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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인으로 대표되는 도교, 그리고 네스토리우스파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와 사교로 규정되어 송 대에 탄압을 받았던 마니교 등 수많은 종교가 원의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정책을 틈타 사상 유래 없는 번성을 보였다. 다만 유교만은 예외적인 것으로 탄압을 받았는데, 원에 마지막까지 저항한 남송 왕조의 국가 이념이 바로 유교가 아니었나 싶다. 유학과 유학자를 가장 쓸모없는 존재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유교에 대한 원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잘 드러나고 있다.
이는 인적 교류라는 측면에서 볼 때 참으로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당 왕조를 제외한 중국 역대 왕조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대외 관계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는 인적 교류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왕조마다 서너 차례의 사신 교류와 장건의 서역 경략 등 극히 일부분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는 정치적 목적 등을 띠고 있어 목적이 달성되면 바로 중단되곤 했다. 그러나 원나라 시기는 그 개방성으로 인해 가장 활발한 인적 교류를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여행기가 바로 이 시기에 쓰여 졌고, 수많은 여행자들과 사신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원과 서양에 오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서방의 여행자들이 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원을 찾은 유럽인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서방 정벌이 멈추고 세계 제국으로써의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한 원은 서방에서 온 기독교도인 유럽인들에게 비교적 관용적이었다. 따라서 교황과 원의 황제 간에 공식 사절이 파견되기도 하였고, 폴로 일가와 같이 원에 중용되기도 했다. 서양의 입장에서도 사절의 파견을 통해 기독교 국가에 대한 몽골군의 진공을 중지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원에 의해 실크로드가 안정된 후에는 약 2백년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의 완패로 인해 아유브 왕조로 대표되는 아랍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동방의 강력한 대제국 원의 힘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이들과 화친을 도모하기 위해 사신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들은 종교에 관용적인 원에 큰 기대를 걸고 원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원의 상층부 계급을 전도하고 동방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여정을 도모했다.
또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적 탐구를 목적으로 이질문명권을 넘나들면서 문명의 구석구석을 탐지하고 고지하는 여행가들에 의한 교류도 크게 한몫을 한다. 이들은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을 통해 문물을 소개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원 시기에는 수많은 여행기들이 저술됨에 따라 당시의 생활상과 문물, 그리고 이방인의 눈으로 본 원나라의 풍경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의 특징은 ①세계에서 120여종의 사본이 돌고 있을 정도로 난립해 있는 『동방견문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우리말로 번역한 최상의 ‘완역결정본’이다.
②원본을 복원한다는 취지 아래 번역했다. 설사 잘못된 인명이나 지명 등도 원문(F본)대로 쓰고 그리하여 『동방견문록』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지명·인명 등의 혼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③자세한 주석을 붙여 『동방견문록』의 세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은 이러한 사실들을 주석을 통해 세세하게 설명하여 누구든지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④마르코 폴로의 생애와 『동방견문록』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해설을 실음으로써 마르코 폴로의 관점을 십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가 여러모로 기독교인이고, 그의 시각도 기독교인의 입장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당시 유럽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마르코 폴로가 유럽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단으로 몰릴 만큼 유연한 종교적·사상적 태도를 취했음을 보여준다.
⑤120여종의 사본 중에서 중요한 사본들에 대해 소개하고, 그 사본 중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각주를 통해서 밝혔다. 아울러 『동방견문록』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여러 역사서의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⑥흔히 제기되는 의문점들을 설득력 있게 정리하였다.
평가 김호동교수는 그러나 이것들이 마르코 폴로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니며, 다만 ‘진실이라고 들은’ 그대로를 옮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런 논쟁이 거의 7세기 동안 계속된 결과, 마르코의 평판은 극적인 부침을 겪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천재이며, 가장 양심적인 관찰자이고, 쿠빌라이칸의 궁정에서 출세한 관리이자 위대한 몽골족 통치자들이 다스리는 범세계적 아시아에 정통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를 제 자랑만 늘어놓고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허풍쟁이, 항구와 시장에 떠도는 소문을 그대로 믿는 떠돌이, 교양이나 상상력이 거의 없고 유머 감각은 전혀 없는 인물로 여겼으며, 특히 중국의 만리장성과 차(茶), 극동 지방의 표의문자에 대해 그가 언급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좀 더 균형 잡힌 견해를 가지려면 많은 요소들, 특히 원문에 얽힌 문제와 중세의 세계관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근대의 학문과 연구는 그의 작품에 새로운 깊이와 넓이를 주었다. 마르코가 남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는 대부분 근거가 없거나 왜곡되어 있지만, 직접 보고 들은 것은 충실하게 보고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어쨌든 마르코의 설명은 중세인들의 마음에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었다. 서양의 지평선이 넓어짐에 따라 마르코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졌다. 일본에 대한 묘사는 1492년에 저물어가는 해를 향하여 여행을 떠난 콜럼버스에게 뚜렷한 목표를 설정해주었고, 향신료 생산 지점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서양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역을 찾아나서 향신료 교역에서 오랫동안 계속된 아랍 상인들의 독점 상태를 깨뜨리도록 고무했다. 마르코 폴로가 기록한 풍성한 새로운 지리적 정보는 유럽인들이 대규모로 대양을 항해한 15세기말과 16세기에 널리 이용되었다.
