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 주제선정이유
2. 박제가와 케인즈 비교 방향
Ⅱ. 본론
1. 박제가의 경제관과 우물론
(1) 검약의 역설과 우물론
2. 케인즈의 경제관과 유효수요의 원리
(1)케인즈경제관
(2)유효수요의 원리
3.박제가와 케인즈 소비 경제학 비교
(1)박제가와 케인즈 시대적배경
(2)박제가와 케인즈 경제 비교
Ⅲ. 결론(느낀점)
1. 주제선정이유
2. 박제가와 케인즈 비교 방향
Ⅱ. 본론
1. 박제가의 경제관과 우물론
(1) 검약의 역설과 우물론
2. 케인즈의 경제관과 유효수요의 원리
(1)케인즈경제관
(2)유효수요의 원리
3.박제가와 케인즈 소비 경제학 비교
(1)박제가와 케인즈 시대적배경
(2)박제가와 케인즈 경제 비교
Ⅲ. 결론(느낀점)
본문내용
겨둬서 빈곤층이 증가한 상태에서 생겨났다는 것으로 같은 배경 속에서 성립되었다. 조선의 경우에는 무조건적인 자유경제시장은 아니었지만 세도가문이나 각종 부정부패로 돈이 있는 사람만 벌게 되고, 정부의 재정 역시 세도가의 재정보다는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 조선후기와 대공황시기 일반 사람들은 많은 피해로 인하여 더 절약하여서 경기는 더 급속도로 하락하게 된 것 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 속에서 극복하려고 하는 이론은 국가경제차원에서도 의미 있었던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박제가의 이론의 사상적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제가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비를 장려하여 시장의 수요를 늘이고 이를 통해 생산이 증가하고 기술일 발전하는 순환의 단계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조선 후기 농업 경영의 변화에 따른 농민층의 분화를 간과한 것이었다. 조선후기 영농 기술의 발달은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농업 경영에도 변화를 일으켜서 일부 농민들은 광작(廣作)이 가능해졌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후기 농민 1인이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은 이앙법에 의해 종래면적보다 약 5배로 늘어났고, 단위 면적당 경작 노동력은 80% 가량 감소되었다. 이에 따라 경작 능력이 증대하면서 직파법으로 10마지기도 못 짓던 농가에서 이앙법으로 20마지기 내지는 40마지기까지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광작에 따라 농가의 소득이 늘어나 일부 자작농과 소작농의 경우는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다수의 농민을 농촌에서 떠나게 했다. 대부분의 농토를 소작 주고 일부 농토만 직영하던 지주들은 광작이 가능해지면서 소작지를 회수하여 직영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소작농은 소작지를 잃기가 십상이었다. 따라서 일부 농민들은 부농층으로 성장했지만, 대다수의 농민들은 토지에서 밀려나 궁핍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농민층의 몰락은 농촌 사회를 파탄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당시 조선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의 삶이 이렇게 피폐해지는데 소비를 늘리라는 주장은 그들에게는 억지인 것이다. 최소한의 삶의 유지도 어려웠던 그들에게 사치는 하려해도 할 수 없는 요원한 일이었던 것이다. 즉, 그들에게 검약이란 미덕(美德)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고 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케인스의 이론은 1930년대 영국적 경제현실을 설명하는데 유용했으나 지금의 현실을 설명 하는데 미흡하다. 자유방임주의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인간의 기본권 보호는 정부의 무한책임이기도 하다. 행정만능주위를 신보하고 무제한의 복지만이 절대적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케인스이론의 부산물로서 마땅히 시정되어야할 것이다. 소득, 수요, 투자 등의 변수에 있어서 단일 숫자란 통계적으로 작성하기는 쉽지만 그 의미가 제한되어 있다. 투자를 하더라도 그 것이 빌딩 공장, 재고투자 또는 집을 짓는 것인지에 따라서 그 경제적 효과는 다르므로 그것을 구조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고전학파처럼 모든 것이 저절로 조정된다는 전제하에 미시적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극단적인 거시방법이나 미시방법은 다 지양되어야 하며 이두 가지를 종합한 구조적 분석이 당면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무모한 예산확장은 수요증대를 뒷받침할 공급의 증대를 수반하지 못하므로 장기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요인이 되므로 정부부문이 과다해지면 경제구조가 경직화되고 비효율적이 되므로 민간부문이 위축된다, 그러나 이모든 거세도 불구하고 케인스는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학의 발전에 그 나름대로 시대적 역할을 다했다. 케인즈는 낡은 사고의 틀을 깨고 혁신적인 사고를 지향했으며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자였고 경제적으로는 진보적인 사회 사상가였다. 케인즈는 시장경제질서의 안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혁신적인 사고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케인즈의 장례식에서 읽혀진 자신의 다음과 같은 글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져 개혁과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열망한 거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겪은 모든 수고와 어려움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인생의 역정에서 나를 계승할 사람에게 나의 칼을 줄 것이고 나의 용기와 기술은 그것들을 얻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다.' 케인즈야말로 냉철한 논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경제학자였다. 오늘날 경제학의 지나친 수리화가 자칫 제도와 인간심리를 경원시 하며 자연과학화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케인즈와 같은 예리한 분석력과 통찰력이 다시 한번 경제학에 새로운 바람을 넣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Ⅲ. 결론(느낀점)
케인즈 경제학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150년 전 그의 이론과 비슷한 이론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서양은 과학경제학이고 동양은 철학경제학이라서 두 경제학의 차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경제학을 보지못하고 오직 서양의 경제학만을 인정하고 바라봤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나는 소비경제는 어느 정도 옳다고 생각한다. 공급에 맞는 수요가 없다면 경제가 어떻게 순환하게 될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소비가 과소비가 되지는 않아야할 것이다. 두 경제학자가 말하는 것은 특수한 상황에서의 이론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소비한다면 장난식이었던 국사선생님의 말처럼 놀라운 결과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버는 소득에 따른 올바른 소비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지, 무조건적인 과소비가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런 이론에 대해서 조금은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아서 좋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번 교수님의 과제로 케인즈의 이론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번 과제를 통해서 박제가의 북학의에 있는 경제사상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신 것 같아서 교수님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이번과제뿐만 아니라 매번 내주신 과제와 수업의 내용으로 우물안개구리처럼 교과서에만 나오는 것만을 보고 알았던 나에게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고민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주셨던 것 같다. 여러 재미있는 경제서적이 있다는 것을 보고 선배가 하고 있는 정치경제동아리 쏘메 활동도 하는데, 이리저리 재미있던 과제& 수업이었던 것 같다.
