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론
II. 중국 고대의 사관제도
i) 사(史)의 의미와 고대의 사관
ii) 춘추전국시대의 사관
iii) 전국시대의 사관문화
III. 사마천의 감성
i) 사마천의 생애
(1) 사마천의 생애
(2) 사마천의 전국 여행
ii) “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1) “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2) “成一家之言” - 『춘추(春秋)』와 사마천
IV. 『사기』의 특징과 영향
i) 『사기』의 특징
ii) 『사기』의 영향
(1) 중국의 역사서술에 미친 영향
(2) 『삼국사기』를 통해 본 『사기』가 동아시아의 역사서술에 미친 영향
V. 결론
참고문헌
II. 중국 고대의 사관제도
i) 사(史)의 의미와 고대의 사관
ii) 춘추전국시대의 사관
iii) 전국시대의 사관문화
III. 사마천의 감성
i) 사마천의 생애
(1) 사마천의 생애
(2) 사마천의 전국 여행
ii) “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1) “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2) “成一家之言” - 『춘추(春秋)』와 사마천
IV. 『사기』의 특징과 영향
i) 『사기』의 특징
ii) 『사기』의 영향
(1) 중국의 역사서술에 미친 영향
(2) 『삼국사기』를 통해 본 『사기』가 동아시아의 역사서술에 미친 영향
V.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화를 통달하다.
『사기』「화식열전」을 살펴보면 인간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와의 상관관계, 인간의 사상행동과 물질적 이익과의 관계 등 인간생활의 기틀을 이루는 일련의 중대한 문제를 탐구하고 해답을 제시했다. 이것은 사마천이 “하늘과 인간(天人)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통달하고자”한 원칙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사마천은 역사가 발전한다고 보았으며 인간은 물질과 정신생활의 촉구를 통해 무엇인가를 개조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사마천은 『사기』의 「십표(十表)」와 「팔서(八書)」를 고금의 변화를 밝히기 위해 서술하였다. 표는 고금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서문에서 고금의 대세를 개괄하였다. 서에서는 제도의 변천과정을 중점적으로 기술을 하였다. 그리하여 사마천은 ‘시작과 끝을 종합하고(綜基終始)’ ‘시작과 끝을 고찰하고(原始察終)’ ‘ 흥망성쇠를 보아 인식하고(見盛觀衰)’ ‘피폐한 나라를 변통하려는(承敞通變)’ 것이 고금지변을 통찰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역사적 사건의 현상을 넘어 그 발전 추세를 찾아냈으며, 그 결과로 역사의 전 과정을 분석하고 현상을 넘어 본질을 꿰뚫어봄으로써 변화의 전정한 원인과 방향을 찾고자 했다. 중국사학사 편집위원회, 위의 책, pp.140-144
(2) “成一家之言” - 『춘추(春秋)』와 사마천
공자가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춘추』는 기원전 722년부터 481년에 이르는 방대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2만자를 넘지 않는 매우 간략한 서술이어서 이를 해석하기 위한 주석서가 등장하고, 이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이 이루어졌다. 버트 윗슨, 앞의 책, pp.110-112
한편 맹자가 공자의 『춘추』가 난신적자(亂臣賊子)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주장한 이래 『춘추』는 사실의 포폄(貶)을 통하여 정치적·도덕적 규범의 확립과 후세의 왕도(王道)를 위한 난세 극복의 원리를 제시하기 위한 저술이라는 춘추관이 성행하고 있었다. 버트 윗슨, 위의 책, pp.120-123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견디면서까지 『사기』를 완성하게 된 집필 동기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지언’을 이루고자(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한 것이었다. 즉 일가(一家)를 이룬 공자의 『춘추(春秋)』에 필적할 만한 역작을 통해 일가를 이루고 싶어 했던 것이다. 김춘희,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 사기의 가치와 사마천에 대한 고찰」, 『중국인문학회 정기학술대회 발표논문집』, 2008, p.117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을 인용하여 『사기』의 저술 동기를 「자서」에서 밝히고 있다는데,
“선친께서 말씀하시기를 ‘주공이 죽고 난 뒤 500년 만에 공자가 나왔다. 그리고 공자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500년이 지났으니 능시 세상을 밝히고자 『역전(易傳)』을 바르게 하고 『춘추』를 계승하고 『시·서·예·악』의 근본을 구명할 사람이 있으리라!’라고 하셨는데, 뜻이 여기에 있다! 뜻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내가 어찌 감히 사양하겠는가!” 버트 윗슨, 위의 책, p.122 (재인용)
여기서 사마담은 500년마다 진정한 왕이 나타난다는 맹자의 이론을 되풀이하고 있으며, 가의(賈誼)가 『신서·수령』에서 “성왕의 발흥은 대체로 500년을 주기로 한다.” 천퉁성, 앞의 책, p.152
