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명가의 개관
2. 시대적 배경과 흐름
3. 사상가
1) 등석자(鄧析子, ?~?)
2) 윤문자(尹文子, ?~?)
3) 혜시 [惠施, BC 370?~BC 309?]
4) 공손룡 [公孫龍, BC 320 ?~BC 250 ?]
4. 당시의 관점에 적합한가
5. 현대적인 의의
6. 참고자료
2. 시대적 배경과 흐름
3. 사상가
1) 등석자(鄧析子, ?~?)
2) 윤문자(尹文子, ?~?)
3) 혜시 [惠施, BC 370?~BC 309?]
4) 공손룡 [公孫龍, BC 320 ?~BC 250 ?]
4. 당시의 관점에 적합한가
5. 현대적인 의의
6. 참고자료
본문내용
자체에는 아무런 공헌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명가의 참된 창시자를 혜시와 공손룡으로 봐야 할 것이다.
2) 윤문자(尹文子, ?~?)
윤문자는 주나라의 학자였다. 원래 윤문자는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군왕의 올바른 정사에 관하여 논한 책’인데, 저자의 이름 역시 책의 이름을 따서 윤문자라고 불린다. 등석자와 마찬가지로 윤문자도 생존 연대의 추정이 불분명하고 이름까지도 분명하지 않다.
윤문자는 제나라 선왕(기원전 343~324)이 그의 수도에 설립했던 학자들의 숙소에 기거하였다. 윤문자와 민왕(기원전 323~284)이 함께 나누었던 대화가 전래되고 있기 때문에 그는 기원전 4세기 말과 3세기 초에도 살았었을 것이 확실하다.
윤문자의 저서에는 주로 논변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도가적인 기초 위에 건립되었으며 실천적인 것에 있어서는 법가의 견해를 많이 수용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윤문자를 도가와 명가 그리고 법가의 요소를 통합한 절충학자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문자의 논변에서는 보다 형식적인 묵가의 논리가 아니라 공자의 논리적 윤리적 이념에 연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자의 정명사상과 같은 의미로 “모든 사물이 올바른 이름으로 표기되어야만 한다는 것과 진리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름과 현실이 서로 일치해야만 하며, 사물은 그 이름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존재해야만 한다. 따라서 제일 먼저 사물이 올바른 이름으로 일컬어져야만 하고, 그러면 그 이름의 주인공은 그것에 맞게 행동하고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고 하였다.
윤문자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름과 명칭에 대한 연구에서 이름이 없는 것, 즉 ‘도’로부터 출발한다고 하였다. 모든 개별적인 사물들은 이름 없는 것에서부터 생겨났기 때문에, 이름 없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올바로 설정하기 위하여 사람은 이름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름들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릇되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윤문자 역시 등석자와 마찬가지로 명가의 철학 자체에는 아무런 공헌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참된 창시자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3) 혜시 [惠施, BC 370?~BC 309?]
혜시는 전국 중기 송나라 사람이다. 그는 위나라의 재상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장자와는 우호적인 관계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박학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저서는 수레로 다섯이나 되었다고 하나 현재까지 전하는 것은 없다. 그의 주장은《장자》《순자》《여씨춘추》등에서 가끔 찾아볼 수 있으며, 명가 사상가 중에서 궤변이 가장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에 황료라는 사람이 그에게 하늘과 땅이 무너지지도 꺼지지도 않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는데, 혜시는 생각함도 없이 만물의 이치에 대하여 막힘없이 말하였다고 한다.
『장자』<천하>의 기록에 의하면, 혜시가 다른 사람과 논쟁하던 철학과 논리문제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열 가지 명제를 제시하였는데, 이것을 역물십사 (歷物十事)라고 한다. 역물이란 사물을 관찰한다는 뜻인데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을 부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1. 정말 큰 것은 밖이 없고, 정말 작은 것은 안이 없다.
『장자』 [추수편]에는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자부하던 황하 귀신이 홍수 때문에 바다로 떠밀려가서 바다의 신을 만나는 얘기가 나온다. 처음으로 자기보다 큰 것을 만나서 놀라는 황하의 신에게 바다의 신은 자기도 천지와 비교한다면 커다란 창고에 들어 있는 곡식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본 경험을 중심으로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개념은 모두 상대적일 뿐이다.
