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역할을 하였다.
신명기에서 열왕기하까지는 모세로부터 포로 기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쓰기 위해 시도하였던, 그리고 그것을 신학이라는 유리한 입장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하였던 초기의 저작이다. 신명기와 초기 예언서와 언어문체면에서 유사점이 많다고 모세 바인펠트는 말했다. 또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의 관계도 매우 밀접한데 이 사실은 신학적으로 주요한 목적 다섯 가지가 신명기와 여호수아에 함께 나타나 있다.
신명기와 초기 예언서들과의 관계의 밀접 성은 위에서 말한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언약에 관한 것이다(아브라함 언약-시내산 언약-다윗언약). 다윗과 그 후계자들은 항상 시내산 언약을 염두 해 두었다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아브라함 언약(족장 전승)과 모세 언약(모세 전승)을 가장 강하게 결합시키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시거나 이미 선택하셨던 \'장소\'이다. 이스라엘의 소유가 될 안식과 기업의 주제가 \'장소\'의 개념과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이 두 가지 강조 점은 왕국 이전 시대의 지배적인 두 가지 신학 주제로 등장한다.
출애굽에서 포로기에 이르는 역사와 신학을 지배하였던 세 가지 요목적인 진술들은 신명기 31장, 여호수아 23장, 삼하 7장이다. 이외에 다른 여섯 귀절도(수1:11-15, 삼상12장, 왕상 8:14-16, 수12장, 삿 2:11-23, 왕하 17:7-23)도 관련되어 나타난다. 이런 것들은 초기 예언자들의 전체적인 신학적 구상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는 반면 출애굽기에서 포로 기까지 이르는 신학의 전체적인 발전을 형성할 수는 없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불렀던 맹세의 노래 주제는 과거에 선언되었던 언약의 성취(땅, 안식, 장소)에 집중하였다.
그 땅의 상속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있었던 절박한 가나안 정복을 하나님의 언약에 관련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가 똑같이 \"여호와의 기업\"으로 불리었고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이 되었고 가나안은 언약의 땅이 되었다.
땅은 신명기에서 여호와의 선물로 불리었고 이 선물은 조상들에게 언약하였던 바로 그 땅이었다.
폰라드는 잘못 생각하여 신명기에서의 \'땅\'과 조상들의 언약과 상관이 없다고 하였다.
그 땅은 여호와의 것이며 그가 기뻐하시는 자이면 누구에게나 줄 것이기 때문에 그 땅은 이스라엘의 것이 될 수 있었다. 레위기 25:23절에서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함으로서 토지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기는 동안 그들이 경작하고 살기에 적합한 땅을 여호와로부터 항상 받았다.
폰라드는 잘못 생각하여 \'토지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땅은 선물이었으나 이스라엘은 그것을 소유해야만 했다.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책임은 정반대의 것이 아니라 보충적인 개념이었다. 이 땅에서 이스라엘은 축복을 받게 될 것이었으나 특별한 강조는 땅의 축복에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은 왕국 이전 시대의 신학과 더불어 초기 시대의 신학을 결합시키는 접속 개념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땅에서의 안식
민수기의 마지막 부분과 다윗 시대 사이의 핵심적인 연결점을 제공해 주는 것은 언약의 주제의 바로 이면(안식)이었다. 모세가 처음으로 \'안식\'을 약속 받았다. 이 안식의 의미는 여호와로부터 받은 장소, 주변의 적으로부터 지키는 평화와 안식 또는 미래에 있을 슬픔과 수고의 종식들을 나타내었다. \'안식\'은 지형 학적으로 장소, 물질적인 것과도 강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괴로움을 당하지 않을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준비하신\" \"장소\"란 의미도 있다.
나아가 이 안식처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며 머무시는 곳이기도 하다. \'믿음\'을 가진 자만 이 안식에 들으갈수 있다.
