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01. 인간의 생명에 대한 단상들
02. 현대 세계의 생명 적대적 현실들
03.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04. 관계성과 개별성의 양극 속에 있는 인간의 생명
05. 보다 나은 내일을 기다리는 인간 생명의 개방성
06. 통합되어야 할 온 인류와 다음 세대와 자연의 존엄성과 권리
07. 인간답게 사는 데 참 자유와 존엄성이 있다
08. 영혼과 육체의 합일체인 인간의 생명
09. 자연에 속한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 생명
10.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생명
11. 하나님의 창조인가 진화의 산물인가?
12.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계의 중심이다
13. 생명의 신학 요약을 마치며
02. 현대 세계의 생명 적대적 현실들
03.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04. 관계성과 개별성의 양극 속에 있는 인간의 생명
05. 보다 나은 내일을 기다리는 인간 생명의 개방성
06. 통합되어야 할 온 인류와 다음 세대와 자연의 존엄성과 권리
07. 인간답게 사는 데 참 자유와 존엄성이 있다
08. 영혼과 육체의 합일체인 인간의 생명
09. 자연에 속한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 생명
10.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생명
11. 하나님의 창조인가 진화의 산물인가?
12.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계의 중심이다
13. 생명의 신학 요약을 마치며
본문내용
과정을 통해 진행되며, 진화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의 구체적 나타남이라 말할 수 있다.
4. 진화는 도덕과 인간성을 알지 못한다.
창조와 진화의 통합은 기독교가 견지해온 인간 중심주의의 일면성을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진화론적 사고 모델은 인간의 자연화와 자연의 인간화를 통해 오늘날 자연의 재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사고의 모델을 제시한다. 창조와 진화가 통합될 때, 기독교는 인종주의, 식민주의, 제국주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차별과 사회 계층화를 거부하고 모든 인류의 형제자매 관계를 요구할 수 있는 생물학적 근거를 가질 수 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로서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다. 창조신앙과 진화론이 통합될 때, 진화론은 그 자신 속에 숨어 있는 도덕성과 인간성 부재의 문제점, 이데올로기적 오용의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2.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계의 중심이다
1. 자연 중심주의가 구원의 길인가?
인간 중심주의가 초래한 현대 세계의 위기 앞에서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자연 중심주의를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 중심주의에 대합하는 자연주의가 해결의 길이 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자연 중심주의는 그 나름대로의 문제성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자연 중심주의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의 위험성을 가진다. 즉 인간을 자연의 한 생물로 환원시킴으로써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부인한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 책임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이 자연의 한 미물에 불과하다면, 인간이 자연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 할 윤리적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학의 연구 대상으로서 인간의 생명은 자유를 갖지 않은 하나의 물질 덩어리이며,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존재로 파악된다.
2. 인간 중심주의와 자연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하나님 중심성
성서는 인간 중심주의냐 아니면 자연 중심주의냐의 양자택일을 넘어 하나님 중심성을 시사한다. 하나님이 자연과 또 그 안에 있는 인간을 창조했다면, 세계의 주인과 중심은 인간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다. 세계의 “소유자와 주인”처럼 행세하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우리 인간은 소유자가 아니라 일시적 사용자에 불과하다. 언젠가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던 모든 것을 참 소유자 앞에 내어 놓고 이 세계를 떠날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구원의 길은 인간 중심주의에 있지도 않고 자연 중심주의에 있지도 않다. 그것은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모든 것의 중심으로 되는 데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자로 인정할 때, 그는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될 것이다. 이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중심적 위치는 자기중심성으로 생각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위한 책임성으로 생각될 것이다.
3. 창조의 면류관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태초부터 세우신, 그러므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이다. 이날에 하나님은 물론 모든 피조물들이 쉬어야 하며 생명력을 회복해야 한다. 여섯째 날에 일어난 인간의 창조가 창조의 완성이 아니라, 모든 창조 사역을 끝내고 하나님이 쉼을 얻을 수 있을 때, 창조의 사역이 완성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일곱째 날은 모든 창조의 사역들이 안식일을 향하여, 곧 안식을 위해 진행된다고 말할 수 있다.
