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자유시의 형성기(1910~1919)
2. 1920년대의 시
1) 퇴폐적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시
2) 신경향파의 시
3) 민족주의적 경향의 시
4) 김소월과 한용운
3. 1930년대의 시
1) 순수 서정시
2) 모더니즘 시
3) 전원파 시
4) 생명파 시
5) 청록파 시
4. 암흑기의 저항시(1940년대)
1) 저항시
2) 해방 후 혼란기의 시
5. 광복이후의 시(1950년대)
6. 1960년대 이후의 시
1) 참여시
2) 순수시
3) 주지적 실험시
4) 소외된 이웃을 위한 시
Ⅲ. 맺는말
Ⅱ. 본론
1. 자유시의 형성기(1910~1919)
2. 1920년대의 시
1) 퇴폐적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시
2) 신경향파의 시
3) 민족주의적 경향의 시
4) 김소월과 한용운
3. 1930년대의 시
1) 순수 서정시
2) 모더니즘 시
3) 전원파 시
4) 생명파 시
5) 청록파 시
4. 암흑기의 저항시(1940년대)
1) 저항시
2) 해방 후 혼란기의 시
5. 광복이후의 시(1950년대)
6. 1960년대 이후의 시
1) 참여시
2) 순수시
3) 주지적 실험시
4) 소외된 이웃을 위한 시
Ⅲ. 맺는말
본문내용
달이 비치는 뜰의 모습을 그린 매우 시각적인 작품으로, 선명한 감각, 인상을 추구한 기법이 돋보인다. 장만영은 농촌과 자연을 소재로 한국적 정서를 시각적으로 심상화하는 특색을 보여준 시인이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 이상, ‘거울’(1933)에서
그리고 이상은 1934년에 초현실주의적인 시 ‘오감도’, ‘거울’ 등 독특하고 난해한 실험시를 발표하여 당시의 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파격적인 작품을 써 종래 시의 고정 관념을 다다이즘적인 주지주의 경향을 보여 주었다.
3) 전원파의 시
1935년경에 반도시적 경향의 전원파 시인들의 활동도 있었다. 이들은 도시 문명을 벗어나 농촌과 자연을 소재로 택하여 자연 친화적 경향을 보였는데, 김동명, 김상용, 신석정 등이 이에 해당한다. 김동명은 시집 ‘하늘’에서 전원과 자연을 예찬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김상용은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 전원에서의 삶을 갈망하였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 김동명, ‘내 마음은’(1937)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남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1939)
한편, 신석정은 ‘시문학’에서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전원적, 목가적 시풍을 나타내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따?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 신석정,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1933)에서
또한, 1935년을 전후하여 ‘시원’을 통하여 시작 활동을 한 여류 시인으로는 노천명과 모윤숙이 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 노천명, ‘사슴’(1938)에서
一萬 화살이 공중에 뛰놀듯이
우리의 심장엔 먼 앞날이 춤추고 있다.
銀風이 감겨진 아름다운 福地에
우리의 긴 生命은 永遠히 뻗어가리.
너도 나도 섞이지 않은 한피의 줄기요
물들지 않은 朝鮮의 새벽 자손이니
맑은 시내 햇빛 받는 아침 언덕에
우렁찬 出發의 宣言을 메고 가는 우리이라네.
- 모윤숙, ‘빛나는 지역’(1933)에서
4) 생명파의 시
1930년대 후반에 등장한 생명파 시인들은 인간 문제와 생명의 탐구에 주력했다. 서정주와 유치완은 주지시파들의 감각적 기교나 시문학파의 순수 서정의 표출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서정주는 시집 ‘화사’(1938)에서 인간의 원죄 의식과 생명의 몸부림을 육감적이고 원색적인 언어로 형상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 서정주, ‘자화상’(1939)에서
유치환은 시집 ‘청마시초’(1939)에서 강인한 대결 정신과 생명의 의지를 집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
- 유치환, ‘생명의 서’(1938)에서
5) 청록파 시
일제 강점 말기의 극심한 탄압에 따라 현실적인 문제를 시로 직접적으로 다룰 수 없게 되었다. 1930년대 말에 ‘문장’지의 추천을 거쳐 등단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을 소위 청록파라 하는데 이들은 자연을 고향으로 인식하고 이를 노래함으로써 현대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이 청록파는 자연 귀의라는 공통성은 있었으나 각각 특색을 지닌 세계를 구축하였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조지훈, ‘승무’(1939)
山, 山, 山들! 累巨萬年 너희들 沈이 흠뻑 지리함직하매,
산(山)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 확 치밀어 오를 火焰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 박두진, ‘향현’(1939)
4. 1940년대의 시(암흑기의 저항시)
1) 저항시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는 문학사상 암흑기에 해당한다. 신문이 모두 폐간되고 ‘문장’ 역시 폐간당하게 된다. 시를 발표할 지면을 잃고 말조차 빼앗겼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시인들이 붓을 꺾고 말았는데, 일제에 항거하는 시를 쓰며 민족사의 내일을 위해 헌신한 시인들로 이육사와 윤동주가 있다. 이 두 시인은 시와 행동이 일치했다는 점에서 시 정신에 투철한 시인들이다. 이육사는 민족 운동가로 시에서 남성적인 목소리로 강인한 대륙적 풍모를 보여 주었고, 일제에 대한 당당한 대결 정신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8·15 이후 햇빛을 보게 된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 땅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 이상, ‘거울’(1933)에서
그리고 이상은 1934년에 초현실주의적인 시 ‘오감도’, ‘거울’ 등 독특하고 난해한 실험시를 발표하여 당시의 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파격적인 작품을 써 종래 시의 고정 관념을 다다이즘적인 주지주의 경향을 보여 주었다.
