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한국의 민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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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80년대 한국의 민중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닭에---- 노동운동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 5공화국의 시기 그러니까 80년대에 들어서 한국의 경제는 더 이상 노동자의 노동력 착취를 통해서만은 성장을 도모할 수 없는 경제 수준에 도달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경제 성장으로 얻은 부를 어느 정도 노동자들에게도 분배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에 도래했던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노사문제 즉 노동자의 스트라이크가 처음으로 일어났던 해는 1978년이다. 이 때 미국의 자본으로 건설되었던 Y.H.사에서 격렬한 노동자의 시위가 일어나 한 여직공이 투신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났고 이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가진 자들에 대하여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투쟁 즉 노사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히 그것은 정치적으로 반독재투쟁과 연대하면서 급속히 그 세력이 확장되어 갔는데 그 이유는 집권세력을 미제국주의와 매판 자본가의 비호자로 보는 공동의 인식이 민중속에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 반독재 투쟁은 노학(노동자와 학생)의 연대투쟁으로 발전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사회주의 이념을 학습하고 구체적인 노동 운동을 실천하는 양상을 띄게 되었다. 이처럼 전두환 정권의 독재를 단순히 정치적인 현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그것을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갈등 내지 가진 자의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경제적 수탈 구조로 파악한데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증오 나아가서 북한 체제와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동경, 그리고 ‘미제국주의’의 배격이 공공연히 실천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중 운동의 과격한 그릅들은 당대 한국의 정치, 경제적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 방법을 사회주의 이론에서 찾았으며 시대 착오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와 김일성 주체 사상을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는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는 이 시기 한국이 경험했던 초기 자본주의 내지 천민 자본주의와 같은 단계에 있었던 서구의 19세기 말엽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현상이다. 이 때 서구에서도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면서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절규하고 대부분의 지식인 역시 이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20세기 80년대는 다름 아닌 서구의 19세기 7-80년대에 준한 시기였다. 그와같은 관점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챨스 디킨즈의 고아 올리버에 해당하는 작품이며 송영이나 윤흥길이나 이문구 같은 작가의 사회 비판적인 작품들은 발자크의 인간 희극에 준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한국에서 시든 소설이든 시대 착오적인 리얼리즘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조되고 그 이외의 경향이 전적으로 매도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80년대의 민중문학은 한국 사회의 이와같은 정치, 경제적인 제 모순에 대한 문학적 반응으로 쓰여졌다. 그리고 그 목표는 정치적 민중운동과 연대하여 사회를 변혁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문단 내적인 측면으로 민중문학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우선 그 뿌리를 60년대 참여문학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물론 문학사를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한 사람이라면 그 뿌리를 내린 터전이 20년대의 소위 프로레타리아 문학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민중문학’이란 7. 80년대에 앞서 20년대 프로레타리아 문학가들이 자신들의 문학을 지칭했던 용어이기도 하다.1)
그러나 7. 80년대 한국의 민중문학은, 2. 30년대 프로레타리아문학 운동이 50년대 들어 단절되었고 그 시대적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는 60년대 소위 참여문학운동(Angagement)을 계승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실제로 초창기 민중문학 운동을 주도했던 논자들은 대부분 참여문학논자들이었다.(김병걸, 염무웅, 구중서, 신동문, 김수영, 유종호 등) 60년대 참여 문학은 60년의 4.19 혁명과 50년대 프랑스의 행동주의적 실존주의 특히 싸르트르 문학이론의 영향으로 일어났던 문학의 사회 및 정치 참여문학이었다. 그러던 것이 3공화국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심화되고 경제 개발로 인해 자본주의의 모순이 노정되기 시작한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이르러 민중문학의 개념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60년대의 참여문학을 민중문학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비평가는 백락청과 염무웅이다. 특히 백락청이 그랬다. 그는 민중문학의 이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문학 운동으로 이끌었으며 이를 확산시키는 일의 중심에 서 있었던 비평가이다. 50년 한국 전쟁 때에 출국하여 미국에서 유학한 후 60년대 후반에 귀국,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가 된 그가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시대적 상황---군부 독재와 자본주의 경제 발전에 따른 제 모순----이 문학 예술의 정치 참여를 요구하고 있었고 이에 부응한 그의 문학적 신념이 투철했다는 점, 둘째 하바드대학 박사이며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그의 학자적인 카리스마가 누구보다 강했다는 점, 세째 당시 냉전, 및 분단 이데올로기로 인해 금기시되었고 그런 까닭에 한국 문단에서는 거의 무지에 가까웠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해서 그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남다른 그의 아카데믹 케리어에서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것이 한국의 지식 사회나 문단에서 매우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엇다는 점, 네째 당시 한국의 문단에서 기존의 문인단체 특히 ‘문협(한국문인협회)’이 역사적으로 우익 보수주의적, 친여적 성격을 띈 어용단체였던 까닭에 대다수 문인과 지식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반발로 새로운 문학단체의 대두가 요구되고 있었다는 점, 다섯째 우리 문학사 초유의 문학계간지 <<창작과 비평>>을 성공리에 창간하여 문단과 지식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미 1968년 전후 <<창작과 비평>>이 창간되면서 내적으로 하나의 커다란 문인그릅을 형성하였다하지만 민중문학이 명실공히 공개적인 문학단체를 갖게 된 것은 1973년 전후 ‘유신정권’과 투쟁하기 위하여 이 그릅이 ‘자유실천문인협회’를 조직하면서부터의 일이다. 이후 74년 소위 ‘동아일보사태’로 많은 반정부적 성향의 언론인들이 직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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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8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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