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사의 개념
Ⅱ. 서사의 기능
1. 이야기는 아름답다
2. 이야기는 즐거움을 준다
Ⅲ. 서사의 요소
1. 내용의 형식
2. 내용의 실체
3. 표현의 형식
4. 표현의 실체
Ⅳ. 서사와 서사체
Ⅴ. 서사와 서사교육
Ⅵ. 서사와 서사문학
참고문헌
Ⅱ. 서사의 기능
1. 이야기는 아름답다
2. 이야기는 즐거움을 준다
Ⅲ. 서사의 요소
1. 내용의 형식
2. 내용의 실체
3. 표현의 형식
4. 표현의 실체
Ⅳ. 서사와 서사체
Ⅴ. 서사와 서사교육
Ⅵ. 서사와 서사문학
참고문헌
본문내용
말을 좀더 들어보자. 서사 활동에 대한 교육은 자기 이해와 자아 성장의 교육으로 수렴된다. \'서사를 이해하고 스스로 서사를 수용하여 자기 이해를 위한 방편으로 삼을 줄 알며, 나아가서 서사를 재창조하는 데 참여함으로써 전인적 인격의 형성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서사교육의 전제이다. 서사교육은 서사적 사고의 교육이다. 서사적 사고는 사태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그 사태를 이해하고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영진은 이야기를 서사론의 관점에서 보면서 \"세계를 자기 식으로 변형함으로써 세계를 상상적인 차원에서나마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현실적 결핍을 극복하는 한 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서사의 근원에 존재하는 결핍으로서의 욕망의 상상적 변형, 곧 상징이라는 대치의 방법을 통해서 극복하는 것, 결국 이야기는 구성을 통한 상황 통제의 한 방편이라는 것 등을 드러내 준다.\"라고 한다. 이야기를 통하여 독자는 인간만의 탁월한 상상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단편적인 경험들을 재구성하여 한 편의 일관되고 의미 있는 서사물로 완성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인지 모두 경험해 보고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고 불가능하기조차 하다. 책 속의 주인공의 삶과 동일시를 통하여 간접경험을 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바람직한 방향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 서사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주체적으로 통전적으로 써나가는 서사인(敍事人)으로 교육하자는 것이다.
Ⅵ. 서사와 서사문학
되블린의 예술적 내지 문학이론적 노력들이 지향하는 바는 영혼이 온 자연에 깃들여있다는 자연철학적 사고를 활성화하여 자아 Ich와 세계 Welt의 완전한 조화를 획득하고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식하는 자 res cogitans”인 자아와 “존재하는 자 res extensa”인 세계의 대치라는 절대적 이원론에서 출발하는 데카르트주의 Cartesianismus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의 주제는 현실을 대하는 인간의 변화된 태도이며 인간의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감정이다. 되블린은 결코 만물의 척도로서 인간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연철학적 저서인 『우리들의 현존재 Unser Dasein』에 그는 이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세우지 않는다. 세계는 인간들 주위를 돌지 않는다. 물론 인간도 세계의 주위를 돌지 않는다. 인간은 그의 개별화 속에서 세계의 흐름에 동참한다.
되블린은 자신의 우주적이고 자연철학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주관적으로 인식된 진리와 그 진리의 객관적 표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의 주제는 현실을 대하는 인간의 변화된 태도이며 인간의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감정이다. 자연은 객관적 현실 objektive Realitat로서 변함없이 존재한다. 즉 인식한 자와 인식된 개체가 통일체로서 융합하는 순수하고 조화로운 관계가 존재한다. 예술이 가지는 역할은 자연에 대한 예술의 관계 속에서 규명될 수 있다. “예술은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자연의 부분이며 동시에 상대되는 짝인가를 아주 분명히 보여준다. Sehr deutlich zeigt die Kunst, auf welche Weise wir zugleich Stuck und Gegenstuck der Natur sind.” 우리가 자연의 부분인 동시에 상대되는 짝이라고 하는 되블린의 자연철학의 원칙에 따르면, 인간은 한편으로 ‘자연의 상대되는 짝 Gegenstuck der Natur’으로서 개별화라는 고통을 겪게 되지만 아울러 자신의 유일무이함을 자랑스러워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의 부분Stuck der Natur’으로서 우주와 결합되어 우주와의 밀접한 연관성 속에 있다. 시간성 속에서 그리고 시간성으로 인해 받는 고통에 대한 이해는 모든 존재가 서로 긴밀히 얽혀서 결합되어 있다는 사상과 맞서게 된다. 운명에 대한 견해와 더불어 되블린은 개체가 가지는 위대함과 존엄성을 강조한다. 자연의 “부분”이며 “상대되는 짝”인 자아는 고유한 방법으로 세계와 결합되어있고 또한 분리되어 있다. 말하자면 자아는 세계 안에 엮어져 있고 또한 세계와 대치되고 있다. 개체와 세계 사이에는 상호교환관계가 유지된다. 즉 세계는 개체 안으로 스며들어 영향을 미치고, 개체는 세계를 경험하고 그리고 해명한다.
