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88)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믿는 우리는 주의 인자하심에 기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의 장중에 있고 우리의 믿음은 주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굳은 믿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자하신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6. 영원한 말씀의 권위 (시편119:89)
(시119: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음으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계 속에 거한 인간으로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논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윗이 성경의 말씀의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경계와 영원한 통치의 질서를 깨달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 지혜가 신비하여 하늘에서 이 땅과 바다와 바닷 속에 속한 그 모든 비밀과 지혜를 담고 있으며 또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예비하신 영혼의 거처에 이르기까지 신비하고 비밀한 지혜들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는 것은 천지만물의 시작과 질서가 그 말씀의 권위 속에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성경의 첫 기록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1:1) 기록되었으며 다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요1:1)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가 말씀이신 것과 천지의 창조자이심을 믿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이것은 주께서 그 믿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비밀들을 알 수 있도록 그의 영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것은 창조자와 피조물이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때에만 성립되는 원리로서 그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창조자의 말씀과 그에 순종한 피조물의 관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를 여호와로 부르며 또한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모든 것의 끝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며 땅은 항상 있사오니”(90)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주를 가리켜 성실하다 한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을 언급한 것입니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을 때부터 그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그의 뜻을 따라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지간의 모든 운행은 하나님께서 성실하게 세우신 질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땅은 주께서 세우신 질서를 따라 일어서고 물러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설명하여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안다” 하였고 다시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롬8:20,21) 하였습니다. 이처럼 천지만물의 모든 피조물들은 주의 계획 가운데 운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그의 법을 두셨습니다. 이 법은 사람의 행동을 제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과 질서대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세우신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주께서 세우신 법으로 하여 멸망을 받고 책망을 받게 됩니다만 우리가 주의 법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서 그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94) 하였습니다. 주의 것이란 우리의 언행과 생각과 행함이 모두 주의 법도 안에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주의 계명을 사랑하고 주의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주의 법도대로 산다는 것은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질서와 달라서 그들과 부딛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주인의 뜻을 따라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것을 탐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설계하신 질서와 규례에 반한 것으로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멸한다 기록한 것입니다.
다윗은 끝으로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나이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피조물의 한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지혜와 완전함을 갖고 있다하드라도 피조물은 주의 정하신 한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증거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날에 우리의 체질이 불에 녹아질 것이라 증거하였습니다. 그날이 되면 우리를 주관하던 육체된 것은 사라지고 오직 여호와를 아는 지혜의 영이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은 영원하여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은 내가 아니니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요 소망이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주의 영으로 함께 고통을 하며 고난을 참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 있고 그를 위해 주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 것처럼 나의 계명을 지키라 하셨고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의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를 지으시고 가르치셨으니 우리가 주의 영원하신 질서 가운데 거하여 주의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영원한 말씀의 권위 (시편119:89)
(시119: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음으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계 속에 거한 인간으로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논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윗이 성경의 말씀의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경계와 영원한 통치의 질서를 깨달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 지혜가 신비하여 하늘에서 이 땅과 바다와 바닷 속에 속한 그 모든 비밀과 지혜를 담고 있으며 또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예비하신 영혼의 거처에 이르기까지 신비하고 비밀한 지혜들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는 것은 천지만물의 시작과 질서가 그 말씀의 권위 속에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성경의 첫 기록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1:1) 기록되었으며 다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요1:1)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가 말씀이신 것과 천지의 창조자이심을 믿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이것은 주께서 그 믿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비밀들을 알 수 있도록 그의 영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것은 창조자와 피조물이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때에만 성립되는 원리로서 그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창조자의 말씀과 그에 순종한 피조물의 관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를 여호와로 부르며 또한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모든 것의 끝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며 땅은 항상 있사오니”(90)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주를 가리켜 성실하다 한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을 언급한 것입니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을 때부터 그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그의 뜻을 따라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지간의 모든 운행은 하나님께서 성실하게 세우신 질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땅은 주께서 세우신 질서를 따라 일어서고 물러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설명하여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안다” 하였고 다시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롬8:20,21) 하였습니다. 이처럼 천지만물의 모든 피조물들은 주의 계획 가운데 운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그의 법을 두셨습니다. 이 법은 사람의 행동을 제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과 질서대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세우신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주께서 세우신 법으로 하여 멸망을 받고 책망을 받게 됩니다만 우리가 주의 법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서 그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94) 하였습니다. 주의 것이란 우리의 언행과 생각과 행함이 모두 주의 법도 안에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주의 계명을 사랑하고 주의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주의 법도대로 산다는 것은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질서와 달라서 그들과 부딛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주인의 뜻을 따라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것을 탐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설계하신 질서와 규례에 반한 것으로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멸한다 기록한 것입니다.
다윗은 끝으로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나이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피조물의 한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지혜와 완전함을 갖고 있다하드라도 피조물은 주의 정하신 한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증거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날에 우리의 체질이 불에 녹아질 것이라 증거하였습니다. 그날이 되면 우리를 주관하던 육체된 것은 사라지고 오직 여호와를 아는 지혜의 영이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은 영원하여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은 내가 아니니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요 소망이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주의 영으로 함께 고통을 하며 고난을 참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 있고 그를 위해 주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 것처럼 나의 계명을 지키라 하셨고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의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를 지으시고 가르치셨으니 우리가 주의 영원하신 질서 가운데 거하여 주의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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