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원불교와 종교대화
Ⅱ. 불교와 종교대화
Ⅲ. 유교와 종교대화
Ⅳ. 기독교와 종교대화
Ⅴ. 성서와 종교대화
Ⅵ. 종교대화의 사례
참고문헌
Ⅱ. 불교와 종교대화
Ⅲ. 유교와 종교대화
Ⅳ. 기독교와 종교대화
Ⅴ. 성서와 종교대화
Ⅵ. 종교대화의 사례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게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요나서는 유대인들의 타민족, 타종교인들에 대한 오해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이 이방인의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시민과 같은 하나님의 배려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의 기도는 다른 누구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근본적인 본질은 그것이 종교적 경계선과 거의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를 믿는 신앙은 우리를 대화의 길로 이끌어 준다. 대화는 하나님이 모든 생명을 지배하는 그 지배,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보편적인 위대함을 찬미하는 크리스천의 직무다. 하나님의 지배의 보편성의 성실에 대해서는 성서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제이다.
파울로스 마 그레고리오스 대주교(인도 W.C.C 회장)-그리스도는 창조의 첫 아들이며 현존하는 모든 피조물의 머리가 되신다. 나는 세례와 견실례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으며 나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나에게 이질적이라고 생각되거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를 타종교인들과의 대화의 마당으로 밀어 넣는 힘을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편성을 긍정하는 그 자체가 타종교인들과의 대화 관계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대화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을 결단코 멀리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상 사람들이 자기 자신 아무런 확신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에는 진실한 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증거 하는 상황에서 타종교에 대하여 취할 마음가짐 이라든가 증거 할 때의 각오라든가 동기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대화를 한다는 것과 증거를 한다는 것이 서로 모순 되는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다.
성서 가운데는 대화를 지지하고 장려하도록 해석할 수 있는 부분-그것들이 성서의 중심적 정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서가 증거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 이해를 위한 발버둥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성서를 마치 정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성서의 이와 같은 중요한 증거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 그 증거가 \'이방인\' 크리스천에 대한 예루살렘 회의다. \'이방인\' 크리스천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들과의 교제를 어렵게 만드는 식사 습관과 사교상의 품행에 대해서는 삼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회 내부에서의 이 아픔을 지닌 대화가 교회 자신에게 새로운 현실을 향한 문을 열게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공동체의 성격과 방향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도록 하였다.
Ⅵ. 종교대화의 사례
지난 8년간 씨튼 연구원에서의 선한 벗들과의 만남은 참으로 유익했고 큰 행복이었다. 종교간 대화란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함을 철저하게 배운 시간이었다. 상대방 종교를 머리로만 헤아리고 교리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순서에 있어 나중에 있으면 좋을 법하다. 같이 음식을 나누고 함께 여행하며 잠자고 농담하며 자기 종교의 문제점을 토론하고 같은 책을 읽으며 남의 종교 의식에 참여해 보는 긴 과정을 통하여 깊은 만남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일년에 몇 번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느끼는 바는 우리는 평범한 친구요 친근한 동료와도 같았다는 것이다. 타종교인이라는 생각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서로를 깊이 존중하며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다하다 보면 우리는 그냥 한국 사람이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종교인이었지 다른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기독교 신학자들 간에 이론을 세워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남과 같이 느낄 때가 많았다. 삶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서로에게, 상대방의 종교에 대한 이해가 생겨났고, 그 종교의 본질을 알고 싶은 마음이 커졌으며 상대방의 시각에서 나의 종교, 나의 신앙을 생각해 보는 일이 잦아졌다. 본인이 씨튼 연구원 종교간 대화 모임을 통해 깊이 느꼈던 것을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각 종교의 사찰, 향교, 수도원 등을 방문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수행적 실천에 대한 배움이었다. 