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국가의례의 역사적 변화
1) 조선시대의 국가의례
2) 대한제국기와 일제시기의 국가의례
3) 대한민국과 국가의례
3. 국가의례의 체계
1) 정부의전
2) 국립묘지
3) 국경일 규정
4. 국가의례와 상징물
- 국기, 국가, 국화, 국립현충원
5. 결론
2. 국가의례의 역사적 변화
1) 조선시대의 국가의례
2) 대한제국기와 일제시기의 국가의례
3) 대한민국과 국가의례
3. 국가의례의 체계
1) 정부의전
2) 국립묘지
3) 국경일 규정
4. 국가의례와 상징물
- 국기, 국가, 국화, 국립현충원
5. 결론
본문내용
국가적인 장소이다. 그러므로 국립묘지는 “민족의 성역”이라고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각종 국가 예전들과 밀접히 연관을 갖고 있는 매우 상징적인 장소이다.
한국의 국립묘지는 모두 세곳이다. 첫번째는, 1955년 국군묘지로 창설되었다가 1965년에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대한민국 국립묘지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동작동 국립묘지이다. 두번째는 동작동 국립묘지의 안장능력이 곧 한계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어 1974년부터 준비하여 1979년에 창설된 대전 국립묘지로 1986년 이후의 영령들이 영면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국립묘지는 1997년 대통령령 제15360호에 따라 국립묘지로 지정된 수유리 국립 419묘지이다. 앞의 두 국립묘지는 1996년에 관리기관의 명칭이 “국립묘지관리소”에서 “국립현충원”으로 개명됨에 따라 현재는 각각 “국립 현충원”과 “국립 대전 현충원”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면 이하에서는 세 국립묘지 중에서 현대 한국인들의 뇌리에 가장 깊숙히 각인된 국립묘지인 동작동 국립묘지를 중심으로 국립묘지의 상징성과 예전적 성격을 살펴보도록 하자.
동작동 국립묘지가 자리한 지역은 관악산 줄기에서 뻗어나온 공작봉을 주봉으로 하여 동작산의 능선이 병풍처럼 3면을 감싸고 앞으로 한강이 굽이쳐 도는 곳으로 총 면적은 대략 43만여평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조선조 단종에게 충절을 바쳤던 사육신(死六臣)의 제사를 모시던 육신사(六臣祠)가 있던 곳이라고 전한다. 풍수지리설에서도 ‘동작포란형(銅雀抱卵形)’이라 하여 동작이 알을 품고 있듯이 상서로운 기맥이 흐르는 명당으로 일컬어진다.
국립묘지의 정면에 들어서면 충성분수탑이 서 있고, 금잔디가 깔린 광장을 지나 현충문과 현충탑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이 현충탑 안에는 11만여 무명용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위패실과 납골당이 있으며, 이를 가호하고 있는 애국투사상이 좌측에, 호국영웅상이 우측에 있다. 이 현충탑을 중심으로 동서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구도를 보면, 먼저 일반 묘역과 특수 묘역으로 나뉘어진다. 일반 묘역에는 ① 영관이하 묘역, ② 경찰 묘역, ③ 육탄10용사 묘역, ④ 학도의용군 묘역, ⑤ 재일학도의용군 묘역에 5만 4천여위가 안장되어 있다. 그리고 특수 묘역에는 ① 충열대, 독립운동 중에 순국하여 후손이 없거나 시신을 찾지 못한 선열의 위패를 봉안한 ② 무후선열제단(無後先烈祭壇), ③ 임시정부요인 묘역, ④ 애국지사 묘역, 3명의 외국인을 모신 ⑤ 외국인 묘소, ⑥ 국가유공자 묘역, ⑦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 묘소, ⑧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 묘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국립묘지에서 중심적인 상징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추앙하고자 세워졌다는 현충탑이다. 그래서 “현충탑은 민족의 성역인 국립묘지를 상징하고 있다”는 식으로 의미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탑 내부에는 6.25전쟁 당시 전사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 2천명의 위패와, 시신은 찾았지만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5천 7백여명의 유해를 모셔두고 있다.
