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중동분할의 시나리오
Ⅱ.인도양의 지정학
Ⅲ.동남아시아의 지정학
Ⅳ.남태평양의 지정학
Ⅴ.시베리아개발의 지정학
Ⅵ.북빙해의 지정학
Ⅶ.동남아시아의 지정학
Ⅷ.미,일,중 군사동맹의 허구와 함정
Ⅸ.종교와 문화의 지정학
Ⅹ.일본의 신지정학
Ⅱ.인도양의 지정학
Ⅲ.동남아시아의 지정학
Ⅳ.남태평양의 지정학
Ⅴ.시베리아개발의 지정학
Ⅵ.북빙해의 지정학
Ⅶ.동남아시아의 지정학
Ⅷ.미,일,중 군사동맹의 허구와 함정
Ⅸ.종교와 문화의 지정학
Ⅹ.일본의 신지정학
본문내용
분석 하고 있다. 중소 충돌이 있기 전 68년 체코사건이 있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한 체코에 대해 수천대의 소련 탱크가 밀고 들어가 무력으로 덮어 눌러버린 사건 이었다.하지만 이는 임시방편 이었을 뿐 소련은 더 이상 체코에게 석유를 공급할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서론으로서는 동유럽 제국의 불만이 더 이상 증대하는 것을 막이 위해서 서독과 화해를 해야 했다. 서독과 화해를 해서 서독의 기술과 자금을 끌어들여 그것이 동유럽 제국에 흘러가게 해줄 필요를 통감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반대하고 나선것은 적군과 동독의 울브리히트 제1서기였다. 울브리히트제 1서기는 3월 2일을 기하여 베를린 재봉쇄를 단행하려 했다. 1969년 3월 2일 베를린 봉쇄가 단행 되려던 찰라 다만스키섬에서 중,소 무력충돌이 발생하였다 이 무력충돌로 인해 베를린 재봉쇄 계획은 당장 무산되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베를린 재봉쇄라는 무모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KGB가 벌인 커다란 연극이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극은 서독과의 화해에는 성공하였으나 그 반작용으로 중공이 미국과 일본에 접근 시키는 역효과도 낳았다.
1976년부터 1980년대까지를 기간으로 하는 제 10차 5개년 계획에서 소련은 여전히 석유개발과 정보산업의 육성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바이칼,아무르 철도의 건설에도 힘쓰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필자는 이 5개년 계획은 틀림없는 전시경제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1975년 서둘러 베트남에서 철수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다.
Ⅵ.북빙해의 지정학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거점
해상항로로서는 태평양이나 대서양보다 북빙양 쪽이 훨씬 더 넓은 감각적인 폭을 갖고 있다. 소련이 이 북빙양 항로에 비상한 열의와 노력을 기울여온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북빙양이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제정러시아시대부터 북빙양의 관심이 시작 되었으나 공산혁명 후의 소련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북빙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북빙양의 항해는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있어 왔다.
제 2차대전과 함께 북빙양의 중요성은 소련에 있어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되었다.군함은 물론 미국의 물자가 이 곳을 통해서 원조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 때 까지만 해도 북빙양의 항해는 상업적 면보다는 군사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67년 북빙양의 개방이 발표 되었을 때 일본은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북빙양의 이점은 가령 요꼬하마<->런던간의 수에즈 운하를 통하는 항해거리,항해기간, 비용면에서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빙양의 항해는 많은 난점이 지니고 있었다.
또한 소련에서 조차 북빙양 항로가 소련 전체의 교통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별로 크지 않다. 하지만 군사적인 면에서 보면 소련 해군이 자기 나라의 수로관리해면을 지나 무르만스크에서 극동으로 함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북빙양은 매우 중요한 루트이다.
1926년 4월 소련은 중앙집행위원회의 이름으로 <북극해에 발견대는 대륙 및 여러 섬중에서 소련 정부가 외국 영토라고 인정하는 것을 제외하고,소련방 북부연안의 동서 양단과 북극점을 연결하는 자오선이 이루는 부채꼴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은 모두 소련 영토이다.>라고 선언 하였다. 이것은 제정 러시아에서 선언한 것인데, 공산 소련이 다시 이를 확인한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항공기가 소련 전투기에 공격 받은 적도 있다.
