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선교의 중심으로서 복음전도를 교회의 주된 임무로 해야 할 것과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도 위임할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하여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교회의 주된 임무는 세상의 길모퉁이에 서서 ‘복된 소식이 임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무시함으로써 이 의무를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또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할 수도 없다. 교회와 선교는 하나이며 어떤 식으로든 따로 분리될 수 없다....선교는 결코 교회를 나타내는 표식들 중에 하나쯤으로 여길 것이 아니다. 선교는 교회의 표시 그 자체이다. 소위 다른 모든 표지들은, 합법적이라면, 선교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약속한 그 권능은 증거 하라는 권능이다. 교회의 모든 다른 활동들은 선교라는 본질적인 과제로부터 파생되어 그것에 의해 판단되어져야 한다.125)
이상의 고찰에 의하면 선교란 교회의 기원과 관련이 있으며, 교회가 교회됨을 나타내는 과제로서 교회의 핵심적인 사역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4.4 교회의 존속과 관련된다는 의미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수행하도록 위임된 교회가 세상 끝까지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 선교이다. 물론 하나님의 교회란 세상 끝 날까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공동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수행하는 차원에서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존재해야 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선교이다. 교회가 선교를 수행함으로 지상에서 공간적으로 땅 끝까지와 시간적으로 세상 끝 날까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달리 표현하면 선교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세워지는 교회를 통해 선교하는 일을 계속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교회란 선교에 의해서 생겨나고 지속해 간다는 것은 곧 교회가 선교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내리는 탈교회 중심의 선교를 경계하면서 조직 교회의 선교적인 책임을 강조하여 “사도행전이 가르치기를, 선교는 조직교회에 의하여” 수행되었고 또한 “올바로 수행된 선교의 결과가 바로 조직 교회였다”126)
고 말한다. 이것은 선교에 의한 교회의 존속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블라우는 “복음전파란 세상이 아닌 바로 교회 자신의 생사가 달린 문제”127)
로 강조했는데, 선교에 의해서 교회가 존재를 계속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이것이(선교) 있음으로써 과거의 교회가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 있었던 것이며, 지금 세계 안에 세계를 위해 존재하며, 또한 그로 인해 역사 완성의 때까지 교회는 존재”128)
하는 것으로 밝힌다. 스나이더(H.Snyder)에 의하면 교회가 선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전도의 대행자이면서 아울러 결과라는 표현을 통해,129)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있고, 선교를 위해서 있는 교회의 선교에 의하여 또다시 선교할 수 있는 교회를 세워나가게 된다는 것을 피력했다.
이상의 4가지 방향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면, 교회는 선교를 통해 존재하게 되었으며, 선교를 위해 존재하며, 선교가 교회의 핵심적인 과제이며, 선교에 의해서 선교를 수행하는 교회가 존속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 사실은 곧 교회란 피할 수 없이 선교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이콥스(Donald R. Jacobs)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의 임재 안에서 만나며, 그의 주되심에 개인적으로나 협동적인 삶을 복종하는 곳에 존재하는 단체로서의 교회는 세계선교를 위한 하나의 센터라는 것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하고 성경의 권위 아래 자신을 놓는 어떤 단체든지 선교적 위임에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말한다.130)
벨코프(Hendrikus Berkhof) 역시 세상을 구원하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교회는 임시 대합실과 같이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에 있어야하고 동시에 서로 연결시키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피력했다.131)
선교란 교회에 위임된 본질적이며 핵심적인 사역이라면 교회는 선교를 피할 수 없는 일이다.
V 결론
교회론의 세속화에 의하면 교회가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인 차원의 관계보다는 인간관계 안에 있는 사회적인 제도로 강조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사역 역시 인간의 사회적인 관계 안에 있는 일들과 관련되어 강조되었다. 이러한 교회론의 경향에 의하여 교회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사역보다는 사회개선을 위한 사역으로 치닫게 되었다. 특별히 이러한 경향을 일으킨 사회복음에 있어서 교회는 당시의 사회문제 개선을 위한 사역에 윤리적인 면에서 역할 해야 하는 것으로 강조된 반면에, 해방신학은 가난과 압제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하여 가난과 압제 받는 자들을 통한 혁명적 방법을 정당화 했다.