4. 자연의 통치에 대한 오늘의 해석
하나님의 형상은 자연을 통치하는 인간에게서 나타나야 한다. 따라서 땅의 정복과 모든 생물들의 통치는 무자비한 파괴와 착취가 아니라, 수고하고 땀 흘리면서 그들을 돌보고 가꾸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닮아야 할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 분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주어졌다(마태복음 28:18). 따라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 행위를 닮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고난과 자기희생의 형태, 곧 종의 형태를 가지는 것처럼, 오늘날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치는 자연을 위한 인간의 고난과 자기희생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성서는 암시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픔”을 경험하는 사람은, 피조물들 안에 영으로 임재하신 하나님의 아픔을 경험하며 스스로 그분의 아픔에 참여한다.
13. 생명의 신학 요약을 마치며
1. 인간의 생명
“생명의 신학”이라는 책은 인간의 생명이라는 명제에 대하여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개념에 대해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없다. 이는 너무 복잡한 문제일 뿐 아니라 고려해야 할 요건이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자연과학자들은 인간을 있는 모습 그대로, 즉 우리가 관찰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만을 가지고 정의를 내리려 한다. 물론 자연과학자들의 설명은 이성적인 부분으로만 판단한다면 진리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우리 인간의 겉모습만 훑어보는 것뿐으로 여기에는 희망이 없을 뿐더러 진정한 인간 생명을 결코 이해 할 수 없다. 인간 생명에는 분명 목적이 있고 희망이 있다. 하지만 이 명제에 대하여 자연과학처럼 분명한 증거를 보여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는 종교적 신앙, 곧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인간의 욕망과 그 끝
인간 욕망의 한계는 도데체가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인류는 탄생한 이래로 끝없는 발전과 성장만을 추구해왔다. 물론 성장과 발전은 우리 삶을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풍요롭게 해주었고, 생활적으로 보다 편하게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과 발전은 본질적으로 결코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삶의 회의를 느끼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악’의 존재를 더 쉽게 느끼게 되었다. 남은 어떻게 되든 자기만 잘 살 면된다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들끓고 오직 그 삶에서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욕망만을
4. 진화는 도덕과 인간성을 알지 못한다.
창조와 진화의 통합은 기독교가 견지해온 인간 중심주의의 일면성을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진화론적 사고 모델은 인간의 자연화와 자연의 인간화를 통해 오늘날 자연의 재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사고의 모델을 제시한다. 창조와 진화가 통합될 때, 기독교는 인종주의, 식민주의, 제국주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차별과 사회 계층화를 거부하고 모든 인류의 형제자매 관계를 요구할 수 있는 생물학적 근거를 가질 수 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로서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다. 창조신앙과 진화론이 통합될 때, 진화론은 그 자신 속에 숨어 있는 도덕성과 인간성 부재의 문제점, 이데올로기적 오용의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2.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계의 중심이다
1. 자연 중심주의가 구원의 길인가?
인간 중심주의가 초래한 현대 세계의 위기 앞에서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자연 중심주의를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 중심주의에 대합하는 자연주의가 해결의 길이 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자연 중심주의는 그 나름대로의 문제성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자연 중심주의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의 위험성을 가진다. 즉 인간을 자연의 한 생물로 환원시킴으로써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부인한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 책임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이 자연의 한 미물에 불과하다면, 인간이 자연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 할 윤리적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학의 연구 대상으로서 인간의 생명은 자유를 갖지 않은 하나의 물질 덩어리이며,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존재로 파악된다.
