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시속의 삶과 의식<<책속의 장유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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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장유(張維)의 시와 실천의지

1) 삶의 특징

가. 성장기(1587-1608, 선조41년)

나. 좌절 은둔기(1609, 광해1년-1622, 광해14년)

다. 진충 보국기(1633, 인조1년-)

⑵ 시에 나타난 실천의지

가.주관적 성실

나. 현실비판

다. 교유와 한거

라. ‘진정실경(眞情實境)’ 과 천기(天機)

본문내용

冬始見 喜成一律 呈畸菴白洲)
밤드니 마른나무 가지에 바람소리 울리고
추운 겨울이라 눈 내리니 天道가 또한 놀랍구나.
늙은이는 차가움이 다가온 것을 홀로 먼저 느끼지만
깊이 잠든 어린애는 눈 온 줄을 모르는구나.
온 세상 천지에는 눈꽃이 가득 피었는데
하늘나라 궁궐에서 옥가루가 여기저기 내리네.
粱園에서 주고받던 시야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니
그대들과 더불어 禁體詩를 지어 보세나.
入夜風鳴枯樹枝 窮冬一雪赤堪奇 寒侵老子獨先覺 睡熟小兒都不知
滿地江山花爛 九天宮闕玉參差 梁園授簡非吾事 欲得諸公白戰詩
이 시는 그가 42살에 지은 작품인 듯하다. 바로 앞에 실린 시가 신흠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가 마지막 읊은 시에 차운한 작품이므로 이시도 신흠이 죽었던 해에 지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수련은 마른나무 가지에 바람소리가 서글픈 겨울날에 펑펑 내리는 첫눈을 보고, 양기가 물러가고 음기가 세상을 지배하는 계절의 순환 곧 천도의 운행에 감탄한다고 하여, 첫눈에 대한 경이감을 드러내었다. 함련에는 늙은이와 어린이를 대비시켜서 음기 곧 죽음의 기운을 느끼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늙은이는 생명이 쇠잔해 가기에 차가운 음기에 민감하지만 어린이는 생명력이 넘치고 있어 음기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이 구절 밑에 “속전에 어린애가 눈 온 줄 모르면 풍년이 들 조짐이라 한다”(俗傳小兒不覺雪 豊年之祥)라고 주를 달았는데, 이 말도 어린이의 생명력이 풍년을 가져오리라는 믿음에서 생겨난 것이라 하겠다.
경련에서 온 천지에 눈꽃이 피고 하늘에서 눈이 펄펄 내리는 광경을 보여주고, 미련에서 한나라 경제 때 양왕이 빈객을 모아놓고 시를 지었다는 양원(梁園)은 아니지만 친구들끼리 어울려 눈을 상기시키는 글자는 빼고서 짓는 백전시(白戰詩) 곧 금체시(禁體詩)를 지으며 눈 오는 날의 흥취를 즐겨보자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시는 눈 오는 날의 진정실경(眞情實境)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북망행(北邙行)
북망산 아래 연이은 비탈진 언덕에
눈에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수많은 무덤들뿐
도톰한 새 무덤에 허물어진 옛 무덤
날이면 날마다 상여 메고 올라오네.
상여가 산굽이를 돌아서 올라오면
길가에서는 노랫소리 산 위에서는 곡소리
흰 글 쓴 붉은 銘旌은 열 자나 우뚝 섰으나
백골이야 누군들 영욕을 다시 알까.
무덤 앞에는 백양 심을 땅도 없는데
잡초만 무성하게 아침 이슬에 젖었구나.
여우와 살쾡이들 床石에서 낮잠 자다가
사람 보면 도망가서 수풀 속에 깊이 숨네.
높은 누대에서 흥겹게 놀지만 봄바람은 잦아지는 법이니
그때 가서는 천금을 주고도 九轉丹 사기가 어려우리.
인생 백년 아무래도 부질없는 일
북망산 저 앞의 물 유유히 흘러가네.
北邙山下連坡 滿目丘墳多 新墳崔嵬故墳頹 日日但見喪車來
喪車來入山曲(路)路上人歌山上哭 紅旌粉字高十尺 白骨誰復知榮辱
墳前無地種白楊 斷蓬宿草沾晨霜 狐狸晝眠石床上 見人走入深叢藏
高臺歌舞春風 千金難買九轉丹 人生浪作百年計 北邙山前水東逝
(谿谷集 卷26, 426쪽)
