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사설(星湖僿說)-독후감 및 경제발췌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39
  • 40
  • 41
  • 42
  • 43
  • 44
  • 45
  • 46
  • 47
  • 48
  • 49
  • 50
  • 51
  • 52
  • 53
  • 54
  • 55
  • 56
  • 57
  • 58
  • 59
  • 60
  • 61
  • 62
  • 63
  • 64
  • 65
  • 66
  • 67
  • 68
  • 69
  • 70
  • 71
  • 72
  • 73
  • 74
  • 75
  • 76
  • 77
해당 자료는 10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0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성호사설(星湖僿說)-독후감 및 경제발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독후감
경제관련 부분 발췌

본문내용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옛날의 5승 6홉 강이 지금의 1승에 준하는데, 그렇다면 하룻동안 먹는 것이 각각 5홉이 채 안 된다. 한 해 동안 먹는 것이 90석이라면 그의 10분의 1인 9석으로 제용을 삼고, 또 9석을 3년 동안 저축하여 27석으로 상용을 삼는다면, 한 해 동안에 18석을 공제하게 되고 나머지는 72석뿐인데 여기에서 질병ㆍ빈객ㆍ의복 이외의 허다한 비용까지 다 써 나가야 한다. 혹 식구가 5인을 넘어서 6인이거나 7인이거나, 또는 수재ㆍ화재ㆍ도둑 등으로 인한 피해액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
《주례》 태재구직에 “여덟 번째는 신첩이 소재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하였는데, 주(注)에 “소재란 백초의 뿌리와 열매로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하였으니, 《시경》에 이른, 지축 따위가 바로 이것으로 이는 다 쌓아 두었다가 먹기 위한 것이다. 상용인 27석은 지금의 50두 강에 준한다. 옛날에 “베와 재목을 미리 준비한 것은 뒤에 쓰려고 한 것이다.” 하였으니, 그 사치하지 않고 검소했던 것을 알겠다. 그러나 지관균인에는 “1개월에 아주 상세(풍년)일 경우 4부를 먹고, 중세일 경우 3부를 먹고, 하세(흉년)일 경우 2부를 먹는다.” 하였으니, 한대에는 양기가 주대와 달랐기 때문이다. 《춘추》에는 반드시 ‘보리가 없다.’느니, ‘콩을 죽였다.’느니, 하고 쓰는데 이는 벼 외에 이런 잡곡을 백성들의 먹고 사는 요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지금 풍속에도 물이 닿지 않는 전지에는 반드시 가을에는 보리를 심고 여름에는 콩을 심는데, 곡식 수확량이 가장 많으니 고금이 무어가 다른가? 1정의 땅이면 보리 60두를 심을 수 있는데, 콩은 보리의 4분을 차지하므로 24두를 심을 수 있다. 중세일 경우, 중토 중등 토질의 땅)에서 미곡 3백 60두를 수확할 수 있다. 대남은 1개월에 4두를 먹고 대녀)는 1개월에 3두를 먹고 오자는 1개월에 3두를 먹으니, 5인이나 6인 가족으로 기준을 삼는다면 2백 30두가 아니고서는 부족하다. 그 10분의 1인 23두를 제용으로 하고 상용도 마찬가지다. 모두 2백 76두일 경우, 나머지 84두는 한 해 동안의 허다한 비용으로 쓰고 2백 30두에서, 매년 10분의 1인 23두를 3년 동안 모아 69두를 만들어서 상용으로 한다.
만일 논일 경우는 종자가 3분의 1이 감해진다. 1정에 볍씨 40두를 심으면 쌀 3백 20두를 수확할 수 있다. 지금은 밭이 절반이나 되어 이 숫자도 다 차지 않는다. 그러나 논에서 나는 쌀은 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보리나 콩을 먹고 쌀은 아껴 두었다가 상사나 제사에만 쓰므로 서로 보충이 된다. 그러나 정전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빈부가 고르지 못하여, 전지가 전연 없는 집도 어쩔 수 없게 되었고 아무리 전지가 있다 할지라도 근검하고 절약할 줄 모르면 끝내는 전지를 없애버리고 마니, 가난한 선비의 집에서 이런 뜻을 준용한다면 거의 사당을 모셔야 하는 예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다.
