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된 역사에 보도 블럭이 깔려있고 많은 차들이 오고 가는 분주한 역사다. 이 곳 어디에 사체가 있었을지 짐작할 수도 없다. 이 곳에서 사체를 발견했던 시민은 어떠했을까 ? 내 곁에서 나와 같이 소리치며 저항하던 친구가 총에 맞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에게는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 지금 그 당시의 이 곳은 전쟁터와 같은 지옥이라 생각했을 것 이다. 어찌 분노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 소리를 높이며 계엄군에게로 뛰어갔을지 모른다. 그들이 악마처럼 보였겠지. 분명 복받치는 증오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투쟁을 하고 있는지 잠시 망각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전쟁으로 다가왔을 테니까. 계엄군은 악마같은 적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도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내렸는지 모른다. 죽어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눈물이 광주역 광장을 적시었을 것이다.
이 곳에 와서 수정되었던 경로가 바로 지금 가고 있는 국립 5.18 민주 묘지이다. 이 답사의 시작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를 위해 피를 흘리신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그 분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 도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현대사 수업을 들으며 내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바로 이 곳을 향하게 한 것이다. 그 전까지는 그저 그 사건의 총체적 지식을 얻기위한 공부뿐이었다. 단지 사실만을 좇아 이차원적인 사고의 저변을 넓히려고만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사고의 공간이 생겼다. 내가 가장 크게 얻고 보람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예전같으면 묘지를 굳이 찾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국립 묘지를 향하던 중 그 길목에 있는 전남대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5.18 광주
민주 운동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자 가장 격렬하게 항쟁한 시민이었던 전남대 학생들의 보금자리인 곳이 전남대학교이다.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학생들은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생들 은 모두 황당한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 었다. 진리의 상아탑인 이곳에 공권력이라 니. 그것도 총을 든 군인들의 전남대의 점령 은 지성인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다. 수민이는 군인들의 모습에 겁을 집어 먹었 다. 공부하고 있던 책도 챙기지 못 했다. 내 년, 졸업하기 전에 임용고시에 합격하기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수민이었다. 군인들은 주위에 반항하던 남학우들에게 곤봉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수민이는 꺅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한 군인이 다가와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갑자기 아찔하면서도 너무나 큰 두려움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을 잃은 수민이는 한 강의실에 갇혔다. 갇힌 곳엔 다른 학우들이 주위에서 쭈구려 앉아 있었다. 이 곳에서 어서 벗어나고픈 생각 뿐이었다. 다른 열람실에서 공부하던 수민이의 남자 친구인 우성이는 수민이의 목소리에 밖으로 달려 나갔다. 군인들의 틈 속에서 수민이가 피를 흘리며 끌려가고 있었다. 우성이는 눈이 뒤집혔다. 군인들을 밀치고 수민이에게 달려갔다. 어디선가 날라온 곤봉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바닥에 쓰러진 자신을 발견했다. ‘ 아. 수민이 ’ 우성이는 수민이를 찾아 정문 앞으로 나갔다. 200여명의 학생들과 군인들이 서로 대치 상태에 있었다. 학생들은 군인들의 만행에 분노에 차 있었다. 우성이는 수민이가 걱정이 되어 학교를 돌며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나. ’ 내가 오기 전에 따랐던 새내기들이 생각났다. 도대체 저 자식은 무슨 생각으로 학생들을 개머리판으로 때리는 것인가. 나는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다. 철모를 좀 더 내려썼다. 얼굴에 검은 물감을 더 진하게 발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부반 애들을 따라다니면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옆에 있던 선임관은 소리소리치며 병장들을 조인다. 장전된 총을 들고 있으니 다들 미쳐버린 것만 같다. 그 착하던 김상병도 소리지르며 공부하던 학생들을 곤봉으로 내리치며 내쫓는다. “ 김상병님. 왜 그러십니까.” “ 야! 이 새끼야! 너 죽고 싶어. 이 새끼들 다 빨갱이야.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놈들이라구. ” 머리에 피를 흘리며 지나가는 저 연약한 여학우가 과연 나를 죽이려 했던 것일까.
학교를 돌면서 난 이런저런 그 당시 상황의 공상에 잠겨있었다. 진압 중 죽인 학생들과 시민들을 전남대 에 묻었다고 하는데 혹시 그 곳이 여기가 아닐까 하 며 자세히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 과 자유에 대한 투쟁을 위해 모였던 학우들의 열정. 진리를 행하기 위한 진정한 앎의 실천. 이들이 배운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개척 정신이 이들을 이 곳 전남 대에 모여들게 했을 것이다.
전남대학교 5.18 기념관에도 들렸으나 마침 새로운 개관을 위해 공사 중이었다. 다가오는 5.18을 맞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고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 른 곳으로의 이동을 위해전남 대학교 정문으로 향한다.
나오는 길에 보이는 전남대 학우들의 밝은 모습이 보였다. 순수하면서도 이쁘고 환한 모습들의 학생들은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서로 바라보며 웃으며 걷고 있었다. 어쩌면 이들의 선배인 그들은 이들의 이런 밝은 후배들의 모습을 위해 목숨을 받쳐 항 쟁한 것이 아닌지.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보 물은 이런 미래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어여쁜 이들은 그것을 알고 있을까 ?