교회론에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신비한 관계의 결핍은 다른 문제를 파급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인 제도로서의 교회가 사회를 개선하는 활동을 교회의 선교적인 역할로 이해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차원에서의 선교사역의 가치를 절하시키면서 사회개선의 사역을 강조하게 되면 자연히 기독교의 선교사역은 반드시 교회를 통해서만 수행되어야 한다는 절대성을 약화시키게 된다. 사회개선은 사회적인 기구들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 아래서 기독교 선교가 전통적으로 이해되어온 구조로서 “하나님-교회-세상”이 “하나님-세상-교회”라는 현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 선교가 교회를 통하여 수행되어야 한다는 이해가 약화되는 교회론의 세속화가 일어난 상황에서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재확인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의하면, 교회란 선교에 의하여 생겨난 태생을 가지며, 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 아래 존재하며, 선교를 핵심과제로 가지며, 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교회를 지속적으로 세워나가게 하는 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이해하면 기독교 선교란 교회를 통하여 수행되는 확고한 토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시행을 통하여 교회가 선교적인 역할을 바르게 수행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교회의 주된 임무는 세상의 길모퉁이에 서서 ‘복된 소식이 임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무시함으로써 이 의무를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또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할 수도 없다. 교회와 선교는 하나이며 어떤 식으로든 따로 분리될 수 없다....선교는 결코 교회를 나타내는 표식들 중에 하나쯤으로 여길 것이 아니다. 선교는 교회의 표시 그 자체이다. 소위 다른 모든 표지들은, 합법적이라면, 선교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약속한 그 권능은 증거 하라는 권능이다. 교회의 모든 다른 활동들은 선교라는 본질적인 과제로부터 파생되어 그것에 의해 판단되어져야 한다.125)
이상의 고찰에 의하면 선교란 교회의 기원과 관련이 있으며, 교회가 교회됨을 나타내는 과제로서 교회의 핵심적인 사역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4.4 교회의 존속과 관련된다는 의미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수행하도록 위임된 교회가 세상 끝까지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 선교이다. 물론 하나님의 교회란 세상 끝 날까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공동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수행하는 차원에서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존재해야 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선교이다. 교회가 선교를 수행함으로 지상에서 공간적으로 땅 끝까지와 시간적으로 세상 끝 날까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달리 표현하면 선교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세워지는 교회를 통해 선교하는 일을 계속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교회란 선교에 의해서 생겨나고 지속해 간다는 것은 곧 교회가 선교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내리는 탈교회 중심의 선교를 경계하면서 조직 교회의 선교적인 책임을 강조하여 “사도행전이 가르치기를, 선교는 조직교회에 의하여” 수행되었고 또한 “올바로 수행된 선교의 결과가 바로 조직 교회였다”126)
고 말한다. 이것은 선교에 의한 교회의 존속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블라우는 “복음전파란 세상이 아닌 바로 교회 자신의 생사가 달린 문제”127)
로 강조했는데, 선교에 의해서 교회가 존재를 계속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이것이(선교) 있음으로써 과거의 교회가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 있었던 것이며, 지금 세계 안에 세계를 위해 존재하며, 또한 그로 인해 역사 완성의 때까지 교회는 존재”128)
하는 것으로 밝힌다. 스나이더(H.Snyder)에 의하면 교회가 선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전도의 대행자이면서 아울러 결과라는 표현을 통해,129)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있고, 선교를 위해서 있는 교회의 선교에 의하여 또다시 선교할 수 있는 교회를 세워나가게 된다는 것을 피력했다.
이상의 4가지 방향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면, 교회는 선교를 통해 존재하게 되었으며, 선교를 위해 존재하며, 선교가 교회의 핵심적인 과제이며, 선교에 의해서 선교를 수행하는 교회가 존속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 사실은 곧 교회란 피할 수 없이 선교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이콥스(Donald R. Jacobs)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의 임재 안에서 만나며, 그의 주되심에 개인적으로나 협동적인 삶을 복종하는 곳에 존재하는 단체로서의 교회는 세계선교를 위한 하나의 센터라는 것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하고 성경의 권위 아래 자신을 놓는 어떤 단체든지 선교적 위임에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말한다.130)
벨코프(Hendrikus Berkhof) 역시 세상을 구원하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교회는 임시 대합실과 같이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에 있어야하고 동시에 서로 연결시키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피력했다.131)
선교란 교회에 위임된 본질적이며 핵심적인 사역이라면 교회는 선교를 피할 수 없는 일이다.
V 결론
교회론의 세속화에 의하면 교회가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인 차원의 관계보다는 인간관계 안에 있는 사회적인 제도로 강조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사역 역시 인간의 사회적인 관계 안에 있는 일들과 관련되어 강조되었다. 이러한 교회론의 경향에 의하여 교회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사역보다는 사회개선을 위한 사역으로 치닫게 되었다. 특별히 이러한 경향을 일으킨 사회복음에 있어서 교회는 당시의 사회문제 개선을 위한 사역에 윤리적인 면에서 역할 해야 하는 것으로 강조된 반면에, 해방신학은 가난과 압제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하여 가난과 압제 받는 자들을 통한 혁명적 방법을 정당화 했다.
교회론에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신비한 관계의 결핍은 다른 문제를 파급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인 제도로서의 교회가 사회를 개선하는 활동을 교회의 선교적인 역할로 이해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차원에서의 선교사역의 가치를 절하시키면서 사회개선의 사역을 강조하게 되면 자연히 기독교의 선교사역은 반드시 교회를 통해서만 수행되어야 한다는 절대성을 약화시키게 된다. 사회개선은 사회적인 기구들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 아래서 기독교 선교가 전통적으로 이해되어온 구조로서 “하나님-교회-세상”이 “하나님-세상-교회”라는 현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 선교가 교회를 통하여 수행되어야 한다는 이해가 약화되는 교회론의 세속화가 일어난 상황에서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재확인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의하면, 교회란 선교에 의하여 생겨난 태생을 가지며, 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 아래 존재하며, 선교를 핵심과제로 가지며, 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교회를 지속적으로 세워나가게 하는 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이해하면 기독교 선교란 교회를 통하여 수행되는 확고한 토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시행을 통하여 교회가 선교적인 역할을 바르게 수행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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