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서론
1)주제선정이유 및 연구방향
Ⅱ.본론
1) 데이문화의 정의
2) 데이문화의 종류 그리고 상업화로의 변질
① 발렌타인데이
② 크리스마스
③ 빼빼로 데이
④ 삼각김밥데이, 삼겹살데이
3) 공격적 데이마케팅의 양산
4) 사회학적 이론 적용
①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소비
② 롤프 옌센(Rolf Jensen)의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
③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소비사회
④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사회기호학적 관점
Ⅲ.결론
1) 상업화된 데이문화에 대한 고찰
2) 바람직한 데이 문화의 방향 제시
Ⅳ. 참고문헌
1)주제선정이유 및 연구방향
Ⅱ.본론
1) 데이문화의 정의
2) 데이문화의 종류 그리고 상업화로의 변질
① 발렌타인데이
② 크리스마스
③ 빼빼로 데이
④ 삼각김밥데이, 삼겹살데이
3) 공격적 데이마케팅의 양산
4) 사회학적 이론 적용
①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소비
② 롤프 옌센(Rolf Jensen)의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
③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소비사회
④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사회기호학적 관점
Ⅲ.결론
1) 상업화된 데이문화에 대한 고찰
2) 바람직한 데이 문화의 방향 제시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오면서 발렌타인데이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는 잊혀진 채, 단순히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이나 선물을 전하며 마음을 표현하는 날로 바뀌게 되었다. 그저 적당량의 초콜릿과 선물로 자신이 평소 흠모하던 남성에게 용기를 내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거나, 애인과 함께 평소와는 다르게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공식적인 날로 여겨지는 것이다.
한편, 발렌타인데이는 초콜릿 판매상들에게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이들은 00데이가 되면 어느 정도의 지출은 당연히 감수할 생각을 갖고 더 좋은, 더 많은 양의 선물을 주고, 또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러한 이익관계들이 맞물려 이제는 하나의 중요한 국민행사처럼 되어있다. 또한, 최근에는 그 범위가 더욱 확장되어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마트로 달려가 초콜릿을 준비하여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발렌타인데이의 의미를 연인들끼리의 사랑에 한정시키지 않고 있다.
②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의 고대 영어 Cristes maesse에서 유래되었다. 크리스마스 또는 성탄절은 대부분의 기독교가 기념하는 최대 축일로서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다. ‘예수 성탄 대축일’, ‘그리스도 탄신일’, ‘기독 탄신일’이라고도 한다. 매년 12월 25일이다. 로마 역서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336년경 로마에서 거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동방지역에서는 1월 6일에 하느님이 예수의 탄생과 세례 때 나타난 일을 기념했고, 예루살렘에서는 예수의 탄생만 기념했다. 4세기에는 동방교회 대부분이 점차 12월 25일에 그리스도의 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에서는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반대했으나, 결국 받아들였다. 아르메니아 교회에서는 12월 25일 대신 1월 6일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했다. 동방교회는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지키게 된 후 1월 6일은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는 주의공현대축일로 지켰다. 그러나 서방의 주의공현대축일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날을 기념하는 축일이었다.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는 로마의 이교(異敎)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이교축제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한 것이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 관습들은 이교도들이 한겨울에 벌이던 농사 및 태양 의식들과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기념이 합쳐져서 생겨났다. 로마 세계에서는 농경신 사투르누스를 기념하는 축일 \'사투르날리아\'(12.17)에 흥겹게 지내며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또한 이란 사람들은 12월 25일을 신비로운 신, 미트라(정의의 태양)의 탄생일로 생각했다. 로마력 설날(1. 1)에 사람들은 자기 집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했고, 자녀들과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 튜튼족이 갈리아, 브리튼, 중앙 유럽으로 침입해 들어오면서 게르만족과 켈트족의 크리스마스 축제 의식들이 이러한 관습들에 융합되었다. 음식과 교제, 크리스마스 이브에 벽난로에 때는 장작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푸른 젓나무, 선물과 인사 등이 이 축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되었다. 이교든 그리스도교든 겨울 축일은 언제나 따뜻함과 꺼지지 않는 생명을 상징하는 불과 연관되었다. 중세부터는 생존의 상징으로 상록수가 크리스마스와 연관되어왔다.
크리스마스의 대표적인 상징은 산타클로스와 트리, 트리 아래의 선물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1605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선물 교환은 고대 로마의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미국에서 일반화되었다. 그렇다면 산타클로스는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을까. 산타클로스(Santa Claus)라는 말은 A.D 3C 경 소아시아 지방 미라의 대 주교였던 세인트(성)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의 이름은 라틴어로 상투스 니콜라우스이다. 그는 살아생전 자선심이 지극히 많았던 사람으로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으며 사후에는 아이들과 항해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훗날 12월6일을 그의 축일로 지켰다. 성 니콜라스의 전설은 노르만족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12세기 초부터 프랑스의 수녀들에 의해 니콜라스 축일 하루전날인 12월5일 가난한 이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겨났다. 성 니콜라우스의 이 같은 미담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 니콜라우스라고 불렀는데 특히 A.D 17세기경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산테 클라스라고 불러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모델로 삼았다. 이 발음이 그대로 영어화 했고 A.D 19세기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현재의 산타클로스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처럼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로,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효시였으며, 본래 날렵하고 키가 큰 모습에서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은 토마스 나스트라는 19세기의 만화가가 20년 동안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면서 완성한 것이고, 현재처럼 빨간 옷을 입게 된 것은 1930년대의 일로,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 선전에 등장하고 난 뒤부터였다고 한다.
