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정하면 어떤 지원자도 이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으며, 그 기준에 내가 부합하는지 판단한 뒤에 그에 걸맞은 합법적 기대를 품게 된다. 즉 입학허가는 뛰어난 능력이나 미덕을 포상하는 영광스러운 절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입학허가가 정당한 경우는 대학이 정한 사회적 목적에 부합할 때뿐이다.
인종분리정책과 반유대적 할당제 : 입학정책의 공정성이 학교 사면에만 달렸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1920~30년대의 반유대적 할당제를 보자. 22년 하버드 총장은 반유대주의를 누그러뜨린다는 명목으로 유대인 입학을 12%로 제한하는 안을 제시했다. 대학이 입학기준을 정하면서 특정 인종을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식으로 인종차별조치를 취할 경우 이를 비난할 수 있을까? 특정인종을 배대하는 행위와 소수집단우대정책에서 특정인종을 포함하는 행위 사이에 원칙적 차이가 있는가? 가장 분명한 답은, 이 경우는 특정 인종을 열등의 상징으로 이용한 반면, 오늘날의 인종우대는 누구를 부정적으로 낙인찍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분명 도덕적 요소가 담겼다.
백인 우대 정책? : 다양성 논리에 따라 백인을 우대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스타렛 시티에서는 편견이나 경멸이 아니라 인종적 한계점이론(주민통합이 깨지는 한계점을 피하면서 인종적으로 다양한 공동체)에 근거해 입주자 조절 정책을 실시하였다. 즉 백인 신청자에게 공동체 통합이라는 목표에 근거한 할당제로 혜택을 주는 것이다. 여기에 소수집단우대정책을 지지하는 다양성 논리를 인정한다면 부당하지 않다. 그러나 공정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두 경우는 같은 부류이다.
정의는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 : 도덕적 자격을 분배 정의의 기초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솔깃하면서도 불안하다. 솔깃한 이유는 능력위주사회에서 나타나는 사고방식을 허물기 때문이다. 반대로 불안한 이유는 열심히 일하고 규칙을 따르는 사람은 앞서갈 자격이 있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이러한 확신은 집착하면 뒤처진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줄기 때문에 사회결속에 걸림돌이 된다. 이처럼 성공을 미덕에 대한 포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그릇된 통념이다. 행운의 도덕적 임의성에 대한 롤즈의 주장은 그 믿음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자격논쟁에서 정의논의를 분리하기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선 정의는 흔히 영광과 관계된다. 누가 무엇을 갖는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영광과 포상을 얻는 데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둘째, 사회조직이 자체적으로 사명을 결정한 뒤에야 비로소 무엇이 능력으로 인정받는지 정해진다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 즉 각종 조직의 사명은 멋대로 정할 수 없다.
대학이 경매로 입학생을 뽑아도 될까? : 소수집단우대정책을 둘러싼 또 다른 논쟁인 유산우대논쟁을 생각해보자. 기여 입학생 제도를 확대해 대학이 입학정원의 10%를 경매에 부쳐 높은 가격을 부른 입찰자에게 입학을 허가한다고 상상해보자. 이는 대학 전체의 이익에 기여한다. 그러나 거절된 학생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학이 정한 사명에 따른 기준으로 판단된다면 공정성은 확보된다. 그러나 이 기준은 너무 허술하다. 경매와 관련해 눈살이 찌푸려진 이유는 지원자의 기회보다 대학의 청렴성과 관련이 깊다. 대학의 일차목적은 상업적인 거래가 아니라 교육과 연구로 공동선에 기여하는 것이다.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영광과 미덕의 문제에서 분리하기 힘든 이유 또한 그것이다.