라고 말한 데서 단서를 얻어 최고의 성스러운 군주인 요·순·우부터 은의 창시자 탕, 주의 창시자 문왕, 마지막으로 공자까지의 계통을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사마담은 이 이론을 지배자가 아니라 저술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공자의 뒤를 잇는 자를 그 자신과 아들 사마천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버트 윗슨, 앞의 책, p.123
위의 인용문은 사마천이 자신이 집필한 『사기』의 중요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별히 자신을 공자의 후계자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김춘희, 위 논문, p.117
사마천은 공자를 깊이 사모하고 있었고, 『춘추』의 영향을 깊이 받아 『사기』를 저술하였으며 『사기』의 「주본기」와 「십이제후세가」에서는 모두 공자의 졸년(卒年)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사마천이 공자가 획기적인 문화적 거장이라는 점을 인식했음을 나타낸다. (천퉁성, 앞의 책, p.145)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도 그 감정을 표출하였다. 천퉁성, 위의 책, p.146
특히 사마천이 공자를 높이 평가했던 것은, 당대 그 어떤 전적보다도 『춘추』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며, 특히 한 무제 중·후기에 무절제한 민력의 동원으로 다시금 사회문제가 대두되는 시점에서 왕도덕치를 표방하는 『춘추』를 계승하는 것은 『사기』의 최고 목표가 되었고, 이 지향은 『사기』를 거대한 문화저작으로 남게 하였다. 천퉁성, 위의 책, p.156
사마천이 공자를 계승하려하는 의식은 『사기』를 집필한 이유에서 단지 무제와 그 시대를 찬미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으로 자신과 『춘추』와의 관계를 부정하고 있는 데 반해 버트 윗슨, 앞의 책, p.125
, 저술에서 『춘추』와 『주석서』의 구절을 인유(引喩)하고 있다는 데서도 엿보이며 사마천은 「자서」의 맨 마지막 구절에서 ‘후세의 성인·군자가 읽기를 기다린다.’고 하고 있는데 이는 『공양전』의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의 인유다. 이 외에도 사마천은 『춘추』의 전통을 잘 알고 있었고 대체로 닮고자 하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버트 윗슨, 위의 책, p.128)
, 사기』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춘추』의 기초 위에서 명실상부한 ‘사학(史學)’이 되게 하였다는 점이다. 천퉁성, 앞의 책, pp.153-155
IV. 『사기(史記)』의 특징과 영향
i) 『사기』의 특징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였던 노신(魯迅)은 사기를 일컬어 ‘사가의 절창, 가락이 없는 이소’라고 극찬했다. 또한 근대 중국의 계몽 사상가이자 문학가였던 양계초는 ‘사마천은 역사학의 태조이자 조물주’라고 극찬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니콜라 디코스모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오랑캐의 탄생』에서 중국을 낳은 사람은 진시황제가 아닐 사마천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사마천, 스진 풀어씀, 노만수 역, 『사마천 史記』, 일빛, 2009, p.484
또한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의 저자인 버튼
『사기』「화식열전」을 살펴보면 인간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와의 상관관계, 인간의 사상행동과 물질적 이익과의 관계 등 인간생활의 기틀을 이루는 일련의 중대한 문제를 탐구하고 해답을 제시했다. 이것은 사마천이 “하늘과 인간(天人)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통달하고자”한 원칙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사마천은 역사가 발전한다고 보았으며 인간은 물질과 정신생활의 촉구를 통해 무엇인가를 개조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사마천은 『사기』의 「십표(十表)」와 「팔서(八書)」를 고금의 변화를 밝히기 위해 서술하였다. 표는 고금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서문에서 고금의 대세를 개괄하였다. 서에서는 제도의 변천과정을 중점적으로 기술을 하였다. 그리하여 사마천은 ‘시작과 끝을 종합하고(綜基終始)’ ‘시작과 끝을 고찰하고(原始察終)’ ‘ 흥망성쇠를 보아 인식하고(見盛觀衰)’ ‘피폐한 나라를 변통하려는(承敞通變)’ 것이 고금지변을 통찰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역사적 사건의 현상을 넘어 그 발전 추세를 찾아냈으며, 그 결과로 역사의 전 과정을 분석하고 현상을 넘어 본질을 꿰뚫어봄으로써 변화의 전정한 원인과 방향을 찾고자 했다. 중국사학사 편집위원회, 위의 책, pp.140-144
(2) “成一家之言” - 『춘추(春秋)』와 사마천
공자가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춘추』는 기원전 722년부터 481년에 이르는 방대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2만자를 넘지 않는 매우 간략한 서술이어서 이를 해석하기 위한 주석서가 등장하고, 이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이 이루어졌다. 버트 윗슨, 앞의 책, pp.110-112
