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언
2. 대통사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
3. 대통사에 대한 기록과 그 해석
4. 대통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 대통사의 건립 주체에 대한 논란
나. 대통사의 건립 목적과 시기에 대한 논란
5. 결어
2. 대통사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
3. 대통사에 대한 기록과 그 해석
4. 대통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 대통사의 건립 주체에 대한 논란
나. 대통사의 건립 목적과 시기에 대한 논란
5. 결어
본문내용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버지인 무령왕의 왕릉 조성완료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들의 탄생이다. 무령왕릉이 완성되어 시신이 능(陵)에 안치된 것은 무령왕이 죽은지 3년이 지난 525년의 일이다. 또한 「일본서기」에 따르면 성왕의 아들인 위덕왕이 태어난 시기도 525년이다.
백제의 왕자 여창은(明王[성왕]의 子, 위덕왕이다) 나라 안의 군사 전부를 일으켜 고구려에 가서 백합야에 요새를 쌓고 병사와 침식을 같이하였다. … (고구려 장수가 나와서 말하기를) “부하들이 말하기를 ‘우리 들판에 손님이 왔다’라고 하였다. 마중하여 예로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원컨대 나와 예로써 응답하는 사람의 성명, 나이, 지위를 속히 말하시오”라고 하였다. 여창이 대답하여, “성은 (고구려와) 동성이고, 지위는 간솔, 나이는 29세”라고 말하였다.
(日本書紀 흠명기 14년 동10월조)
「일본서기」의 흠명기 14년은 553년이다. 이때 위덕왕의 나이가 29세이므로 그가 태어난 시기는 정확히 525년이 된다. 아버지의 무덤 안치와 아들의 탄생... 이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는 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해에 사찰을 짓는다면 천하에 왕의 효심과 자식애를 알릴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부처의 힘을 빌려 취임 초기의 왕권안정을 기원할 수도 있다. 따라서 대통사는 525년에 성왕에 의해서 아버지인 무령왕과 아들인 위덕왕을 축복하기위해서 건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결어
대통사는 지금까지 생각되어 왔었던 것처럼 양나라 무제를 위한 절이 아니었다. 백제 성왕은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영예를 위해서 절을 지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기존의 사가들은 너무나도 쉽게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켜왔다. 한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의 왕을 위해서 기념물을 지어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주권의 포기와 다름없다. 당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하겠다는 사랑의 서약과 같다. 아무리 오래전의 백제라고 할지라도 그 국가는 분명히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의 역사를 서술하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쉽게 중국에 종속적인 태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스스로의 민족정체성까지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를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면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오바마를 위해서 교회를 건립하겠다고 선언을 한다면 어떠하겠는가? 너무나도 민족을 사랑하는 나머지 역사를 편향되게 봐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 스스로 역사를 수동적으로 이해할 필요도 없다. 아니 오히려 모든 국가의 역사가 자국중심적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약간은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진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백제의 성왕(聖王)은 지혜와 식견이 영명하고 매사에 과단성이 있는 그야말로 성왕(聖王)이었다. 그는 백제의 중앙통치조직(5부제와 22부사제)과 지방통치조직(5방제)을 정비하고 신라와 힘을 합해 한강유역을 회복하는 등의 업적을 이루었다. 이런 그를 양나라 무제를 떠받들지 못해서 안달하는 그 누구와 같이 생각한다면 커다란 불경이 아닐 수 없다.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아무나가 되어야만 한다.
<참고문헌>
일연. 김원중 역. 삼국유사. 민음사. 2008.
조경철. 「백제 성왕대 대통사 창건의 사상적 배경」. 국사관논총 제98집. 국사편찬위원회. 2002.
조경철. 「백제 사택지적비에 나타난 불교신앙」. 역사와현실 통권52호. 한국역사연구회. 2004.
조경철. 「백제불교사의 전개와 정치변동」. 역사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05.
백제의 왕자 여창은(明王[성왕]의 子, 위덕왕이다) 나라 안의 군사 전부를 일으켜 고구려에 가서 백합야에 요새를 쌓고 병사와 침식을 같이하였다. … (고구려 장수가 나와서 말하기를) “부하들이 말하기를 ‘우리 들판에 손님이 왔다’라고 하였다. 마중하여 예로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원컨대 나와 예로써 응답하는 사람의 성명, 나이, 지위를 속히 말하시오”라고 하였다. 여창이 대답하여, “성은 (고구려와) 동성이고, 지위는 간솔, 나이는 29세”라고 말하였다.
(日本書紀 흠명기 14년 동10월조)
「일본서기」의 흠명기 14년은 553년이다. 이때 위덕왕의 나이가 29세이므로 그가 태어난 시기는 정확히 525년이 된다. 아버지의 무덤 안치와 아들의 탄생... 이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는 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해에 사찰을 짓는다면 천하에 왕의 효심과 자식애를 알릴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부처의 힘을 빌려 취임 초기의 왕권안정을 기원할 수도 있다. 따라서 대통사는 525년에 성왕에 의해서 아버지인 무령왕과 아들인 위덕왕을 축복하기위해서 건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결어
대통사는 지금까지 생각되어 왔었던 것처럼 양나라 무제를 위한 절이 아니었다. 백제 성왕은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영예를 위해서 절을 지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기존의 사가들은 너무나도 쉽게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켜왔다. 한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의 왕을 위해서 기념물을 지어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주권의 포기와 다름없다. 당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하겠다는 사랑의 서약과 같다. 아무리 오래전의 백제라고 할지라도 그 국가는 분명히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의 역사를 서술하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쉽게 중국에 종속적인 태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스스로의 민족정체성까지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를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면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오바마를 위해서 교회를 건립하겠다고 선언을 한다면 어떠하겠는가? 너무나도 민족을 사랑하는 나머지 역사를 편향되게 봐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 스스로 역사를 수동적으로 이해할 필요도 없다. 아니 오히려 모든 국가의 역사가 자국중심적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약간은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진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백제의 성왕(聖王)은 지혜와 식견이 영명하고 매사에 과단성이 있는 그야말로 성왕(聖王)이었다. 그는 백제의 중앙통치조직(5부제와 22부사제)과 지방통치조직(5방제)을 정비하고 신라와 힘을 합해 한강유역을 회복하는 등의 업적을 이루었다. 이런 그를 양나라 무제를 떠받들지 못해서 안달하는 그 누구와 같이 생각한다면 커다란 불경이 아닐 수 없다.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아무나가 되어야만 한다.
<참고문헌>
일연. 김원중 역. 삼국유사. 민음사. 2008.
조경철. 「백제 성왕대 대통사 창건의 사상적 배경」. 국사관논총 제98집. 국사편찬위원회. 2002.
조경철. 「백제 사택지적비에 나타난 불교신앙」. 역사와현실 통권52호. 한국역사연구회. 2004.
조경철. 「백제불교사의 전개와 정치변동」. 역사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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