필자는 북빙양횡단 항로와 동방항로, 두 항로의 최대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쓰가루 해협의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곳은 일본이 국제 정세에 따라 봉쇄를 할 수 있는 일본의 영해이다. 그러므로 소련은 쓰가루 해협의 완전한 자유항행을 확보하기 위해 훗까이도를 점령을 준비하고 있다. 필자의 주장대로 라면 소련은 훗까이도주민의 호적등본 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은 북방영토를 내놓으라고 외치기 보다는 훗까이도를 빼앗기지 않도록 물심 양면으로 착실히 준비해야 함을 강조한다. <쓰가루해협을 제압하는 자는 북해를 제압하고 북빙양 항로를 제압한다.>고 언급한다.
Ⅶ.동남아시아의 지정학
만주를 제압하는 자는 동북아시아를 제압한다.
필자는 만주지배를 전략상으로나 경제적으로 보아 동북아시아를 제압하는 절대조건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소련이 일단 만주를 제압하면 그것은 당연히 한반도의 제압과 연결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필자는 만주족의 중국 대륙 통일, 몽고제국 등이 만주에 근거를 둔 국력으로 동북아시아, 동아시아를 제압한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즉 <만주를 제압하는 자는 동북아시아를 제압한다.>는 지정학적 테제를 설명하면서 또한 일본이 만주국을 세워 만주를 완전히 자기 세력권내에 넣으려고 했을 때 미,중,소가 공동으로 일본을 규탄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소련이 만주를 지배한다면 어떠한 이득이 있을까? 가령 철도수송의 경우를 보면 소련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실은 화물은 현재 멀리 하바로프스크에서 홍안령의 북부를 돌아 이르쿠츠크로 향하고 있다. 만약 이 철도가 만주를 횡단하여 블라디보스톡에서 만주리 방면으로 곧장 빠지는 동지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면,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까지의 수송 루트는 크게 단축되며,수송량도 증대 될 것이다. 또한 소련이 만주를 제압한다면, 만주에 일본이 남겨둔 안산 제철소를 사용 할 수 있다. 이는 극동과 동시베리아의 철의 수요를 충당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만주를 제압하면 석탄,석유, 그리고 중국의 노동력도 이용 할 수 있고 게다가 러시아의 큰 전략 목표인 여순과 대련의 부동항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소련은 1973년 몇 차례에 걸쳐 만주에 침입하려고 했을 때 , 미국이 저지 하였다. 그렇지만 필자는 미국의 내부 혼란이나 소련의 군사력이 미국을 넘어 섰을때 만주 전역을 3일에서 1주일안에 제압 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그리고 KGB의 유력한 에이전트인 빅토르 루이스가 미국의 신문사에서 출판한 책을 근거로 소련 공산당의 만주,몽고,신강,티벳을 독립시켜 중국을 분할하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만주와 한반도의 운명
북한은 때때로 북경과 멀어
그러나 이러한 연극은 서독과의 화해에는 성공하였으나 그 반작용으로 중공이 미국과 일본에 접근 시키는 역효과도 낳았다.
1976년부터 1980년대까지를 기간으로 하는 제 10차 5개년 계획에서 소련은 여전히 석유개발과 정보산업의 육성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바이칼,아무르 철도의 건설에도 힘쓰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필자는 이 5개년 계획은 틀림없는 전시경제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1975년 서둘러 베트남에서 철수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다.
Ⅵ.북빙해의 지정학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거점
해상항로로서는 태평양이나 대서양보다 북빙양 쪽이 훨씬 더 넓은 감각적인 폭을 갖고 있다. 소련이 이 북빙양 항로에 비상한 열의와 노력을 기울여온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북빙양이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제정러시아시대부터 북빙양의 관심이 시작 되었으나 공산혁명 후의 소련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북빙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북빙양의 항해는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있어 왔다.