유일신 신앙에 근거하여 믿음의 종교로만 발전되어온 개신교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다른 종교들의 수행력은 대단히 경이로웠다. 영성을 말하는 시대가 되었건만 아직도 제도적인 은총, 성직자 중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카톨릭과 비교해 볼 때, 개신교는 천상세계는 아름답고 완전한 질서를 갖고 있으나 지상의 만물 중에는 혼돈만이 있다는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세계상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바, 이는 아래로부터 위에 이르는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이 전무함을 의미한다. 수행 전통의 부재는 이로부터 연유된 것이라 하겠다. 둘째로 씨튼 연구원의 종교 간 대화 모임을 통하여 우리는 여러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였다. 주로 기독교 서적을 읽고 그에 대한 불교, 유교, 그리고 원불교의 입장을 청취하는 방식을 취했지만 더러는 <불씨잡변>, <서학변> 등을 읽으며 선조들의 타 종교관도 배울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필자는 상호 넘나들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고 때로는 유교인으로 어느 때는 불교인처럼 생각하며 말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기독교와 불교 등 세계 종교들 간의 성립 동기 및 세계관의 차이로 인해 일치될 수 없는 부분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세계 내 악의 현존 및 기원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그 대표적인 차이다. 혹자는 그리스도교와 동양 종교의 대화시 난제로서 신의 인격성과 비인격성의 문제, 또는 인간과 신의 가역성과 불가역성의 문제를 꼽고 있다. 이런 주제가 대화를 어렵게 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기독교 전통을 새롭게 이해하려고 하는 최근 신학의 입장(역사적 예수 연구, 과정신학, 생태여성신학)에서는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악의 실제 인간의 고통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차는 극복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미 대화에 참석했던 승가 대학 총장 스님의 입에서 지인된 내용이기도 하다. 물과 물결의 관계로 연기적 세계관을 설명하는 탁
요나서는 유대인들의 타민족, 타종교인들에 대한 오해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이 이방인의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시민과 같은 하나님의 배려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의 기도는 다른 누구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근본적인 본질은 그것이 종교적 경계선과 거의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를 믿는 신앙은 우리를 대화의 길로 이끌어 준다. 대화는 하나님이 모든 생명을 지배하는 그 지배,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보편적인 위대함을 찬미하는 크리스천의 직무다. 하나님의 지배의 보편성의 성실에 대해서는 성서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제이다.
파울로스 마 그레고리오스 대주교(인도 W.C.C 회장)-그리스도는 창조의 첫 아들이며 현존하는 모든 피조물의 머리가 되신다. 나는 세례와 견실례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으며 나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나에게 이질적이라고 생각되거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를 타종교인들과의 대화의 마당으로 밀어 넣는 힘을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편성을 긍정하는 그 자체가 타종교인들과의 대화 관계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대화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을 결단코 멀리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상 사람들이 자기 자신 아무런 확신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에는 진실한 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증거 하는 상황에서 타종교에 대하여 취할 마음가짐 이라든가 증거 할 때의 각오라든가 동기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대화를 한다는 것과 증거를 한다는 것이 서로 모순 되는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다.
성서 가운데는 대화를 지지하고 장려하도록 해석할 수 있는 부분-그것들이 성서의 중심적 정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서가 증거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 이해를 위한 발버둥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성서를 마치 정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성서의 이와 같은 중요한 증거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 그 증거가 \'이방인\' 크리스천에 대한 예루살렘 회의다. \'이방인\' 크리스천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들과의 교제를 어렵게 만드는 식사 습관과 사교상의 품행에 대해서는 삼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회 내부에서의 이 아픔을 지닌 대화가 교회 자신에게 새로운 현실을 향한 문을 열게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공동체의 성격과 방향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도록 하였다.