8강.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아리스토텔레스
캘리는 뇌성마비를 앓아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인기 있는 응원단원이다. 그러나 시즌이 끝나면서 응원단에서 방출되는 신세가 되었다. 캘리의 안전이 우려되며, 다른 단원처럼 엄격한 체조훈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는 공정성 질문이다. 응원단원 자격을 갖추려면 반드시 체조를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의 한 가지는 비차별 원칙에 기대는 것이다. 즉 캘리가 제 역할만 잘 해낸다면 제외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답은 큰 도움이 못된다. 뛰어난 단원이 되려면 엄격한 체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분노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학부모의 분노는 캘 리가 자격도 없으면서 영광을 누린다는 생각에서 나왔을지 모른다. 캘 리가 장애는 있지만 등원단원에게 필요한 미덕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응원단원이 될 수 있다면 다른 단원이 누리는 영광이 어느 정도 위협 받는 것이 분명하다.
이 두 질문의 공정성과 영광과 분노의 연관성을 생각해보자. 공정한 방법을 정하기 위해서는 응원의 본질과 목적을 결정해야한다.
정의, 텔로스, 영광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철학의 핵심은 두 가지 인데, 캘리 논란에서 이 두 가지가 드러난다. 하나는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정의는 영광을 안겨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정치학을 이해하는 관건은 그 둘의 무게와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는 정의에 관한 논쟁은 영광, 미덕, 좋은 삶의 본질에 대한 논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는 능력에 때라, 우수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ex. 플루트) 재화의 목적에서 그 재화의 적절한 분배에 이르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추론방식은 목적론적 추론의 예를 보여준다. 그는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려면 재화의 텔로스, 즉 목적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목적론적 사고 : 테니스코트와 <곰돌이 푸> : 고대에는 오늘날보다 목적론적 사고가 더 흔했다. 그러나 근대 과학이 출현하면서 자연을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로 인식하는 기계론적 사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학이 목적론적 사고를 거부하자, 정치와 도덕도 그러한 사고를 거부하려 든다. 그러나 사회조직과 정치행위를 생각할 때 목적론적 추론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대학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 텔로스는 대개 명확하지 않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학은 학업성취가능성이나 다양성이 존중되는 등이 있을 수 있다.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는 대개 사회조직의 목적, 즉 텔로스에 관한 논의이며 텔로스 논의는 사회조직이 어떤
인종분리정책과 반유대적 할당제 : 입학정책의 공정성이 학교 사면에만 달렸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1920~30년대의 반유대적 할당제를 보자. 22년 하버드 총장은 반유대주의를 누그러뜨린다는 명목으로 유대인 입학을 12%로 제한하는 안을 제시했다. 대학이 입학기준을 정하면서 특정 인종을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식으로 인종차별조치를 취할 경우 이를 비난할 수 있을까? 특정인종을 배대하는 행위와 소수집단우대정책에서 특정인종을 포함하는 행위 사이에 원칙적 차이가 있는가? 가장 분명한 답은, 이 경우는 특정 인종을 열등의 상징으로 이용한 반면, 오늘날의 인종우대는 누구를 부정적으로 낙인찍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분명 도덕적 요소가 담겼다.
백인 우대 정책? : 다양성 논리에 따라 백인을 우대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스타렛 시티에서는 편견이나 경멸이 아니라 인종적 한계점이론(주민통합이 깨지는 한계점을 피하면서 인종적으로 다양한 공동체)에 근거해 입주자 조절 정책을 실시하였다. 즉 백인 신청자에게 공동체 통합이라는 목표에 근거한 할당제로 혜택을 주는 것이다. 여기에 소수집단우대정책을 지지하는 다양성 논리를 인정한다면 부당하지 않다. 그러나 공정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두 경우는 같은 부류이다.
