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뇌 연구의 발전사
2. 뇌의 기능과 구조
3. 뇌과학의 발전 방향의 예
Ⅲ. 결론
Ⅳ. 참고문헌
Ⅱ. 본론
1. 뇌 연구의 발전사
2. 뇌의 기능과 구조
3. 뇌과학의 발전 방향의 예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달랐다. 머리를 건조하기 위해 뇌를 제거하여야 했고, 뇌를 제거하기 위해 미라를 만드는 사람들은 끌을 콧구멍에 넣어 코뼈를 부러뜨렸다. 그렇게 해서 코 안과 뇌 사이에 큰 구멍을 냈다. 그러고 나서 커다란 코바늘과 같은 긴 철 갈고리를 코에 밀어 넣어 뇌 조각들을 끄집어냈다. 뇌는 고체가 아니라 젤리 같아서 뇌를 끄집어내려면 주의해야 했다. 갈고리로 꺼내고 남은 것들은 후에 길고 가는 숟가락으로 긁어냈다. 이집트인들에게는 뇌가 죽은 사람에게 필요하지도 않을 쓸모없고 끈적거리는 오물에 불과했다. 이집트인들은 뇌를 쓰레기통에 버리긴 했지만 이집트인들은 나름대로 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뇌에 대한 최초의 설명은 이집트 의사들이 쓴 문서에 나타나 있다. 그 문서에는 이집트 의사들은 27가지 뇌 손상과 그 치료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이 뇌의 주름, 뇌막, 심지어 뇌척수액에 대해서 까지 논의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2) 위대한 사고 뇌를 가진 고대 그리스인들
고대인들은 뇌를 관찰하고 치료하면서도, 뇌가 어떤 유익한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믿음은 수천 년 동안 계속 되었다. 한참 후인 기원전 350년쯤 전 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자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아리스토텔레스마저도 심장이 사고센터이고 온몸에서 사고가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는 뇌가 심장을 냉각시키는 냉각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뇌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생각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집트 밖에서는 의사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몸 안을 검사해왔다. 대체로 고대인들은 몸을 검사하기 위해 해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인간의 몸을 신성하고 성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문화에서는 죽은 사람을 해부하려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들의 몸이 신에게나 자연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아주 진보적인 사상가가 있었던 고대 그리스에서도 사체에 대한 실험과 해부를 금지하는 법이 이었을 정도였다.
3) 몸과 뇌를 검사한 헤로필로스와 갈레노스
① 헤로필로스
헤로필로스라는 그리스 의사는, 이 법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연구했다. 이집트의 지배자들은 그가 내장기관의 크기, 모양, 색, 단단함, 부드러움, 기능을 파악하기 위해 사체를 해부하도록 해주었다. 그 사체들은 보통 범죄자들의 것이었다. 그래서 헤로필로스는 내장 기관들의 위치와 그 기관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자세히 관찰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아주 많은 연구를 해서 오늘날 해부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헤로필로스는 중추신경계를 자세히 연구하다가 다양한 종류의 신경이 뇌를 드나드는 데 주목했다. 그는 어떤 신경들은 동작을 조절하고 어떤 신경들은 메시지를 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오랫동안 무시되어왔던 뇌가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판단했다. 마침내 헤로필로스는 머리뼈 안의 액체가 흘러 다니는 공간에서 사고가 일어난다고 기록했다.
② 갈레노스
헤로필로스는 그 당시 몸의 내부를 관찰하도록 공식적으로 허락받은 의사지만, 그렇지 못한 다른 의사들도 최선을 다해 관찰하려고 했다. 페르가몬의 갈레노스는 오늘날의 터키에 살았던 외과 의사였다. 그는 살아있는 인간을 실험해도 된다는 허락은 못 받았지만, 결투에서 상처를 입은 검투사들의 수술을 담당했다. 이 검투사들을 치료하는 동안 갈레노스는 몸 안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갈레노스는 원숭이와 돼지의 내장기관이 인간의 내장기관과 유사한지 알아보기 위해 원숭이와 돼지도 연구했다. 마침내 그는 인간의 뇌가 우리의 사고를 조절할 뿐만 아니라 정서를 담당하고 기억을 저장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 당시의 많은 의사들처럼 그도 우리 몸이 4가지 체액, 즉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었다. 의사들은 몸에 있는 그런 액체들의 양이 곧 그 사람이 건강할지 아닐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수백 년간 그런 체액의 존재를 믿고 있는 동안, 갈레노스는 뇌가 우리를 조절하며, 우리의 사고와 정서도 조절한다고 말했던 최초의 사람이다.
갈레노스의 연구는 아주 획기적이어서, 대부분의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1000년 이상 그의 생각을 믿어왔다. 더욱이 약 2000년 후인 오늘날에 와서야, 우리는 뇌가 우리 기분을 조절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갈레노스가 이미 알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4) 뇌를 소개한 베살리우스와 윌리스
① 베살리우스
갈레노스 이후 약 1400년이 지나서야, 의사들이 인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게 되었다. 1500년대에 숙련된 예술가이자 플랑드르의 의사이고 해부학 강사이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를 비롯한 그 밖의 의사들이 그린 해부도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베살리우스는 그런 그림들이 오래되었고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베살리우스는 새로운 해부도를 그리고 싶었지만, 몸 안을 관찰하려면 승인을 받아야 했다. 다행이도 그는 교수형을 당한 살인자들의 뇌를 연구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는 곧 연구에 들어갔고, 연구를 하면서 메모를 하고 해부도를 그렸다.