우리 내부에 빛이 발한다. 인간은 작고 하찮은 개체로서 인간이 얼마나 불쌍한가를 한탄한다. 부패하여 없어질 물건 - 그러나 반짝이는 불빛, 자아, 익명의 신이 낳은 원천적으로 자유로운 것이 물론 여기에 있다. 이것은 나로부터 크게 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태양은 나를 위해 비추고 있는데, - 나는 태양을 위해 빛을 발하고 있지 않는단 말인가? 어떻게 세계가 나 없이 계속 존재할 수 있는가? 그래서 세계는 나와 더불어, 나에 의해서 계속 되기를 원하고 있다.
되블린은 『우리들의 현존재』에서 자아가 세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하는 자아에 대한 우월적 이해를 계속해서 피력한다.
세계는 경험되고자 한다. 세계는 자아를 필요로 한다. 자아, 즉 느끼고, 원하고, 행동하고, 육체를 가진 자는 여기에 있으며, 세계를 경험하고 움직인다.
이로써 그는 인간적 자아에게 일종의 자유, 행동과 변화를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개체는 중요하지도 영향력도 없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의 실행에 동참하고 있다. 자아와 세계가 우주적 유기체의 조화 속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는 자아와 세계의 상호작용으로서의 “운명 Schicksal”을 되블린은 역시 일상적 자연의 과정들 속에서도 발견한다. 즉 나무가 불꽃에 의해 탈 때 그 어느 하나도 지배적 요소가 아니다. 단지 양자 (나무와 불꽃)의 상호작용만이 연소의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 연소의 과정은 나무와 불꽃이 서로 만남으로써 그들이 가진 특성을 서로 인식하게 한다는 사실로 특정 지워진다. 되블린의 문학적 노력은, 자아와 세계가 서로 지향하고 서로에게 열려진 체계들로서 그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원칙적으로 하나로 통일되어 있음을 보이기 위해 극단적인 대립들을 반대하는 데로 향한다. 아달베르트
문영진은 이야기를 서사론의 관점에서 보면서 \"세계를 자기 식으로 변형함으로써 세계를 상상적인 차원에서나마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현실적 결핍을 극복하는 한 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서사의 근원에 존재하는 결핍으로서의 욕망의 상상적 변형, 곧 상징이라는 대치의 방법을 통해서 극복하는 것, 결국 이야기는 구성을 통한 상황 통제의 한 방편이라는 것 등을 드러내 준다.\"라고 한다. 이야기를 통하여 독자는 인간만의 탁월한 상상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단편적인 경험들을 재구성하여 한 편의 일관되고 의미 있는 서사물로 완성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인지 모두 경험해 보고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고 불가능하기조차 하다. 책 속의 주인공의 삶과 동일시를 통하여 간접경험을 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바람직한 방향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 서사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주체적으로 통전적으로 써나가는 서사인(敍事人)으로 교육하자는 것이다.
Ⅵ. 서사와 서사문학
되블린의 예술적 내지 문학이론적 노력들이 지향하는 바는 영혼이 온 자연에 깃들여있다는 자연철학적 사고를 활성화하여 자아 Ich와 세계 Welt의 완전한 조화를 획득하고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식하는 자 res cogitans”인 자아와 “존재하는 자 res extensa”인 세계의 대치라는 절대적 이원론에서 출발하는 데카르트주의 Cartesianismus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의 주제는 현실을 대하는 인간의 변화된 태도이며 인간의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감정이다. 되블린은 결코 만물의 척도로서 인간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연철학적 저서인 『우리들의 현존재 Unser Dasein』에 그는 이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세우지 않는다. 세계는 인간들 주위를 돌지 않는다. 물론 인간도 세계의 주위를 돌지 않는다. 인간은 그의 개별화 속에서 세계의 흐름에 동참한다.
