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2. 구약성서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3. 신약성서의 형성
2. 구약성서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3. 신약성서의 형성
본문내용
여러가지 위기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참 좋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마침내는 그 문헌들이 수집되고 또는 널리 반포되어 결국 정경(Canon)에 포함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3-4. 복음의 형식
구전 시대에는 예수의 생애와 교훈이 단편적인 이야기로 전해지다가 어느 시기에 일정한 형태로 고정되는 결과에 이르렀다. 근자의 신약학자들은 이렇게 고정된 이야기들과 교훈 자료들을 몇가지 형식으로 분류하여 취급한다.
3-4-1. 첫째 형식을 범례(凡例) 혹은 경구(警句), 또는 선언적 이야기라고 한다. 이 형식은 예수의 몇가지 중요한 격언적 말씀을 보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토막 교훈들이 복음서에 산재해 있다고 본다.
3-4-2. 둘째 형식은 설화 또는 이야기의 형식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예수가 하신 말씀 보다도 그가 행하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보존하기 위하여 있는 것들이다.
3-4-3. 세째는 교설(敎說)이라는 형식이다. 이것들은 어떤 전후 관계가 없이 고립적으로 보존된 예수의 말씀들이다. 그리고 교훈을 목적으로 하는 말씀들을 수집해 놓은 것이다.
3-4-4. 다음은 성전(聖傳)이라는 형식이다. 이것은 어떤 성인이나 성소와 관련된 비상한 사건들에 대해서 교훈 할 목적으로 기록된 이야기들을 말한다. 이러한 이야기에는 언제나 비상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비상한 인물이 언제나 거기에 관련되어 나타난다.
3-4-5. 다섯 째는 신화(神話)라는 형식이다.
이와 같이 학자들은 예수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교훈을 여러 가지의 문학형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으로 초대 교회에 유포되고 고정되어 있던 자료들을 복음서 기자들에 의해서 편집되었다고 보고있다.
3-5. 신약성서의 실제적 출현
구전 시대가 지나고 문서 운동이 시작되자, 기독교 문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말은 우리가 현재 27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신약성서 이외에도 다른 많은 복음서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문서들 중에서 어떤 것은 성서로 채택되고 어떤 것은 버림을 받았을까? 어째서 어떤 문서는 아주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또 어떤 것은 사사롭게나마 읽을 수 있도록 용납되거나 추천을 받았을까? 그리고 어째서 어떤 문서들은 마침내 완전히 신약 성서에 끼어 들 수 있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그 책이 교회의 공중 예배에서 읽혀졌다는 오직 한가지 이유때문이다. 일단 어떤 책이 공중 예배에서 낭독되기 시작하면 그 책이 정경이 된다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예배에서 무엇을 읽고 무엇을 읽지 않아야 할는지 결정짓는 일은 예언자들과 사도들과 교사들과 같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령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성령의 사람과 성령 감동받은 사람들은 무엇을 표준으로 하고 책들을 판단하였을까?
그 표준은 그 책이 사도적 권위를 가졌는가 아닌가에 두었다. 다시 말해서 그 책이 어떤 사도의 저술이든지간에 적어도 사도들과 직접 접촉하던 사람들이 쓴 것이라야 했다.
3-6. 사도적 권위의 정당성
초대 교회가 사도적 저작권을 정경 선정의 표준으로 삼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몇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3-6-1. 히브리 사상에 있어서 보냄을 받은 자는 어떤 의미에서 보낸 자와 동등하다고 생각되었다. 마찬가지로 사도는 예수의 최고 대표자들이요, 그의 메시지를 전하는 최고의 기관인 바 교회에서 사도들의 말은 예수의 말씀처럼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 권위가 부여 되었다.
3-6-2. 초대 기독교 내에 왜곡된 복음과 이단들이 잠입해 들어와 그리스도의 복음이 많이 변질되고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사실들이 참이고 거짓이냐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는 일 밖에 없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도들 뿐이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글이 진성정 문제의 시금석이 되었고 그들의 글은 자연스럽게 권위를 가질수 밖에 없었다.