- 총 수확량 중 백성들이 세금을 내고 난 뒤 남은 양으로 끼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수치를 이용해 경제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강개시(中江開市)
의주와 삼강 사이에는 저 나라 사람이나 우리나라 사람이 다같이 농사를 짓지 못했는데, 선조 말년부터 압록강주변에 밥짓는 연기가 서로 닿았다. 아무리 순수한 민간의 풍속일지라도 너무 친근하면 틈나기가 쉬운 것인데, 하물며 큰 나라와 작은 나라 사이의 강역이 핍근한 것이겠는가? 게다가 두만강 밖에는 두 나라 사람이 섞여 살면서 종리와 비량처럼 싸움이 끊이지 않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두 나라 경계가 조용해져서 사람들이 편히 살게 되었으니 예부터 없었던 일이다.
중강에 시장을 개설한 것은, 임진왜란 후로 기황이 날로 심해지자, 서애 유성룡이 왕에게 아뢰어 개설한 시장이다. 여기서 면포와 철기로써 서로 무역하니 요동의 곡식이 우리나라에 유포되어 수년 동안에 백성이 잘살게 되었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에 사신 가는 일은 오로지 역관에 의지하고 역관의 이는 또 물화에 있었는데, 이 시장이 개설된 이후로 역관들의 장삿길은 편의를 잃게 되었으나 중국에서는 해마다 은을 2만 냥까지 거두어들였다. 뒤에 와서 이 시장을 파하게 된 것은 역관들의 작용이었다. 그 다음해(임인)에 태감 고양이 자문을 올려 시장을 다시 개설하기를 청하였는데 말이 극히 엄절하므로, 다시 의주의 관부에 명하여 그전처럼 무역을 하게 했는데, 광해 때(기유)에 이르러 다시 자문을 예부에 올려 이 시장을 파하고 말았다.
대저 서로 통상하지 않을 수 없는 물화는 곡식과 베와 소금과 철이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의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병기나 말이요. 이 밖에는 모두 사치하기 위해서 구해들인 것이다. 이미 시장이 개설되면 모든 신기한 노리개나 화려한 비단 따위의 무역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니, 장단점을 비교해 보면 시장을 개설하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하다. 지금은 병기나 말 따위는 금하면서 진기한 노리개 따위는 마음대로 매매한다고 하니 이상하다.
- ‘중강에 시장을 개설했다고 하여‘라는 대목을 보면 조선시대에도 시장이 있었고, 그 시장을 통해 백성들이 물물을 서로 교환하는 시장경제의 형태를 띠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저 서로 통상하지 않을 수 없는 물화는 곡식과 베와 소금과 철이다.‘라는 대목에서 주로 교환되는 재화는 곡식, 베, 소금, 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무역을 금지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조선 내에서의 거래 외에도 중국과 같은 타국과의 무역까지 이루어질 만큼 경제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물의 이익
이용의 가치는 수리보다 더 큰 것이 없다. 백성의 생명은 옷과 음식에 매였고 옷과 음식은 기후에 매였다. 하늘이 하는 것은 백성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나 오히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비의 혜택인 물에는 우물물이 있고 시냇물이 있다. 비가 내릴 때 넘쳐 흐르는 물을 잘 저수하여 대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우물물은 늘 괴어 있으나 그것을 잘 퍼올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만일 쓸 수 없는 물건을 효과 있게 쓸 수 있게 한다면 어찌 백성에게 춥고 배고픈 재앙이 있겠는가.
조선조 초기에 제방을

키워드

  • 가격4,000
  • 페이지수77페이지
  • 등록일2011.08.19
  • 저작시기2011.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9648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