광작에 따라 농가의 소득이 늘어나 일부 자작농과 소작농의 경우는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다수의 농민을 농촌에서 떠나게 했다. 대부분의 농토를 소작 주고 일부 농토만 직영하던 지주들은 광작이 가능해지면서 소작지를 회수하여 직영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소작농은 소작지를 잃기가 십상이었다. 따라서 일부 농민들은 부농층으로 성장했지만, 대다수의 농민들은 토지에서 밀려나 궁핍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농민층의 몰락은 농촌 사회를 파탄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당시 조선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의 삶이 이렇게 피폐해지는데 소비를 늘리라는 주장은 그들에게는 억지인 것이다. 최소한의 삶의 유지도 어려웠던 그들에게 사치는 하려해도 할 수 없는 요원한 일이었던 것이다. 즉, 그들에게 검약이란 미덕(美德)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고 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케인스의 이론은 1930년대 영국적 경제현실을 설명하는데 유용했으나 지금의 현실을 설명 하는데 미흡하다. 자유방임주의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인간의 기본권 보호는 정부의 무한책임이기도 하다. 행정만능주위를 신보하고 무제한의 복지만이 절대적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케인스이론의 부산물로서 마땅히 시정되어야할 것이다. 소득, 수요, 투자 등의 변수에 있어서 단일 숫자란 통계적으로 작성하기는 쉽지만 그 의미가 제한되어 있다. 투자를 하더라도 그 것이 빌딩 공장, 재고투자 또는 집을 짓는 것인지에 따라서 그 경제적 효과는 다르므로 그것을 구조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고전학파처럼 모든 것이 저절로 조정된다는 전제하에 미시적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극단적인 거시방법이나 미시방법은 다 지양되어야 하며 이두 가지를 종합한 구조적 분석이 당면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무모한 예산확장은 수요증대를 뒷받침할 공급의 증대를 수반하지 못하므로 장기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요인이 되므로 정부부문이 과다해지면 경제구조가 경직화되고 비효율적이 되므로 민간부문이 위축된다, 그러나 이모든 거세도 불구하고 케인스는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학의 발전에 그 나름대로 시대적 역할을 다했다. 케인즈는 낡은 사고의 틀을 깨고 혁신적인 사고를 지향했으며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자였고 경제적으로는 진보적인 사회 사상가였다. 케인즈는 시장경제질서의 안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혁신적인 사고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케인즈의 장례식에서 읽혀진 자신의 다음과 같은 글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져 개혁과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열망한 거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겪은 모든 수고와 어려움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인생의 역정에서 나를 계승할 사람에게 나의 칼을 줄 것이고 나의 용기와 기술은 그것들을 얻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다.' 케인즈야말로 냉철한 논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경제학자였다. 오늘날 경제학의 지나친 수리화가 자칫 제도와 인간심리를 경원시 하며 자연과학화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케인즈와 같은 예리한 분석력과 통찰력이 다시 한번 경제학에 새로운 바람을 넣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Ⅲ. 결론(느낀점)
케인즈 경제학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150년 전 그의 이론과 비슷한 이론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서양은 과학경제학이고 동양은 철학경제학이라서 두 경제학의 차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경제학을 보지못하고 오직 서양의 경제학만을 인정하고 바라봤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나는 소비경제는 어느 정도 옳다고 생각한다. 공급에 맞는 수요가 없다면 경제가 어떻게 순환하게 될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소비가 과소비가 되지는 않아야할 것이다. 두 경제학자가 말하는 것은 특수한 상황에서의 이론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소비한다면 장난식이었던 국사선생님의 말처럼 놀라운 결과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버는 소득에 따른 올바른 소비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지, 무조건적인 과소비가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런 이론에 대해서 조금은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아서 좋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번 교수님의 과제로 케인즈의 이론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번 과제를 통해서 박제가의 북학의에 있는 경제사상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신 것 같아서 교수님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이번과제뿐만 아니라 매번 내주신 과제와 수업의 내용으로 우물안개구리처럼 교과서에만 나오는 것만을 보고 알았던 나에게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고민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주셨던 것 같다. 여러 재미있는 경제서적이 있다는 것을 보고 선배가 하고 있는 정치경제동아리 쏘메 활동도 하는데, 이리저리 재미있던 과제& 수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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