제 2차대전과 함께 북빙양의 중요성은 소련에 있어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되었다.군함은 물론 미국의 물자가 이 곳을 통해서 원조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 때 까지만 해도 북빙양의 항해는 상업적 면보다는 군사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67년 북빙양의 개방이 발표 되었을 때 일본은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북빙양의 이점은 가령 요꼬하마<->런던간의 수에즈 운하를 통하는 항해거리,항해기간, 비용면에서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빙양의 항해는 많은 난점이 지니고 있었다.
또한 소련에서 조차 북빙양 항로가 소련 전체의 교통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별로 크지 않다. 하지만 군사적인 면에서 보면 소련 해군이 자기 나라의 수로관리해면을 지나 무르만스크에서 극동으로 함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북빙양은 매우 중요한 루트이다.
1926년 4월 소련은 중앙집행위원회의 이름으로 <북극해에 발견대는 대륙 및 여러 섬중에서 소련 정부가 외국 영토라고 인정하는 것을 제외하고,소련방 북부연안의 동서 양단과 북극점을 연결하는 자오선이 이루는 부채꼴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은 모두 소련 영토이다.>라고 선언 하였다. 이것은 제정 러시아에서 선언한 것인데, 공산 소련이 다시 이를 확인한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항공기가 소련 전투기에 공격 받은 적도 있다.
필자는 북빙양횡단 항로와 동방항로, 두 항로의 최대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쓰가루 해협의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곳은 일본이 국제 정세에 따라 봉쇄를 할 수 있는 일본의 영해이다. 그러므로 소련은 쓰가루 해협의 완전한 자유항행을 확보하기 위해 훗까이도를 점령을 준비하고 있다. 필자의 주장대로 라면 소련은 훗까이도주민의 호적등본 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은 북방영토를 내놓으라고 외치기 보다는 훗까이도를 빼앗기지 않도록 물심 양면으로 착실히 준비해야 함을 강조한다. <쓰가루해협을 제압하는 자는 북해를 제압하고 북빙양 항로를 제압한다.>고 언급한다.
Ⅶ.동남아시아의 지정학
만주를 제압하는 자는 동북아시아를 제압한다.
필자는 만주지배를 전략상으로나 경제적으로 보아 동북아시아를 제압하는 절대조건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소련이 일단 만주를 제압하면 그것은 당연히 한반도의 제압과 연결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필자는 만주족의 중국 대륙 통일, 몽고제국 등이 만주에 근거를 둔 국력으로 동북아시아, 동아시아를 제압한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즉 <만주를 제압하는 자는 동북아시아를 제압한다.>는 지정학적 테제를 설명하면서 또한 일본이 만주국을 세워 만주를 완전히 자기 세력권내에 넣으려고 했을 때 미,중,소가 공동으로 일본을 규탄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소련이 만주를 지배한다면 어떠한 이득이 있을까? 가령 철도수송의 경우를 보면 소련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실은 화물은 현재 멀리 하바로프스크에서 홍안령의 북부를 돌아 이르쿠츠크로 향하고 있다. 만약 이 철도가 만주를 횡단하여 블라디보스톡에서 만주리 방면으로 곧장 빠지는 동지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면,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까지의 수송 루트는 크게 단축되며,수송량도 증대 될 것이다. 또한 소련이 만주를 제압한다면, 만주에 일본이 남겨둔 안산 제철소를 사용 할 수 있다. 이는 극동과 동시베리아의 철의 수요를 충당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만주를 제압하면 석탄,석유, 그리고 중국의 노동력도 이용 할 수 있고 게다가 러시아의 큰 전략 목표인 여순과 대련의 부동항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소련은 1973년 몇 차례에 걸쳐 만주에 침입하려고 했을 때 , 미국이 저지 하였다. 그렇지만 필자는 미국의 내부 혼란이나 소련의 군사력이 미국을 넘어 섰을때 만주 전역을 3일에서 1주일안에 제압 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그리고 KGB의 유력한 에이전트인 빅토르 루이스가 미국의 신문사에서 출판한 책을 근거로 소련 공산당의 만주,몽고,신강,티벳을 독립시켜 중국을 분할하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만주와 한반도의 운명
북한은 때때로 북경과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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