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참여 민주주의와 한국사회" 1~9페이지
"정치가 정도전" 10~13페이지
"정치가 정도전" 10~13페이지
본문내용
다.
그러던 중 우왕 9년(1383) 정도전은 중앙정계로의 진출을 이야기하기 위해 신흥 무인 세력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이성계를 함경도 함주막에서 만난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을 두고 학자들 간 해석상에서 많은 논의가 있지만 이 책에서는 정도전이 혁명을 모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성계의 힘을 빌려 복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을 뿐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는지 정도전은 다음 해 결국 중앙 정계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1985년 10월, 정도전은 다시 외직으로 자원하여 중앙을 떠난다. 이러한 정도전의 행동에 대해서 이 책은 정도전이 이때 지은 시를 통해 그가 이성계를 능가하는 기존 세력의 인물과 또 다시 갈등관계에 놓인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정도전이 느끼게 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주자주의자로서의 면모 이외에도 정치가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더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정도전이 또다시 외직에서 정치가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고려와 명사이의 관계는 더욱 냉각되었고 최영은 우왕의 동의를 얻어 이성계에게 요동 공벌을 명했다. 그 이후 일어난 것이 역사학계에서 조선 건국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 받는 위화도 회군(1388)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4년 후에 건국될 조선의 입장에서만 고려 말 일어난 사건들을 해석하는 것은 자칫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말한다. 1388년의 위화도 회군에서 1392년 조선 건국까지 일어난 사건들이 단순히 조선 건국을 위한 필연적 흐름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책은 위화도 회군이후 혁명세력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초기 행보 속에서 이들이 정말 \'혁명\'세력으로 불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설에 의문을 표한다. 이색과 함께한 세력을 온건 개혁파, 정도전 세력을 급진 개혁파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는 정도전의 정치적 행로를 해석하는데 색안경으로 작용할 수 도 있다.
이 책의 해석에 따르면 급진 개혁파 세력들도 본질적으로 주자주의 정치를 꿈꾸던 학자들이고, 위화도 회군이 이루어 진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바른 논리는 주자가 언급한 중흥의 논리였다. 더군다나 위화도 회군 직후의 개혁파, 신진사대부 세력들은 전제 개혁 이전에는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신진사대부 세력들이 나뉜 것은 전제개혁의 진행방향에 대한 의견차이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1389년 온건개혁파 세력들이 포함된 이성계 살해 및 우왕 복위계획이 발각되고, 급진 개혁파 세력의 전술은 이때부터 비로소 중흥에서 혁명으로 전환되게 된다. 정도전에게 선택을 강요한 것은 1391년 4월 공양왕으로부터 내려진 구언교서 사건이었다. 그것은 신진사대부들간의 내전이 표면화 되는 사건이었으며 급진 개혁파와 온건 개혁파, 이제는 혁명파와 중흥파로 불릴 수 있는 이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 후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척살될 때까지의 고려 조정은 가히 전쟁이라 할 수 있는 혼란 속에 있었다. 구언교서로 양 측에서는 서로의 진영을 헐뜯는 상소가 빗발쳤고, 정도전이 9월에 박자량 사건으로 좌천되어 중앙 정계와 떨어져 지내는 가운데 정몽주의 주도로 연립정권이 성립된다. 말 뿐인 연립정권 속에서 사태의 국면을 전환시킨 것은 처음부터 주자주의에 큰 뜻이 없었던 신흥 무인세력이었다. 또한 조준과 같은 무리들과 달리 정도전은 대대적 숙청이나 조선 왕조 수립을 위한 작업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이 책은 주자 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욕에 의한 왕위 찬탈에 이루어진 조선 왕조의 개국 과정에 정말로 정도전이 개입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혁명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정도전은 다른 이들과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급진 개혁파 정도전의 혁명사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정도전의 혁명사상은 주자의 혁명사상에서 그 뿌리를 가진다. 주자는 엄격하긴 하나 혁명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올바른 혁명을 위해서 무력의 존재를 필수 불가결 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정도전은 주자의 혁명사상과는 조금 다른 그 자신만의 혁명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도전이 \'한국\' 정치가들에게 주는 올바른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주자학은 분명히 중국의 것이며, 정도전 또한 중국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도전은 주자의 혁명사상을 한국의 현실에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혁명 존재의 의의를 찾는 것은 주자의 혁명사상과 같이 역사 속에서였지만 그로 인해 세워진 왕조의 정당성을 찾는 것은 정도전 자신만의 해석이 존재했다. 