2.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지만 그 크기는 천리가 된다.
두께가 없는 물건도 늘어놓으면 엄청난 넓이가 될 수 있다. 사실 두께와 넓이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두께가 없으면 넓이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처럼 얼굴이 번듯하고 옷을 잘 입으면 돈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바로 이런 것이 우리의 상식이 갖는 맹점이다.
3. 하늘과 땅은 높이가 같고 산과 연못은 똑같이 평평하다.
사람들은 하늘이나 산은 높고 땅이나 연못은 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달에서 지구를 보면 그 차이는 거의 없으며 산꼭대기 있는 연못은 다른 산보다 훨씬 위에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재능이나 지위를 따지는 것도 더 높은 위치에서 본다면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4. 남쪽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
서울에서 보면 대구와 부산이 모두 남쪽이지만, 부산에서 보면 대구는 북쪽이 된다. 이처럼 남쪽이냐 북쪽이냐는 기준 지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말하는 \'바람직한 사람\', \'바람직한 세상\'도 기준에 따라 내용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똑같은 바람직한 세상이 자본주의일수도 있고 사회주의일수도 있으며, 똑같은 바람직한 사람이 개인적 차원에서 성실한 사람일수도 있고, 사회적 차원에서 자기 희생적인 사람일수도 있다.
5. 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 안다.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이 바로 그 곳이다.
당시 연나라는 북쪽에 있고 월나라는 남쪽에 있었다. 따라서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은 서로 다른 방향이므로 세상의 중심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자. 지구의 중심은 어디일까? 북극일까, 남극일까? 둥근 물체는 어디든 중심이 된다. 따라서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바로 중심이며, 모든 사람들은 다 지구의 중심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만을 중심에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다툰다.
6. 오늘 월나라에 가서 어제 돌아왔다.
상식에서는 오늘 갔다면 내일이나 모래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어제, 오늘, 내일은 사람들이 편의상 나누어 쓰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며, 오늘은 어제에서 보면 내일이지만 내일 시점에서 보면 어제가 된다.
7. 해가 막 하늘 가운데 뜬 상태는 막 지는 상태이며, 태어남은 곧 죽어감이다.
모든 사물은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제 겨우 다섯개 남았다고 할 수도 있고 아직도 다섯 개나 남았다고 할 수도 있다. 소고기 통조림 공장에서 포장이 끝난 통조림들이
2) 윤문자(尹文子, ?~?)
윤문자는 주나라의 학자였다. 원래 윤문자는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군왕의 올바른 정사에 관하여 논한 책’인데, 저자의 이름 역시 책의 이름을 따서 윤문자라고 불린다. 등석자와 마찬가지로 윤문자도 생존 연대의 추정이 불분명하고 이름까지도 분명하지 않다.
윤문자는 제나라 선왕(기원전 343~324)이 그의 수도에 설립했던 학자들의 숙소에 기거하였다. 윤문자와 민왕(기원전 323~284)이 함께 나누었던 대화가 전래되고 있기 때문에 그는 기원전 4세기 말과 3세기 초에도 살았었을 것이 확실하다.
윤문자의 저서에는 주로 논변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도가적인 기초 위에 건립되었으며 실천적인 것에 있어서는 법가의 견해를 많이 수용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윤문자를 도가와 명가 그리고 법가의 요소를 통합한 절충학자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문자의 논변에서는 보다 형식적인 묵가의 논리가 아니라 공자의 논리적 윤리적 이념에 연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자의 정명사상과 같은 의미로 “모든 사물이 올바른 이름으로 표기되어야만 한다는 것과 진리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름과 현실이 서로 일치해야만 하며, 사물은 그 이름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존재해야만 한다. 따라서 제일 먼저 사물이 올바른 이름으로 일컬어져야만 하고, 그러면 그 이름의 주인공은 그것에 맞게 행동하고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고 하였다.
