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원시시대의 주거문화
1. 형태
2. 수혈주거
1) 유형
2) 대표적인 유적지
3) 대표적인 보건이 잘된 유적지
4) 특징
5) 발달
3. 귀틀집
4. 고상주거
5. 여와 막
Ⅲ. 원삼국시대의 주거문화
1. 수혈 주거
2. 귀틀집
3. 고상주거
Ⅳ. 삼국시대의 주거문화
Ⅴ. 고구려시대의 주거문화
Ⅵ. 고려시대의 주거문화
1. 전승
2. 구조
3. 영향
4. 계층의 따른 모습
Ⅶ. 조선시대의 주거문화
Ⅷ. 일제시대의 주거문화
참고문헌
Ⅱ. 원시시대의 주거문화
1. 형태
2. 수혈주거
1) 유형
2) 대표적인 유적지
3) 대표적인 보건이 잘된 유적지
4) 특징
5) 발달
3. 귀틀집
4. 고상주거
5. 여와 막
Ⅲ. 원삼국시대의 주거문화
1. 수혈 주거
2. 귀틀집
3. 고상주거
Ⅳ. 삼국시대의 주거문화
Ⅴ. 고구려시대의 주거문화
Ⅵ. 고려시대의 주거문화
1. 전승
2. 구조
3. 영향
4. 계층의 따른 모습
Ⅶ. 조선시대의 주거문화
Ⅷ. 일제시대의 주거문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어긴다는 것은 바로 불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건물을 남향으로 배치하는 것이 채광이나 통풍에 가장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왕권의 권위를 상징하고 위계적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하여 이를 금지하였던 것이다.
이외에도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주택은 물론 각종 건조물을 건립할 때에는 여러 가지의 금기(禁忌)나 속신(俗信)을 고려해 왔다. 이 속신의 근원은 역시 음양오행설에 의한 것이 가장 많으나, 그 밖에도 오랜 경험을 통해서 고정된 속신과 역사적 사고로 일어난 속신 등이 있다.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저술한 산림경제(山林經濟), 복거조(卜居條)의 \'논지세(論地勢)\'에서는 지형에서 청룡의 머리를 쌓아 수족이 열린 형세가 양거(陽居)이고 수족을 구부린 형세가 음거(陰居)이며, 그 적지가 혈(穴)이고 혈의 앞이 명당이며, 이 명당이 넓고 윤택하며 밝고 수리(水利)에 좋으며 죽목(竹木)이 무성한 곳이 길지(吉地)라고 했다. 또한 평지와 山谷에서의 양기를 말하고, 택지 주변지형의 길흉, 혈을 중심으로 한 흙과 물의 형상에 대한 길흉, 주택의 풍향에 관한 길흉 등을 논하고 있다.
이 산림경제에 있는 속신 가운데 비교적 근거 있고 흥미로운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집은 너무 크거나 높게 짓지 말고, 집의 간(間) 수는 물론 기둥의 척 수나 서까래도 135와 같이 홀수로 하라고 했다. 집(屋)에 비해 문이 크면 재물이 모이지 않고, 문이 두 도로에 면하거나 문 앞에서 길이 교차하는 것은 불길하며, 과수가 무성하여 집 좌우를 덮는 것은 좋지 않다고 되어 있다. 물론 상당수의 속신이 과학적 근거가 결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집을 짓거나 유지해 나가는 지혜이므로 올바르게 계승발전시켜 나갈 가치도 있다고 보여진다.
조선시대 주택의 공간적 구성을 살펴보면 옥내공간과 옥외공간으로 분류된다. 옥내공간에는 주로 가족들이 기거하는 주공간(住空間)과 각종 작업을 하는 작업공간 및 각종 자재나 도구를 보관하는 격납공간이 있다. 이들 공간은 주택에 필수적인 공간이나 이 밖에도 규모가 큰 주택에 있어서는 접객공간이나 취미공간, 종교공간 등이 있을 수 있다. 옥외공간으로는 옥외에서 행하여지는 작업공간과 특수한 자재 등을 보관하는 격납공간 및 화단 등의 취미공간이 있다. 주택 주위를 둘러싸기 위해 담장이 설치되며, 담장으로는 토담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나 그밖에 돌담이 지역에 따라서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돌이나 진흙이 귀한 곳에서는 사릿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Ⅷ. 일제시대의 주거문화
고종의 집정기는 조선시대 말기로서 새로운 개혁의 막을 올린 시기였다. 오랜 세월 유학의 영향으로 인한 지배층의 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민중중심의 동학사상이 전개되었고, 밖으로는 서구제국주의 열강과 일본에 의한 문호개방이 물밀듯 들어왔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이후 1910년에 경술국치가 되면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휩쓸려 가구양식도 점차로 서구화되어갔다. 이때에 처음으로 서구문물의 혜택을 입은 곳은 바로 왕실이었다.