우리는 광주교도소를 지나 국립 5.18묘지로 향했다. 교도소 역시 5.18 사적지에 들어갔으나 차를 세울 곳도 없었고 들어갈 수도 없어서 곁에서 잠시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곳은 항쟁 당시 잡아들였던 시민들을 가두어 두었다고 한다. 그 수가 헤어릴 수 없으나 몇 천명은 됐다고 한다. 무척이나 낡아 보이는 교도소는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아서 500명 정도면 가득 찰 것 같은 수용소였다. 그 당시 이 곳에 수감되어있던 절도나 강도범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시위를 한다는 명분으로 이렇게 사람들이 반 죽은 상태로 끌려오는데 ‘우리 같이 죄 지은 사람들은 얼마나 더 심한 벌을 줄 것인가.’ 많은 걱정이
이 곳에 와서 수정되었던 경로가 바로 지금 가고 있는 국립 5.18 민주 묘지이다. 이 답사의 시작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를 위해 피를 흘리신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그 분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 도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현대사 수업을 들으며 내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바로 이 곳을 향하게 한 것이다. 그 전까지는 그저 그 사건의 총체적 지식을 얻기위한 공부뿐이었다. 단지 사실만을 좇아 이차원적인 사고의 저변을 넓히려고만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사고의 공간이 생겼다. 내가 가장 크게 얻고 보람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예전같으면 묘지를 굳이 찾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국립 묘지를 향하던 중 그 길목에 있는 전남대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5.18 광주
민주 운동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자 가장 격렬하게 항쟁한 시민이었던 전남대 학생들의 보금자리인 곳이 전남대학교이다.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학생들은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생들 은 모두 황당한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 었다. 진리의 상아탑인 이곳에 공권력이라 니. 그것도 총을 든 군인들의 전남대의 점령 은 지성인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다. 수민이는 군인들의 모습에 겁을 집어 먹었 다. 공부하고 있던 책도 챙기지 못 했다. 내 년, 졸업하기 전에 임용고시에 합격하기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수민이었다. 군인들은 주위에 반항하던 남학우들에게 곤봉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수민이는 꺅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한 군인이 다가와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갑자기 아찔하면서도 너무나 큰 두려움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을 잃은 수민이는 한 강의실에 갇혔다. 갇힌 곳엔 다른 학우들이 주위에서 쭈구려 앉아 있었다. 이 곳에서 어서 벗어나고픈 생각 뿐이었다. 다른 열람실에서 공부하던 수민이의 남자 친구인 우성이는 수민이의 목소리에 밖으로 달려 나갔다. 군인들의 틈 속에서 수민이가 피를 흘리며 끌려가고 있었다. 우성이는 눈이 뒤집혔다. 군인들을 밀치고 수민이에게 달려갔다. 어디선가 날라온 곤봉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바닥에 쓰러진 자신을 발견했다. ‘ 아. 수민이 ’ 우성이는 수민이를 찾아 정문 앞으로 나갔다. 200여명의 학생들과 군인들이 서로 대치 상태에 있었다. 학생들은 군인들의 만행에 분노에 차 있었다. 우성이는 수민이가 걱정이 되어 학교를 돌며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나. ’ 내가 오기 전에 따랐던 새내기들이 생각났다. 도대체 저 자식은 무슨 생각으로 학생들을 개머리판으로 때리는 것인가. 나는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다. 철모를 좀 더 내려썼다. 얼굴에 검은 물감을 더 진하게 발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부반 애들을 따라다니면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옆에 있던 선임관은 소리소리치며 병장들을 조인다. 장전된 총을 들고 있으니 다들 미쳐버린 것만 같다. 그 착하던 김상병도 소리지르며 공부하던 학생들을 곤봉으로 내리치며 내쫓는다. “ 김상병님. 왜 그러십니까.” “ 야! 이 새끼야! 너 죽고 싶어. 이 새끼들 다 빨갱이야.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놈들이라구. ” 머리에 피를 흘리며 지나가는 저 연약한 여학우가 과연 나를 죽이려 했던 것일까.
학교를 돌면서 난 이런저런 그 당시 상황의 공상에 잠겨있었다. 진압 중 죽인 학생들과 시민들을 전남대 에 묻었다고 하는데 혹시 그 곳이 여기가 아닐까 하 며 자세히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 과 자유에 대한 투쟁을 위해 모였던 학우들의 열정. 진리를 행하기 위한 진정한 앎의 실천. 이들이 배운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개척 정신이 이들을 이 곳 전남 대에 모여들게 했을 것이다.
전남대학교 5.18 기념관에도 들렸으나 마침 새로운 개관을 위해 공사 중이었다. 다가오는 5.18을 맞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고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 른 곳으로의 이동을 위해전남 대학교 정문으로 향한다.
나오는 길에 보이는 전남대 학우들의 밝은 모습이 보였다. 순수하면서도 이쁘고 환한 모습들의 학생들은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서로 바라보며 웃으며 걷고 있었다. 어쩌면 이들의 선배인 그들은 이들의 이런 밝은 후배들의 모습을 위해 목숨을 받쳐 항 쟁한 것이 아닌지.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보 물은 이런 미래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어여쁜 이들은 그것을 알고 있을까 ?
우리는 광주교도소를 지나 국립 5.18묘지로 향했다. 교도소 역시 5.18 사적지에 들어갔으나 차를 세울 곳도 없었고 들어갈 수도 없어서 곁에서 잠시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곳은 항쟁 당시 잡아들였던 시민들을 가두어 두었다고 한다. 그 수가 헤어릴 수 없으나 몇 천명은 됐다고 한다. 무척이나 낡아 보이는 교도소는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아서 500명 정도면 가득 찰 것 같은 수용소였다. 그 당시 이 곳에 수감되어있던 절도나 강도범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시위를 한다는 명분으로 이렇게 사람들이 반 죽은 상태로 끌려오는데 ‘우리 같이 죄 지은 사람들은 얼마나 더 심한 벌을 줄 것인가.’ 많은 걱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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