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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중국문학의 변천
1. 근세문학
1) 원(元)대 문학
2) 명(明)대 문학
3) 청(淸)대 문학
2. 현대문학

Ⅱ. 중국문학과 되돌아보기문학

Ⅲ. 중국문학과 민간문학

Ⅳ. 중국문학과 소수민족문학

Ⅴ. 중국문학과 육유
1. 재도론
2. 양기론

Ⅵ. 중국문학과 몽롱시

Ⅶ. 중국문학과 소설 회구

참고문헌

본문내용

며 그 자체로써 賢愚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문장이 도를 담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비록 당시의 풍조에 맞지 않아 세상에 널리 전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는 이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문장을 익히고 쓰는 목적 또한 이러한 載道論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문장의 요법은 옛날 작자의 뜻을 얻는 데 있는 것이다. 뜻은 이미 심원하나 힘을 기울여 정밀하게 도달하지 않으면 이를 수 없는 것이다. 前輩들은 左氏傳과 太史公의 글과 韓愈의 문장과 杜甫의 시를 모두 숙독하고 암송하여 비록 잠자리에 있을 때나 말을 타고 있을 때나 책을 대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고 오래됨에 능히 초연하여 스스로 얻을 수가 있었다. 지금의 후생들은 힘을 쓰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면서도 책을 덮고 일어나고 이미 열에 서넛을 잃었으면서도 고인에게 얻은 바가 있기를 바라니 역시 어려울 따름이다.
그에게 있어 문장을 익히는 까닭은 옛날 작자의 뜻을 얻기 위한 것이고 그 방법은 자신의 모든 능력과 정열을 쏟아 부을 때에라야 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 속에 담겨있는 작자의 뜻, 즉 도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적인 면에 매료되어 전인의 형식기교만을 모방하게 되고 결국은 ‘小技’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同時代 道學者인 朱熹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독서의 방법은 먼저 책의 외면적인 껍질을 알아야 하며, 또 반드시 그 내면의 요점을 파악해야 한다. 그대가 시를 보는 것과 같이 한다면 다만 외형적인 모습이 이와 같은 것임을 알 뿐 그 이면의 좋은 점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 그대의 마음이 시인의 마음과 합치되지 않는 까닭에 애를 쓰고 조바심을 내나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러한 것은 다만 熟讀하지 않았음이니 숙독한 뒤에라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陸游와 朱熹가 이처럼 문장을 익히는데 ‘用力精到’하고 ‘熟讀’할 것을 강조한 까닭은 다분히 당시의 풍조에 대한 비판의 뜻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옛날의 소리가 지어지지 않은 지 오래되었도다. 이른바 시라고 하는 것은 마침내 小技가 되어버렸도다. 시를 진정 小技라 이를 수 있단 말인가? 배움이 天人에 이르지 아니하고 행동이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으니 진실로 시라 말할 수 있겠는가? 금세의 시로써 스스로 자부하는 자들은 대부분 太一高士의 무리가 많도다.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지 않는 자가 거의 드문데 도잠과 두보의 여풍이 있기를 바라니 진정 얻을 수 있겠는가?
陸游에게 있어 문장의 載道論은 또한 문장의 公用論에 대한 주장이기도 하였다. 그에게 있어 문장 속에 실린 도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심사를 표출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것은 전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고 그 내용 또한 공동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공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陸游는 말년에 문장은 꾸짖고 헐뜯는 것이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문장은 정해진 가치가 있다’는 말이나 ‘문장은 公器이니 마땅히 천하와 함께 해야 한다.’는 등의 말과 함께 載道論에 바탕을 둔, 문장의 公能性을 강조한 말이라 할 수 있다.
2. 양기론
養氣論은 劉에게서부터 시작하여 韓愈,柳宗元,歐陽修 등도 줄곧 주장하여 왔으며 黃庭堅이나 呂本中 등의 江西詩派 시인들도 강조하였던 이론인데 陸游에게 있어 이들과 달랐던 것은 그것이 ‘載道’라는 보다 본질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써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듣건대, 文은 氣를 위주로 한다. 출처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氣가 꺾이지 않는다.
시를 배우려면 마땅히 陶淵明을 배워야 하니 ....氣를 기름이 완전해지도록 해야 하며 처신함이 바르도록 해야만 한다.
그는 詩作에 들어가기 전에 요구되는 이와 같은 ‘養氣’를 그의 아들에게 한 말에서 ‘詩外工夫’라고 명명하였는데 이는 다름 아닌 도덕, 사상 방면에서 끊임없는 수양을 쌓고 현실생활 속에서의 수많은 경험과 실천들 속에서 진리를 깨달아야만 진정한 시를 써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詩外工夫’가 바탕이 되어 있어야만 陸游 자신이 말한 바와 같이 ‘道는 虛를 향하는 중에 얻고 文은 實處를 따라 공교해질 수 있는 것’이며 ‘載道’라는 보다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문장이 이처럼 氣를 위주로 하는 까닭에 문장을 보면 그 글을 쓴 사람의 氣를 알 수 있으며 사람마다 문장이 다른 것은 그 사람이 기른 바의 氣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문장은 마땅히 氣를 위주로 해야 하니, 지금 사람이 옛사람만 못한 것이 이상하지 않도다.
바는 드러나 말이 되고 말이 드러나 서술하여 文章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사악함과 올바름은 그 문장을 보게 되면 다하게 되고 결정되게 되는 것이니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賢者가 기른 바는 天地를 감동시키고 金石을 깨치며 그 胸中의 妙는 충만하고 가득 넘치니, 이후에 밖에 드러나서는 氣는 온전하고 힘은 남음이 있으며 道에 합치하고 두루 넓으니 어찌 한 터럭의 거짓이라도 그 사이에 용납할 수 있겠는가?
문장을 보면 그 사람의 사악함과 올바름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은 후에 王國維가 말한 ‘그 시대로 말미암아 그 사람을 알 수 있으며,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시의 뜻을 파악할 수 있다.’라는 말과 비교하여 비록 그 선후의 차이는 있지만 문장과 작가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선구적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氣全力餘,中正博’ 이 두 구는 陸游의 養氣論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그가 養氣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경지가 어떠한 것인지 말해주는 것이다.
陸游의 ‘養氣’에 대한 강조는 ‘氣’를 ‘才’와 구별하여 설명하는 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시를 어찌 쉽게 말할 수 있으리오! 재주는 하늘에서 얻지만 氣라 하는 것은 내가 기르는 것이로다. 재주는 있으나 기력이 이를 제어하기에 부족하면 부귀함에 음란해지고 가난함에 도리에서 벗어나게 되고 얻어도 잃은 것을 갚지 못하고 영화로워도 부끄러움을 가리지 못하나니, 시는 이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니 옛사람의 뛰어난 수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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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0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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