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는 상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보편주의(p.42)와 회심없이 회심의 기능에만 관심을 가지고(p. 45) 혁명적 변혁을 통해서 내재적 갱신을 시도하는(p. 54)에큐메니칼 운동의 구원관 및 종말관에 대해서 비판함으로 WCC의 선교개념 변동으로 야기된 선교의 이유와 목적의 혼돈에 대해 선교학적으로 정립한 의의가 있다.
선교신학 강의 요약(2)
2005년 Fall Semester University & Theological Seminary/9.12~12.13 Rev. Lee, Kilso D.Miss.)
선교학(Missiology)-종족 선교의 이론과 실제
선교신학(Missionstheologie)
그리스도 교회의 선교학(Kirchliche Missionlehre)
사도직의 신학(Theologie des Apostolats)- 화란의 룰러(A. A. van Ruller)와 슈만(B. M. Schuurman)에 의해 주창됨. 독일의 선교신학자 하르 텐슈타인(K. Hartenstein)은 화란의 신학자들과 달리 선교란 사도직의 계승으로서 로마서 15:15~16의 고백과 같이 사도직을 제사장의 직무로 보았고 바울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바로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이방인들 이었다고 했다.(G. Schwarz, op. cit., p. 178)
<들어 가는 말>
로잔대회와 웁살라대회의 비교를 통한 선교신학의 조명-두 선교대회의 상징적 의미 고찰
세계선교를 위한 복음주의 로잔(Lausanne)대회(1974년 150여개국 2700명 참석)의 성격이 그 대회에서의 빌리 그래함 강연 주제처럼, \'천국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달되어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함\'이었다면, 1968년 세속화 신학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열린 제4차 WCC (세계교회협의회)의 웁살라(Uppsala) 대회는 복음주의 로잔대회와 극명하게 대치되는 선교관을 볼 수 있는데, 대회에 불참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의 제2분과 선교갱신(Erneuerung in der Mission)에 대한 비판이 그것을 증명한다. \"제2분과는 믿음의 필요성이나 20억(복음을 모르는)에 대해서 그리고 선교사를 보내는 일(sending messengers)에 대하여 아무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웁살라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알아야 할 20억의 인구를 배신할 것인가? 웁살라는 성경적인 선교관을 배반하고 수평적인 관심에만 집중, 영적 기아상태에 있는 무리들을 그릇 인도하며 영 대신에 육으로 대치한다\"고 경고한것이 그것이다. 더우기 1973년 WCC 방콕대회 제3분과에서 권장한 \'모라토리움\'(선교사 파송과 재정지원 중지/Ph. Potter, Das Heil der Welt heute-Stuttgart, 1973-, pp. 216f) 과 \'세상을 위한 교회\'로서의 자각으로 건강과 부와 평화와 정의의 새 사회건설을 위한 경제, 사회, 정치적인 해방운동과 혁명투쟁에 참여함을 사명감으로 느낀다는 표명에 반하여, 로잔의 복음주의자들은 \'세상을 위한 교회\'로서의 자각으로, 복음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사명감으로 느낀다고 했다.(A. Johnston, 로잔 세계복음화 선교대회, p.284) 참고로 로잔대회의 언약 제5항,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고백을 소개하는것이 선교학 연구에 도움이 될것으로 판단되어 아래에 실린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신 동시에 심판주 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압박으로부터 자유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없이 모든 사람은 천부적 존업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 해 왔고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한 것에 대하여 뉘우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 참여가 곧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우리는 인정한다. 이 두 부분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교리와 이웃을 위한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의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 따라서 그들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 그 나라와 의를 나타낼 뿐 아니라 그 나라의 의를 전파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 시켜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번역 조종남 박사)
특히 WCC의 웁살라 대회가 끝난 즉시 바이어하우스(P. Beyerhaus)는 <인간화>라는 책을 출간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구속사 대신 에큐메니칼 신학의 세속적이며 수평적이고 사회적인 관심과 진화론적인 역사관을 비판하고(p.11) 성령을 통한 영적 존재에 대한 이해가 없는(p. 53f) 사회혁명의 사명자로 주장한 교회관(p.39f)과 그리스도가 비그리스도인을 통해 말씀하심으로써 교정하여 완전한 진리에 도달하려는 WCC의 대화 프로그램(Dialogue-Program)의 목적(p. 41)을 비판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인류(불신자들)가 하나님의 심판과는 상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보편주의(p.42)와 회심없이 회심의 기능에만 관심을 가지고(p. 45) 혁명적 변혁을 통해서 내재적 갱신을 시도하는(p. 54)에큐메니칼 운동의 구원관 및 종말관에 대해서 비판함으로 WCC의 선교개념 변동으로 야기된 선교의 이유와 목적의 혼돈에 대해 선교학적으로 정립한 의의가 있다.