3-7. 바울 서신의 집성(集成)
이제 신약 성서가 집성되는 실제적 과정을 상세하게 검토 해 보자.
바울은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어떤 지방 교회의 잠정적 형편을 다루어 취급하면서 편지를 썼다. 바울의 편지들은 어떤 서재나 도서관에서 조용히 앉아 연구하여 작성한 신학 논문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특정한 시간에 어떤 특정 교회가 당면한 급박한 정황을 취급하려는 목적에서 기록된 것들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다. 바울은 엄밀히 말하자면 사도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바울의 편지들이 수집되고 모든 교회의 공동적 소유가 되고 결국에는 정경화 되었을까? 바울의 편지들이 한 책으로 모아지고 온 교회의 소유물이 되어 마침내 성서로서의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은 어찌된 일일까?
그 가능성에 대한 두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는 자연스럽게 성장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후 80~90년 사이에 사도행전이 기록, 발표되는 일로 인해서 그 동안 거의 망각 되었던 바울이 초대 교회에 있어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각광을 받게되자 그가 쓴것은 남김없이 되찾아 연구하고 수집하고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3-8. 바울 서신 집성의 장소와 책임자
바울 서신들이 집성되어 발간된 장소는 주후 90년경에 에베소에서 된 일이라는 보는 견해가 학자들 간의 정설 정설(定說)이다. 그렇다면 이 뜻 있는 작업이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졌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확답을 얻을만한 역사적 증거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두가지 가설이 있다.
첫째는 \'빌레몬서\'를 매개로 해서 추리해 본 굿스피이드와 존 녹스의 가설이다. 그들은 빌레몬의 종 이었던 오네시모와 에베소 교회 감독이었던 오네시모를 동일인으로 본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나왔을 때 객지에서 바울을 만나 바울에게서 아주 친근하고 많은 도움을 받게된다. 그 오네시모가 나중에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고나서 자기가 사랑하고 또 자기를 사랑해주었던 상전 곧 바울의 편지들을 모아 출판하는 일에 착수했다는 가설이다.
둘째는 미국 침례교 학자 다나의 가설인데 바울의 사망이 그의 서신 수집의 계기가
3-4. 복음의 형식
구전 시대에는 예수의 생애와 교훈이 단편적인 이야기로 전해지다가 어느 시기에 일정한 형태로 고정되는 결과에 이르렀다. 근자의 신약학자들은 이렇게 고정된 이야기들과 교훈 자료들을 몇가지 형식으로 분류하여 취급한다.
3-4-1. 첫째 형식을 범례(凡例) 혹은 경구(警句), 또는 선언적 이야기라고 한다. 이 형식은 예수의 몇가지 중요한 격언적 말씀을 보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토막 교훈들이 복음서에 산재해 있다고 본다.
3-4-2. 둘째 형식은 설화 또는 이야기의 형식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예수가 하신 말씀 보다도 그가 행하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보존하기 위하여 있는 것들이다.
3-4-3. 세째는 교설(敎說)이라는 형식이다. 이것들은 어떤 전후 관계가 없이 고립적으로 보존된 예수의 말씀들이다. 그리고 교훈을 목적으로 하는 말씀들을 수집해 놓은 것이다.
3-4-4. 다음은 성전(聖傳)이라는 형식이다. 이것은 어떤 성인이나 성소와 관련된 비상한 사건들에 대해서 교훈 할 목적으로 기록된 이야기들을 말한다. 이러한 이야기에는 언제나 비상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비상한 인물이 언제나 거기에 관련되어 나타난다.
3-4-5. 다섯 째는 신화(神話)라는 형식이다.
이와 같이 학자들은 예수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교훈을 여러 가지의 문학형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으로 초대 교회에 유포되고 고정되어 있던 자료들을 복음서 기자들에 의해서 편집되었다고 보고있다.
