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특징
Ⅰ. 러시아의 유일 부동항 블라디보스톡
Ⅱ. 이르크추크
Ⅲ. 러시아 내 또 하나의 국가, 모스크바
Ⅳ. 유럽을 향한 창,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특징
Ⅰ. 러시아의 유일 부동항 블라디보스톡
Ⅱ. 이르크추크
Ⅲ. 러시아 내 또 하나의 국가, 모스크바
Ⅳ. 유럽을 향한 창, 상트페테르부르크
본문내용
어 북방의 베니스, 러시아의 암스테르담, 북방의 팔미라 등으로 불리게 되어 인간 노력의 성공적인 성취를 대변하고 있다.
모스크바가 전통적인 러시아를 대표하는러시아의 심장도시라면 처음부터 페테르부르크는 서구문화를 지향하는 유럽을 향한 창이자 러시아의 머리 도시로 계획되었고, 말 그대로 서구문화 수용의 창구가 되었다. 1712년 이래 제정러시아의 수도로서 국내 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1812년 나폴레옹의 군대를 격퇴시킨 이후에는 유럽의 황제 도시로 세계사에 기록되었다. 그뿐 아니라, 1825년 데카브리스트의 봉기 사건 이후 이 도시는 절대왕정에 대한 혁명운동의 온상이 되어 20세기까지 노동운동과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운동의 무대가 되어 왔으며 1917년 2월과 10월의 혁명 성공으로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의 출현을 목도하기도 하였다.
경제적으로도 18세기 후반에 이미 러시아 최대의 무역항의 명성을 차지한 이 도시는 19세기 중반 이래 자본주의적 발전을 이끌면서 금속, 조선, 섬유, 무기 등 공업의 중심지로 부동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중 1941년 8월부터 약 900일에 걸친 독일군의 봉쇄를 이겨내어 영웅도시의 칭호를 받은 일은 시민들의 큰 자부심이 되고 있다. 전후 피해 복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옛 문화의 유산을 잘 지켜낸 이 도시는 현재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아름답고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각처로부터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관문이라 불릴만하다. 철도는 모스크바, 무르만스크, 페름 등 국내 여러 도시와 연결될 뿐 아니라, 헬싱키, 바르샤바, 발트 여러 나라 등과 이어진다. 시 남동부 연안의 항구는 러시아 제 1의 무역항으로서 독일, 폴란드, 영국 및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들과의 정기항로가 열려 있고, 극동과 북극을 잇는 북방항로의 요지가 되고 있다. 또 이 도시는 발달된 내륙운하의 러시아 북서쪽 종점으로서 라도가 호 및 오네가 호 수로와, 백해와 볼가강 수로 등과 연결된다. 항공 역시 모스크바 다음 가는 국제항공의 요지이다.
① 성 이삭 성당
표트르대제의 청동기 마상 남쪽에 있는 이 성당은 100t이 넘는 금으로 장식되고, 유럽각지와 국내에서 생산된 112가지 돌로 내부와 외부의 기둥 등이 꾸며져 있다고 들었다.
40년간 10만 명이 넘는 농민들이 동원되어 지어졌다. 페테르부르크가 습지대인 관계로 기 초만 다지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당시의 22인의 예술가가 참여하고, 물자를 운반 하기위하여 최초로 네바강에는 바지선이 띄어졌었다고 한다.
동서 길이 111.2m, 남북 폭 97.6m, 높이 101.5m, 수용인원 1만4천명의 규모를 자랑하고 내부는 성서의 장면이나 성서속의 성인들을 150명 이상이나 묘사해놓고 있다. 모자이크화도 62점이나 되며 우랄산맥에서 생산 된다는 초록색의 공작석으로 만든 모자이크 조각기둥 등은 바티칸성당과 비교하여 내부의 화려함은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예언자, 에덴의 동산, 에지기에리의 꿈, 예수의 고난, 최후의 심판, 대홍수, 천사 가브렐라의 전언 등).
② 국립 에르미따쉬 박물관(겨울궁전)
담록색의 벽에 하얀 기둥이 조화를 이루고 주말 밤이면 야외 등을 모두 밝히는 이 박 물관은 네바강이나 광장 쪽에서 바라만보아도 러시아의 번영과 제황시대의 기품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세계 일류급의 박물관으로 황제들이 거주했던 겨울궁전과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050개의 방과 창문의 수가 2,000개, 120개의 계단이 있다. 방의 총 면적은 4만6천m2, 이 거대한 건물 안에 소장되어 있는 만오천개의 회화, 만이천개 조각품, 60여만개 발굴품 등 총 컬렉션은 약250만점이 넘는다. 지붕위엔 176개의 조각품이 서있다. 전시되어 있는 모든 작품들을 1분씩만 감상해도 5년이 걸린다는 곳이다. 양도 양이지만 그 내용이 초 일류급이다.