한편 맹자가 공자의 『춘추』가 난신적자(亂臣賊子)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주장한 이래 『춘추』는 사실의 포폄(貶)을 통하여 정치적·도덕적 규범의 확립과 후세의 왕도(王道)를 위한 난세 극복의 원리를 제시하기 위한 저술이라는 춘추관이 성행하고 있었다. 버트 윗슨, 위의 책, pp.120-123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견디면서까지 『사기』를 완성하게 된 집필 동기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지언’을 이루고자(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한 것이었다. 즉 일가(一家)를 이룬 공자의 『춘추(春秋)』에 필적할 만한 역작을 통해 일가를 이루고 싶어 했던 것이다. 김춘희,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 사기의 가치와 사마천에 대한 고찰」, 『중국인문학회 정기학술대회 발표논문집』, 2008, p.117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을 인용하여 『사기』의 저술 동기를 「자서」에서 밝히고 있다는데,
“선친께서 말씀하시기를 ‘주공이 죽고 난 뒤 500년 만에 공자가 나왔다. 그리고 공자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500년이 지났으니 능시 세상을 밝히고자 『역전(易傳)』을 바르게 하고 『춘추』를 계승하고 『시·서·예·악』의 근본을 구명할 사람이 있으리라!’라고 하셨는데, 뜻이 여기에 있다! 뜻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내가 어찌 감히 사양하겠는가!” 버트 윗슨, 위의 책, p.122 (재인용)
여기서 사마담은 500년마다 진정한 왕이 나타난다는 맹자의 이론을 되풀이하고 있으며, 가의(賈誼)가 『신서·수령』에서 “성왕의 발흥은 대체로 500년을 주기로 한다.” 천퉁성, 앞의 책, p.152
라고 말한 데서 단서를 얻어 최고의 성스러운 군주인 요·순·우부터 은의 창시자 탕, 주의 창시자 문왕, 마지막으로 공자까지의 계통을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사마담은 이 이론을 지배자가 아니라 저술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공자의 뒤를 잇는 자를 그 자신과 아들 사마천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버트 윗슨, 앞의 책, p.123
위의 인용문은 사마천이 자신이 집필한 『사기』의 중요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별히 자신을 공자의 후계자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김춘희, 위 논문, p.117
사마천은 공자를 깊이 사모하고 있었고, 『춘추』의 영향을 깊이 받아 『사기』를 저술하였으며 『사기』의 「주본기」와 「십이제후세가」에서는 모두 공자의 졸년(卒年)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사마천이 공자가 획기적인 문화적 거장이라는 점을 인식했음을 나타낸다. (천퉁성, 앞의 책, p.145)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도 그 감정을 표출하였다. 천퉁성, 위의 책, p.146
특히 사마천이 공자를 높이 평가했던 것은, 당대 그 어떤 전적보다도 『춘추』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며, 특히 한 무제 중·후기에 무절제한 민력의 동원으로 다시금 사회문제가 대두되는 시점에서 왕도덕치를 표방하는 『춘추』를 계승하는 것은 『사기』의 최고 목표가 되었고, 이 지향은 『사기』를 거대한 문화저작으로 남게 하였다. 천퉁성, 위의 책, p.156
사마천이 공자를 계승하려하는 의식은 『사기』를 집필한 이유에서 단지 무제와 그 시대를 찬미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으로 자신과 『춘추』와의 관계를 부정하고 있는 데 반해 버트 윗슨, 앞의 책, p.125
, 저술에서 『춘추』와 『주석서』의 구절을 인유(引喩)하고 있다는 데서도 엿보이며 사마천은 「자서」의 맨 마지막 구절에서 ‘후세의 성인·군자가 읽기를 기다린다.’고 하고 있는데 이는 『공양전』의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의 인유다. 이 외에도 사마천은 『춘추』의 전통을 잘 알고 있었고 대체로 닮고자 하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버트 윗슨, 위의 책, p.128)
, 사기』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춘추』의 기초 위에서 명실상부한 ‘사학(史學)’이 되게 하였다는 점이다. 천퉁성, 앞의 책, pp.153-155
IV. 『사기(史記)』의 특징과 영향
i) 『사기』의 특징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였던 노신(魯迅)은 사기를 일컬어 ‘사가의 절창, 가락이 없는 이소’라고 극찬했다. 또한 근대 중국의 계몽 사상가이자 문학가였던 양계초는 ‘사마천은 역사학의 태조이자 조물주’라고 극찬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니콜라 디코스모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오랑캐의 탄생』에서 중국을 낳은 사람은 진시황제가 아닐 사마천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사마천, 스진 풀어씀, 노만수 역, 『사마천 史記』, 일빛, 2009,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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