윤문자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름과 명칭에 대한 연구에서 이름이 없는 것, 즉 ‘도’로부터 출발한다고 하였다. 모든 개별적인 사물들은 이름 없는 것에서부터 생겨났기 때문에, 이름 없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올바로 설정하기 위하여 사람은 이름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름들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릇되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윤문자 역시 등석자와 마찬가지로 명가의 철학 자체에는 아무런 공헌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참된 창시자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3) 혜시 [惠施, BC 370?~BC 309?]
혜시는 전국 중기 송나라 사람이다. 그는 위나라의 재상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장자와는 우호적인 관계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박학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저서는 수레로 다섯이나 되었다고 하나 현재까지 전하는 것은 없다. 그의 주장은《장자》《순자》《여씨춘추》등에서 가끔 찾아볼 수 있으며, 명가 사상가 중에서 궤변이 가장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에 황료라는 사람이 그에게 하늘과 땅이 무너지지도 꺼지지도 않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는데, 혜시는 생각함도 없이 만물의 이치에 대하여 막힘없이 말하였다고 한다.
『장자』<천하>의 기록에 의하면, 혜시가 다른 사람과 논쟁하던 철학과 논리문제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열 가지 명제를 제시하였는데, 이것을 역물십사 (歷物十事)라고 한다. 역물이란 사물을 관찰한다는 뜻인데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을 부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1. 정말 큰 것은 밖이 없고, 정말 작은 것은 안이 없다.
『장자』 [추수편]에는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자부하던 황하 귀신이 홍수 때문에 바다로 떠밀려가서 바다의 신을 만나는 얘기가 나온다. 처음으로 자기보다 큰 것을 만나서 놀라는 황하의 신에게 바다의 신은 자기도 천지와 비교한다면 커다란 창고에 들어 있는 곡식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본 경험을 중심으로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개념은 모두 상대적일 뿐이다.
2.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지만 그 크기는 천리가 된다.
두께가 없는 물건도 늘어놓으면 엄청난 넓이가 될 수 있다. 사실 두께와 넓이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두께가 없으면 넓이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처럼 얼굴이 번듯하고 옷을 잘 입으면 돈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바로 이런 것이 우리의 상식이 갖는 맹점이다.
3. 하늘과 땅은 높이가 같고 산과 연못은 똑같이 평평하다.
사람들은 하늘이나 산은 높고 땅이나 연못은 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달에서 지구를 보면 그 차이는 거의 없으며 산꼭대기 있는 연못은 다른 산보다 훨씬 위에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재능이나 지위를 따지는 것도 더 높은 위치에서 본다면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4. 남쪽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
서울에서 보면 대구와 부산이 모두 남쪽이지만, 부산에서 보면 대구는 북쪽이 된다. 이처럼 남쪽이냐 북쪽이냐는 기준 지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말하는 \'바람직한 사람\', \'바람직한 세상\'도 기준에 따라 내용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똑같은 바람직한 세상이 자본주의일수도 있고 사회주의일수도 있으며, 똑같은 바람직한 사람이 개인적 차원에서 성실한 사람일수도 있고, 사회적 차원에서 자기 희생적인 사람일수도 있다.
5. 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 안다.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이 바로 그 곳이다.
당시 연나라는 북쪽에 있고 월나라는 남쪽에 있었다. 따라서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은 서로 다른 방향이므로 세상의 중심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자. 지구의 중심은 어디일까? 북극일까, 남극일까? 둥근 물체는 어디든 중심이 된다. 따라서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바로 중심이며, 모든 사람들은 다 지구의 중심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만을 중심에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다툰다.
6. 오늘 월나라에 가서 어제 돌아왔다.
상식에서는 오늘 갔다면 내일이나 모래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어제, 오늘, 내일은 사람들이 편의상 나누어 쓰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며, 오늘은 어제에서 보면 내일이지만 내일 시점에서 보면 어제가 된다.
7. 해가 막 하늘 가운데 뜬 상태는 막 지는 상태이며, 태어남은 곧 죽어감이다.
모든 사물은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제 겨우 다섯개 남았다고 할 수도 있고 아직도 다섯 개나 남았다고 할 수도 있다. 소고기 통조림 공장에서 포장이 끝난 통조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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