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사비시대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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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비시대 사찰 검토
1. 陵山里寺址
(1)연혁
(2) 입지 환경
(3) 가람배치
2. 龍井里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3. 定林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4. 臨江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5.金剛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6. 軍守里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7. 王興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8. 西腹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9.佳塔里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10.밤골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11. 舊衙里寺址 (傳 天王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12. 虎岩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13. 外里遺跡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14. 觀音寺址
1) 연혁
(2) 입지환경
(3) 가람배치

본문내용


호암사라는 절 이름은 『三國遺事』에 등장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다. 호암사지에 대한 기록이다.
又虎岩寺有政事岩國家葬議宰相則書當選者名或三四函封置岩上. 須臾取看名上有印跡者爲上故名之 『三國史記』 卷 第2 紀異 第2 南扶餘前百濟‘北扶餘’條.
-또 호암사에서는 정사암이란 바위가 있으니 나라에서 재상을 선임할 때는 당선자 3~4인의 이름을 써서 函封하여 바위 위에 두었다가 얼마 후에 개봉하여 그 이름 위에 印이 찍혀 있는 자로 재상을 삼았으므로 그러한 이름이 생겼다.
이 기록은 호암사의 그 정확한 위치를 비정하여 주지는 않지만 대략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절터의 위치를 찾아보려면 寺名과 동일한 지명을 찾는 것이 우선인데 그 대상이 되는 곳이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이다. 忠南大學校博物館, 2002, 『부여의 문화유산』, 忠淸南道, p.159.
특히 이곳에 기암이 직립한 곳이 있는데 현재 天政臺라 불린다. 천정대 동측으로 흐르는 천의 서벽에는 임금바위 또는 범바위가 있어 이곳을 虎岩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천정대는 백제사찰 호암사의 사역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며 1970년 초에 백제 와당이 수습되어 목조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洪思俊, 1974, 「虎岩寺址와 王興寺址考」, 『百濟硏究』 第5輯, p.148.
또한 1950년대 전반 무렵 호암리의 주민이 가옥신축을 위해 대나무 숲을 파내다가 약 25cm 크기의 금동입불을 수습한 사실과 장방형 판석 등이 산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중시하여 그 지역을 절터로 비정하였다. 洪思俊, 1974, 「虎岩寺址와 王興寺址考」, 『百濟硏究』 第5輯, p.148.
하지만 이 지역에 대한 시 발굴 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다.
(2) 입지환경
현재 호암리사지로 비정되고 있는 지역은 행정구역상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 동편에 속한 곳이다. 이곳은 전면이 트여서 백마강이 바라다 보이고, 좌우에 낮은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왕흥사지 금강사지 임강사지 등과 같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입지는 뱃길을 이용하여 당도하기 좋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13. 外里遺跡
(1) 연혁
외리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 위치한다. 이곳은 유구가 거의 파괴되고,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절터의 형적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발굴조사는 1937년 농부들이 유적근처에서 문양전과 수막새를 발견하여 부여경찰서에 신고한 것을 계기로 朝鮮古墳硏究會의 有光敎一, 米田美代治 등에 의해 실시되었다. 발굴조사는 유물이 발견된 남북 약 75m, 동서 약 27m에 달하는 대지상 평탄면의 거의 전역에서 실시되었다. 그 결과 초석 등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남북 약 9m 길이에 약 30점의 문양전을 배치한 전열 및 산포된 와전들이 확인되었으며, 그 분포상황으로 보아 남북으로 2기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또 문양의 배열이 무질서한 점으로 보아 이차적으로 재이용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출토유물은 문양전의 파편 150점(그 중 완형품은 42점), 무문전 9점, 수막새 20여점 외에 치미, 토기, 도기, 철기 등이 확인되었다. 淸水昭博, 「百濟瓦塼에 보이는 同 改의 한 事例」, 『百濟硏究』 第39輯, 2004, p.190.
(2) 입지환경
외리유적은 행정구역상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 위치하는데 부여 중심부에서 백제대교를 건너 규암면의 중심부에서 동북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금강을 사이에 두고 부여 시가지의 서쪽의 입지하며, 백마강을 해자로 한 사비나성의 바깥쪽에 해당한다.
14. 觀音寺址
(1) 연혁
관음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 201번지에 위치한다. 그 유래가 전해지지 않았지만 1972년도에 관음사지가 위치한 뒷산에서 고려시대 청동불상 1점과 1996년도에 치미편이 유적 주변에서 수습, 신고되어 국립부여문화재 연구소에서 2004년 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관음사지라는 寺名은 어떻게 불리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2004년도 시굴조사에서 건물기자 확인되어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백제시대 폐사지의 존재 가능성이 높아졌다. 출토유물은 연화문 수막새를 비록하여 연목와, 치미편 등이다.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扶餘 觀音 밤골寺址 試掘調査報告書』, 2006, pp.12~13.
(2) 입지조건
관음사지는 행정구역상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 201번지에 위치한다. 지리적으로는 부여읍에서 논산방향으로 통하는 4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나성에 못 미쳐 가스충전소가 있는데 그 서쪽으로 해발 70m 정도의 야산 하단부 서록에 위치한다. 현재 유적의 뒷산은 금성산과 연결되어 있고 등산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보면 동나성과 만나게 된다.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扶餘 觀音 밤골寺址 試掘調査報告書』, 2006, p.14.
(3) 가람배치
관음사지에 대한 시굴조사는 트렌치를 구획하여 실시되었는데 그 결과 와적층이 조사범위 전체에 걸쳐 분포됨을 확인하였다. 건물지는 2기가 확인되었는데 20m 간격을 두고 남북 일직선상에 위치한다. 남쪽에 있는 건물지 1은 기단부를 세장방형의 지대석으로 시설한 장방형의 석축기단 건물지이고, 북쪽에 위치한 건물지 2는 소형할석을 이용하여 기단을 축조한 석축기단 건물지이다.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扶餘 觀音 밤골寺址 試掘調査報告書』, 2006, p.18.
지금까지 살펴본 사찰유적은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지표조사나 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유적을 서술한 것이다. 이밖에도 사비도성 내 외곽에는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백제시대 사찰이 다수 존재한다. 그 사찰들은 다음 표와 같다.
寺刹名
位置
遺跡 遺物
1
佳塔里寺址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
석열유구, 인장와, 연화대좌편
2
舊校里寺址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84번지
소조불두, 보륜 3점, 인명와편
3
雙北里廢寺址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고구려 계통 연화문와당, 치미편 등
4
雙北里寺址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도서관부지
석제보살묘 1점, 장식와 1점 등
5
鄕校밭廢寺址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활석제 불상편, 연화문 와당 등
6
鶴里寺址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연화문 와당 다수
7
東山里寺址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8
石木里寺址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 1번지
석조연화대좌, 기와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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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02
  • 저작시기2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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