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그리스도교(기독교)의 철학
1. 기독교 철학은 하나님의 창조를 전제해야 할 것이다
2. 기독교 철학은 인간의 타락과 죄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3. 어떤 철학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제하지 않으면 기독교철학이라고는 불리어질 수 없을 것이다
4. 기독교 철학은 성경의 계속적인 역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Ⅲ. 그리스도교(기독교)의 발전
Ⅳ. 그리스도교(기독교)의 기적
Ⅴ. 그리스도교(기독교)의 성이해
Ⅵ. 그리스도교(기독교)의 십계명
1. 제1계명
2. 제2계명(상)
3. 제2계명(하)
4. 제3계명
5. 제4계명(상)
6. 제4계명(하)
7. 제 5계명
8. 제 6계명
9. 제 7계명
10. 제 8계명
11. 제 9계명
12. 제 10계명
Ⅶ. 그리스도교(기독교)와 도덕종교
Ⅷ. 그리스도교(기독교)의 미래
Ⅸ. 결론
참고문헌
Ⅱ. 그리스도교(기독교)의 철학
1. 기독교 철학은 하나님의 창조를 전제해야 할 것이다
2. 기독교 철학은 인간의 타락과 죄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3. 어떤 철학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제하지 않으면 기독교철학이라고는 불리어질 수 없을 것이다
4. 기독교 철학은 성경의 계속적인 역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Ⅲ. 그리스도교(기독교)의 발전
Ⅳ. 그리스도교(기독교)의 기적
Ⅴ. 그리스도교(기독교)의 성이해
Ⅵ. 그리스도교(기독교)의 십계명
1. 제1계명
2. 제2계명(상)
3. 제2계명(하)
4. 제3계명
5. 제4계명(상)
6. 제4계명(하)
7. 제 5계명
8. 제 6계명
9. 제 7계명
10. 제 8계명
11. 제 9계명
12. 제 10계명
Ⅶ. 그리스도교(기독교)와 도덕종교
Ⅷ. 그리스도교(기독교)의 미래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인 의의는 이를 기점으로 기독교가 당시의 다른 여타 제도적 종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겨룰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간 사건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 공인으로 촉발된 ‘기독교 세계(Christendom)의 형성’이 기독교의 외형을 키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굳이 부인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 같은 외형의 성장이 곧 기독교 형성의 전체 맥락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까? 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그 시각에 따라 다양한 편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제도권으로서의 종교’가 표출하는 이미지는 이전 상태의 그것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종교가 제도의 탄압과 몰이해의 국면 속에서,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아울러 생존을 위한 처절한 자기 혁신의 노력을 간직하고 있을 때의 모습과, 반대로 권력과 제도의 비호를 받으면서 이를 통해 지배적 이데올로기 창출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자신이 활용되어지는 극적 전환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전환의 두드러진 한 국면은 무엇보다도 초대교회 이래 기독교 공동체가 줄곧 유지해왔던 ‘종말론적 기대(Eschatological Expectation)’에 대한 현실적 타협으로 등장한다. ‘종말론적 기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시대와 강조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핵심사상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를 통한 파루시아(Parousia)\'의 실현을 그 정점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기본적으로 초기의 기독교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고백하는 무리들로 이루어진 체험적 공동체의 성격을 가진다. 아울러 이러한 체험과 고백적 신앙의 정점에는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는 성서기자의 시각을 그 전제로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카이로스적(Kairos) 시간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 이래로 굴곡을 거듭하는 인류 역사에 대한 신적 심판이며 동시에 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역사의 완성이다. 