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종교정책의 목표
Ⅲ. 종교정책의 역사
Ⅳ. 일제식민지시대의 종교정책
1. 통감부시기의 정교분리정책
2. 무단통치의 억압과 신교자유문제
3. 문화정치의 종교회유와 분열정책
Ⅴ. 중국의 종교정책
참고문헌
Ⅱ. 종교정책의 목표
Ⅲ. 종교정책의 역사
Ⅳ. 일제식민지시대의 종교정책
1. 통감부시기의 정교분리정책
2. 무단통치의 억압과 신교자유문제
3. 문화정치의 종교회유와 분열정책
Ⅴ. 중국의 종교정책
참고문헌
본문내용
수행하도록 제도화하려 했다. 이 같은 통제 메카니즘은 현재에도 그대로 이어져 정착되었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1950년대부터 당과 정부가 지원하는 종교단체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 대표적인 종교인 불교, 도교, 카톨릭, 프로테스탄티즘, 이슬람교 조직을 당과 정부가 직접 나서 조직화한 것이다. 이러한 정책으로 1953년 5월 중국불교협회가 결성되었으며, 1958년 4월에는 도교협의가 결성되었고 나머지 종교관련 단체도 속속 결성되어 현재 중국에는 8개의 국가공인 종교단체가 존재하게 되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종교조직은 다른 사회집단들처럼 사회의 통합된 한 부분으로 여겨졌으며 어떠한 조직적 분리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조직들을 통해 공산당 정부는 불교와 도교 사원을 건설하는데 막대한 지원을 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이런 지원을 통해 전국적인 종교조직을 완성하고, 이 조직이 당과 정부의 지도아래 종교조직과 일반 국민들의 종교생활을 지도감시하고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하도록 하며, 외세와의 연계 및 종교세력 간의 연계를 통해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공산당 정권은 종교가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곧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며, 이에 따라 당의 종교정책도 장기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추진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모택동과 등소평 시대에도 이어졌다. 1982년 리젠창(Li Zhenchnag)은 홍기에 기고한 글에서 “종교가 물론 영원히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경제발전으로 종교가 급속히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비현실적”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최근 Human Rights Watch가 입수한 중국 공산당 중앙당학교의 보고서에서도 이런 견해를 찾아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이 문서에서 종교는 역사적인 산물이며 사회경제적 발전으로 인민이 더 이상을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며, 당의 종교문제를 다루는 방침이 장기적인 관점에 있어야 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최근에 중국 정부는 종교단체의 활동을 통제하기 위한 구실의 하나로 법에 따른 처벌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종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법에 대한 강조는 1990년대의 새로운 현상이며, 중앙정부를 비롯한 각급 지방정부가 종교관련 각종 규정들을 공포하고 있는 데서도 증명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중국에서 종교의 성장을 막고, 사회 내 종교의 영향력을 줄이는데 폭력적 수단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데 대한 중국 지도자들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런 인식은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치협상회의 주석인 리루이환이 “종교계가 공산당과 국가의 종교정책에 충실하고 국가의 법률과 인민이익을 위해 헌신해야만 종교적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밝힌 데서도 드러난다. 또한 중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인권보장을 위한 법개혁을 충실히 하고 있음을 호소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법에 따른 감독을 강조하면서 종교생활에 참여하는 개인에 대한 처벌보다 종교조직에 대한 강력한 법적 감시와 통제가 증가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중국은 종교가 민족통일과 국가통일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적대적인 국내외세력이 종교를 이용하는 것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는 경제개혁에 의한 사회주의 혼란과 혼란을 틈탄 외세가 종교자유라는 이름 하에 국내 종교세력과 결탁해 중국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도자들의 인식이 깔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종교를 앞세운 제국주의국가들의 침략이라는 쓰라린 역사적 경험도 작용했다. 종교가 국가와 민족의 통일에 기여한다는 것은 정부가 공인하는 종교단체에 참여해 당과 정부의 방침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외국의 종교가 중국 내 세력과 결탁해 혼란을 조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중국 정부는 서방국가를 포함해 한국의 선교사들이 중국 내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통제하였다.