3-5. 신약성서의 실제적 출현
구전 시대가 지나고 문서 운동이 시작되자, 기독교 문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말은 우리가 현재 27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신약성서 이외에도 다른 많은 복음서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문서들 중에서 어떤 것은 성서로 채택되고 어떤 것은 버림을 받았을까? 어째서 어떤 문서는 아주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또 어떤 것은 사사롭게나마 읽을 수 있도록 용납되거나 추천을 받았을까? 그리고 어째서 어떤 문서들은 마침내 완전히 신약 성서에 끼어 들 수 있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그 책이 교회의 공중 예배에서 읽혀졌다는 오직 한가지 이유때문이다. 일단 어떤 책이 공중 예배에서 낭독되기 시작하면 그 책이 정경이 된다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예배에서 무엇을 읽고 무엇을 읽지 않아야 할는지 결정짓는 일은 예언자들과 사도들과 교사들과 같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령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성령의 사람과 성령 감동받은 사람들은 무엇을 표준으로 하고 책들을 판단하였을까?
그 표준은 그 책이 사도적 권위를 가졌는가 아닌가에 두었다. 다시 말해서 그 책이 어떤 사도의 저술이든지간에 적어도 사도들과 직접 접촉하던 사람들이 쓴 것이라야 했다.
3-6. 사도적 권위의 정당성
초대 교회가 사도적 저작권을 정경 선정의 표준으로 삼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몇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3-6-1. 히브리 사상에 있어서 보냄을 받은 자는 어떤 의미에서 보낸 자와 동등하다고 생각되었다. 마찬가지로 사도는 예수의 최고 대표자들이요, 그의 메시지를 전하는 최고의 기관인 바 교회에서 사도들의 말은 예수의 말씀처럼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 권위가 부여 되었다.
3-6-2. 초대 기독교 내에 왜곡된 복음과 이단들이 잠입해 들어와 그리스도의 복음이 많이 변질되고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사실들이 참이고 거짓이냐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는 일 밖에 없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도들 뿐이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글이 진성정 문제의 시금석이 되었고 그들의 글은 자연스럽게 권위를 가질수 밖에 없었다.
3-7. 바울 서신의 집성(集成)
이제 신약 성서가 집성되는 실제적 과정을 상세하게 검토 해 보자.
바울은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어떤 지방 교회의 잠정적 형편을 다루어 취급하면서 편지를 썼다. 바울의 편지들은 어떤 서재나 도서관에서 조용히 앉아 연구하여 작성한 신학 논문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특정한 시간에 어떤 특정 교회가 당면한 급박한 정황을 취급하려는 목적에서 기록된 것들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다. 바울은 엄밀히 말하자면 사도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바울의 편지들이 수집되고 모든 교회의 공동적 소유가 되고 결국에는 정경화 되었을까? 바울의 편지들이 한 책으로 모아지고 온 교회의 소유물이 되어 마침내 성서로서의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은 어찌된 일일까?
그 가능성에 대한 두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는 자연스럽게 성장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후 80~90년 사이에 사도행전이 기록, 발표되는 일로 인해서 그 동안 거의 망각 되었던 바울이 초대 교회에 있어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각광을 받게되자 그가 쓴것은 남김없이 되찾아 연구하고 수집하고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3-8. 바울 서신 집성의 장소와 책임자
바울 서신들이 집성되어 발간된 장소는 주후 90년경에 에베소에서 된 일이라는 보는 견해가 학자들 간의 정설 정설(定說)이다. 그렇다면 이 뜻 있는 작업이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졌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확답을 얻을만한 역사적 증거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두가지 가설이 있다.
첫째는 \'빌레몬서\'를 매개로 해서 추리해 본 굿스피이드와 존 녹스의 가설이다. 그들은 빌레몬의 종 이었던 오네시모와 에베소 교회 감독이었던 오네시모를 동일인으로 본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나왔을 때 객지에서 바울을 만나 바울에게서 아주 친근하고 많은 도움을 받게된다. 그 오네시모가 나중에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고나서 자기가 사랑하고 또 자기를 사랑해주었던 상전 곧 바울의 편지들을 모아 출판하는 일에 착수했다는 가설이다.
둘째는 미국 침례교 학자 다나의 가설인데 바울의 사망이 그의 서신 수집의 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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