또한 이 시점은 참다운 샬롬(Shalom)의 구현이요, 또한 시공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현현임을 천명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파루시아‘의 구현이 종말론적 신앙을 갖게 하는 모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역사관에 의해서 초기의 기독교 공동체는 자신들의 생애 동안에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시공에서 종말을 체험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생활하는 패턴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기대, 즉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서 당당한 주인으로서 이 땅에서 이교국가와 그 통치자들의 핍박과 탄압으로 고단한 현세적 삶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던 바, 소위 이들 ‘적그리스도’의 상징들이 자신들을 박해하더라도 이러한 위협으로 결코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있는 심리적 피안을 나름대로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피안적, 내세적, 비역사적 위로 속에서 무엇보다도 ‘이 땅에서의 나그네’ 삶을 기꺼이 감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의 지연이라는 변수와 함께, 한걸음 더 나아가 ‘콘스탄틴의 대전회’는 이들의 신앙과 삶의 제반 행태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하였고, 아울러 이 같은 변화는 자신들이 지니고 있었던 믿음과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의 코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밀란칙령’은 이제 더 이상 피안적, 역사 너머의 파루시아의 임재가 아닌 역사 내적 파루시아, 차안으로서의 종말, 그리고 이교 문화와 역사의 재평가 등을 과제로 떠안기면서 극적인 ‘전회(轉回)’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교문화’와 ‘적그리스도’로서의 로마제국과 그 통치자들은 이제 크리스천으로서 콘스탄틴과 그의 후계자들로 바뀌고 있다. 탈역사적, 피안적, 그래서 어쩌면 인간의 보편적 종교심성에 호소하던 기독교 지도자들의 메시지는 이제 보다 구체적 맥락 속에서 역사와 문화의 의미, 기독교의 가르침과 그 내용을 근간으로 하는 자랑스러운 국가인 로마의 의미로 재해석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기독교인 황제들은 로마 전체를 통치할 통치 이념을 기독교와 그 가르침 속에서 찾고 있으며, 아울러 이를 위해서는 기독교 자체 내의 교리적 통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했던 바, 소위 고대 교회가 남긴 7차례의 에큐메니칼 회의를 소집하는 당사자는 교회지도자가 아니었고 바로 황제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후의와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존의 기독교란 종교에 로마적 옷을 입히는 일에 적극적이었던 바, 이는 종교와 문화의 결합, 종교와 민족의 결혼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융합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쥬디스 헤린(Judith Herrin)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소위 유럽 중세의 ‘독특성’은 어쩌면 이같이 4세기에서 시작된 기독교의 문화적 구현이 9세기경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동안 그 대부분의 핵심적 기틀이 이미 놓여질 수 있었다”는 논지를 따를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기간동안 기독교 로마는 다시금 소위 ‘야만인(Babarian)\'들이었던 북방의 고트족과 게르만족 등의 침입으로 또 한번의 변화를 치르게 되기도 하고, 이를 통해 메로빙기안, 카롤링기안 시대로 이어지는 문화적 변화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이 같은 시대의 변화가 역사의 큰 물줄기를 근본적으로 되돌릴 수 없었던 바, 큰 흐름으로서 ’기독교 세계(Christendom)로서의 유럽, 그리고 그 주변 세계‘의 틀은 지속적으로 역사 내적, 문화의 정복자로서의 기독교적 색채에 익숙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기독교 세계(Christendom)\'의 성립이라는 말이 중세 유럽 역사의 모든 무대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유일한 잣대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기독교 세계‘의 성립이라는 야심찬 논의는 어쩌면 지속적으로 상이한 이해 집단의 충돌과 조율을 필요로 했던 ’미완의 완성‘을 향해 끝없이 전진하는 역사적 이상을 위한 모토였다고도 볼 수 있다.
