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영성의 정의
1. 그리스도의 삶의 구현이다
2.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이다
3. 주 예수님과의 인격적 교제의 삶이다
4. 하나님의 선물이다
Ⅱ. 영성의 특징
Ⅲ. 영성의 훈련
Ⅳ. 영성의 이해
Ⅴ. 영성과 사회복지
1. 작은 이가 되어 가는 삶
2. 내어 주고 나누는 삶
3. 봉사
4. 감사하고 기뻐하라
5. 구원을 지향
6. 기도의 생활화
Ⅵ. 영성과 동방교회
참고문헌
1. 그리스도의 삶의 구현이다
2.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이다
3. 주 예수님과의 인격적 교제의 삶이다
4. 하나님의 선물이다
Ⅱ. 영성의 특징
Ⅲ. 영성의 훈련
Ⅳ. 영성의 이해
Ⅴ. 영성과 사회복지
1. 작은 이가 되어 가는 삶
2. 내어 주고 나누는 삶
3. 봉사
4. 감사하고 기뻐하라
5. 구원을 지향
6. 기도의 생활화
Ⅵ. 영성과 동방교회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출발은 이상에서 살펴본 동방교회의 영성의 주제인 ‘완전’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안토니는 끊임없는 고행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찾았으나 죽는 날까지 고행을 멈추지 않았고, 파코미우스에게 이르러서는 안토니 식의 개인적 수도가 지양되고 수도원의 제도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수도원 운동은 갑바도키아 3대 교부중의 하나인 바실에 의해 수도원 제도가 본격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하였고 그의 동생 그레고리에게 있어서는 형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와 사상으로 완전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수도원 운동은 아타나시우스에게 의해 서방에 소개되면서 서방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후에 서방교회가 우위를 점하며 동방교회의 모든 것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동방교회는 카톨릭에서도 개신교에서도 올바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기독교의 흐름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서방교회의 첫 수도원 설립자는 자비(慈悲)한 감독인 투르의 마르땡( St. Martin 330-397)이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갖추어진 형태는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547)에게서 보여진다. 여기서 서방교회의 특징인 엄격한 제도가 등장하는 것이다.
개신교의 관점에서 볼 때 완전개념은 무시되거나 심각하게 약화되어 왔다. 거룩을 향한 수도원적 추구는 루터에 의해 잘못된 행위의 의(義)로 여겨졌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의롭다는 구호 아래 의인인 동시에 죄인(義人인 同時에 罪人 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이중성(二重性)을 나타내었다. 루터의 칭의사상(Justification)은 오직 성서,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의 구호 아래 오직 하나님만이 인도하신다는 주권을 강하게 나타낸 반면 인간을 수동적 위치에 확고히 자리 잡게 했다.
그러나 개신교 전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카톨릭 전통을 간직한 감리교 전통은 거룩한 완전에 대한 이해의 질을 높여 놓았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올더스게이트 체험(1738. 5, 28) 이후에도 그의 생애 초기로부터 추구해 온 성화를 포기하지 않고 생애의 목적으로 삼았다. 누가 뭐라 해도 웨슬리의 가장 큰 신학적 공헌은 기독교인 완전 사상이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제3의 전통은 신인협력에 관한 사상이다.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은 인간의 참여를 유도하시고 인간의 결단을 통해 본래의 신성을 회복하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활동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에서 새롭게 제기되어야 할 성령운동(聖靈運動 charismatic movement)은 교회와의 연관성 속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 기독교의 독특한 성장의 방법과 연관이 있다.
성령운동은 교회를 율법주의나 형식주의로부터 탈피시키고 공동체에 헌신케 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에 확신을 주며 신앙을 활동적인 신앙이 되게 하고 개인에게 삶의 의미를 발견케 하며 기쁨과 평안을 가져온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은사를 받은 자들의 주장인 우월주의(優越主義)가 교회를 덕을 해친다는 것과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시대에 적용되는 몇 가지만을 주장해 은사의 광범위한 개념을 협소화시키고 반지성적이며 반이성적인 경향으로 흐른다는 것과 성령의 은사를 개인화하는 경향이 팽배해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한 태도를 갖게 되고 성령의 은사가 오히려 현세출신의 지표가 되어 본래의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이단적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폐단은 인간과 성령의 객관화에 기인한다. 현대에 들어서서 성령의 가장 큰 속성을 창조로 보고 있다. 성령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의 장은 교회이며 인간의 회개와 결단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꾸준히 사모하는 모습이 동방교회의 완전이해를 위한 초석이지 않을까 한다.