그는 불과 28세이던 1543년 ‘몸의 구조에 대하여’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그 책에는 놀라울 정도로 자세한 해부도가 들어 있었다. 예술가이자 의사로서 받은 훈련 덕분에, 그는 몸의 해부도를 가장 완벽ㅎ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그림은 아주 뛰어나서 오늘날에 와서도 의대생들이 그 해부도를 이요하고 있다.
베살리우스는 사람의 뇌뿐 아니라 동물의 뇌도 연구했다. 헤로필로스와 달리, 그는 사고가 뇌의 액체 부위에서 유발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동물도 그 공간이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고가 동물의 뇌와는 다른 뇌 부위에서 유발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전의 유명한 연구자들처럼 베살리우스도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진리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② 윌리스
이후 100년간 의사들이 뇌를 더 자세히 연구했지만, 그 기능을 이해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그 후 1664년 토머스 윌리스라는 영국의 의사가 뇌에 대한 최초의 책을
2) 위대한 사고 뇌를 가진 고대 그리스인들
고대인들은 뇌를 관찰하고 치료하면서도, 뇌가 어떤 유익한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믿음은 수천 년 동안 계속 되었다. 한참 후인 기원전 350년쯤 전 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자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아리스토텔레스마저도 심장이 사고센터이고 온몸에서 사고가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는 뇌가 심장을 냉각시키는 냉각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뇌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생각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집트 밖에서는 의사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몸 안을 검사해왔다. 대체로 고대인들은 몸을 검사하기 위해 해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인간의 몸을 신성하고 성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문화에서는 죽은 사람을 해부하려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들의 몸이 신에게나 자연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아주 진보적인 사상가가 있었던 고대 그리스에서도 사체에 대한 실험과 해부를 금지하는 법이 이었을 정도였다.
3) 몸과 뇌를 검사한 헤로필로스와 갈레노스
① 헤로필로스
헤로필로스라는 그리스 의사는, 이 법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연구했다. 이집트의 지배자들은 그가 내장기관의 크기, 모양, 색, 단단함, 부드러움, 기능을 파악하기 위해 사체를 해부하도록 해주었다. 그 사체들은 보통 범죄자들의 것이었다. 그래서 헤로필로스는 내장 기관들의 위치와 그 기관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자세히 관찰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아주 많은 연구를 해서 오늘날 해부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헤로필로스는 중추신경계를 자세히 연구하다가 다양한 종류의 신경이 뇌를 드나드는 데 주목했다. 그는 어떤 신경들은 동작을 조절하고 어떤 신경들은 메시지를 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오랫동안 무시되어왔던 뇌가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판단했다. 마침내 헤로필로스는 머리뼈 안의 액체가 흘러 다니는 공간에서 사고가 일어난다고 기록했다.
② 갈레노스
헤로필로스는 그 당시 몸의 내부를 관찰하도록 공식적으로 허락받은 의사지만, 그렇지 못한 다른 의사들도 최선을 다해 관찰하려고 했다. 페르가몬의 갈레노스는 오늘날의 터키에 살았던 외과 의사였다. 그는 살아있는 인간을 실험해도 된다는 허락은 못 받았지만, 결투에서 상처를 입은 검투사들의 수술을 담당했다. 이 검투사들을 치료하는 동안 갈레노스는 몸 안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갈레노스는 원숭이와 돼지의 내장기관이 인간의 내장기관과 유사한지 알아보기 위해 원숭이와 돼지도 연구했다. 마침내 그는 인간의 뇌가 우리의 사고를 조절할 뿐만 아니라 정서를 담당하고 기억을 저장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 당시의 많은 의사들처럼 그도 우리 몸이 4가지 체액, 즉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었다. 의사들은 몸에 있는 그런 액체들의 양이 곧 그 사람이 건강할지 아닐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수백 년간 그런 체액의 존재를 믿고 있는 동안, 갈레노스는 뇌가 우리를 조절하며, 우리의 사고와 정서도 조절한다고 말했던 최초의 사람이다.
갈레노스의 연구는 아주 획기적이어서, 대부분의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1000년 이상 그의 생각을 믿어왔다. 더욱이 약 2000년 후인 오늘날에 와서야, 우리는 뇌가 우리 기분을 조절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갈레노스가 이미 알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4) 뇌를 소개한 베살리우스와 윌리스
① 베살리우스
갈레노스 이후 약 1400년이 지나서야, 의사들이 인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게 되었다. 1500년대에 숙련된 예술가이자 플랑드르의 의사이고 해부학 강사이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를 비롯한 그 밖의 의사들이 그린 해부도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베살리우스는 그런 그림들이 오래되었고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베살리우스는 새로운 해부도를 그리고 싶었지만, 몸 안을 관찰하려면 승인을 받아야 했다. 다행이도 그는 교수형을 당한 살인자들의 뇌를 연구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는 곧 연구에 들어갔고, 연구를 하면서 메모를 하고 해부도를 그렸다.
그는 불과 28세이던 1543년 ‘몸의 구조에 대하여’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그 책에는 놀라울 정도로 자세한 해부도가 들어 있었다. 예술가이자 의사로서 받은 훈련 덕분에, 그는 몸의 해부도를 가장 완벽ㅎ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그림은 아주 뛰어나서 오늘날에 와서도 의대생들이 그 해부도를 이요하고 있다.
베살리우스는 사람의 뇌뿐 아니라 동물의 뇌도 연구했다. 헤로필로스와 달리, 그는 사고가 뇌의 액체 부위에서 유발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동물도 그 공간이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고가 동물의 뇌와는 다른 뇌 부위에서 유발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전의 유명한 연구자들처럼 베살리우스도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진리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② 윌리스
이후 100년간 의사들이 뇌를 더 자세히 연구했지만, 그 기능을 이해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그 후 1664년 토머스 윌리스라는 영국의 의사가 뇌에 대한 최초의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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