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2
본론
1.1910~1919년------------------------------------------------------2
2.1919~1927년------------------------------------------------------4
3.1927~1935년------------------------------------------------------7
4.1935~1945년------------------------------------------------------11
5.1945~1950년------------------------------------------------------14
6.1950년대---------------------------------------------------------14
7.1960년대---------------------------------------------------------16
8.1970년대---------------------------------------------------------17
9.1980년대---------------------------------------------------------19
결론--------------------------------------------------------------21
본론
1.1910~1919년------------------------------------------------------2
2.1919~1927년------------------------------------------------------4
3.1927~1935년------------------------------------------------------7
4.1935~1945년------------------------------------------------------11
5.1945~1950년------------------------------------------------------14
6.1950년대---------------------------------------------------------14
7.1960년대---------------------------------------------------------16
8.1970년대---------------------------------------------------------17
9.1980년대---------------------------------------------------------19
결론--------------------------------------------------------------21
본문내용
-----------------------------------------------------14
6.1950년대---------------------------------------------------------14
7.1960년대---------------------------------------------------------16
8.1970년대---------------------------------------------------------17
9.1980년대---------------------------------------------------------19
결론--------------------------------------------------------------21
Ⅰ.서론
시라는 학문을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요즘에는 이렇게 원하고자하면 쉽게 접할수 있지만 지난 시대에는 내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자, 숨기고자, 이용했던 것이 바로 이 ‘시’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현대시의 이해’ 과목을 통해서 시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 개념 등을 살펴보긴 하였지만 시대별로 그 경향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살펴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의 근·현대시는 형성 단계에서 정치적·민족적 의식에 시인들이 자유롭지 못하였고 따라서 형상화에의 노력이 그만큼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1920년경부터는 이와 상반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시정신과 형상화 중 어느 측면에의 경사는 여러모로 우리 시를 이끌어온 힘이었다. 이와 아울러 근대에 이르러 시작된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은 근대 의식과 더불어 우리 시를 보다 우리 것 답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인식의 변모도 그리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의 핵심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시에 이물질을 실어오기에 시인들은 언어에 대해 고심했고, 이에 대한 천착 역시 우리의 중요한 문화 자산인 것이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작가와 그에 따른 시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1910~1919년
국권 상실로 인한 정치사회경제적 변화로 조선인들의 삶의 방식과 내용을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의 정서자기인식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형식의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감정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욕구가 대두되었는데, 이로써 1910년대는 변화된 삶의 내용과 정서를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의 형식에 대한 모색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졌던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시라 부를 수 없는 까닭이 있는데, 이는 통일된 형식에 대한 요구는 약화가 되었으나 스스로 자아와 세계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채 고정된 내면성 속에 갇혀버린 시인들의 고뇌와 비탄이 무절제하게 터져 나온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형식에 있어서 창가, 신체시에서 근대적인 자유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는 시문학이 진보성을 상실하고 개인의 고립된 주관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 관념적 근대 민주주의와 민족적 자아의 탐구
(1)최남선
『태백산시집』의 「태백산」,「태백산부」등은 민족사의 시원에 대한 탐색을 통해 국권상실의 위기에 대응하려 했던 최남선의 정신적 지향을 잘 보여주었다.
문명개화를 강조한데서 민족정신이나 자아를 강조하는 것으로의 변모와 함께 시적 소재와 관심의 변화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족적 자아를 확인하려는 그의 이 같은 노력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최남선이 시도한 일련의 시적모색은 더 이상의 발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중단이 되고 만다.
(2)이광수
초기 시는 비교적 뚜렷한 자유시(혹은 산문시) 지향성을 보여준다.
「옥중호걸」은 가사체에 가까운 34조로 율격을 구사하고 있어 간혹 가사체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반드시 자수율에 얽매이고 있는 것은 아니며, 내용의 전개에 따라 절절히 율격을 배분하고 있다. 작품들에 사용된 쉼표들은 단순한 문장부호가 아니라 율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가사체의 율격에 얽매이지 않고 시인이 나름대로 부여한 율격적 질서에 따라 시를 읽어나가도록 해준다. 「곰」,「우리 영웅」등의 시들은 기존의 어떤 시와도 같지 않은 독특하고 자유로운 율격과 형식을 보여준다.
