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전통문화 라쿠고(落語)의 현대적 의미
1. 라쿠고(落語)
1) 라쿠고의 분류
2) 라쿠고 전문 공연장 요세(寄席)
2. 무대 위의 라쿠고가(落語家)
1) 라쿠고가의 계급
2) 라쿠고가의 복장과 사용하는 소도구
3. 라쿠고의 구성 요소 - 마쿠라(枕), 본문, 오치(落ち)
4. 라쿠고의 역사
5. 현재의 라쿠고
1) 드라마
2) 애니메이션
3) 영화
◆ 참고문헌
1. 라쿠고(落語)
1) 라쿠고의 분류
2) 라쿠고 전문 공연장 요세(寄席)
2. 무대 위의 라쿠고가(落語家)
1) 라쿠고가의 계급
2) 라쿠고가의 복장과 사용하는 소도구
3. 라쿠고의 구성 요소 - 마쿠라(枕), 본문, 오치(落ち)
4. 라쿠고의 역사
5. 현재의 라쿠고
1) 드라마
2) 애니메이션
3) 영화
◆ 참고문헌
본문내용
때 쓰는 예화집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의 결말부분에 오치(落ち)에 해당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것을 라쿠고의 원형으로 본다. 앞서 언급한『기노와교노모노가타리(昨日は今日の物語)』,『기겐요키슈(言養集)』와 『세이스이쇼(醒睡笑)』 세권의 책 모두 간행된 것은 에도시대 초기로, 인쇄기술의 보급에 따른 활발한 출판 활동의 영향이 크다. 에도시대에 이러한 우스개이야기집이 간행되어 이야기를 즐기는 취미가 서민사회에 침투하면서 에도 시대 길거리에서나 신사, 절 등의 경내에서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돈을 받던 일 또는 그 우스갯 소리를 뜻하는 ‘쓰지바나시’를 하던 사람들이 에도시대 당시의 3대 도시인 교토, 에도, 오사카 등 큰 도시에 등장하는데 여향을 끼쳤다.
에도의 유명한 라쿠고가로는 시카노 부자에몬(鹿野武左衛門)과 라쿠고를 중흥시킨 우테이 엔바(烏亭焉馬)가 있고, 교토, 오사카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가미가타 라쿠고에는 요네자와 히고하치(米彦八), 산쇼테이 가라쿠(三笑亭可樂), 가쓰라 분지 (桂文治)등이 있다. 에도 라쿠고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시카노 부자에몬(鹿野武左衛門1649~1699)은 여러 집에 초대받아 응접실에 손님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인 자시키바나시(座數話)를 하는 한편, 에도 시내 번화가에 가설극장을 세워 쓰지바나시도 흥행하였다. 오사카의 요네자와 히코하치(米彦八)는 오사카 이쿠타마(生玉)신사 경내에서 당시의 세상물정을 흉내 내는 소재를 익살스런 이야기로 꾸며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 후 그의 뒤를 이어 제2대, 제3대 히코하치가 대를 이어 여전히 인기를 얻었고 하나의 라쿠고 패턴을 이루어 ‘히코하치 이야기’는 라쿠고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였다. 요네자와 히고하치는 라쿠고의 기본이라는 쥬겐무(限無)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들 모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여 돈을 받고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이들을 라쿠고가의 원초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1781년부터 1801년 사이에 우스개를 주제로 하는 정형시인 교카(狂歌)와 교분(狂文)이라는 풍자 문학의 성행과 더불어 에도에는 다시 라쿠고 붐이 일어났다. 분업이 목수였던 다테카와 엔바(立川焉馬, 1734~1822)는 일하는 틈틈이 라쿠고 솜씨를 연마하는 한편, 요리집 2층을 빌려 사람을 모아 교카를 짓거나 우스개를 겨루는 모임을 열었다. 스스로 만든 우스개도 연기하였는데, 1786년에 처음으로 열린 본격적인 라쿠고를 감상하는 모임이 현재의 요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후에 이런 형태의 모임이 정기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다테가와 엔바의 모임에 자극받은 사람들 중에 산유테이 엔쇼(三遊亭圓生, 1768~1838)와 산쇼테이 가라쿠(三笑亭可樂 1777~1833)등 라쿠고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에 초대 다테가와 엔바를 ‘에도 라쿠고 중흥의 시조’라고 한다. 이렇게 에도의 문화 발전과 더불어 점차 형태를 갖춘 라쿠고는 산쇼테이 가라쿠라에 의해 완성단계에 이른다. 1791년에 초대 산쇼테이 가라쿠가 에도의 유흥가인 아사쿠사에서 요세에서의 흥행을 촉진시켜 그를 ‘직업 라쿠고가의 시조’로 일컫는다. 그는 문하에 많은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여 라쿠고 융성의 기초를 쌓았다.
