 왔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현실의 공동체는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때 집단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붕괴가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의 부흥은 자유주의의 강력한 철학적 공격을 받았다. 가치의 다수성이 인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학교붕괴의 자유주의적 접근은 공동체의 동질성을 요구하는 접근보다 더욱 안정되고 관대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주의적 전통은 인지적 모델과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Noddings, 심성보 외역, 1999). 자유주의적 인지론자들은 특정의 가치를 주입하지 않고, 자기결정과 도덕적 추리력의 개발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의 붕괴 원인을 찾는다면 개인의 자율적 사고를 억제하는 공동체적 강제가 학교라는 공동체의 붕괴를 스스로 불러온 자승자박이 될 것이다.
우리의 학교상황에서도 강압적 통제를 대체할 수 있는 ‘자율성’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외부의 권위에 의한 강제력이 약화되고 있음에도 그에 대체되는 내적 규제력으로서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테일러는 ‘내적 자율성’의 확보야 말로 공동체를 강고하게 한다고 보았다. 내적 자율성의 부재는 쉽게 공동체가 위태로우면 쉽게 가치혼돈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규범의 생산과 실천이 강제된 닫힘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유기체로서의 학생은 이런 억압기제 속에서 항상 폭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학생의 기대와 관심, 그들의 자율적 판단력이 배재된 공동체의 강제는 압력밥솥처럼 폭발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 군사정권시대의 교사나 어른의 강압적 권위가 문민시대를 맞이하여 소멸되면 자유의 분출통로를 찾지 못해 무질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학생 자신의 자율능력과 책임의식이 매우 중요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 자유주의론자들이 학교붕괴를 바라보는 기본적 시각이다.
그렇지만 공동체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가 사회화 이전의 ‘개인의 존재와 신화’를 영속화시킬 위험이 있고, 모든 사람이 우리와 ‘마찬가지’라는 ‘거만한 보편주의’를 절대시하고, 공동체의 역할을 소홀히 할 뿐아니라, 베버가 말한 대로 거대한 관료적이고 치료적인 정신구조가 지배하는 사회에 개인의 자율성이 지나치게 헌신하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한다(MacIntyre,1981; Taylor, 1985,1989; Max Weber,1958). 이런 논지에서 보면 학교공동체의 붕괴는 개인의 자율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적 연루가 적어서 사회적 소외를 낳아 그렇게 되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자유주의자는 ‘절차적 공정성’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당한 선을 추구할 수 있음을 보증하는 사회를 선호하는 반면, 전통주의자와 공동체주의자는 사회를 무질서하고 심지어 ‘허무주의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후자의 관점에서 본 진정한 ‘사회’는 무엇인가의 가치를 옹호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는 스스로 추진한 선을 확립하고 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갈등 속에서 생긴 기본적 문제가 교사에 부여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동일한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창조적인 깊이를 가지고 도덕적 문제를 토론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가 서로의 동기를 신뢰하지 않으면 어떻게 젊은이로 하여금 공동으로 수용한 가치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인가? 번스타인(Rechard Bernstein)은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윤리적 입장을 공감하는 토의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신념, 가치, 헌신, 심지어 정서와 열정의 공유가 없다면 대화가 있을 수 없고, 의사소통이 있을 수 없다. 게다가 나는 무엇이 진정 다르며, 이방적이며, 더욱 소중히 여기는 이전의 판단에 도전하는 용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적어도 진정으로 경청하는 의지를 갖고 도덕적 덕, 즉 어떤 ‘선의지’를 전제해야 한다는 가다머(Gadamer)와 맥킨타이어에 동의를 표한다. 그러나 이런 공통성은 진정 공유된 것이 너무나 자주가 아니고, ‘폭력적으로’ 강요된 것이며, 허구의 ‘우리’를 투사한 것이다.”(Bernstein) 목적론자인 틸리히(Paul Tillich)는 이러한 균형을 논의하였고, 두 극단인 극도의 개인주의에서 나타나는 이기심, 소외, 무의미와 함께 전체주의적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자아 상실과 열광을 보이는 것을 경계하였다(Tillich, 1952). 이것은 학교붕괴의 원인과 그 대안을 모색하는데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니스