아버지와는 달리 굉장히 사치스러웠던 피터대제의 딸 엘리자베따는 프랑스식의 유행은 물론 정치, 사상까지도 동경하게 된다. 겨울궁전을 짓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더욱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 그녀의 신하들은 주화의 무게를 늘리고, 주세를 거두기 시작한다. 그것은 백성들이 생활은 궁핍해지고 주머니속의 동전은 무거우면 그만큼 보드카를 많이 마실 것이며 그러면 주세를 많이 거둔다는 것이다.
그녀의 20년 재위 기간동안 제1의 황금기를 맞이한 귀족들은 여황제의 허영심을 부추기며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이 궁전을 짓기 시작한다. 엘리자베따는 죽을 때 파리의 단골살롱에 외상값도 밀린 체 옷장에서 1만5천여점이 넘는 옷, 구두 가발 등이 나왔다고 한다. 제2의 귀족들의 황금기를 맞이한 에까쩨리나 2세때(1764) 유럽으로부터 4,000여점의 회화를 수집한다.
그 후에도 각종 예술품들이 계속되어 수집되었고, 미케란젤로, 레오나르드 다빈치, 렘브란트 등의 중세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근대 마티스, 피카소, 고호 등의 작품, 각종 예술품들이 350개의 홀에 그리스, 로마, 이집트, 중세 서유럽 국가별, 러시아, 페르시아, 터어키, 중국, 비잔틴 및 일본관 등에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일반인에는 공개하지 않는 지하 보물실에는 제정 러시아시대의 각종 보석과 장신구, 왕관 등이 보관되어 있다.
처음 가는 방에서는 안내판과 안내하는 아주머니들이 없으면 출구를 못 찾을 정도고, 시즌에는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단체 개인들의 참관이 많아 2개의 출구를 줄을 서서 입장하고, 내부에서도 줄을 서서 다녀야 할 정도라고 한다.
③ 카잔성당
1801년부터 10여 년간에 걸쳐서 무명의 농민출신 건축가 바로니힌에 의해 지어진 성당이다. 이삭성당의 통기둥과는 달리, 석고대리석으로 1m정도씩 이어서 올라간 94개의 콜린도 양식의 기둥이 서있다. 성당 안은 조국전쟁에서 빼앗은 107개의 프랑스군기가 장식되어져 있다. 이곳에선 쿠투조프장군의 장례식이 치루어 졌고, 성당 앞의 광장엔 그의 동상이 서있다.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처인 광장은 혁명 때까지 학생들의 빈번한 집회장소로 이용되었었다고 한다.
④ 러시아 미술관 및 예술광장
카잔성당에서 그리바이도바 운하를 지나면 예까
모스크바가 전통적인 러시아를 대표하는러시아의 심장도시라면 처음부터 페테르부르크는 서구문화를 지향하는 유럽을 향한 창이자 러시아의 머리 도시로 계획되었고, 말 그대로 서구문화 수용의 창구가 되었다. 1712년 이래 제정러시아의 수도로서 국내 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1812년 나폴레옹의 군대를 격퇴시킨 이후에는 유럽의 황제 도시로 세계사에 기록되었다. 그뿐 아니라, 1825년 데카브리스트의 봉기 사건 이후 이 도시는 절대왕정에 대한 혁명운동의 온상이 되어 20세기까지 노동운동과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운동의 무대가 되어 왔으며 1917년 2월과 10월의 혁명 성공으로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의 출현을 목도하기도 하였다.
경제적으로도 18세기 후반에 이미 러시아 최대의 무역항의 명성을 차지한 이 도시는 19세기 중반 이래 자본주의적 발전을 이끌면서 금속, 조선, 섬유, 무기 등 공업의 중심지로 부동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중 1941년 8월부터 약 900일에 걸친 독일군의 봉쇄를 이겨내어 영웅도시의 칭호를 받은 일은 시민들의 큰 자부심이 되고 있다. 전후 피해 복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옛 문화의 유산을 잘 지켜낸 이 도시는 현재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아름답고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각처로부터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관문이라 불릴만하다. 철도는 모스크바, 무르만스크, 페름 등 국내 여러 도시와 연결될 뿐 아니라, 헬싱키, 바르샤바, 발트 여러 나라 등과 이어진다. 시 남동부 연안의 항구는 러시아 제 1의 무역항으로서 독일, 폴란드, 영국 및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들과의 정기항로가 열려 있고, 극동과 북극을 잇는 북방항로의 요지가 되고 있다. 또 이 도시는 발달된 내륙운하의 러시아 북서쪽 종점으로서 라도가 호 및 오네가 호 수로와, 백해와 볼가강 수로 등과 연결된다. 항공 역시 모스크바 다음 가는 국제항공의 요지이다.