<참고문헌>
르네 그루쎄 저, 김호동 외 역주,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2005
양승윤 외 공저, 바다의 실크로드, 청아출판사, 2006
스기야마 마사야키 저, 임대희 외 옮김, 몽골-세계제국, 신서원, 2002
이는 인적 교류라는 측면에서 볼 때 참으로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당 왕조를 제외한 중국 역대 왕조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대외 관계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는 인적 교류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왕조마다 서너 차례의 사신 교류와 장건의 서역 경략 등 극히 일부분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는 정치적 목적 등을 띠고 있어 목적이 달성되면 바로 중단되곤 했다. 그러나 원나라 시기는 그 개방성으로 인해 가장 활발한 인적 교류를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여행기가 바로 이 시기에 쓰여 졌고, 수많은 여행자들과 사신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원과 서양에 오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서방의 여행자들이 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원을 찾은 유럽인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서방 정벌이 멈추고 세계 제국으로써의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한 원은 서방에서 온 기독교도인 유럽인들에게 비교적 관용적이었다. 따라서 교황과 원의 황제 간에 공식 사절이 파견되기도 하였고, 폴로 일가와 같이 원에 중용되기도 했다. 서양의 입장에서도 사절의 파견을 통해 기독교 국가에 대한 몽골군의 진공을 중지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원에 의해 실크로드가 안정된 후에는 약 2백년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의 완패로 인해 아유브 왕조로 대표되는 아랍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동방의 강력한 대제국 원의 힘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이들과 화친을 도모하기 위해 사신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들은 종교에 관용적인 원에 큰 기대를 걸고 원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원의 상층부 계급을 전도하고 동방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여정을 도모했다.
또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적 탐구를 목적으로 이질문명권을 넘나들면서 문명의 구석구석을 탐지하고 고지하는 여행가들에 의한 교류도 크게 한몫을 한다. 이들은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을 통해 문물을 소개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원 시기에는 수많은 여행기들이 저술됨에 따라 당시의 생활상과 문물, 그리고 이방인의 눈으로 본 원나라의 풍경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의 특징은 ①세계에서 120여종의 사본이 돌고 있을 정도로 난립해 있는 『동방견문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우리말로 번역한 최상의 ‘완역결정본’이다.
②원본을 복원한다는 취지 아래 번역했다. 설사 잘못된 인명이나 지명 등도 원문(F본)대로 쓰고 그리하여 『동방견문록』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지명·인명 등의 혼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③자세한 주석을 붙여 『동방견문록』의 세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은 이러한 사실들을 주석을 통해 세세하게 설명하여 누구든지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④마르코 폴로의 생애와 『동방견문록』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해설을 실음으로써 마르코 폴로의 관점을 십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가 여러모로 기독교인이고, 그의 시각도 기독교인의 입장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당시 유럽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마르코 폴로가 유럽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단으로 몰릴 만큼 유연한 종교적·사상적 태도를 취했음을 보여준다.
⑤120여종의 사본 중에서 중요한 사본들에 대해 소개하고, 그 사본 중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각주를 통해서 밝혔다. 아울러 『동방견문록』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여러 역사서의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⑥흔히 제기되는 의문점들을 설득력 있게 정리하였다.
평가 김호동교수는 그러나 이것들이 마르코 폴로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니며, 다만 ‘진실이라고 들은’ 그대로를 옮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런 논쟁이 거의 7세기 동안 계속된 결과, 마르코의 평판은 극적인 부침을 겪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천재이며, 가장 양심적인 관찰자이고, 쿠빌라이칸의 궁정에서 출세한 관리이자 위대한 몽골족 통치자들이 다스리는 범세계적 아시아에 정통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를 제 자랑만 늘어놓고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허풍쟁이, 항구와 시장에 떠도는 소문을 그대로 믿는 떠돌이, 교양이나 상상력이 거의 없고 유머 감각은 전혀 없는 인물로 여겼으며, 특히 중국의 만리장성과 차(茶), 극동 지방의 표의문자에 대해 그가 언급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좀 더 균형 잡힌 견해를 가지려면 많은 요소들, 특히 원문에 얽힌 문제와 중세의 세계관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근대의 학문과 연구는 그의 작품에 새로운 깊이와 넓이를 주었다. 마르코가 남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는 대부분 근거가 없거나 왜곡되어 있지만, 직접 보고 들은 것은 충실하게 보고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어쨌든 마르코의 설명은 중세인들의 마음에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었다. 서양의 지평선이 넓어짐에 따라 마르코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졌다. 일본에 대한 묘사는 1492년에 저물어가는 해를 향하여 여행을 떠난 콜럼버스에게 뚜렷한 목표를 설정해주었고, 향신료 생산 지점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서양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역을 찾아나서 향신료 교역에서 오랫동안 계속된 아랍 상인들의 독점 상태를 깨뜨리도록 고무했다. 마르코 폴로가 기록한 풍성한 새로운 지리적 정보는 유럽인들이 대규모로 대양을 항해한 15세기말과 16세기에 널리 이용되었다.
<참고문헌>
르네 그루쎄 저, 김호동 외 역주,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2005
양승윤 외 공저, 바다의 실크로드, 청아출판사, 2006
스기야마 마사야키 저, 임대희 외 옮김, 몽골-세계제국, 신서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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