성취에 대한 구약 성경의 관점에서만 \'안식\'의 영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땅의 선택된 장소
벨하우젠은 신명기 12:5, 14의 말씀을 근거로 예배의 중앙 집중화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장소(The place)\'가 지역적인 의미에서 \'그\'가 아닌 \'하나님이 택하신 곳\'이란 의미로 이해해야 하겠다. 그래서 하나님이 택하신 곳은 어디든지 예배가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신 12:14을 \"너의 지파들 중 어떤 지파에서 여호와께서 택하실 모든 장소에서\"라고 번역해야 한다. 장소는 등급을 말하는 것이지 하나의 장소(locality)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사실은 에발산 위에 제단을 세우라는 명령을 담은 신 27:1-8에 의해서도 지지된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그들이 신명기가 무효화시킨다고 생각되고 있는 출애굽기 20:24의 바로 그 말씀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땅에 거하는 이름
신명기, 열왕기서 등에 \'이름을 두시려고\'가 나타나는데 폰라드는 여기서의 \'이름\'을 하나님의 존재, 본성, 인격을 나타낸다고 했으나 보스는 이에 반대하면서 \'소유권 주장\'과 관계된 것이라고 바르게 말했다. \'이름을 두셨다\'다는 것은 공개적으로 소유하셨다는 의미이다.
그 땅의 정복
땅의 정복에 관한 규례가 신명기서에 나타나며 아울러 여호수아서에 예시되어 있다. 이 싸움은 여호와께 속하였다. 적들의 마음에 공포와 겁을 하나님은 집어 넣어 셨다. 이 정복 전쟁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잔인하신 분이 아니라 오래 참으시는 분이심이다. 왜냐하면 정복 전쟁은 아브라함에게 \"아무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 할 때까지\"(창 15:16)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600년을 기다리셨던 것이다.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은 하나님의 이 말씀의 성취인 것이다.
그 땅에서의 예언적 역사
신명기는 여호수아서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사사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카알 그레셔는 사사기의 구, 개념, 그리고 신학적인 강조 점들이 신명기의 그것들과 같다고 했다.
사사기를 통해 실패의 모습만 보아서는 안되고 이미 신명기 30:1-10에서 말한 \'돌이키다\'는 것과 연관된 면을 살펴야 된다. 즉 회개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계속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도 우리가
신명기에서 열왕기하까지는 모세로부터 포로 기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쓰기 위해 시도하였던, 그리고 그것을 신학이라는 유리한 입장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하였던 초기의 저작이다. 신명기와 초기 예언서와 언어문체면에서 유사점이 많다고 모세 바인펠트는 말했다. 또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의 관계도 매우 밀접한데 이 사실은 신학적으로 주요한 목적 다섯 가지가 신명기와 여호수아에 함께 나타나 있다.
신명기와 초기 예언서들과의 관계의 밀접 성은 위에서 말한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언약에 관한 것이다(아브라함 언약-시내산 언약-다윗언약). 다윗과 그 후계자들은 항상 시내산 언약을 염두 해 두었다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아브라함 언약(족장 전승)과 모세 언약(모세 전승)을 가장 강하게 결합시키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시거나 이미 선택하셨던 \'장소\'이다. 이스라엘의 소유가 될 안식과 기업의 주제가 \'장소\'의 개념과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이 두 가지 강조 점은 왕국 이전 시대의 지배적인 두 가지 신학 주제로 등장한다.
출애굽에서 포로기에 이르는 역사와 신학을 지배하였던 세 가지 요목적인 진술들은 신명기 31장, 여호수아 23장, 삼하 7장이다. 이외에 다른 여섯 귀절도(수1:11-15, 삼상12장, 왕상 8:14-16, 수12장, 삿 2:11-23, 왕하 17:7-23)도 관련되어 나타난다. 이런 것들은 초기 예언자들의 전체적인 신학적 구상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는 반면 출애굽기에서 포로 기까지 이르는 신학의 전체적인 발전을 형성할 수는 없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불렀던 맹세의 노래 주제는 과거에 선언되었던 언약의 성취(땅, 안식, 장소)에 집중하였다.
그 땅의 상속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있었던 절박한 가나안 정복을 하나님의 언약에 관련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가 똑같이 \"여호와의 기업\"으로 불리었고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이 되었고 가나안은 언약의 땅이 되었다.