선교신학 강의 요약(2)
2005년 Fall Semester University & Theological Seminary/9.12~12.13 Rev. Lee, Kilso D.Miss.)
선교학(Missiology)-종족 선교의 이론과 실제
선교신학(Missionstheologie)
그리스도 교회의 선교학(Kirchliche Missionlehre)
사도직의 신학(Theologie des Apostolats)- 화란의 룰러(A. A. van Ruller)와 슈만(B. M. Schuurman)에 의해 주창됨. 독일의 선교신학자 하르 텐슈타인(K. Hartenstein)은 화란의 신학자들과 달리 선교란 사도직의 계승으로서 로마서 15:15~16의 고백과 같이 사도직을 제사장의 직무로 보았고 바울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바로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이방인들 이었다고 했다.(G. Schwarz, op. cit., p. 178)
<들어 가는 말>
로잔대회와 웁살라대회의 비교를 통한 선교신학의 조명-두 선교대회의 상징적 의미 고찰
세계선교를 위한 복음주의 로잔(Lausanne)대회(1974년 150여개국 2700명 참석)의 성격이 그 대회에서의 빌리 그래함 강연 주제처럼, \'천국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달되어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함\'이었다면, 1968년 세속화 신학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열린 제4차 WCC (세계교회협의회)의 웁살라(Uppsala) 대회는 복음주의 로잔대회와 극명하게 대치되는 선교관을 볼 수 있는데, 대회에 불참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의 제2분과 선교갱신(Erneuerung in der Mission)에 대한 비판이 그것을 증명한다. \"제2분과는 믿음의 필요성이나 20억(복음을 모르는)에 대해서 그리고 선교사를 보내는 일(sending messengers)에 대하여 아무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웁살라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알아야 할 20억의 인구를 배신할 것인가? 웁살라는 성경적인 선교관을 배반하고 수평적인 관심에만 집중, 영적 기아상태에 있는 무리들을 그릇 인도하며 영 대신에 육으로 대치한다\"고 경고한것이 그것이다. 더우기 1973년 WCC 방콕대회 제3분과에서 권장한 \'모라토리움\'(선교사 파송과 재정지원 중지/Ph. Potter, Das Heil der Welt heute-Stuttgart, 1973-, pp. 216f) 과 \'세상을 위한 교회\'로서의 자각으로 건강과 부와 평화와 정의의 새 사회건설을 위한 경제, 사회, 정치적인 해방운동과 혁명투쟁에 참여함을 사명감으로 느낀다는 표명에 반하여, 로잔의 복음주의자들은 \'세상을 위한 교회\'로서의 자각으로, 복음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사명감으로 느낀다고 했다.(A. Johnston, 로잔 세계복음화 선교대회, p.284) 참고로 로잔대회의 언약 제5항,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고백을 소개하는것이 선교학 연구에 도움이 될것으로 판단되어 아래에 실린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신 동시에 심판주 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압박으로부터 자유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없이 모든 사람은 천부적 존업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 해 왔고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한 것에 대하여 뉘우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 참여가 곧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우리는 인정한다. 이 두 부분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교리와 이웃을 위한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의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 따라서 그들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 그 나라와 의를 나타낼 뿐 아니라 그 나라의 의를 전파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 시켜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번역 조종남 박사)
특히 WCC의 웁살라 대회가 끝난 즉시 바이어하우스(P. Beyerhaus)는 <인간화>라는 책을 출간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구속사 대신 에큐메니칼 신학의 세속적이며 수평적이고 사회적인 관심과 진화론적인 역사관을 비판하고(p.11) 성령을 통한 영적 존재에 대한 이해가 없는(p. 53f) 사회혁명의 사명자로 주장한 교회관(p.39f)과 그리스도가 비그리스도인을 통해 말씀하심으로써 교정하여 완전한 진리에 도달하려는 WCC의 대화 프로그램(Dialogue-Program)의 목적(p. 41)을 비판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인류(불신자들)가 하나님의 심판과는 상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보편주의(p.42)와 회심없이 회심의 기능에만 관심을 가지고(p. 45) 혁명적 변혁을 통해서 내재적 갱신을 시도하는(p. 54)에큐메니칼 운동의 구원관 및 종말관에 대해서 비판함으로 WCC의 선교개념 변동으로 야기된 선교의 이유와 목적의 혼돈에 대해 선교학적으로 정립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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