궁궐건축으로부터 실내장식, 가구, 공예품까지 서구화한 입식 형태로 변하였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입식 가구가 제작되었고 서구식 가구와 전통가구가 공용되었다. 그 뒤 광복과 함께 가구양식은 전통양식에서 절충식 양식으로 변하여갔다. 현재 궁중에 수장된 것 중 당시 유입된 17, 18세기 서양의 르네상스, 로코코양식의 가구와 중국의 화류가구 등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가구로는 서랍이 많이 달린 장과 차단자라 하여 중국의 차탁자와 같이 개구부(開口部)가 많은 형태가 있다. 그리고 전래의 의걸이장이 이불장으로 쓰이다가 현대의 양복장으로 변한 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잘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그 뒤 마루가 입식 생활의 접객공간으로 되면서, 소파가 등장하고 차탁자, 협탁(脇卓), 장식장 등의 서양가구가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ⅰ. 박경옥(1993), 일제시대 일식주택의 변용을 통해 본 주양식의 한일비교연구, 한국주거학회지, 제4권 2호
ⅱ. 백영흠(2003), 한국 주거역사와 문화, 기문당
ⅲ. 이현혜(1993), 원삼국시대론의 검토, 한국고대사논총 5
ⅳ. 최원우(1998), 한국근대 주거건축의 근대화과정에 나타난 한인건축가들의 역할과 의의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ⅴ. 한영희(1983), 주거생활(철기시대), 한국사론 13上, 국사편찬위원회
ⅵ. 홍형옥(1992), 한국 주거사, 민음사
이외에도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주택은 물론 각종 건조물을 건립할 때에는 여러 가지의 금기(禁忌)나 속신(俗信)을 고려해 왔다. 이 속신의 근원은 역시 음양오행설에 의한 것이 가장 많으나, 그 밖에도 오랜 경험을 통해서 고정된 속신과 역사적 사고로 일어난 속신 등이 있다.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저술한 산림경제(山林經濟), 복거조(卜居條)의 \'논지세(論地勢)\'에서는 지형에서 청룡의 머리를 쌓아 수족이 열린 형세가 양거(陽居)이고 수족을 구부린 형세가 음거(陰居)이며, 그 적지가 혈(穴)이고 혈의 앞이 명당이며, 이 명당이 넓고 윤택하며 밝고 수리(水利)에 좋으며 죽목(竹木)이 무성한 곳이 길지(吉地)라고 했다. 또한 평지와 山谷에서의 양기를 말하고, 택지 주변지형의 길흉, 혈을 중심으로 한 흙과 물의 형상에 대한 길흉, 주택의 풍향에 관한 길흉 등을 논하고 있다.
이 산림경제에 있는 속신 가운데 비교적 근거 있고 흥미로운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집은 너무 크거나 높게 짓지 말고, 집의 간(間) 수는 물론 기둥의 척 수나 서까래도 135와 같이 홀수로 하라고 했다. 집(屋)에 비해 문이 크면 재물이 모이지 않고, 문이 두 도로에 면하거나 문 앞에서 길이 교차하는 것은 불길하며, 과수가 무성하여 집 좌우를 덮는 것은 좋지 않다고 되어 있다. 물론 상당수의 속신이 과학적 근거가 결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집을 짓거나 유지해 나가는 지혜이므로 올바르게 계승발전시켜 나갈 가치도 있다고 보여진다.
조선시대 주택의 공간적 구성을 살펴보면 옥내공간과 옥외공간으로 분류된다. 옥내공간에는 주로 가족들이 기거하는 주공간(住空間)과 각종 작업을 하는 작업공간 및 각종 자재나 도구를 보관하는 격납공간이 있다. 이들 공간은 주택에 필수적인 공간이나 이 밖에도 규모가 큰 주택에 있어서는 접객공간이나 취미공간, 종교공간 등이 있을 수 있다. 옥외공간으로는 옥외에서 행하여지는 작업공간과 특수한 자재 등을 보관하는 격납공간 및 화단 등의 취미공간이 있다. 주택 주위를 둘러싸기 위해 담장이 설치되며, 담장으로는 토담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나 그밖에 돌담이 지역에 따라서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돌이나 진흙이 귀한 곳에서는 사릿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Ⅷ. 일제시대의 주거문화
고종의 집정기는 조선시대 말기로서 새로운 개혁의 막을 올린 시기였다. 오랜 세월 유학의 영향으로 인한 지배층의 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민중중심의 동학사상이 전개되었고, 밖으로는 서구제국주의 열강과 일본에 의한 문호개방이 물밀듯 들어왔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이후 1910년에 경술국치가 되면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휩쓸려 가구양식도 점차로 서구화되어갔다. 이때에 처음으로 서구문물의 혜택을 입은 곳은 바로 왕실이었다.
궁궐건축으로부터 실내장식, 가구, 공예품까지 서구화한 입식 형태로 변하였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입식 가구가 제작되었고 서구식 가구와 전통가구가 공용되었다. 그 뒤 광복과 함께 가구양식은 전통양식에서 절충식 양식으로 변하여갔다. 현재 궁중에 수장된 것 중 당시 유입된 17, 18세기 서양의 르네상스, 로코코양식의 가구와 중국의 화류가구 등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가구로는 서랍이 많이 달린 장과 차단자라 하여 중국의 차탁자와 같이 개구부(開口部)가 많은 형태가 있다. 그리고 전래의 의걸이장이 이불장으로 쓰이다가 현대의 양복장으로 변한 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잘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그 뒤 마루가 입식 생활의 접객공간으로 되면서, 소파가 등장하고 차탁자, 협탁(脇卓), 장식장 등의 서양가구가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ⅰ. 박경옥(1993), 일제시대 일식주택의 변용을 통해 본 주양식의 한일비교연구, 한국주거학회지, 제4권 2호
ⅱ. 백영흠(2003), 한국 주거역사와 문화, 기문당
ⅲ. 이현혜(1993), 원삼국시대론의 검토, 한국고대사논총 5
ⅳ. 최원우(1998), 한국근대 주거건축의 근대화과정에 나타난 한인건축가들의 역할과 의의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ⅴ. 한영희(1983), 주거생활(철기시대), 한국사론 13上, 국사편찬위원회
ⅵ. 홍형옥(1992), 한국 주거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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