이 현충탑은 한국을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의 국가 원수와 귀빈들도 이 곳을 참배하게 되며,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있거나 정치적으로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참배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아마도 특정 개인의 묘비가 아니라 집단적인 묘비일 뿐더러 그곳에 봉안된 영령들도 그 이름을 알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한 해석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즉 구체적인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국민국가의 정신을 반영하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앤더슨의 표현대로 “이 무덤들은 주인을 알아볼 수 있는 유물이나 불명의 영혼이 없어도 기괴한 민족적 상상물들로 가득차 있다.” (앤더슨 1991: 25) 그러므로 현충탑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모든 영령들을 대표하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를 갖게 되면서, 동시에 그 특정한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 상상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4) 한국 국가 예전의 특성과 평가
지금까지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가예전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현재적 모델이 어떤 모습인지 과거의 국가예전과 비교하기 위해서 조선시대 왕실의례로 사용되던 국가예전인 국조오례의의 의례체제를 소개하였고, 조선시대 왕실 의례가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예전으로 변모하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개항기와 일제시기에 국가예전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였는지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국가예전의 모습과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서 경축일 기념 의례, 대통령 취임식, 국장국민장의 장의의식, 그리고 국가예전의 일부가 거행되는 의례 공간이자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과 깊은 관련을 지닌 상징 공간으로서 국립묘지 등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현대 한국의 국가예전이 지닌 특성을 한마디로 개념화한다면 근대 모델로의 이행이라 할 수 있다. 즉 국조오례의의 유교적이고 왕실 중심의 의례체제가 개항기와 일제시대에 과도적 혼합기를 거쳐서 완전히 소멸하고 문헌 텍스트에만 남게 되었으며, 대한민국 건국 때부터 새로운 근대적인 국가예전이 성립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이 탄생한 공화국의 이념을 담아내는 독자적인 의례 모델을 개발하여 국가예전으로 완성하였다기보다는 건국 과정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미국식 예전들을 그대로 사용하되 일부의 내용만을 수정한 채 국가예전으로 편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지적할 사항은 국가예전의 의례절차에서 사용되는 의례적 요소들의 상징성이 일관되게 짜여져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가령 개천절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민족과 국가의 기원을 단군에 두고 있으면서도 애국가에서는 이러한 점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1883년 고종에 의해 왕명으로 제정공포된 국기인 태극기의 태극과 사괘 문양도 역시 다른 국가적 상징물들과 연관성이 없다. 뿐만 아니라 아무런 설명도 없이 봉황을 대통령 문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의문시된다. 그러므로 향후 현행 국가예전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이러한 점들은 점검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국립묘지는 모두 세곳이다. 첫번째는, 1955년 국군묘지로 창설되었다가 1965년에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대한민국 국립묘지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동작동 국립묘지이다. 두번째는 동작동 국립묘지의 안장능력이 곧 한계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어 1974년부터 준비하여 1979년에 창설된 대전 국립묘지로 1986년 이후의 영령들이 영면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국립묘지는 1997년 대통령령 제15360호에 따라 국립묘지로 지정된 수유리 국립 419묘지이다. 앞의 두 국립묘지는 1996년에 관리기관의 명칭이 “국립묘지관리소”에서 “국립현충원”으로 개명됨에 따라 현재는 각각 “국립 현충원”과 “국립 대전 현충원”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면 이하에서는 세 국립묘지 중에서 현대 한국인들의 뇌리에 가장 깊숙히 각인된 국립묘지인 동작동 국립묘지를 중심으로 국립묘지의 상징성과 예전적 성격을 살펴보도록 하자.
동작동 국립묘지가 자리한 지역은 관악산 줄기에서 뻗어나온 공작봉을 주봉으로 하여 동작산의 능선이 병풍처럼 3면을 감싸고 앞으로 한강이 굽이쳐 도는 곳으로 총 면적은 대략 43만여평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조선조 단종에게 충절을 바쳤던 사육신(死六臣)의 제사를 모시던 육신사(六臣祠)가 있던 곳이라고 전한다. 풍수지리설에서도 ‘동작포란형(銅雀抱卵形)’이라 하여 동작이 알을 품고 있듯이 상서로운 기맥이 흐르는 명당으로 일컬어진다.