정의는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 : 도덕적 자격을 분배 정의의 기초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솔깃하면서도 불안하다. 솔깃한 이유는 능력위주사회에서 나타나는 사고방식을 허물기 때문이다. 반대로 불안한 이유는 열심히 일하고 규칙을 따르는 사람은 앞서갈 자격이 있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이러한 확신은 집착하면 뒤처진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줄기 때문에 사회결속에 걸림돌이 된다. 이처럼 성공을 미덕에 대한 포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그릇된 통념이다. 행운의 도덕적 임의성에 대한 롤즈의 주장은 그 믿음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자격논쟁에서 정의논의를 분리하기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선 정의는 흔히 영광과 관계된다. 누가 무엇을 갖는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영광과 포상을 얻는 데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둘째, 사회조직이 자체적으로 사명을 결정한 뒤에야 비로소 무엇이 능력으로 인정받는지 정해진다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 즉 각종 조직의 사명은 멋대로 정할 수 없다.
대학이 경매로 입학생을 뽑아도 될까? : 소수집단우대정책을 둘러싼 또 다른 논쟁인 유산우대논쟁을 생각해보자. 기여 입학생 제도를 확대해 대학이 입학정원의 10%를 경매에 부쳐 높은 가격을 부른 입찰자에게 입학을 허가한다고 상상해보자. 이는 대학 전체의 이익에 기여한다. 그러나 거절된 학생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학이 정한 사명에 따른 기준으로 판단된다면 공정성은 확보된다. 그러나 이 기준은 너무 허술하다. 경매와 관련해 눈살이 찌푸려진 이유는 지원자의 기회보다 대학의 청렴성과 관련이 깊다. 대학의 일차목적은 상업적인 거래가 아니라 교육과 연구로 공동선에 기여하는 것이다.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영광과 미덕의 문제에서 분리하기 힘든 이유 또한 그것이다.
8강.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아리스토텔레스
캘리는 뇌성마비를 앓아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인기 있는 응원단원이다. 그러나 시즌이 끝나면서 응원단에서 방출되는 신세가 되었다. 캘리의 안전이 우려되며, 다른 단원처럼 엄격한 체조훈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는 공정성 질문이다. 응원단원 자격을 갖추려면 반드시 체조를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의 한 가지는 비차별 원칙에 기대는 것이다. 즉 캘리가 제 역할만 잘 해낸다면 제외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답은 큰 도움이 못된다. 뛰어난 단원이 되려면 엄격한 체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분노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학부모의 분노는 캘 리가 자격도 없으면서 영광을 누린다는 생각에서 나왔을지 모른다. 캘 리가 장애는 있지만 등원단원에게 필요한 미덕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응원단원이 될 수 있다면 다른 단원이 누리는 영광이 어느 정도 위협 받는 것이 분명하다.
이 두 질문의 공정성과 영광과 분노의 연관성을 생각해보자. 공정한 방법을 정하기 위해서는 응원의 본질과 목적을 결정해야한다.
정의, 텔로스, 영광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철학의 핵심은 두 가지 인데, 캘리 논란에서 이 두 가지가 드러난다. 하나는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정의는 영광을 안겨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정치학을 이해하는 관건은 그 둘의 무게와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는 정의에 관한 논쟁은 영광, 미덕, 좋은 삶의 본질에 대한 논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는 능력에 때라, 우수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ex. 플루트) 재화의 목적에서 그 재화의 적절한 분배에 이르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추론방식은 목적론적 추론의 예를 보여준다. 그는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려면 재화의 텔로스, 즉 목적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목적론적 사고 : 테니스코트와 <곰돌이 푸> : 고대에는 오늘날보다 목적론적 사고가 더 흔했다. 그러나 근대 과학이 출현하면서 자연을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로 인식하는 기계론적 사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학이 목적론적 사고를 거부하자, 정치와 도덕도 그러한 사고를 거부하려 든다. 그러나 사회조직과 정치행위를 생각할 때 목적론적 추론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대학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 텔로스는 대개 명확하지 않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학은 학업성취가능성이나 다양성이 존중되는 등이 있을 수 있다.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는 대개 사회조직의 목적, 즉 텔로스에 관한 논의이며 텔로스 논의는 사회조직이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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