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봉 이수광(芝峯 李睟光)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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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봉 이수광(芝峯 李睟光)은 누구인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序 論
 1. 지봉 이수광은 누구인가?
 2. 인생관
 3. 철학사상
 4. 실학사상

Ⅱ. 本 論
 1. 詩 작품 소개
   
Ⅲ. 結 論

<참고문헌>

본문내용

혔다. 그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생태와 생리적 특성들을 체계적으로 조사 분류하고, 동해와 서해의 어류가 생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는 모습 등 생리적 현상을 저술함으로써 자연과학 발전에도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것들 역시 실생활에 통하고 실용적인 유학을 탐구하는 그의 정신 밑에서 이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시대상황과 봉건적 사상의식의 테두리 속에 봉건제도를 부정하는데 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으나 이수광의 이러한 진보적 사상과 나라의 부강·발전을 도모하는 현실적 학문태도는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기풍을 마련하였고, 부패한 봉건통치를 폭로·비판하고 일련의 개혁사상을 제기함으로써 실학의 이후 발전방향의 틀을 제시하였다.
Ⅱ. 본론
1. 이수광의 詩 작품 소개
이수광의 시는 1.500여 수에 달한다. 이 가운데에는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낸 시도 있고 사대부로서 자신의 이상과 포부를 표현한 시도 있고, 관리로서 업무에 임하면서 쓴 시도 있다.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시의 내용이나 시의 정서, 시적 상황 등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수광의 시는 대체로 정감이 풍부하고, 환상성과 낭만성이 두드러지며 흥취가 넘친다. 이러한 경향은 송시풍의 난삽하고 경직된 시풍을 극복하고 시인의 정취를 드러내기 위하여 당시풍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수광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기세는 이수광이 송시풍의 장점이 양강의 기세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 환로시에 나타난 관리의식
환로시는 출세한 사대부로서 經世濟民(경세제민)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시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서, 선비가 출세하여 관직생활을 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과 감흥을 적은 館閣風(관각풍)의 시이다.
(1) 관리생활의 애환
선비가 출사하여 경세제민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을 시적 형상화한 유형이 환로시다.
환로시와 관련된 여러 가지 내용 가운데 환로시에서 가장 먼저 살필 수 있는 것은 조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과 관리로서의 일과이다. 관리가 되면 새벽 일찍이 조회에도 나가야 하고, 낮 동안 많은 공무를 처리하고, 관방에서 사무도 보고, 입직도 해야 한다. 이수광은 벼슬살이의 대부분을 내직으로 보냈기 때문에 궐내의 생활과 풍경, 관리로서의 이상과 애환을 표출한 작품이 많다.
① 成均館試院偶題 (성균관시원우제)
斯文一脈海東濱
兵後猶看廟貌新
槐市聞絃誦日
棘圍重闢聖明春
三千禮樂還三代
七十生徒少七人
竊皐比仍掌選
不才終愧長成均 『芝峯集』卷4 七言律詩.
유학 한 줄기 바다 동쪽가에 있으니
전란 후에 오히려 낭묘의 새 모습 보네
학사에서 매일 황홀한 낭송소리
과장 거듭 열리는 봄 처자의 德이라
삼천 예악은 곧 하·은·주 삼대 같으니
칠십생도는 공자 제자보다 일곱이 적네
욕되게도 자리나 훔쳐 선발을 담당하니
재주도 없이 끝내 성균관장됨 부끄럽네
② 直騎省。書示衛將諸公 (직기성。서시위장제공)
文武兼材揀具僚
鉤陳列將總金貂
一曹在內兵爲重
五衛居間職最饒
南北東西分四所
寅申己亥直三宵
腐儒亦韜鈴地
愧乏絲毫補聖朝 『芝峯集』卷4 七言律詩.
문무겸재한 인물 택해 관료 삼았으니
궁에 늘어선 장수 모두 귀한 신하일세
한 조로 궁에 있음 병조가 중해서니
오위 거하는 사이 맡은 일 가장 많네
동서남북 네 분소에서
인신기해일 삼일에 한번 숙직하네
썩은 선비 또한 병조에 끼어 있어
문장보국하는데 부족할까 부끄럽네
(2) 나라에 대한 근심
선조조는 많은 전란과 혼란을 겪으며 조선 초기부터 강조되었던 성리학적 이념이 그 모순을 노출하던 시기다. 이수광은 임진왜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등 조선조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벼슬살이를 하였다. 나라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공의의 실현을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신하의 본분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수광은 경상 방어사 조엄의 종사관으로 참전하였다가, 한양으로 돌아와 어가를 호위하여 함경도로 나아갔다. 함경도에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기미가 있자 관유사로 나아가 그들을 위로하는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수광의 환로시에는 국가와 임금을 걱정하는 관리로서의 애국충정이 배어 있다.
① 秋夜 (추야)
露下靑梧葉半零
伴人孤月正中庭
書生獨有憂邊意
夜起時看北落星 『芝峯集』卷 2 七言絶句.
이슬 내리니 푸른 오동잎은 시들도
사람과 벗한 외로우 달은 들 가운데 있네
서생은 홀로 변방을 걱정하며
한밤중 일어나 가끔 북쪽의 유성을 보네
② 會盟祭隨駕卽事 (회맹제수가즉사)
三更一點出宮行
將祀靈壇要會盟
驅却寒威敎夜暖
喚回和氣逼陽生
天容穆穆雲爲幄
羽衛煌煌火作城
禮罷山河猶未曙
群官舞賀升平
삼경 일점에 행궁을 나서서
영단에 제사 드려 회맹을 하려 하네
추운 기세 물리쳐 밤도 따뜻하게 하고
화기 불러들이니 양기가 가까웠네
하늘은 목목하니 구름이 휘장 짓고
우위는 빛나 횃불 성을 이루네
예를 마쳤으나 산하 아직 밝지 않았는데
뭇 신하 춤추며 태평성대 축하하네 『芝峯集』卷 4 七言律詩
(3) 백성에 대한 연민
왕도정치에 있어서 백성은 하늘이면서 동시에 다스림의 대상이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말은 백성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이수광은 세 차례 지방관으로 부임했다. 나라의 내정이 어지럽고 당쟁이 심할 때 안변부사, 홍주목사, 순천부사를 역임하면서 가까운 거리에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접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실상을 풍자하고 묘사하는 시를 많이 썼다. 따라서 이 시기에 지어진 작품들은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가의 모습, 관리들의 가혹한 수탈 등 백성들의 생활과 밀착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백성들의 참혹한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① 鶴浦 (학포)
浦口沙村浸海濤
棘籬寒雨晩蕭騷
居人共說干戈苦
漁戶今年半在逃 『芝峯集』卷 12 鶴城錄.
포구의 갯마을은 파도에 잠기고
가시울에 찬비 내리니 해질녘 처량하네
마을 사람들 말하길 전쟁의 고통으로
금년에 어가의 반쯤이 도망갔다네
② 田父詞 (전부사)
村翁雨中出
荷蓑而戴笠
行野兩相逢
倚杖溪頭立
眉問何事
共道今歲惡
春旱夏仍
寸粒秋無穫
粥旣難給
租稅日已促
昨夜東隣子
官庭死鞭
性命不足惜
早願塡溝壑
但識田家苦
不識田家樂 『芝峯集』卷 7 五七言古詩.
촌옹이 비를 맞고 길을 나서는데
도롱이 입고 삿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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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4.17
  • 저작시기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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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4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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