되블린은 자신의 우주적이고 자연철학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주관적으로 인식된 진리와 그 진리의 객관적 표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의 주제는 현실을 대하는 인간의 변화된 태도이며 인간의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감정이다. 자연은 객관적 현실 objektive Realitat로서 변함없이 존재한다. 즉 인식한 자와 인식된 개체가 통일체로서 융합하는 순수하고 조화로운 관계가 존재한다. 예술이 가지는 역할은 자연에 대한 예술의 관계 속에서 규명될 수 있다. “예술은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자연의 부분이며 동시에 상대되는 짝인가를 아주 분명히 보여준다. Sehr deutlich zeigt die Kunst, auf welche Weise wir zugleich Stuck und Gegenstuck der Natur sind.” 우리가 자연의 부분인 동시에 상대되는 짝이라고 하는 되블린의 자연철학의 원칙에 따르면, 인간은 한편으로 ‘자연의 상대되는 짝 Gegenstuck der Natur’으로서 개별화라는 고통을 겪게 되지만 아울러 자신의 유일무이함을 자랑스러워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의 부분Stuck der Natur’으로서 우주와 결합되어 우주와의 밀접한 연관성 속에 있다. 시간성 속에서 그리고 시간성으로 인해 받는 고통에 대한 이해는 모든 존재가 서로 긴밀히 얽혀서 결합되어 있다는 사상과 맞서게 된다. 운명에 대한 견해와 더불어 되블린은 개체가 가지는 위대함과 존엄성을 강조한다. 자연의 “부분”이며 “상대되는 짝”인 자아는 고유한 방법으로 세계와 결합되어있고 또한 분리되어 있다. 말하자면 자아는 세계 안에 엮어져 있고 또한 세계와 대치되고 있다. 개체와 세계 사이에는 상호교환관계가 유지된다. 즉 세계는 개체 안으로 스며들어 영향을 미치고, 개체는 세계를 경험하고 그리고 해명한다.
우리 내부에 빛이 발한다. 인간은 작고 하찮은 개체로서 인간이 얼마나 불쌍한가를 한탄한다. 부패하여 없어질 물건 - 그러나 반짝이는 불빛, 자아, 익명의 신이 낳은 원천적으로 자유로운 것이 물론 여기에 있다. 이것은 나로부터 크게 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태양은 나를 위해 비추고 있는데, - 나는 태양을 위해 빛을 발하고 있지 않는단 말인가? 어떻게 세계가 나 없이 계속 존재할 수 있는가? 그래서 세계는 나와 더불어, 나에 의해서 계속 되기를 원하고 있다.
되블린은 『우리들의 현존재』에서 자아가 세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하는 자아에 대한 우월적 이해를 계속해서 피력한다.
세계는 경험되고자 한다. 세계는 자아를 필요로 한다. 자아, 즉 느끼고, 원하고, 행동하고, 육체를 가진 자는 여기에 있으며, 세계를 경험하고 움직인다.
이로써 그는 인간적 자아에게 일종의 자유, 행동과 변화를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개체는 중요하지도 영향력도 없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의 실행에 동참하고 있다. 자아와 세계가 우주적 유기체의 조화 속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는 자아와 세계의 상호작용으로서의 “운명 Schicksal”을 되블린은 역시 일상적 자연의 과정들 속에서도 발견한다. 즉 나무가 불꽃에 의해 탈 때 그 어느 하나도 지배적 요소가 아니다. 단지 양자 (나무와 불꽃)의 상호작용만이 연소의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 연소의 과정은 나무와 불꽃이 서로 만남으로써 그들이 가진 특성을 서로 인식하게 한다는 사실로 특정 지워진다. 되블린의 문학적 노력은, 자아와 세계가 서로 지향하고 서로에게 열려진 체계들로서 그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원칙적으로 하나로 통일되어 있음을 보이기 위해 극단적인 대립들을 반대하는 데로 향한다. 아달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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