3) 전원파의 시
1935년경에 반도시적 경향의 전원파 시인들의 활동도 있었다. 이들은 도시 문명을 벗어나 농촌과 자연을 소재로 택하여 자연 친화적 경향을 보였는데, 김동명, 김상용, 신석정 등이 이에 해당한다. 김동명은 시집 ‘하늘’에서 전원과 자연을 예찬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김상용은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 전원에서의 삶을 갈망하였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 김동명, ‘내 마음은’(1937)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남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1939)
한편, 신석정은 ‘시문학’에서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전원적, 목가적 시풍을 나타내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따?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 신석정,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1933)에서
또한, 1935년을 전후하여 ‘시원’을 통하여 시작 활동을 한 여류 시인으로는 노천명과 모윤숙이 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 노천명, ‘사슴’(1938)에서
一萬 화살이 공중에 뛰놀듯이
우리의 심장엔 먼 앞날이 춤추고 있다.
銀風이 감겨진 아름다운 福地에
우리의 긴 生命은 永遠히 뻗어가리.
너도 나도 섞이지 않은 한피의 줄기요
물들지 않은 朝鮮의 새벽 자손이니
맑은 시내 햇빛 받는 아침 언덕에
우렁찬 出發의 宣言을 메고 가는 우리이라네.
- 모윤숙, ‘빛나는 지역’(1933)에서
4) 생명파의 시
1930년대 후반에 등장한 생명파 시인들은 인간 문제와 생명의 탐구에 주력했다. 서정주와 유치완은 주지시파들의 감각적 기교나 시문학파의 순수 서정의 표출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서정주는 시집 ‘화사’(1938)에서 인간의 원죄 의식과 생명의 몸부림을 육감적이고 원색적인 언어로 형상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 서정주, ‘자화상’(1939)에서
유치환은 시집 ‘청마시초’(1939)에서 강인한 대결 정신과 생명의 의지를 집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
- 유치환, ‘생명의 서’(1938)에서
5) 청록파 시
일제 강점 말기의 극심한 탄압에 따라 현실적인 문제를 시로 직접적으로 다룰 수 없게 되었다. 1930년대 말에 ‘문장’지의 추천을 거쳐 등단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을 소위 청록파라 하는데 이들은 자연을 고향으로 인식하고 이를 노래함으로써 현대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이 청록파는 자연 귀의라는 공통성은 있었으나 각각 특색을 지닌 세계를 구축하였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조지훈, ‘승무’(1939)
山, 山, 山들! 累巨萬年 너희들 沈이 흠뻑 지리함직하매,
산(山)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 확 치밀어 오를 火焰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 박두진, ‘향현’(1939)
4. 1940년대의 시(암흑기의 저항시)
1) 저항시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는 문학사상 암흑기에 해당한다. 신문이 모두 폐간되고 ‘문장’ 역시 폐간당하게 된다. 시를 발표할 지면을 잃고 말조차 빼앗겼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시인들이 붓을 꺾고 말았는데, 일제에 항거하는 시를 쓰며 민족사의 내일을 위해 헌신한 시인들로 이육사와 윤동주가 있다. 이 두 시인은 시와 행동이 일치했다는 점에서 시 정신에 투철한 시인들이다. 이육사는 민족 운동가로 시에서 남성적인 목소리로 강인한 대륙적 풍모를 보여 주었고, 일제에 대한 당당한 대결 정신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8·15 이후 햇빛을 보게 된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 땅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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