Ⅳ. 그리스도교(기독교)의 기적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가 행했던 많은 기적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제자들 역시 곧잘 기적을 행하였는데,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걷게 하고 귀신을
이 같은 전환의 두드러진 한 국면은 무엇보다도 초대교회 이래 기독교 공동체가 줄곧 유지해왔던 ‘종말론적 기대(Eschatological Expectation)’에 대한 현실적 타협으로 등장한다. ‘종말론적 기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시대와 강조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핵심사상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를 통한 파루시아(Parousia)\'의 실현을 그 정점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기본적으로 초기의 기독교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고백하는 무리들로 이루어진 체험적 공동체의 성격을 가진다. 아울러 이러한 체험과 고백적 신앙의 정점에는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는 성서기자의 시각을 그 전제로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카이로스적(Kairos) 시간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 이래로 굴곡을 거듭하는 인류 역사에 대한 신적 심판이며 동시에 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역사의 완성이다. 또한 이 시점은 참다운 샬롬(Shalom)의 구현이요, 또한 시공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현현임을 천명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파루시아‘의 구현이 종말론적 신앙을 갖게 하는 모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역사관에 의해서 초기의 기독교 공동체는 자신들의 생애 동안에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시공에서 종말을 체험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생활하는 패턴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기대, 즉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서 당당한 주인으로서 이 땅에서 이교국가와 그 통치자들의 핍박과 탄압으로 고단한 현세적 삶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던 바, 소위 이들 ‘적그리스도’의 상징들이 자신들을 박해하더라도 이러한 위협으로 결코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있는 심리적 피안을 나름대로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피안적, 내세적, 비역사적 위로 속에서 무엇보다도 ‘이 땅에서의 나그네’ 삶을 기꺼이 감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의 지연이라는 변수와 함께, 한걸음 더 나아가 ‘콘스탄틴의 대전회’는 이들의 신앙과 삶의 제반 행태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하였고, 아울러 이 같은 변화는 자신들이 지니고 있었던 믿음과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의 코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밀란칙령’은 이제 더 이상 피안적, 역사 너머의 파루시아의 임재가 아닌 역사 내적 파루시아, 차안으로서의 종말, 그리고 이교 문화와 역사의 재평가 등을 과제로 떠안기면서 극적인 ‘전회(轉回)’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교문화’와 ‘적그리스도’로서의 로마제국과 그 통치자들은 이제 크리스천으로서 콘스탄틴과 그의 후계자들로 바뀌고 있다. 탈역사적, 피안적, 그래서 어쩌면 인간의 보편적 종교심성에 호소하던 기독교 지도자들의 메시지는 이제 보다 구체적 맥락 속에서 역사와 문화의 의미, 기독교의 가르침과 그 내용을 근간으로 하는 자랑스러운 국가인 로마의 의미로 재해석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기독교인 황제들은 로마 전체를 통치할 통치 이념을 기독교와 그 가르침 속에서 찾고 있으며, 아울러 이를 위해서는 기독교 자체 내의 교리적 통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했던 바, 소위 고대 교회가 남긴 7차례의 에큐메니칼 회의를 소집하는 당사자는 교회지도자가 아니었고 바로 황제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후의와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존의 기독교란 종교에 로마적 옷을 입히는 일에 적극적이었던 바, 이는 종교와 문화의 결합, 종교와 민족의 결혼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융합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쥬디스 헤린(Judith Herrin)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소위 유럽 중세의 ‘독특성’은 어쩌면 이같이 4세기에서 시작된 기독교의 문화적 구현이 9세기경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동안 그 대부분의 핵심적 기틀이 이미 놓여질 수 있었다”는 논지를 따를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기간동안 기독교 로마는 다시금 소위 ‘야만인(Babarian)\'들이었던 북방의 고트족과 게르만족 등의 침입으로 또 한번의 변화를 치르게 되기도 하고, 이를 통해 메로빙기안, 카롤링기안 시대로 이어지는 문화적 변화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이 같은 시대의 변화가 역사의 큰 물줄기를 근본적으로 되돌릴 수 없었던 바, 큰 흐름으로서 ’기독교 세계(Christendom)로서의 유럽, 그리고 그 주변 세계‘의 틀은 지속적으로 역사 내적, 문화의 정복자로서의 기독교적 색채에 익숙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기독교 세계(Christendom)\'의 성립이라는 말이 중세 유럽 역사의 모든 무대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유일한 잣대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기독교 세계‘의 성립이라는 야심찬 논의는 어쩌면 지속적으로 상이한 이해 집단의 충돌과 조율을 필요로 했던 ’미완의 완성‘을 향해 끝없이 전진하는 역사적 이상을 위한 모토였다고도 볼 수 있다.
Ⅳ. 그리스도교(기독교)의 기적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가 행했던 많은 기적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제자들 역시 곧잘 기적을 행하였는데,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걷게 하고 귀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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