2. 인간 중심주의와 자연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하나님 중심성
성서는 인간 중심주의냐 아니면 자연 중심주의냐의 양자택일을 넘어 하나님 중심성을 시사한다. 하나님이 자연과 또 그 안에 있는 인간을 창조했다면, 세계의 주인과 중심은 인간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다. 세계의 “소유자와 주인”처럼 행세하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우리 인간은 소유자가 아니라 일시적 사용자에 불과하다. 언젠가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던 모든 것을 참 소유자 앞에 내어 놓고 이 세계를 떠날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구원의 길은 인간 중심주의에 있지도 않고 자연 중심주의에 있지도 않다. 그것은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모든 것의 중심으로 되는 데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자로 인정할 때, 그는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될 것이다. 이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중심적 위치는 자기중심성으로 생각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위한 책임성으로 생각될 것이다.
3. 창조의 면류관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태초부터 세우신, 그러므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이다. 이날에 하나님은 물론 모든 피조물들이 쉬어야 하며 생명력을 회복해야 한다. 여섯째 날에 일어난 인간의 창조가 창조의 완성이 아니라, 모든 창조 사역을 끝내고 하나님이 쉼을 얻을 수 있을 때, 창조의 사역이 완성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일곱째 날은 모든 창조의 사역들이 안식일을 향하여, 곧 안식을 위해 진행된다고 말할 수 있다.
4. 자연의 통치에 대한 오늘의 해석
하나님의 형상은 자연을 통치하는 인간에게서 나타나야 한다. 따라서 땅의 정복과 모든 생물들의 통치는 무자비한 파괴와 착취가 아니라, 수고하고 땀 흘리면서 그들을 돌보고 가꾸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닮아야 할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 분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주어졌다(마태복음 28:18). 따라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 행위를 닮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고난과 자기희생의 형태, 곧 종의 형태를 가지는 것처럼, 오늘날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치는 자연을 위한 인간의 고난과 자기희생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성서는 암시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픔”을 경험하는 사람은, 피조물들 안에 영으로 임재하신 하나님의 아픔을 경험하며 스스로 그분의 아픔에 참여한다.
13. 생명의 신학 요약을 마치며
1. 인간의 생명
“생명의 신학”이라는 책은 인간의 생명이라는 명제에 대하여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개념에 대해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없다. 이는 너무 복잡한 문제일 뿐 아니라 고려해야 할 요건이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자연과학자들은 인간을 있는 모습 그대로, 즉 우리가 관찰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만을 가지고 정의를 내리려 한다. 물론 자연과학자들의 설명은 이성적인 부분으로만 판단한다면 진리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우리 인간의 겉모습만 훑어보는 것뿐으로 여기에는 희망이 없을 뿐더러 진정한 인간 생명을 결코 이해 할 수 없다. 인간 생명에는 분명 목적이 있고 희망이 있다. 하지만 이 명제에 대하여 자연과학처럼 분명한 증거를 보여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는 종교적 신앙, 곧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인간의 욕망과 그 끝
인간 욕망의 한계는 도데체가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인류는 탄생한 이래로 끝없는 발전과 성장만을 추구해왔다. 물론 성장과 발전은 우리 삶을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풍요롭게 해주었고, 생활적으로 보다 편하게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과 발전은 본질적으로 결코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삶의 회의를 느끼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악’의 존재를 더 쉽게 느끼게 되었다. 남은 어떻게 되든 자기만 잘 살 면된다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들끓고 오직 그 삶에서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욕망만을
추천자료
안락사의 정의와 그 이해 그리고 기독교 적인 접근방법
사회복지실천을 위한 기독교 영성적 접근가능성에 대한 탐색
환경과 생태계의 파괴의 대안 (기독교적 관점으로)
21세기를 향한 기독교 교육
장기이식 고찰과 기독교윤리학의 과제
이혼에 대한 기독교적 고찰
한국의 유교,기독교가 갖는 공동체적 윤리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칭의와 성화의 관계
영성교육과정에 대한 기독교 교육적 접근
루돌프슈타이너의 자연에 대한 기독교적인 조명
생태계의 위기와 기독교
낙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과 나아갈 방향 제언 (창조 진리, 타락 진리, 구속 진리, 하나님 ...
[기독교교육심리 基督敎敎育心理] 자아(Self)에 대한 심리학적 관점 (기능주의의 시각, 상호...
유전자 치료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접근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