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단원의 개괄
▶ 학습목표
▶ 한국사와의 관계
▶ Ⅰ. 민족주의
Ⅱ. 이탈리아의 통일
Ⅲ. 독일의 통일과 발전
Ⅳ. 프랑스
Ⅴ. 영국
Ⅵ. 미국
Ⅶ. 러시아
Ⅷ.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Ⅷ. 자유주의 vs 민족주의
▶ 형성평가
▶ 참고문헌
▶ 학습목표
▶ 한국사와의 관계
▶ Ⅰ. 민족주의
Ⅱ. 이탈리아의 통일
Ⅲ. 독일의 통일과 발전
Ⅳ. 프랑스
Ⅴ. 영국
Ⅵ. 미국
Ⅶ. 러시아
Ⅷ.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Ⅷ. 자유주의 vs 민족주의
▶ 형성평가
▶ 참고문헌
본문내용
짐
- 멘셰비키와 볼셰비키
사회민주당의 분열 : 멘셰비키파(온건파), 볼셰비키파(과격파)
① 멘셰비키파 : 입헌체제를 토대로 점진적 사회주의 건설 주장
② 볼셰비키파 : 무력에 의한 정권탈취 목표
Ⅷ.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 제1차 세계대전의 정치적 기원, 현재까지 많은 동부유럽에 문제로 남아있음
- 오스트리아 : 소수민족의 자치와 독립요구를 무력과 소수민족 상호간의 갈등으로 회피
→ 이후 대외적 위축 거듭
- 이탈리아 통일전쟁(1859) : 밀라노를 포함한 롬바르디아 상실
- 프로이센에게 독일로부터 추방, 베네치아 상실(1866)
- 꾸준히 자치를 요구해 온 헝가리의 마자르족에게 타협을 통하여 자치를 허용
→ 오스트리아 헝가리 2중제국 성립(1867)
- 의의
①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 왕 겸임, 국방, 재정, 외교를 제외한 부분은 각자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정부와 의회를 가짐
② 슬라브계 소수민족의 자치, 독립 요구에 대해 오스트리아의 독일인과 마자르족의 공동전 선을 펼침
1. 소수민족 통치
- 오스트리아 : 체코인(23%) - 스라브족 중에 경제, 문화가 가장 발달함
폴란드인(18%) - 대부분 지주, 부유한 생활 → 통일에 관심이 없음
이탈리인(3%미만) - 이탈리아와 합병 원함
슬로베니아인(4.5%),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3%이하) -불만x, 자치 원함
- 헝가리 : 오스트리아 보다 복잡
마자르 족(55%) - 비교적 부유, 다른 소수민족의 민족성 말살, 마자르화 정책 강행 (마자르어 공용화 → 학교, 관공서에 강요)
슬로바키안인(11%) - 가난한 농민, 마자르화 경향
루마니아인(16.5%) - 그리스 정교, 자치허용요구, 마자르화 정책에 반대
세르비아인 - 헝가리 증오, 세르비아왕국에 기대 걸었으나 도움 못받음
크로아티아 - 헝가리와 타협하여 군사, 경제는 헝가리가 관장, 대신 고유 언어, 교육제도, 법원, 의회 허용 but, 완전한 자치 원함
2.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문제
- 이중왕국 내의 소수민족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듦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1870년대까지 투르크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음(주민은 스라브족)
- 주민 구성 : 50만명 이슬람교도 - 지주
50만명 그리스정교도 - 농민 → 인접한 세르비아왕국에 해방을 기대
15만명 가톨릭
- 투르크의 지배하에서 그리스정교도는 이슬람 지주의 땅을 경작하는 농민
→ 경제적 불만 + 종교적 불만 싹틈
- 세르비아 : 두 지방 합병하여 大세르비아 건설 포부
- 이슬람교도 : 투르크의 지배가 종식되지 않기를 바람
가톨릭교도 : 크로아티아와 합쳐지기를 원함
- 오스트리아 : 1878베르린회의- 두지방에 대한 점령권 획득, 실질적 지배 시작
달마치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묶어서 남부슬라브왕국 건 설 원함 → 마자르의 반대로 실현 못함
- 1908 청년 투르크당의 혁명 : 투르크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오스트리아가 재빨리 두 지방 합병 → 세르비아와 이중왕국내 거의 모든 소수민족 분노 → 제1차 세계대전의 씨앗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의 대립)
3. 오스트리아 사회
- 귀족 : 대영지를 소유한 완전한 유한 계급
- 토지보유농민 : 소농 내지 영세농으로 생활수준 낮았음
- 소수민족 억압
- 군사력과 경찰에 많은 예산 → 경제성장 지연 : 도시의 중산계급 성장 미약하고 느렸음
- 가톨릭 그리스도교 사회당(유력정당) : 합스부르크 왕실에 충성, 농민과 소기업편에서 사 회입법 주장, 반유대주의 표방
- 사회민주당 : 산업노동자의 증가에 따라 창성 마르크스주의 정당, 혁명보다는 복지정책 과 노동자 지위향상에 주력
- 범게르만주의(독일인중 소수) : 반슬라브적, 반유대적(ex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 유대인 : 1870년대 이후 증가 (총인구의 5%, 수도 빈의 10%)
공직에 취임 못함 - 금융업, 상업, 예술, 과학 등에 종사하여 두각