국립묘지의 정면에 들어서면 충성분수탑이 서 있고, 금잔디가 깔린 광장을 지나 현충문과 현충탑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이 현충탑 안에는 11만여 무명용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위패실과 납골당이 있으며, 이를 가호하고 있는 애국투사상이 좌측에, 호국영웅상이 우측에 있다. 이 현충탑을 중심으로 동서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구도를 보면, 먼저 일반 묘역과 특수 묘역으로 나뉘어진다. 일반 묘역에는 ① 영관이하 묘역, ② 경찰 묘역, ③ 육탄10용사 묘역, ④ 학도의용군 묘역, ⑤ 재일학도의용군 묘역에 5만 4천여위가 안장되어 있다. 그리고 특수 묘역에는 ① 충열대, 독립운동 중에 순국하여 후손이 없거나 시신을 찾지 못한 선열의 위패를 봉안한 ② 무후선열제단(無後先烈祭壇), ③ 임시정부요인 묘역, ④ 애국지사 묘역, 3명의 외국인을 모신 ⑤ 외국인 묘소, ⑥ 국가유공자 묘역, ⑦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 묘소, ⑧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 묘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국립묘지에서 중심적인 상징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추앙하고자 세워졌다는 현충탑이다. 그래서 “현충탑은 민족의 성역인 국립묘지를 상징하고 있다”는 식으로 의미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탑 내부에는 6.25전쟁 당시 전사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 2천명의 위패와, 시신은 찾았지만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5천 7백여명의 유해를 모셔두고 있다.
이 현충탑은 한국을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의 국가 원수와 귀빈들도 이 곳을 참배하게 되며,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있거나 정치적으로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참배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아마도 특정 개인의 묘비가 아니라 집단적인 묘비일 뿐더러 그곳에 봉안된 영령들도 그 이름을 알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한 해석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즉 구체적인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국민국가의 정신을 반영하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앤더슨의 표현대로 “이 무덤들은 주인을 알아볼 수 있는 유물이나 불명의 영혼이 없어도 기괴한 민족적 상상물들로 가득차 있다.” (앤더슨 1991: 25) 그러므로 현충탑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모든 영령들을 대표하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를 갖게 되면서, 동시에 그 특정한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 상상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4) 한국 국가 예전의 특성과 평가
지금까지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가예전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현재적 모델이 어떤 모습인지 과거의 국가예전과 비교하기 위해서 조선시대 왕실의례로 사용되던 국가예전인 국조오례의의 의례체제를 소개하였고, 조선시대 왕실 의례가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예전으로 변모하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개항기와 일제시기에 국가예전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였는지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국가예전의 모습과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서 경축일 기념 의례, 대통령 취임식, 국장국민장의 장의의식, 그리고 국가예전의 일부가 거행되는 의례 공간이자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과 깊은 관련을 지닌 상징 공간으로서 국립묘지 등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현대 한국의 국가예전이 지닌 특성을 한마디로 개념화한다면 근대 모델로의 이행이라 할 수 있다. 즉 국조오례의의 유교적이고 왕실 중심의 의례체제가 개항기와 일제시대에 과도적 혼합기를 거쳐서 완전히 소멸하고 문헌 텍스트에만 남게 되었으며, 대한민국 건국 때부터 새로운 근대적인 국가예전이 성립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이 탄생한 공화국의 이념을 담아내는 독자적인 의례 모델을 개발하여 국가예전으로 완성하였다기보다는 건국 과정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미국식 예전들을 그대로 사용하되 일부의 내용만을 수정한 채 국가예전으로 편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지적할 사항은 국가예전의 의례절차에서 사용되는 의례적 요소들의 상징성이 일관되게 짜여져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가령 개천절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민족과 국가의 기원을 단군에 두고 있으면서도 애국가에서는 이러한 점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1883년 고종에 의해 왕명으로 제정공포된 국기인 태극기의 태극과 사괘 문양도 역시 다른 국가적 상징물들과 연관성이 없다. 뿐만 아니라 아무런 설명도 없이 봉황을 대통령 문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의문시된다. 그러므로 향후 현행 국가예전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이러한 점들은 점검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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