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라틴아메리카의 발전, 저발전 흐름
1. 역사적 뿌리
2. 자유주의적 과두제
3. 수입대체화와 포퓰리즘
4. 신자유주의와 네오 포퓰리즘
Ⅲ. 결론
Ⅱ. 본론- 라틴아메리카의 발전, 저발전 흐름
1. 역사적 뿌리
2. 자유주의적 과두제
3. 수입대체화와 포퓰리즘
4. 신자유주의와 네오 포퓰리즘
Ⅲ. 결론
본문내용
간의 증가가 나타났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생산의 다변화를 통한 발전은 전개되지 않았고, 공업 발전의 정체 현상을 등한시 했다.
일차상품 수출의 경제구조가 지속되었던 이유는 이 경제구조로부터 직접적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본 과두제 세력과 국내외의 자본세력이 자유주의 무역체제를 보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경제성장은 소득분배의 불균등을 심화시켰고, 하위계층은 정치적으로 저항력이 취약했다. 결국 라틴아메리카 국민 대다수는 1800년 경에 비해 1900년경에 물질적으로 더욱 빈곤한 생활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3. 포퓰리즘과 수입대체화 (1차 수입대체화 1930년~1955년)
1929년 대공황은 라틴아메리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수출품의 가격폭락과 수량의 대폭 감소가 초래됨으로써, 자유무역의 영향력을 위축시켰고 가장 많은 이득을 얻었던 과두제 세력을 정치무대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이에 따라 새로운 공업화전략이 추진되었는데, 이 시기 ‘포퓰리즘’ 운동이 전개되었다.. 1930~40년대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칠레, 우루과이와 페루 등에서 이 운동이 형성되었고, 정부권력의 교체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포퓰리즘은 대공황의 충격으로 라틴아메리카의 개방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됨으로써, 독자적으로 경제적 발전을 추구해 그 이익이 대중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고양된 민족주의였다. 이 운동은 산업부르주아 세력을 비롯하여 도시중간계층과 공업노동자 계급 간 연합으로 구성되었으나, 이 연합의 지도층은 군부 출신이었다. 과두제 지배체제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수용한 지배층과 중간계급 출신의 장교집단이 지도부를 형성하고 여타의 다른 사회계급들이 수직적 비호관계로 연결된 형태였다.
이 때 포퓰리즘 체제에 맞는 경제정책으로서 ‘수입대체화’(1930~1955 일차 수입대체화)가 실행되었는데, 이는 수출급감에 의한 외환부족으로 수입품에 대한 지역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수입대체화는 상당기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1929~39년에는 라틴아메리카 일부 지역의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미국보다 높았다. 이러한 수입대체화의 절정은 이차대전 직후였는데, 이 때에도 투자재와 중간제의 자체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포퓰리즘 정권은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강령과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도시중간계층과 노동자 계급을 비호관계로 결속시켰다. 이 체제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계층은 도시의 중간계층이었는데, 그들은 정부투자의 확대로 인해 고용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국가가 제공하는 물질적 혜택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포퓰리즘 정권은 사회진보적은 성격을 가지고 국민의 물질적 생활개선을 위한 전략을 수립했지만, 그 진행과정에서 새로운 군부출신의 국가계급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인 계급동맹의 렌트추구로 변질되었다. 포퓰리스트 계급동맹은 과거 자유주의적 과두제 지배체제에서보다 물질적 혜택을 보는 계층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농민이나 주변계층을 배제하였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국가계급과 이와 비호관계에 있는 사회계급의 특수이해관계에만 적용
일차상품 수출의 경제구조가 지속되었던 이유는 이 경제구조로부터 직접적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본 과두제 세력과 국내외의 자본세력이 자유주의 무역체제를 보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경제성장은 소득분배의 불균등을 심화시켰고, 하위계층은 정치적으로 저항력이 취약했다. 결국 라틴아메리카 국민 대다수는 1800년 경에 비해 1900년경에 물질적으로 더욱 빈곤한 생활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3. 포퓰리즘과 수입대체화 (1차 수입대체화 1930년~1955년)
1929년 대공황은 라틴아메리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수출품의 가격폭락과 수량의 대폭 감소가 초래됨으로써, 자유무역의 영향력을 위축시켰고 가장 많은 이득을 얻었던 과두제 세력을 정치무대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이에 따라 새로운 공업화전략이 추진되었는데, 이 시기 ‘포퓰리즘’ 운동이 전개되었다.. 1930~40년대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칠레, 우루과이와 페루 등에서 이 운동이 형성되었고, 정부권력의 교체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포퓰리즘은 대공황의 충격으로 라틴아메리카의 개방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됨으로써, 독자적으로 경제적 발전을 추구해 그 이익이 대중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고양된 민족주의였다. 이 운동은 산업부르주아 세력을 비롯하여 도시중간계층과 공업노동자 계급 간 연합으로 구성되었으나, 이 연합의 지도층은 군부 출신이었다. 과두제 지배체제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수용한 지배층과 중간계급 출신의 장교집단이 지도부를 형성하고 여타의 다른 사회계급들이 수직적 비호관계로 연결된 형태였다.
이 때 포퓰리즘 체제에 맞는 경제정책으로서 ‘수입대체화’(1930~1955 일차 수입대체화)가 실행되었는데, 이는 수출급감에 의한 외환부족으로 수입품에 대한 지역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수입대체화는 상당기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1929~39년에는 라틴아메리카 일부 지역의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미국보다 높았다. 이러한 수입대체화의 절정은 이차대전 직후였는데, 이 때에도 투자재와 중간제의 자체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포퓰리즘 정권은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강령과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도시중간계층과 노동자 계급을 비호관계로 결속시켰다. 이 체제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계층은 도시의 중간계층이었는데, 그들은 정부투자의 확대로 인해 고용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국가가 제공하는 물질적 혜택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포퓰리즘 정권은 사회진보적은 성격을 가지고 국민의 물질적 생활개선을 위한 전략을 수립했지만, 그 진행과정에서 새로운 군부출신의 국가계급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인 계급동맹의 렌트추구로 변질되었다. 포퓰리스트 계급동맹은 과거 자유주의적 과두제 지배체제에서보다 물질적 혜택을 보는 계층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농민이나 주변계층을 배제하였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국가계급과 이와 비호관계에 있는 사회계급의 특수이해관계에만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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