빈의 생활양식에도 영향 끼침 → 반유대주의 싹틈
4. 헝가리 사회
- 오스트리아보다 후진적
- 소수의 토지귀족 : 농토의 절반이상 소유
- 젠트리 : 향신계층(중간정도의 영토소유) - 관리, 전문직 진출
- 농민 : 소토지 소유농 - 교육수준 낮고, 생활 어려움
- 산업노동자 : 인구의 20% 넘지 못함 - 저임금, 노동조건 나쁨, 계급의식도 희박
→ 사회주의 정당이 성립할 수 없었음
- 종교 : 인구 60% 가톨릭, 나머지 - 칼뱅, 루터파
- 선거권 : 극히 제한 - 마자르족의 엘리트에 의하여 운영
Ⅷ. 자유주의 vs 민족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개인 > 집단
개인 < 집단
평등주의
정치적 통일성
보편주의 - 도덕적 단일성
민족적 특수성 인식 (언어, 역사 등)
개량주의 - 모든 것은 개선 가능
개별성, 고유성 - 진보x, 나름의 독자성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함
역사주의, 낭만주의를 바탕으로 함
낙관, 진보, 긍정
국가가 없어도 존재 가능
▶ 형성평가
1. 다음 보기의 내용이 말하는 이념은?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 그리스와 벨기에의 독립
① 제국주의 ② 중상주의 ③ 민족주의 ④ 자유주의 ⑤ 민주주의
2. 독일의 통일과 관련이 없는 사실은?
① 정치적 통일에 앞서 관세 동맹을 맺어 경제적 기반을 닦았다.
② 러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북독일 연방을 결성하였다.
③ 프랑스와의 전쟁 후에 남독일 각국을 연방에 참가시켰다.
④ 비스마르크의 철혈 정책으로 무력 통일하였다.
⑤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며 자유주의 운동을 탄압하였다.
3. 다음 보기의 사실들을 종합하여 추론할 수 있는 결론으로 타당한 것 2개를 고르면?
그리스의 독립 운동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국민 회의
오스트리아의 3월 혁명 프랑스의 7월 혁명
미국의 먼로주의 프랑스의 2월 혁명
①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② 사회주의 사상의 경향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③ 빈 체제에 대한 반항이었다.
④ 메테르니히의 사상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⑤ 산업 혁명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운동이었다.
▶ 참고문헌
- 민석홍, 서양사개론, 삼영사 2005
- 차하순, 새로 쓴 서양사총론2, 탐구당 2005
- 이혜령외, 문화사,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2006
- 김은숙외, 고등학교 세계사, 교학사, 2006
- 멘셰비키와 볼셰비키
사회민주당의 분열 : 멘셰비키파(온건파), 볼셰비키파(과격파)
① 멘셰비키파 : 입헌체제를 토대로 점진적 사회주의 건설 주장
② 볼셰비키파 : 무력에 의한 정권탈취 목표
Ⅷ.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 제1차 세계대전의 정치적 기원, 현재까지 많은 동부유럽에 문제로 남아있음
- 오스트리아 : 소수민족의 자치와 독립요구를 무력과 소수민족 상호간의 갈등으로 회피
→ 이후 대외적 위축 거듭
- 이탈리아 통일전쟁(1859) : 밀라노를 포함한 롬바르디아 상실
- 프로이센에게 독일로부터 추방, 베네치아 상실(1866)
- 꾸준히 자치를 요구해 온 헝가리의 마자르족에게 타협을 통하여 자치를 허용
→ 오스트리아 헝가리 2중제국 성립(1867)
- 의의
①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 왕 겸임, 국방, 재정, 외교를 제외한 부분은 각자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정부와 의회를 가짐
② 슬라브계 소수민족의 자치, 독립 요구에 대해 오스트리아의 독일인과 마자르족의 공동전 선을 펼침
1. 소수민족 통치
- 오스트리아 : 체코인(23%) - 스라브족 중에 경제, 문화가 가장 발달함
폴란드인(18%) - 대부분 지주, 부유한 생활 → 통일에 관심이 없음
이탈리인(3%미만) - 이탈리아와 합병 원함
슬로베니아인(4.5%),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3%이하) -불만x, 자치 원함
- 헝가리 : 오스트리아 보다 복잡
마자르 족(55%) - 비교적 부유, 다른 소수민족의 민족성 말살, 마자르화 정책 강행 (마자르어 공용화 → 학교, 관공서에 강요)
슬로바키안인(11%) - 가난한 농민, 마자르화 경향
루마니아인(16.5%) - 그리스 정교, 자치허용요구, 마자르화 정책에 반대
세르비아인 - 헝가리 증오, 세르비아왕국에 기대 걸었으나 도움 못받음
크로아티아 - 헝가리와 타협하여 군사, 경제는 헝가리가 관장, 대신 고유 언어, 교육제도, 법원, 의회 허용 but, 완전한 자치 원함
2.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문제