공동체적 기억이나 가치의 부재는 학교의 무 규범화나 규범의 소통이 두절되고 있다는 무정부적 상황의 도래를 예견하는 것이다. 가치가 일방적으로 전달되거나 소중히 여겨야할 공동체의 중심적 가치관이 박제된 채로 남아 있다면 그 사회는 위험한 사회에 직면해 있다는 증거이다. 맥킨타이어는 전근대의 오랜 기억과 전통이 급속하게 소멸한데서 오늘의 학교의 공통된 기억 상실증이 공유되고 있지 못한데서 근대학교의 도덕적 질병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맥킨타이어는 우리 각자가 “인식하든 안하든 전통을 담지하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MacIntyre, 1981).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들 개개인은 이야기의 한 부분을 이룬다. 우리는 이야기의 한 부분이면서 우리가 태어나면서 전통과 접목되는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 이야기를 불가피하게 경청하지 않으면 안된다. 개인은 출발부터 전통의 일부분에 속하기 때문에 인격교육은 공동체와 얽혀 연결되어 있다. 학교붕괴를 막는 견고한 공동체는 좋은 삶에 의해 의미지어진 것을 규정하고 구현해 준다. 공동체주의자들은 학교붕괴의 해결을 공동체와 전통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부흥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확실히 인간과 사회에 대한 현대적 사고의 두드러진 특징은 개인의 소외와 문화적 해체에 갇혀 있다. 학교붕괴에서 보여주는 불안정과 해체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은 역으로 지위, 성원의식,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깊은 관심을 수반한다(Nisbet: 1953). 최근 벨라(Robert Bellah)와 그의 동료들은 공동체 정신이 아주 종종 개인주의에 의해 손상을 입어 왔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현실의 공동체는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때 집단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붕괴가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의 부흥은 자유주의의 강력한 철학적 공격을 받았다. 가치의 다수성이 인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학교붕괴의 자유주의적 접근은 공동체의 동질성을 요구하는 접근보다 더욱 안정되고 관대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주의적 전통은 인지적 모델과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Noddings, 심성보 외역, 1999). 자유주의적 인지론자들은 특정의 가치를 주입하지 않고, 자기결정과 도덕적 추리력의 개발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의 붕괴 원인을 찾는다면 개인의 자율적 사고를 억제하는 공동체적 강제가 학교라는 공동체의 붕괴를 스스로 불러온 자승자박이 될 것이다.
우리의 학교상황에서도 강압적 통제를 대체할 수 있는 ‘자율성’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외부의 권위에 의한 강제력이 약화되고 있음에도 그에 대체되는 내적 규제력으로서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테일러는 ‘내적 자율성’의 확보야 말로 공동체를 강고하게 한다고 보았다. 내적 자율성의 부재는 쉽게 공동체가 위태로우면 쉽게 가치혼돈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규범의 생산과 실천이 강제된 닫힘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유기체로서의 학생은 이런 억압기제 속에서 항상 폭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학생의 기대와 관심, 그들의 자율적 판단력이 배재된 공동체의 강제는 압력밥솥처럼 폭발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 군사정권시대의 교사나 어른의 강압적 권위가 문민시대를 맞이하여 소멸되면 자유의 분출통로를 찾지 못해 무질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학생 자신의 자율능력과 책임의식이 매우 중요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 자유주의론자들이 학교붕괴를 바라보는 기본적 시각이다.
그렇지만 공동체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가 사회화 이전의 ‘개인의 존재와 신화’를 영속화시킬 위험이 있고, 모든 사람이 우리와 ‘마찬가지’라는 ‘거만한 보편주의’를 절대시하고, 공동체의 역할을 소홀히 할 뿐아니라, 베버가 말한 대로 거대한 관료적이고 치료적인 정신구조가 지배하는 사회에 개인의 자율성이 지나치게 헌신하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한다(MacIntyre,1981; Taylor, 1985,1989; Max Weber,1958). 이런 논지에서 보면 학교공동체의 붕괴는 개인의 자율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적 연루가 적어서 사회적 소외를 낳아 그렇게 되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자유주의자는 ‘절차적 공정성’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당한 선을 추구할 수 있음을 보증하는 사회를 선호하는 반면, 전통주의자와 공동체주의자는 사회를 무질서하고 심지어 ‘허무주의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후자의 관점에서 본 진정한 ‘사회’는 무엇인가의 가치를 옹호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는 스스로 추진한 선을 확립하고 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갈등 속에서 생긴 기본적 문제가 교사에 부여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동일한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창조적인 깊이를 가지고 도덕적 문제를 토론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가 서로의 동기를 신뢰하지 않으면 어떻게 젊은이로 하여금 공동으로 수용한 가치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인가? 번스타인(Rechard Bernstein)은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윤리적 입장을 공감하는 토의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신념, 가치, 헌신, 심지어 정서와 열정의 공유가 없다면 대화가 있을 수 없고, 의사소통이 있을 수 없다. 게다가 나는 무엇이 진정 다르며, 이방적이며, 더욱 소중히 여기는 이전의 판단에 도전하는 용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적어도 진정으로 경청하는 의지를 갖고 도덕적 덕, 즉 어떤 ‘선의지’를 전제해야 한다는 가다머(Gadamer)와 맥킨타이어에 동의를 표한다. 그러나 이런 공통성은 진정 공유된 것이 너무나 자주가 아니고, ‘폭력적으로’ 강요된 것이며, 허구의 ‘우리’를 투사한 것이다.”(Bernstein) 목적론자인 틸리히(Paul Tillich)는 이러한 균형을 논의하였고, 두 극단인 극도의 개인주의에서 나타나는 이기심, 소외, 무의미와 함께 전체주의적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자아 상실과 열광을 보이는 것을 경계하였다(Tillich, 1952). 이것은 학교붕괴의 원인과 그 대안을 모색하는데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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