한편, 오사카에서도 가쓰라 분지(桂文治, 1774~1816)가 오사카의 풍속과 방언을 구사하는 독특한 라쿠고를 개척하여 인기를 모았다. 가쓰라 분지는 1794년경부터 오사카 시내의 자마(座魔)신사 경내에 상설공연장을 세워 운영하기에 이르렀으며, 반주를 넣어 흥을 돋우는 라쿠고를 히트작으로 내세웠다. 그는 가쓰라파의 시조가 되었으며 그 뒤를 잇는 가쓰라 분시(桂文枝 1819~1874)가 유파의 독특한 연기술을 계승하여 현재의 가미카타 라쿠고라 일컬어지는 라쿠고를 완성시켰다.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문명을 꽃피우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자 에도는 새로운 근대도시로 탈바꿈하면서 도쿄라 불리게 되었다. 도쿄의 라쿠고 명인이라고 불리던 산유테이 엔초(1839~1900)는 근대 라쿠고를 완성시키고, 인정담과 괴담으로 라쿠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중국 명나라의 소설집인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작품을 번안한 작품인 괴담모란등롱(怪談牡丹燈籠)등을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후에 가부키로도 공연될 정도의 걸작을 창작했다. 그 후에 1880년대부터 도쿄의 요세는 산유파(三遊派)와 야나기파(柳派)의 두 파로의 분열을 거쳐 여러 단체로 재편성되며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의 라쿠고 협회와 라쿠고 예술협회 등으로 계승되고 있다. 1925년경부터 새로운 방식의 웃음으로 서민의 마음을 파고드는 2인 코미디인 만자이(漫才)의 인기에 밀려서 라쿠고는 한때 침체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의 라쿠고계는 전쟁으로 인한 재해를 수습하며 파괴되지 않았던 우에노 스즈키(上野鈴木)공연장과 스에히로테이(末廣亭)등의 요세에서 재출발을 하였다.
5. 현재의 라쿠고
최근까지만 해도 라쿠고는 젊은이들의 것이 아니라, 중장년층이 즐기는 예능이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2005년 TBS의 ‘타이거 & 드래곤’이라는 라쿠고를 소재로 한 드라마 이후 잡지 등에서 라쿠고 특집이 짜여 지면서 요세를 찾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라쿠고 예술협회에서는 현재의 라쿠고 붐의 주동자를 드라마 ‘타이거 & 드래곤’으로 보고 이 드라마의 인기로 라쿠고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늘어나 젊은 층을 흡수하면서 새로운 팬 층을 확대하며 라쿠고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쉽게 접할 수 있는 서점의 라쿠고에 관한 책은 말할 것도 없고 라쿠고 DVD도 많이 발매되어 있는 상황이며 최근에는 이 드라마 외에도 라쿠고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TV 드라마 등이 연이어 발표되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1) 드라마
드라마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앞서 말했던 ‘타이거 & 드래곤’이 있다. 이 드라마는 쿠도 칸쿠로(宮藤官九郞)의 각본으로 일본의 젊은이들도 잘 모르던 소재인 고전 라쿠고를 현대의 젊은이들의 세계와 가치관을 배경으로 재구성해 짜임새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실제 라쿠고가인 쇼후쿠테이 츠루베(笑福亭 鶴)와
에도의 유명한 라쿠고가로는 시카노 부자에몬(鹿野武左衛門)과 라쿠고를 중흥시킨 우테이 엔바(烏亭焉馬)가 있고, 교토, 오사카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가미가타 라쿠고에는 요네자와 히고하치(米彦八), 산쇼테이 가라쿠(三笑亭可樂), 가쓰라 분지 (桂文治)등이 있다. 에도 라쿠고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시카노 부자에몬(鹿野武左衛門1649~1699)은 여러 집에 초대받아 응접실에 손님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인 자시키바나시(座數話)를 하는 한편, 에도 시내 번화가에 가설극장을 세워 쓰지바나시도 흥행하였다. 오사카의 요네자와 히코하치(米彦八)는 오사카 이쿠타마(生玉)신사 경내에서 당시의 세상물정을 흉내 내는 소재를 익살스런 이야기로 꾸며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 후 그의 뒤를 이어 제2대, 제3대 히코하치가 대를 이어 여전히 인기를 얻었고 하나의 라쿠고 패턴을 이루어 ‘히코하치 이야기’는 라쿠고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였다. 요네자와 히고하치는 라쿠고의 기본이라는 쥬겐무(限無)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들 모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여 돈을 받고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이들을 라쿠고가의 원초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1781년부터 1801년 사이에 우스개를 주제로 하는 정형시인 교카(狂歌)와 교분(狂文)이라는 풍자 문학의 성행과 더불어 에도에는 다시 라쿠고 붐이 일어났다. 