2) 세계의 광포성에 대한 인식과 소외도니 자아의 절망감
(1)현상윤
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고통 받는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상실감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두었고, 특히 황폐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현실 속에서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쳐져있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주조를 이룬다. 때때로 황폐한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주체의 노력과 인내 그리고 투쟁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추상적인 당위론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가령,『소성의 만필』에 실린 「실락원」같은 작품은 현상윤의 현실 인식의 관념성과 함께 비록 암시적이기는 하지만, 식민지의 질곡아래서 고통당하는 민족의 삶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그는 「생각나는 대로」나 「요게 무어야」등의 자유시와 「향상」같은 산문시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형성을 띤 시들은 비교적 짜임새도 갖추어져 있고 형상화에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으나 자유시나 산문시들은 대부분 산만하고 서술적인 결함을 노출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그가 아직 자유시를 감당할만한 내적질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2)최승구
19세기말 이래로 시문학의 사상적 토대가 되어왔던 부르주아 계몽주의가 소멸되어가는 마지막 징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징후는 한편으로는 민족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통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미적인 세계로의 관념적 도피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 중에서 전자는 부르주아 계몽주의의 진보적인 전통과 연결되는 것으로서, 때로는 비록 관념적이기는 하지만,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령 독일의 벨기에 침공을 빌어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한 「
6.1950년대---------------------------------------------------------14
7.1960년대---------------------------------------------------------16
8.1970년대---------------------------------------------------------17
9.1980년대---------------------------------------------------------19
결론--------------------------------------------------------------21
Ⅰ.서론
시라는 학문을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요즘에는 이렇게 원하고자하면 쉽게 접할수 있지만 지난 시대에는 내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자, 숨기고자, 이용했던 것이 바로 이 ‘시’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현대시의 이해’ 과목을 통해서 시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 개념 등을 살펴보긴 하였지만 시대별로 그 경향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살펴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의 근·현대시는 형성 단계에서 정치적·민족적 의식에 시인들이 자유롭지 못하였고 따라서 형상화에의 노력이 그만큼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1920년경부터는 이와 상반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시정신과 형상화 중 어느 측면에의 경사는 여러모로 우리 시를 이끌어온 힘이었다. 이와 아울러 근대에 이르러 시작된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은 근대 의식과 더불어 우리 시를 보다 우리 것 답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인식의 변모도 그리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의 핵심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시에 이물질을 실어오기에 시인들은 언어에 대해 고심했고, 이에 대한 천착 역시 우리의 중요한 문화 자산인 것이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작가와 그에 따른 시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1910~1919년
국권 상실로 인한 정치사회경제적 변화로 조선인들의 삶의 방식과 내용을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의 정서자기인식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형식의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감정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욕구가 대두되었는데, 이로써 1910년대는 변화된 삶의 내용과 정서를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의 형식에 대한 모색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졌던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시라 부를 수 없는 까닭이 있는데, 이는 통일된 형식에 대한 요구는 약화가 되었으나 스스로 자아와 세계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채 고정된 내면성 속에 갇혀버린 시인들의 고뇌와 비탄이 무절제하게 터져 나온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형식에 있어서 창가, 신체시에서 근대적인 자유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는 시문학이 진보성을 상실하고 개인의 고립된 주관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 관념적 근대 민주주의와 민족적 자아의 탐구
(1)최남선
『태백산시집』의 「태백산」,「태백산부」등은 민족사의 시원에 대한 탐색을 통해 국권상실의 위기에 대응하려 했던 최남선의 정신적 지향을 잘 보여주었다.
문명개화를 강조한데서 민족정신이나 자아를 강조하는 것으로의 변모와 함께 시적 소재와 관심의 변화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족적 자아를 확인하려는 그의 이 같은 노력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최남선이 시도한 일련의 시적모색은 더 이상의 발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중단이 되고 만다.
(2)이광수
초기 시는 비교적 뚜렷한 자유시(혹은 산문시) 지향성을 보여준다.
「옥중호걸」은 가사체에 가까운 34조로 율격을 구사하고 있어 간혹 가사체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반드시 자수율에 얽매이고 있는 것은 아니며, 내용의 전개에 따라 절절히 율격을 배분하고 있다. 작품들에 사용된 쉼표들은 단순한 문장부호가 아니라 율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가사체의 율격에 얽매이지 않고 시인이 나름대로 부여한 율격적 질서에 따라 시를 읽어나가도록 해준다. 「곰」,「우리 영웅」등의 시들은 기존의 어떤 시와도 같지 않은 독특하고 자유로운 율격과 형식을 보여준다.
2) 세계의 광포성에 대한 인식과 소외도니 자아의 절망감
(1)현상윤
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고통 받는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상실감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두었고, 특히 황폐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현실 속에서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쳐져있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주조를 이룬다. 때때로 황폐한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주체의 노력과 인내 그리고 투쟁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추상적인 당위론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가령,『소성의 만필』에 실린 「실락원」같은 작품은 현상윤의 현실 인식의 관념성과 함께 비록 암시적이기는 하지만, 식민지의 질곡아래서 고통당하는 민족의 삶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그는 「생각나는 대로」나 「요게 무어야」등의 자유시와 「향상」같은 산문시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형성을 띤 시들은 비교적 짜임새도 갖추어져 있고 형상화에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으나 자유시나 산문시들은 대부분 산만하고 서술적인 결함을 노출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그가 아직 자유시를 감당할만한 내적질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2)최승구
19세기말 이래로 시문학의 사상적 토대가 되어왔던 부르주아 계몽주의가 소멸되어가는 마지막 징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징후는 한편으로는 민족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통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미적인 세계로의 관념적 도피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 중에서 전자는 부르주아 계몽주의의 진보적인 전통과 연결되는 것으로서, 때로는 비록 관념적이기는 하지만,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령 독일의 벨기에 침공을 빌어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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