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사회적 관점
2. 종교적 관점
1) 기독교적 관점
2) 불교적 관점
Ⅰ 인도불교
Ⅱ 티베트 불교의 경우
Ⅲ 중국불교의 경우
Ⅳ 일본불교의 경우
3. 문화적 관점
Ⅰ 폴리네시아 및 멜라네시아 문화권
Ⅱ 고대 그리스 및 로마 문화권
Ⅲ 아프리카 문화권
Ⅳ 이슬람 및 남아메리카 문화권
Ⅴ 중국 문화권
Ⅵ 우리나라 문화권에서의 동성애
2. 종교적 관점
1) 기독교적 관점
2) 불교적 관점
Ⅰ 인도불교
Ⅱ 티베트 불교의 경우
Ⅲ 중국불교의 경우
Ⅳ 일본불교의 경우
3. 문화적 관점
Ⅰ 폴리네시아 및 멜라네시아 문화권
Ⅱ 고대 그리스 및 로마 문화권
Ⅲ 아프리카 문화권
Ⅳ 이슬람 및 남아메리카 문화권
Ⅴ 중국 문화권
Ⅵ 우리나라 문화권에서의 동성애
본문내용
있다는 증거가 점차 증가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사실로 간주한다. 킴볼 존(H. Kimball Jones)의 관점이 바로 그 경우이다. “동성애 관계는 이성관계가 가지는 인간완성과 같은 동일한 가능성을 절대로 가질수는 없지만 어떤 사람들이 가지는 특정한 성취를 위한 유일한 가능성일 수도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성숙한 동성애 관게’의 정당화는 ‘다른 실행 가능한 답이 없는’ 사람들에게 인정되어져야 한다. 비록 동성애자들이 그의 유일한 선택이 죄와 두려움으로 가득찬 난잡한 성생활로 이어질 때, 한 상대자와만 충실한 관계를 맺도록 격려되어야 하지만, 그 관계가 잘해봐야 “인산의 성에 대한 비장상석인 표현”일 뿐 그들 상대자 사이에 유효한 결혼이라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동성애가 “책임감 있는 동성애자를 위한 삶의 방식을 상대적으로 만들어 내고, 또 완성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성애 관계는 그 본질상, 어느 특정한 단계까지는 절대로 가지 못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그는 “두 명의 동성애자는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보완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절대로 상호보완적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아직도 일부 기독교 윤리학자들 가운데는 이성간에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으로 활동한는 것처럼, 동성애자들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한 개인의 성적 취향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에 관한 바울의 주장을 논함에 있어서 바렛(David Bartlett)은 바울의 주요 논점이 아무도 자신의 선에 의해 의롭다함을 입지 못하고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이 구절은 특별히 동성애에 관 한 것이고 아니고 단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이라고 한다. “우상숭배와 자기 의를 포함한 다양한 죄에 대한 논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하시는 인애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함을 지적하는데 사용될 뿐이다”라고 바렛은 말한다. 바렛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주장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에 대해 말하기를 “이성애나 동성애나 효력이 없되”로 대체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동성애자를 이성애 관계 내에 불행하게 남아 있도록 강요당하든지, 혹은 독신으로 남아 있도록” 주장하는 윤리를 거부할 것을 요청하며, 동성애를 “바뀌어질 수 없는 감정적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다. 성령의 은사는 “이성애자나 동성애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유효하다”고 그는 말한다.
2) 불교적 관점 출처 : 동국대 허남결 교수 블로그
불교경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붓다 자신이 동성애적 행위에 직접 관심을 표시하거나 그것의 도덕적 의미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린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승단 법의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동성애와 관련된 언급들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율장에서는 이성애나 동성애를 막론하고 어떠한 종류의 성행위도 금지하고 있으며, 이 규범을 어긴 승가 구성원에게는 예외 없이 교단 추방이라는 가장 가혹한 처벌, 즉 바라이죄를 물었다.
인도불교에서 동성애자 문제가 특히 교단의 입회 자격과 관련하여 초미의 관심사가 된 적이 있다. 여기서 이른바 판다카(pan.d.aka)로 분류된 사람들은 비구계 또는 비구니계를 수지할 수 없었다. 이들이 정확하게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오늘날의 의학 상식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체로 양성의 생식기를 동시에 지니고 태어났거나 통상적 의미의 동성애자 또는 복장성도착자(transvestite) 증세를 보였던 사람들이 아닌가라는 추정을 해 본다. 교단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이 출가자의 신분을 얻고 나서도 과거와 같은 행동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이는 곧 일반 대중들의 승가에 대한 도덕적 평판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처럼 외형적으로 구분이 가능한 사람들과 달리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자신의 동성애적 성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금지조항을 찾아볼 수 없다. 아무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도불교에서 판다카의 출가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곧 당시의 불교교단이 동성애자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붓다의 전생 이야기를 다룬 《자타카(Jataka)》에서는 붓다와 아난다의 동성애적 만남을 암시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등 동성애에 대해 우호적이거나 적어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불교와 동성애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동성애 문제에 관해 긍정이나 부정과 같은 섣부른 결론 도출은 삼가해야 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Ⅰ 인도불교
동성애에 대한 인도불교의 기본입장은 소위 판다카라고 불리던 사람들을 대하던 방식에서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pan.d.aka’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apa+an.d.a+ka’, 즉 “고환이 없는(사람)”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츠빌링(Leonard Zwilling)에 따르면 이 말은 글자 그대로 거세된 남성을 뜻하는 eunuch(내시)’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eunuch’란 용어는 무슬림 시대 이전의 인도에서는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다카 및 이와 유사한 개념들은 오히려 “고환이 없는(?)”사람처럼 허약하거나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어법의 단어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주석가인 붓다고사(Buddhaghosa)에 의하면 판다카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으로 대별될 수 있다고 한다.