즉, 원래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던 크리스마스와는 무관한 인물이었으나 상업적인 캐릭터에 이용되면서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코카콜라는 비수기인 겨울철 매출확대를 위해 산타클로스를 활용한 마케팅을 하였고 그것이 지금 모두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이다. 예수의 탄생을 기리던 의미는 온데 간데 없고 코카콜라회사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인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사람들은 들뜬다. 백화점은 세일행사를 하고 케
그러나 현대에 오면서 발렌타인데이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는 잊혀진 채, 단순히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이나 선물을 전하며 마음을 표현하는 날로 바뀌게 되었다. 그저 적당량의 초콜릿과 선물로 자신이 평소 흠모하던 남성에게 용기를 내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거나, 애인과 함께 평소와는 다르게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공식적인 날로 여겨지는 것이다.
한편, 발렌타인데이는 초콜릿 판매상들에게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이들은 00데이가 되면 어느 정도의 지출은 당연히 감수할 생각을 갖고 더 좋은, 더 많은 양의 선물을 주고, 또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러한 이익관계들이 맞물려 이제는 하나의 중요한 국민행사처럼 되어있다. 또한, 최근에는 그 범위가 더욱 확장되어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마트로 달려가 초콜릿을 준비하여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발렌타인데이의 의미를 연인들끼리의 사랑에 한정시키지 않고 있다.
②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의 고대 영어 Cristes maesse에서 유래되었다. 크리스마스 또는 성탄절은 대부분의 기독교가 기념하는 최대 축일로서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다. ‘예수 성탄 대축일’, ‘그리스도 탄신일’, ‘기독 탄신일’이라고도 한다. 매년 12월 25일이다. 로마 역서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336년경 로마에서 거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동방지역에서는 1월 6일에 하느님이 예수의 탄생과 세례 때 나타난 일을 기념했고, 예루살렘에서는 예수의 탄생만 기념했다. 4세기에는 동방교회 대부분이 점차 12월 25일에 그리스도의 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에서는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반대했으나, 결국 받아들였다. 아르메니아 교회에서는 12월 25일 대신 1월 6일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했다. 동방교회는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지키게 된 후 1월 6일은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는 주의공현대축일로 지켰다. 그러나 서방의 주의공현대축일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날을 기념하는 축일이었다.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는 로마의 이교(異敎)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이교축제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한 것이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 관습들은 이교도들이 한겨울에 벌이던 농사 및 태양 의식들과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기념이 합쳐져서 생겨났다. 로마 세계에서는 농경신 사투르누스를 기념하는 축일 \'사투르날리아\'(12.17)에 흥겹게 지내며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또한 이란 사람들은 12월 25일을 신비로운 신, 미트라(정의의 태양)의 탄생일로 생각했다. 로마력 설날(1. 1)에 사람들은 자기 집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했고, 자녀들과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 튜튼족이 갈리아, 브리튼, 중앙 유럽으로 침입해 들어오면서 게르만족과 켈트족의 크리스마스 축제 의식들이 이러한 관습들에 융합되었다. 음식과 교제, 크리스마스 이브에 벽난로에 때는 장작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푸른 젓나무, 선물과 인사 등이 이 축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되었다. 이교든 그리스도교든 겨울 축일은 언제나 따뜻함과 꺼지지 않는 생명을 상징하는 불과 연관되었다. 중세부터는 생존의 상징으로 상록수가 크리스마스와 연관되어왔다.
크리스마스의 대표적인 상징은 산타클로스와 트리, 트리 아래의 선물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1605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선물 교환은 고대 로마의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미국에서 일반화되었다. 그렇다면 산타클로스는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을까. 산타클로스(Santa Claus)라는 말은 A.D 3C 경 소아시아 지방 미라의 대 주교였던 세인트(성)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의 이름은 라틴어로 상투스 니콜라우스이다. 그는 살아생전 자선심이 지극히 많았던 사람으로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으며 사후에는 아이들과 항해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훗날 12월6일을 그의 축일로 지켰다. 성 니콜라스의 전설은 노르만족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12세기 초부터 프랑스의 수녀들에 의해 니콜라스 축일 하루전날인 12월5일 가난한 이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겨났다. 성 니콜라우스의 이 같은 미담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 니콜라우스라고 불렀는데 특히 A.D 17세기경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산테 클라스라고 불러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모델로 삼았다. 이 발음이 그대로 영어화 했고 A.D 19세기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현재의 산타클로스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처럼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로,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효시였으며, 본래 날렵하고 키가 큰 모습에서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은 토마스 나스트라는 19세기의 만화가가 20년 동안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면서 완성한 것이고, 현재처럼 빨간 옷을 입게 된 것은 1930년대의 일로,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 선전에 등장하고 난 뒤부터였다고 한다.
즉, 원래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던 크리스마스와는 무관한 인물이었으나 상업적인 캐릭터에 이용되면서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코카콜라는 비수기인 겨울철 매출확대를 위해 산타클로스를 활용한 마케팅을 하였고 그것이 지금 모두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이다. 예수의 탄생을 기리던 의미는 온데 간데 없고 코카콜라회사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인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사람들은 들뜬다. 백화점은 세일행사를 하고 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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