이 시는 그가 32살 안산 향리에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이 작품 다음에 정엽(鄭曄)이 양양부사로 갈 때(광해군 9년, 1918) 송별한 시가 있기 때문이다. 제목 밑에 진(晉)나라의 장협(張協)과 당나라의 왕건(王建)을 본받아서 지었다는 말(效張王)을 해서 전통적인 시 유형을 이었음을 밝혔다. 장유는 전원에 머물 때 인생을 관조하고 마음을 수양하는 시를 많이 썼는데, 이 칠언고시에서도 인생의 허망한 실체를 관조하고 있다.
처음 넉 줄은 공동묘지의 풍경을 조망하고 있는데 먼 배경에서 점차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린다. 다음 넉 줄에서 새로 올라온 상여와 사람들을 묘사하면서 대단한 직함을 명정에 쓴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허망한 것임을 토로하였다. 그 다음의 넉 줄은 비좁고 을씨년스런 무덤들 사이에 여우나 살쾡이들이 살고 있음을 말해서 공동묘지가 죽음의 장소임을 담담하게 그려놓았다. 그리하여 마지막 넉 줄에서 지금 살아서 부귀를 누리며 흥청대는 사람들도 신선이 되지는 못할 것이니 죽고 나면 다 부질없이 되고 말 것이고, 오로지 자연의 질서만이 변함없이 존재할 것임을 밝혔다. 구전단(九轉丹)이란 신선이 되는 약으로 아홉 번 제련한 단약을 말한다. 이렇게 인생의 본질을 체관하고 그러한 깨우침을 자연스러운 어조로 노래하고 있으니 사물과 정서가 어우러져서 천기가 발로된 시라고 할 만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그의 시에는 자신이 말한, 이른바 천기가 드러나 시인의 진정과 사물의 실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율격이 들어맞아서 이상적인 경지에 이른 시라고 할 만한 작품도 상당수 있다.
◆◇
장유는 조선 중기 광해군·인조 연간을 살았던 문인 정치가다. 그는 당대의 한문 문장을 대표하는 사대가였을 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그의 삶의 특징은 좌절의 시기에 터득한 양명학적 실천의지라고 할 만한데, 신유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실천함으로써 심성을 수양하였고, 정치 현실을 비판하여 바로잡으려고 노력했으며, 서인을 중심으로 많은 친구와 교유하였고, 실질을 존중하는 정신으로 창작활동에 임하였다. 이러한 삶의 특징을 시에서 확인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그의 시에는 양명학에서 영향 받은 자아의 주관적 성실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그것을 실천하려 한 흔적이 투영되어 있다.
둘째, 그의 시에는 은둔하고 있을 때는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했으며, 현실 정치에 참여했을 때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고자 노력하다가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그의 실천의지와 자취가 드러나 있다.
셋째, 그의 시에는 친구들과 교유하던 애틋한 정감이 표현되어 있고, 전원에서 한거하며 전원의 흥취를 즐길 뿐 아니라 사색하는 생활을 그리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넷째, 그의 시에는 이른바 천기가 드러나 시인의 진정과 사물의 실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율격이 들어맞아서 이상적인 경지에 이른 시라고 할 만한 작품도 상당수 있다.
끝으로 그의 시는 양명학적 실천의지의 시각에서 신유학을 반성하고 실질을 중시하는 태도로 시문의 창작에 임함으로써 종래의 주자학적 세계관과 사상적 기교주의를 극복하려 했다는데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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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18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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