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허 현진건 작품 읽기 <할머니의 죽음>, <운수좋은 날>, <고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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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빙허 현진건 작품 읽기 <할머니의 죽음>, <운수좋은 날>, <고향>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빙허 현진건의 생애

2. <할머니의 죽음>
 1) <할머니의 죽음>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2) <할머니의 죽음>은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
 3) <할머니의 죽음>의 가치와 한계는 무엇인가?

3. <운수 좋은날>
 1) <운수좋은 날>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2) <운수좋은날>은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는가?
 3) <운수 좋은 날>의 가치와 한계는 무엇인가?

4. <고향>
 1) <고향>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2) <고향>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3) <고향>의 가치와 한계는 무엇인가?

4. 현진건 단편소설의 가치

본문내용

빙허 현진건 작품 읽기
<할머니의 죽음>, <운수좋은 날>, <고향>을 중심으로
1. 빙허 현진건의 생애
빙허 현진건(1900~1943)은 명문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현씨 가문은 대대로 벼슬아치를 많이 낸 가문으로, 개화기에 이르러 새로운 개혁 의지를 가지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개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 중 특히 계부 영운은 대한제국의 군영부총장이라는 높은 벼슬을 지낸 친일파였으며, 반면에 재종형 상건은 역관으로 프랑스 공사관에서 근무하다가 상해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에 참여하였고, 숙형 정건은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평양에서 옥사를 했다. 이렇게 현진건 집안의 사람들은 식민지 현실을 수용하는 입장과 저항하는 입장의 사람들이 함께 존재했기 때문에 현진건이 현실을 대처하는 지식인으로서 행동에 많은 혼란을 겪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러한 정신적 방황은 그가 일본으로 상해로 흘러 다니며 공부하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진건은 당시 13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성성중학에 입학했다. 그 후에 16세가 되어 고향 부호의 딸과 결혼하지만 신부를 고향에 두고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1917년 성성중학을 졸업한 뒤 다시 동경에서 독일어 전수학원을 이수하고 귀국했다가 다시 형님 정건을 찾아 상해로 건너갔다.
그러다 1919년에 당숙 현모운의 양자로 입양하여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하는데, 양부의 재산과 처가의 힘을 빌어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으로 해가 지고 날이 새며 쌀이 있는지 나무가 있는지 모르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그의 문학수업이 이 때 시작되는데, <백조>동인에 참가한 것이 그의 문단적인 첫 출발이 되었으며 처녀작 <희생화>를 거쳐 두 번째 <빈처>로써 문단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그 후 현진건은 염상섭과 함께 <시대일보>, <매일신보> 등의 기자생활을 거쳐 한때 동아일보의 사회부장직에도 있었다. 그러나 바로 1936년의 ‘일장기말살사건’ 손기정 선수가 독일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세계를 제패했을 때, 동아일보가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본 국기를 말살하고 게제한 사건.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정간을 당하고 사회부장인 빙허가 투옥되었음.
에 연루되어 일제에 의해 1년을 언도받고 투옥되었다가 이듬해에 신문사도 그만두었다. 그리고 일제 말기에는 언론 활동도, 작품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양계를 하며 침묵 속에 세월을 보내다가 8.15 해방 2년 전인 1943년 서거함으로써 그의 생을 마감한다. 이상과 같이 그의 삶은 일제에 대한 저항적인 자세로 일관하면서 당대 지식인으로서의 정직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황패강 외, 『한국문학작가론 4』, 집문당, 2000, p.207~209.
1922년 빙허는 ‘백조’의 동인이 되었다. ‘백조’지는 박종화와 홍사용을 중심으로 한 휘문의숙 출신과 나도향과 박영희 등 배재학당 출신의 문학청년들이 교우함으로써 비롯된 것이었다. ‘백조’지의 동인은 앞에 든 네 작가 외에 이상화, 현진건 등이 포함되었고, 뒤에 이광수, 안석주, 원세하, 오천원, 노자영, 김기진, 방정환 등으로 이루어졌으나 후에 이광수는 여러 가지 잡음으로 제외되었다. 백조파 작가 중에서 크게 각광받은 이가 빙허로 빙허의 작가세계는 다음의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처음에 작가의 신변 내지 체험소설을 시도했던 시기를 제 1기로 볼 수 있고, 본격적인 순수객관소설로 지양한 시기를 제2기로 보고, 말기에 역사소재를 매개로한 간접적인 현실소설로 전환하던 시기를 제3기로 구분해볼 수 있다. 즉, 빙허의 초기작품이었던 <희생화>,<빈처>,<술 권하는 사회>,<타락자>등은 신변소설에 해당하고, 이 초기의 신변 소설들을 쓰는 것으로 만족치 않았던 빙허가 후에 본격적인 문학세계로 비약하게 되는데 이때의 작품이 <할머니의 죽음>,<지새는 안개>,<운수 좋은 날>,<불>,,<그의 얼굴>(‘고향’의 원제)등 일련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이후 빙허는 1936년의 이른바 ‘일장기말살사건’으로 인책되고 투옥까지 되었는데 37년에 양계장을 차리기까지 작가로서 빙허는 침체기를 겪었었다. 이후, 우리나라 중진작가들이 역사소설로 붓을 옮길 때, 빙허도 이들과 동조하여 1938년 <무영탑>을 발표하게 된다. 이 <무영탑>은 역사와 전설을 모두 엎어서 역사사소설로 구성했으나, 예술적 창작에 더 비중을 두었고, 일제의 탄압이 심각화 되어 소설을 마음껏 쓸 수 없었기 때문에 편의상 역사적으로 먼 과거에서 현실과 유형이 본질적으로 같은 사실을 작품의 소재로 빌려 쓴 것에 불과하였다. 그러면서도 현실 도피에서가 아니라 현실적 의미를 강조하여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후 쓴 <흑치상지>는 총독부에 의해 금지되어 미 완성작이 되었고, 빙허의 최후의 작품이 된 <선화공주>도 연재하다가 완성하지 못한 채 중단 되었다 『한국 대표 명작 현진건』, 윤병로, KSI한국학술정보, 2001, pp.250~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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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할머니의 죽음>
1) <할머니의 죽음>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나는 3월 그믐날 「조모주병환위독」의 전보를 받는다. 82세를 넘은 할머니는 작년부터 노쇠현상을 보여 왔다. 천수를 다할 날도 멀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전보가 날라듦에 낙향을 할 수밖에 없고 도중에 운명하시지나 않았나 하는 조비심속에 발길을 서둘렀을 뿐만 아니라 각지에 흩어진 자손들 또한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로써 할머니의 죽음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일가의 갖가지 정황이 객관적으로 묘사되어 간다. 그러면서 인간의 내면적 진실성이 죽음의 극한 상황을 통해 하나하나 포착되어진다. 백형은 낙향하면서 부의금까지 받아오기까지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살아계신다.
할머니는 귀찬하 못견듸겠다는 듯이 팔을 내저으며 「듯기실타! 염불소리 듯기실타 ! 인제 고만해 라」 하며 몸을 일으키랴고 애를 쓴다.
「그게 무슨 말슴입니까?」 仲母는 질색을 하며 더욱 비장하게 부텨님을 차젓다.
「듯기실타 ! 듯기실혀. 나는고만 잘테야.」 할머니는 또 이러케 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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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6.20
  • 저작시기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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