참고문헌
강승삼 / 1979년 이후 중국종교정책에 관한 고찰,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선교학과 교회성장전공, 2003
박이문 / 종교란 무엇인가, 일조각, 1993
배석원 / 도덕과 종교, 이문출판사, 1988
윤이흠 / 종교 단체와 종교생활
안효열 / 특집, 세계의 종교, 중국의 종교, 한국종교연구회회보, 1993
최명 외 / 북한의 인식, 서울 : 을유, 1997
폴 발타 외, 윤정임 역 / 세계의 종교이야기, 미래M&B, 1999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1950년대부터 당과 정부가 지원하는 종교단체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 대표적인 종교인 불교, 도교, 카톨릭, 프로테스탄티즘, 이슬람교 조직을 당과 정부가 직접 나서 조직화한 것이다. 이러한 정책으로 1953년 5월 중국불교협회가 결성되었으며, 1958년 4월에는 도교협의가 결성되었고 나머지 종교관련 단체도 속속 결성되어 현재 중국에는 8개의 국가공인 종교단체가 존재하게 되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종교조직은 다른 사회집단들처럼 사회의 통합된 한 부분으로 여겨졌으며 어떠한 조직적 분리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조직들을 통해 공산당 정부는 불교와 도교 사원을 건설하는데 막대한 지원을 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이런 지원을 통해 전국적인 종교조직을 완성하고, 이 조직이 당과 정부의 지도아래 종교조직과 일반 국민들의 종교생활을 지도감시하고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하도록 하며, 외세와의 연계 및 종교세력 간의 연계를 통해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공산당 정권은 종교가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곧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며, 이에 따라 당의 종교정책도 장기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추진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모택동과 등소평 시대에도 이어졌다. 1982년 리젠창(Li Zhenchnag)은 홍기에 기고한 글에서 “종교가 물론 영원히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경제발전으로 종교가 급속히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비현실적”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최근 Human Rights Watch가 입수한 중국 공산당 중앙당학교의 보고서에서도 이런 견해를 찾아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이 문서에서 종교는 역사적인 산물이며 사회경제적 발전으로 인민이 더 이상을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며, 당의 종교문제를 다루는 방침이 장기적인 관점에 있어야 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최근에 중국 정부는 종교단체의 활동을 통제하기 위한 구실의 하나로 법에 따른 처벌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종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법에 대한 강조는 1990년대의 새로운 현상이며, 중앙정부를 비롯한 각급 지방정부가 종교관련 각종 규정들을 공포하고 있는 데서도 증명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중국에서 종교의 성장을 막고, 사회 내 종교의 영향력을 줄이는데 폭력적 수단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데 대한 중국 지도자들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런 인식은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치협상회의 주석인 리루이환이 “종교계가 공산당과 국가의 종교정책에 충실하고 국가의 법률과 인민이익을 위해 헌신해야만 종교적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밝힌 데서도 드러난다. 또한 중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인권보장을 위한 법개혁을 충실히 하고 있음을 호소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법에 따른 감독을 강조하면서 종교생활에 참여하는 개인에 대한 처벌보다 종교조직에 대한 강력한 법적 감시와 통제가 증가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중국은 종교가 민족통일과 국가통일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적대적인 국내외세력이 종교를 이용하는 것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는 경제개혁에 의한 사회주의 혼란과 혼란을 틈탄 외세가 종교자유라는 이름 하에 국내 종교세력과 결탁해 중국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도자들의 인식이 깔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종교를 앞세운 제국주의국가들의 침략이라는 쓰라린 역사적 경험도 작용했다. 종교가 국가와 민족의 통일에 기여한다는 것은 정부가 공인하는 종교단체에 참여해 당과 정부의 방침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외국의 종교가 중국 내 세력과 결탁해 혼란을 조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중국 정부는 서방국가를 포함해 한국의 선교사들이 중국 내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통제하였다.
참고문헌
강승삼 / 1979년 이후 중국종교정책에 관한 고찰,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선교학과 교회성장전공, 2003
박이문 / 종교란 무엇인가, 일조각, 1993
배석원 / 도덕과 종교, 이문출판사, 1988
윤이흠 / 종교 단체와 종교생활
안효열 / 특집, 세계의 종교, 중국의 종교, 한국종교연구회회보, 1993
최명 외 / 북한의 인식, 서울 : 을유, 1997
폴 발타 외, 윤정임 역 / 세계의 종교이야기, 미래M&B,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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