분업이 목수였던 다테카와 엔바(立川焉馬, 1734~1822)는 일하는 틈틈이 라쿠고 솜씨를 연마하는 한편, 요리집 2층을 빌려 사람을 모아 교카를 짓거나 우스개를 겨루는 모임을 열었다. 스스로 만든 우스개도 연기하였는데, 1786년에 처음으로 열린 본격적인 라쿠고를 감상하는 모임이 현재의 요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후에 이런 형태의 모임이 정기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다테가와 엔바의 모임에 자극받은 사람들 중에 산유테이 엔쇼(三遊亭圓生, 1768~1838)와 산쇼테이 가라쿠(三笑亭可樂 1777~1833)등 라쿠고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에 초대 다테가와 엔바를 ‘에도 라쿠고 중흥의 시조’라고 한다. 이렇게 에도의 문화 발전과 더불어 점차 형태를 갖춘 라쿠고는 산쇼테이 가라쿠라에 의해 완성단계에 이른다. 1791년에 초대 산쇼테이 가라쿠가 에도의 유흥가인 아사쿠사에서 요세에서의 흥행을 촉진시켜 그를 ‘직업 라쿠고가의 시조’로 일컫는다. 그는 문하에 많은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여 라쿠고 융성의 기초를 쌓았다.
한편, 오사카에서도 가쓰라 분지(桂文治, 1774~1816)가 오사카의 풍속과 방언을 구사하는 독특한 라쿠고를 개척하여 인기를 모았다. 가쓰라 분지는 1794년경부터 오사카 시내의 자마(座魔)신사 경내에 상설공연장을 세워 운영하기에 이르렀으며, 반주를 넣어 흥을 돋우는 라쿠고를 히트작으로 내세웠다. 그는 가쓰라파의 시조가 되었으며 그 뒤를 잇는 가쓰라 분시(桂文枝 1819~1874)가 유파의 독특한 연기술을 계승하여 현재의 가미카타 라쿠고라 일컬어지는 라쿠고를 완성시켰다.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문명을 꽃피우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자 에도는 새로운 근대도시로 탈바꿈하면서 도쿄라 불리게 되었다. 도쿄의 라쿠고 명인이라고 불리던 산유테이 엔초(1839~1900)는 근대 라쿠고를 완성시키고, 인정담과 괴담으로 라쿠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중국 명나라의 소설집인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작품을 번안한 작품인 괴담모란등롱(怪談牡丹燈籠)등을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후에 가부키로도 공연될 정도의 걸작을 창작했다. 그 후에 1880년대부터 도쿄의 요세는 산유파(三遊派)와 야나기파(柳派)의 두 파로의 분열을 거쳐 여러 단체로 재편성되며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의 라쿠고 협회와 라쿠고 예술협회 등으로 계승되고 있다. 1925년경부터 새로운 방식의 웃음으로 서민의 마음을 파고드는 2인 코미디인 만자이(漫才)의 인기에 밀려서 라쿠고는 한때 침체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의 라쿠고계는 전쟁으로 인한 재해를 수습하며 파괴되지 않았던 우에노 스즈키(上野鈴木)공연장과 스에히로테이(末廣亭)등의 요세에서 재출발을 하였다.
5. 현재의 라쿠고
최근까지만 해도 라쿠고는 젊은이들의 것이 아니라, 중장년층이 즐기는 예능이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2005년 TBS의 ‘타이거 & 드래곤’이라는 라쿠고를 소재로 한 드라마 이후 잡지 등에서 라쿠고 특집이 짜여 지면서 요세를 찾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라쿠고 예술협회에서는 현재의 라쿠고 붐의 주동자를 드라마 ‘타이거 & 드래곤’으로 보고 이 드라마의 인기로 라쿠고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늘어나 젊은 층을 흡수하면서 새로운 팬 층을 확대하며 라쿠고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쉽게 접할 수 있는 서점의 라쿠고에 관한 책은 말할 것도 없고 라쿠고 DVD도 많이 발매되어 있는 상황이며 최근에는 이 드라마 외에도 라쿠고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TV 드라마 등이 연이어 발표되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1) 드라마
드라마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앞서 말했던 ‘타이거 & 드래곤’이 있다. 이 드라마는 쿠도 칸쿠로(宮藤官九郞)의 각본으로 일본의 젊은이들도 잘 모르던 소재인 고전 라쿠고를 현대의 젊은이들의 세계와 가치관을 배경으로 재구성해 짜임새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실제 라쿠고가인 쇼후쿠테이 츠루베(笑福亭 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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