땅은 신명기에서 여호와의 선물로 불리었고 이 선물은 조상들에게 언약하였던 바로 그 땅이었다.
폰라드는 잘못 생각하여 신명기에서의 \'땅\'과 조상들의 언약과 상관이 없다고 하였다.
그 땅은 여호와의 것이며 그가 기뻐하시는 자이면 누구에게나 줄 것이기 때문에 그 땅은 이스라엘의 것이 될 수 있었다. 레위기 25:23절에서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함으로서 토지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기는 동안 그들이 경작하고 살기에 적합한 땅을 여호와로부터 항상 받았다.
폰라드는 잘못 생각하여 \'토지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땅은 선물이었으나 이스라엘은 그것을 소유해야만 했다.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책임은 정반대의 것이 아니라 보충적인 개념이었다. 이 땅에서 이스라엘은 축복을 받게 될 것이었으나 특별한 강조는 땅의 축복에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은 왕국 이전 시대의 신학과 더불어 초기 시대의 신학을 결합시키는 접속 개념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땅에서의 안식
민수기의 마지막 부분과 다윗 시대 사이의 핵심적인 연결점을 제공해 주는 것은 언약의 주제의 바로 이면(안식)이었다. 모세가 처음으로 \'안식\'을 약속 받았다. 이 안식의 의미는 여호와로부터 받은 장소, 주변의 적으로부터 지키는 평화와 안식 또는 미래에 있을 슬픔과 수고의 종식들을 나타내었다. \'안식\'은 지형 학적으로 장소, 물질적인 것과도 강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괴로움을 당하지 않을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준비하신\" \"장소\"란 의미도 있다.
나아가 이 안식처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며 머무시는 곳이기도 하다. \'믿음\'을 가진 자만 이 안식에 들으갈수 있다.
성취에 대한 구약 성경의 관점에서만 \'안식\'의 영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땅의 선택된 장소
벨하우젠은 신명기 12:5, 14의 말씀을 근거로 예배의 중앙 집중화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장소(The place)\'가 지역적인 의미에서 \'그\'가 아닌 \'하나님이 택하신 곳\'이란 의미로 이해해야 하겠다. 그래서 하나님이 택하신 곳은 어디든지 예배가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신 12:14을 \"너의 지파들 중 어떤 지파에서 여호와께서 택하실 모든 장소에서\"라고 번역해야 한다. 장소는 등급을 말하는 것이지 하나의 장소(locality)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사실은 에발산 위에 제단을 세우라는 명령을 담은 신 27:1-8에 의해서도 지지된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그들이 신명기가 무효화시킨다고 생각되고 있는 출애굽기 20:24의 바로 그 말씀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땅에 거하는 이름
신명기, 열왕기서 등에 \'이름을 두시려고\'가 나타나는데 폰라드는 여기서의 \'이름\'을 하나님의 존재, 본성, 인격을 나타낸다고 했으나 보스는 이에 반대하면서 \'소유권 주장\'과 관계된 것이라고 바르게 말했다. \'이름을 두셨다\'다는 것은 공개적으로 소유하셨다는 의미이다.
그 땅의 정복
땅의 정복에 관한 규례가 신명기서에 나타나며 아울러 여호수아서에 예시되어 있다. 이 싸움은 여호와께 속하였다. 적들의 마음에 공포와 겁을 하나님은 집어 넣어 셨다. 이 정복 전쟁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잔인하신 분이 아니라 오래 참으시는 분이심이다. 왜냐하면 정복 전쟁은 아브라함에게 \"아무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 할 때까지\"(창 15:16)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600년을 기다리셨던 것이다.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은 하나님의 이 말씀의 성취인 것이다.
그 땅에서의 예언적 역사
신명기는 여호수아서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사사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카알 그레셔는 사사기의 구, 개념, 그리고 신학적인 강조 점들이 신명기의 그것들과 같다고 했다.
사사기를 통해 실패의 모습만 보아서는 안되고 이미 신명기 30:1-10에서 말한 \'돌이키다\'는 것과 연관된 면을 살펴야 된다. 즉 회개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계속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도 우리가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