- 이중왕국 내의 소수민족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듦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1870년대까지 투르크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음(주민은 스라브족)
- 주민 구성 : 50만명 이슬람교도 - 지주
50만명 그리스정교도 - 농민 → 인접한 세르비아왕국에 해방을 기대
15만명 가톨릭
- 투르크의 지배하에서 그리스정교도는 이슬람 지주의 땅을 경작하는 농민
→ 경제적 불만 + 종교적 불만 싹틈
- 세르비아 : 두 지방 합병하여 大세르비아 건설 포부
- 이슬람교도 : 투르크의 지배가 종식되지 않기를 바람
가톨릭교도 : 크로아티아와 합쳐지기를 원함
- 오스트리아 : 1878베르린회의- 두지방에 대한 점령권 획득, 실질적 지배 시작
달마치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묶어서 남부슬라브왕국 건 설 원함 → 마자르의 반대로 실현 못함
- 1908 청년 투르크당의 혁명 : 투르크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오스트리아가 재빨리 두 지방 합병 → 세르비아와 이중왕국내 거의 모든 소수민족 분노 → 제1차 세계대전의 씨앗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의 대립)
3. 오스트리아 사회
- 귀족 : 대영지를 소유한 완전한 유한 계급
- 토지보유농민 : 소농 내지 영세농으로 생활수준 낮았음
- 소수민족 억압
- 군사력과 경찰에 많은 예산 → 경제성장 지연 : 도시의 중산계급 성장 미약하고 느렸음
- 가톨릭 그리스도교 사회당(유력정당) : 합스부르크 왕실에 충성, 농민과 소기업편에서 사 회입법 주장, 반유대주의 표방
- 사회민주당 : 산업노동자의 증가에 따라 창성 마르크스주의 정당, 혁명보다는 복지정책 과 노동자 지위향상에 주력
- 범게르만주의(독일인중 소수) : 반슬라브적, 반유대적(ex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 유대인 : 1870년대 이후 증가 (총인구의 5%, 수도 빈의 10%)
공직에 취임 못함 - 금융업, 상업, 예술, 과학 등에 종사하여 두각
빈의 생활양식에도 영향 끼침 → 반유대주의 싹틈
4. 헝가리 사회
- 오스트리아보다 후진적
- 소수의 토지귀족 : 농토의 절반이상 소유
- 젠트리 : 향신계층(중간정도의 영토소유) - 관리, 전문직 진출
- 농민 : 소토지 소유농 - 교육수준 낮고, 생활 어려움
- 산업노동자 : 인구의 20% 넘지 못함 - 저임금, 노동조건 나쁨, 계급의식도 희박
→ 사회주의 정당이 성립할 수 없었음
- 종교 : 인구 60% 가톨릭, 나머지 - 칼뱅, 루터파
- 선거권 : 극히 제한 - 마자르족의 엘리트에 의하여 운영
Ⅷ. 자유주의 vs 민족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개인 > 집단
개인 < 집단
평등주의
정치적 통일성
보편주의 - 도덕적 단일성
민족적 특수성 인식 (언어, 역사 등)
개량주의 - 모든 것은 개선 가능
개별성, 고유성 - 진보x, 나름의 독자성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함
역사주의, 낭만주의를 바탕으로 함
낙관, 진보, 긍정
국가가 없어도 존재 가능
▶ 형성평가
1. 다음 보기의 내용이 말하는 이념은?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 그리스와 벨기에의 독립
① 제국주의 ② 중상주의 ③ 민족주의 ④ 자유주의 ⑤ 민주주의
2. 독일의 통일과 관련이 없는 사실은?
① 정치적 통일에 앞서 관세 동맹을 맺어 경제적 기반을 닦았다.
② 러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북독일 연방을 결성하였다.
③ 프랑스와의 전쟁 후에 남독일 각국을 연방에 참가시켰다.
④ 비스마르크의 철혈 정책으로 무력 통일하였다.
⑤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며 자유주의 운동을 탄압하였다.
3. 다음 보기의 사실들을 종합하여 추론할 수 있는 결론으로 타당한 것 2개를 고르면?
그리스의 독립 운동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국민 회의
오스트리아의 3월 혁명 프랑스의 7월 혁명
미국의 먼로주의 프랑스의 2월 혁명
①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② 사회주의 사상의 경향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③ 빈 체제에 대한 반항이었다.
④ 메테르니히의 사상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⑤ 산업 혁명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운동이었다.
▶ 참고문헌
- 민석홍, 서양사개론, 삼영사 2005
- 차하순, 새로 쓴 서양사총론2, 탐구당 2005
- 이혜령외, 문화사,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2006
- 김은숙외, 고등학교 세계사, 교학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