① 성 이삭 성당
표트르대제의 청동기 마상 남쪽에 있는 이 성당은 100t이 넘는 금으로 장식되고, 유럽각지와 국내에서 생산된 112가지 돌로 내부와 외부의 기둥 등이 꾸며져 있다고 들었다.
40년간 10만 명이 넘는 농민들이 동원되어 지어졌다. 페테르부르크가 습지대인 관계로 기 초만 다지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당시의 22인의 예술가가 참여하고, 물자를 운반 하기위하여 최초로 네바강에는 바지선이 띄어졌었다고 한다.
동서 길이 111.2m, 남북 폭 97.6m, 높이 101.5m, 수용인원 1만4천명의 규모를 자랑하고 내부는 성서의 장면이나 성서속의 성인들을 150명 이상이나 묘사해놓고 있다. 모자이크화도 62점이나 되며 우랄산맥에서 생산 된다는 초록색의 공작석으로 만든 모자이크 조각기둥 등은 바티칸성당과 비교하여 내부의 화려함은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예언자, 에덴의 동산, 에지기에리의 꿈, 예수의 고난, 최후의 심판, 대홍수, 천사 가브렐라의 전언 등).
② 국립 에르미따쉬 박물관(겨울궁전)
담록색의 벽에 하얀 기둥이 조화를 이루고 주말 밤이면 야외 등을 모두 밝히는 이 박 물관은 네바강이나 광장 쪽에서 바라만보아도 러시아의 번영과 제황시대의 기품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세계 일류급의 박물관으로 황제들이 거주했던 겨울궁전과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050개의 방과 창문의 수가 2,000개, 120개의 계단이 있다. 방의 총 면적은 4만6천m2, 이 거대한 건물 안에 소장되어 있는 만오천개의 회화, 만이천개 조각품, 60여만개 발굴품 등 총 컬렉션은 약250만점이 넘는다. 지붕위엔 176개의 조각품이 서있다. 전시되어 있는 모든 작품들을 1분씩만 감상해도 5년이 걸린다는 곳이다. 양도 양이지만 그 내용이 초 일류급이다.
아버지와는 달리 굉장히 사치스러웠던 피터대제의 딸 엘리자베따는 프랑스식의 유행은 물론 정치, 사상까지도 동경하게 된다. 겨울궁전을 짓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더욱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 그녀의 신하들은 주화의 무게를 늘리고, 주세를 거두기 시작한다. 그것은 백성들이 생활은 궁핍해지고 주머니속의 동전은 무거우면 그만큼 보드카를 많이 마실 것이며 그러면 주세를 많이 거둔다는 것이다.
그녀의 20년 재위 기간동안 제1의 황금기를 맞이한 귀족들은 여황제의 허영심을 부추기며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이 궁전을 짓기 시작한다. 엘리자베따는 죽을 때 파리의 단골살롱에 외상값도 밀린 체 옷장에서 1만5천여점이 넘는 옷, 구두 가발 등이 나왔다고 한다. 제2의 귀족들의 황금기를 맞이한 에까쩨리나 2세때(1764) 유럽으로부터 4,000여점의 회화를 수집한다.
그 후에도 각종 예술품들이 계속되어 수집되었고, 미케란젤로, 레오나르드 다빈치, 렘브란트 등의 중세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근대 마티스, 피카소, 고호 등의 작품, 각종 예술품들이 350개의 홀에 그리스, 로마, 이집트, 중세 서유럽 국가별, 러시아, 페르시아, 터어키, 중국, 비잔틴 및 일본관 등에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일반인에는 공개하지 않는 지하 보물실에는 제정 러시아시대의 각종 보석과 장신구, 왕관 등이 보관되어 있다.
처음 가는 방에서는 안내판과 안내하는 아주머니들이 없으면 출구를 못 찾을 정도고, 시즌에는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단체 개인들의 참관이 많아 2개의 출구를 줄을 서서 입장하고, 내부에서도 줄을 서서 다녀야 할 정도라고 한다.
③ 카잔성당
1801년부터 10여 년간에 걸쳐서 무명의 농민출신 건축가 바로니힌에 의해 지어진 성당이다. 이삭성당의 통기둥과는 달리, 석고대리석으로 1m정도씩 이어서 올라간 94개의 콜린도 양식의 기둥이 서있다. 성당 안은 조국전쟁에서 빼앗은 107개의 프랑스군기가 장식되어져 있다. 이곳에선 쿠투조프장군의 장례식이 치루어 졌고, 성당 앞의 광장엔 그의 동상이 서있다.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처인 광장은 혁명 때까지 학생들의 빈번한 집회장소로 이용되었었다고 한다.
④ 러시아 미술관 및 예술광장
카잔성당에서 그리바이도바 운하를 지나면 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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