참고문헌
김진(1992), 교회 청소년들의 영성훈련을 위한 프로그램 연구, 실천신학 석사학위 논문, 장로회 신학대학 신학대학원
박훈용(1995), 성결지향적 영성훈련의 이론과 실제, 서울신학대학교, 목회학박사논문
임재복(1996), 로욜라 이냐시오의 영성수련에 관한 고찰, 장로회대전신학교
오성춘(1989), 영성과 목회, 장로회신학대학교
최봉기(1999), 깊은 영성으로 나아가는 길, 예영 커뮤니케이션
Bradley P. Holt, 기독교 영성사(Thirsty for God: A Brief History of Christian)
안토니는 끊임없는 고행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찾았으나 죽는 날까지 고행을 멈추지 않았고, 파코미우스에게 이르러서는 안토니 식의 개인적 수도가 지양되고 수도원의 제도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수도원 운동은 갑바도키아 3대 교부중의 하나인 바실에 의해 수도원 제도가 본격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하였고 그의 동생 그레고리에게 있어서는 형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와 사상으로 완전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수도원 운동은 아타나시우스에게 의해 서방에 소개되면서 서방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후에 서방교회가 우위를 점하며 동방교회의 모든 것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동방교회는 카톨릭에서도 개신교에서도 올바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기독교의 흐름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서방교회의 첫 수도원 설립자는 자비(慈悲)한 감독인 투르의 마르땡( St. Martin 330-397)이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갖추어진 형태는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547)에게서 보여진다. 여기서 서방교회의 특징인 엄격한 제도가 등장하는 것이다.
개신교의 관점에서 볼 때 완전개념은 무시되거나 심각하게 약화되어 왔다. 거룩을 향한 수도원적 추구는 루터에 의해 잘못된 행위의 의(義)로 여겨졌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의롭다는 구호 아래 의인인 동시에 죄인(義人인 同時에 罪人 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이중성(二重性)을 나타내었다. 루터의 칭의사상(Justification)은 오직 성서,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의 구호 아래 오직 하나님만이 인도하신다는 주권을 강하게 나타낸 반면 인간을 수동적 위치에 확고히 자리 잡게 했다.
그러나 개신교 전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카톨릭 전통을 간직한 감리교 전통은 거룩한 완전에 대한 이해의 질을 높여 놓았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올더스게이트 체험(1738. 5, 28) 이후에도 그의 생애 초기로부터 추구해 온 성화를 포기하지 않고 생애의 목적으로 삼았다. 누가 뭐라 해도 웨슬리의 가장 큰 신학적 공헌은 기독교인 완전 사상이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제3의 전통은 신인협력에 관한 사상이다.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은 인간의 참여를 유도하시고 인간의 결단을 통해 본래의 신성을 회복하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활동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에서 새롭게 제기되어야 할 성령운동(聖靈運動 charismatic movement)은 교회와의 연관성 속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 기독교의 독특한 성장의 방법과 연관이 있다.
성령운동은 교회를 율법주의나 형식주의로부터 탈피시키고 공동체에 헌신케 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에 확신을 주며 신앙을 활동적인 신앙이 되게 하고 개인에게 삶의 의미를 발견케 하며 기쁨과 평안을 가져온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은사를 받은 자들의 주장인 우월주의(優越主義)가 교회를 덕을 해친다는 것과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시대에 적용되는 몇 가지만을 주장해 은사의 광범위한 개념을 협소화시키고 반지성적이며 반이성적인 경향으로 흐른다는 것과 성령의 은사를 개인화하는 경향이 팽배해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한 태도를 갖게 되고 성령의 은사가 오히려 현세출신의 지표가 되어 본래의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이단적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폐단은 인간과 성령의 객관화에 기인한다. 현대에 들어서서 성령의 가장 큰 속성을 창조로 보고 있다. 성령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의 장은 교회이며 인간의 회개와 결단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꾸준히 사모하는 모습이 동방교회의 완전이해를 위한 초석이지 않을까 한다.
참고문헌
김진(1992), 교회 청소년들의 영성훈련을 위한 프로그램 연구, 실천신학 석사학위 논문, 장로회 신학대학 신학대학원
박훈용(1995), 성결지향적 영성훈련의 이론과 실제, 서울신학대학교, 목회학박사논문
임재복(1996), 로욜라 이냐시오의 영성수련에 관한 고찰, 장로회대전신학교
오성춘(1989), 영성과 목회, 장로회신학대학교
최봉기(1999), 깊은 영성으로 나아가는 길, 예영 커뮤니케이션
Bradley P. Holt, 기독교 영성사(Thirsty for God: A Brief History of 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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