① 물을‘뿜은’사람(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사실로 간주한다. 킴볼 존(H. Kimball Jones)의 관점이 바로 그 경우이다. “동성애 관계는 이성관계가 가지는 인간완성과 같은 동일한 가능성을 절대로 가질수는 없지만 어떤 사람들이 가지는 특정한 성취를 위한 유일한 가능성일 수도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성숙한 동성애 관게’의 정당화는 ‘다른 실행 가능한 답이 없는’ 사람들에게 인정되어져야 한다. 비록 동성애자들이 그의 유일한 선택이 죄와 두려움으로 가득찬 난잡한 성생활로 이어질 때, 한 상대자와만 충실한 관계를 맺도록 격려되어야 하지만, 그 관계가 잘해봐야 “인산의 성에 대한 비장상석인 표현”일 뿐 그들 상대자 사이에 유효한 결혼이라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동성애가 “책임감 있는 동성애자를 위한 삶의 방식을 상대적으로 만들어 내고, 또 완성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성애 관계는 그 본질상, 어느 특정한 단계까지는 절대로 가지 못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그는 “두 명의 동성애자는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보완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절대로 상호보완적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아직도 일부 기독교 윤리학자들 가운데는 이성간에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으로 활동한는 것처럼, 동성애자들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한 개인의 성적 취향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에 관한 바울의 주장을 논함에 있어서 바렛(David Bartlett)은 바울의 주요 논점이 아무도 자신의 선에 의해 의롭다함을 입지 못하고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이 구절은 특별히 동성애에 관 한 것이고 아니고 단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이라고 한다. “우상숭배와 자기 의를 포함한 다양한 죄에 대한 논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하시는 인애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함을 지적하는데 사용될 뿐이다”라고 바렛은 말한다. 바렛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주장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에 대해 말하기를 “이성애나 동성애나 효력이 없되”로 대체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동성애자를 이성애 관계 내에 불행하게 남아 있도록 강요당하든지, 혹은 독신으로 남아 있도록” 주장하는 윤리를 거부할 것을 요청하며, 동성애를 “바뀌어질 수 없는 감정적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다. 성령의 은사는 “이성애자나 동성애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유효하다”고 그는 말한다.
2) 불교적 관점 출처 : 동국대 허남결 교수 블로그
불교경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붓다 자신이 동성애적 행위에 직접 관심을 표시하거나 그것의 도덕적 의미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린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승단 법의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동성애와 관련된 언급들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율장에서는 이성애나 동성애를 막론하고 어떠한 종류의 성행위도 금지하고 있으며, 이 규범을 어긴 승가 구성원에게는 예외 없이 교단 추방이라는 가장 가혹한 처벌, 즉 바라이죄를 물었다.
인도불교에서 동성애자 문제가 특히 교단의 입회 자격과 관련하여 초미의 관심사가 된 적이 있다. 여기서 이른바 판다카(pan.d.aka)로 분류된 사람들은 비구계 또는 비구니계를 수지할 수 없었다. 이들이 정확하게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오늘날의 의학 상식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체로 양성의 생식기를 동시에 지니고 태어났거나 통상적 의미의 동성애자 또는 복장성도착자(transvestite) 증세를 보였던 사람들이 아닌가라는 추정을 해 본다. 교단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이 출가자의 신분을 얻고 나서도 과거와 같은 행동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이는 곧 일반 대중들의 승가에 대한 도덕적 평판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처럼 외형적으로 구분이 가능한 사람들과 달리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자신의 동성애적 성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금지조항을 찾아볼 수 없다. 아무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도불교에서 판다카의 출가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곧 당시의 불교교단이 동성애자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붓다의 전생 이야기를 다룬 《자타카(Jataka)》에서는 붓다와 아난다의 동성애적 만남을 암시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등 동성애에 대해 우호적이거나 적어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불교와 동성애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동성애 문제에 관해 긍정이나 부정과 같은 섣부른 결론 도출은 삼가해야 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Ⅰ 인도불교
동성애에 대한 인도불교의 기본입장은 소위 판다카라고 불리던 사람들을 대하던 방식에서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pan.d.aka’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apa+an.d.a+ka’, 즉 “고환이 없는(사람)”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츠빌링(Leonard Zwilling)에 따르면 이 말은 글자 그대로 거세된 남성을 뜻하는 eunuch(내시)’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eunuch’란 용어는 무슬림 시대 이전의 인도에서는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다카 및 이와 유사한 개념들은 오히려 “고환이 없는(?)”사람처럼 허약하거나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어법의 단어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주석가인 붓다고사(Buddhaghosa)에 의하면 판다카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으로 대별될 수 있다고 한다.
① 물을‘뿜은’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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