Ⅵ. 종교대화의 사례
지난 8년간 씨튼 연구원에서의 선한 벗들과의 만남은 참으로 유익했고 큰 행복이었다. 종교간 대화란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함을 철저하게 배운 시간이었다. 상대방 종교를 머리로만 헤아리고 교리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순서에 있어 나중에 있으면 좋을 법하다. 같이 음식을 나누고 함께 여행하며 잠자고 농담하며 자기 종교의 문제점을 토론하고 같은 책을 읽으며 남의 종교 의식에 참여해 보는 긴 과정을 통하여 깊은 만남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일년에 몇 번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느끼는 바는 우리는 평범한 친구요 친근한 동료와도 같았다는 것이다. 타종교인이라는 생각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서로를 깊이 존중하며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다하다 보면 우리는 그냥 한국 사람이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종교인이었지 다른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기독교 신학자들 간에 이론을 세워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남과 같이 느낄 때가 많았다. 삶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서로에게, 상대방의 종교에 대한 이해가 생겨났고, 그 종교의 본질을 알고 싶은 마음이 커졌으며 상대방의 시각에서 나의 종교, 나의 신앙을 생각해 보는 일이 잦아졌다. 본인이 씨튼 연구원 종교간 대화 모임을 통해 깊이 느꼈던 것을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각 종교의 사찰, 향교, 수도원 등을 방문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수행적 실천에 대한 배움이었다. 유일신 신앙에 근거하여 믿음의 종교로만 발전되어온 개신교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다른 종교들의 수행력은 대단히 경이로웠다. 영성을 말하는 시대가 되었건만 아직도 제도적인 은총, 성직자 중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카톨릭과 비교해 볼 때, 개신교는 천상세계는 아름답고 완전한 질서를 갖고 있으나 지상의 만물 중에는 혼돈만이 있다는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세계상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바, 이는 아래로부터 위에 이르는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이 전무함을 의미한다. 수행 전통의 부재는 이로부터 연유된 것이라 하겠다. 둘째로 씨튼 연구원의 종교 간 대화 모임을 통하여 우리는 여러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였다. 주로 기독교 서적을 읽고 그에 대한 불교, 유교, 그리고 원불교의 입장을 청취하는 방식을 취했지만 더러는 <불씨잡변>, <서학변> 등을 읽으며 선조들의 타 종교관도 배울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필자는 상호 넘나들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고 때로는 유교인으로 어느 때는 불교인처럼 생각하며 말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기독교와 불교 등 세계 종교들 간의 성립 동기 및 세계관의 차이로 인해 일치될 수 없는 부분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세계 내 악의 현존 및 기원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그 대표적인 차이다. 혹자는 그리스도교와 동양 종교의 대화시 난제로서 신의 인격성과 비인격성의 문제, 또는 인간과 신의 가역성과 불가역성의 문제를 꼽고 있다. 이런 주제가 대화를 어렵게 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기독교 전통을 새롭게 이해하려고 하는 최근 신학의 입장(역사적 예수 연구, 과정신학, 생태여성신학)에서는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악의 실제 인간의 고통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차는 극복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미 대화에 참석했던 승가 대학 총장 스님의 입에서 지인된 내용이기도 하다. 물과 물결의 관계로 연기적 세계관을 설명하는 탁
추천자료
`여왕 마고`와 `돈 카를로`를 통해 분석한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헝가리][헝가리의 인종][헝가리의 국가][헝가리의 종교][헝가리의 예술][헝가리의 음식][헝...
[스리랑카 언어][스리랑카 종교][스리랑카 역사][스리랑카 정치][스리랑카 경제][스리랑카 사...
[고등학교][고등학교교육][종교교육][환경교육][인성교육][진로교육]고등학교의 종교교육, 고...
이슬람교 - 이슬람과 마케팅,이슬람종교와문화방식,종교레포트,이슬람오해,
[문명충돌][문명충돌과 문명개념][문명충돌과 종교][문명충돌과 새뮤얼 헌팅턴][문명충돌과 ...
[이문열 소설][사람의 아들][종교관][신관]이문열 소설 사람의 아들 이데올로기, 이문열 소설...
[문명충돌][문명][종교갈등][9.11테러][테러][새뮤얼 헌팅턴][세계정세]문명충돌의 개념, 문...
[사회의식][사회현실][18세기][종교][기독교관][문학][외모지상주의]사회의식과 사회현실, 사...
[상징][상징과 음성상징][상징과 종교적 상징][상징과 정치적 상징][상징과 관광상징][상징과...
[일본][일본 역사][일본 종교][일본 근대화][일본 공공성][일본 약점]일본의 역사, 일본의 종...
[헤르만 헤세][헤르만 헤세 출생][헤르만 헤세 종교][내면세계][음악세계][대중문화]헤르만 ...
[기독교영성론 독서] 종교개혁시대의 영성 :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했던 영성의 뿌리를 찾아서
사회복지시설들의 운영주체가 지자체로부터 위탁을 받은 종교법인에서 많이 운영하고 있는데 ...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