그가 보기에 고려에서는 중국에서와 같은 무력행사가 필요한 상황은 없었고, 그는 이를 고려의 상황에 적용해 무력보다는 왕명을 이용한 정통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정치사상 적으로 후발국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타율적, 수용적으로 중심국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문제의식을 한국화하고, 중국 사상과의 동화의식을 거부한 것은 서양사상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타자 화하고 있는 현대의 주변국 학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올바른 정치 사상가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정도전에게는 두 번째 선택의 기로가 놓여있다. 그의 바람대로 정국은 움직여주지 않았고 그를 배제한 채로 조선 건국을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그가 선택할 것은 그가 원치 않았던 국가의 관리로 출사하느냐, 아니면 은둔하느냐 하는 것 이었다. 처음 출사할 때의 정도전이었다면 그는 은둔하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노련한 정치가였으며 권력의 힘을 알고 있는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는 권력을 아는 정치가답게 출사를 준비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는 주자학자로서의 변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자가 이미 말한 것과 같이, 도(道)는 천하에 존재하여 하루도 없는 날이 없다. 道가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기(氣)가 잘못 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정도전은 불의를 바로 잡고 도를 실현하기 위해서 출사하게 된다.
그가 찬탈 권력 속에서 도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이 찬탈 권력을 법제화하여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왕조의 전통성이란 \'담론적\' 정당화로는 완성되지 않기
그러던 중 우왕 9년(1383) 정도전은 중앙정계로의 진출을 이야기하기 위해 신흥 무인 세력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이성계를 함경도 함주막에서 만난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을 두고 학자들 간 해석상에서 많은 논의가 있지만 이 책에서는 정도전이 혁명을 모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성계의 힘을 빌려 복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을 뿐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는지 정도전은 다음 해 결국 중앙 정계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1985년 10월, 정도전은 다시 외직으로 자원하여 중앙을 떠난다. 이러한 정도전의 행동에 대해서 이 책은 정도전이 이때 지은 시를 통해 그가 이성계를 능가하는 기존 세력의 인물과 또 다시 갈등관계에 놓인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정도전이 느끼게 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주자주의자로서의 면모 이외에도 정치가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더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정도전이 또다시 외직에서 정치가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고려와 명사이의 관계는 더욱 냉각되었고 최영은 우왕의 동의를 얻어 이성계에게 요동 공벌을 명했다. 그 이후 일어난 것이 역사학계에서 조선 건국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 받는 위화도 회군(1388)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4년 후에 건국될 조선의 입장에서만 고려 말 일어난 사건들을 해석하는 것은 자칫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말한다. 1388년의 위화도 회군에서 1392년 조선 건국까지 일어난 사건들이 단순히 조선 건국을 위한 필연적 흐름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책은 위화도 회군이후 혁명세력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초기 행보 속에서 이들이 정말 \'혁명\'세력으로 불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설에 의문을 표한다. 이색과 함께한 세력을 온건 개혁파, 정도전 세력을 급진 개혁파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는 정도전의 정치적 행로를 해석하는데 색안경으로 작용할 수 도 있다.
이 책의 해석에 따르면 급진 개혁파 세력들도 본질적으로 주자주의 정치를 꿈꾸던 학자들이고, 위화도 회군이 이루어 진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바른 논리는 주자가 언급한 중흥의 논리였다. 더군다나 위화도 회군 직후의 개혁파, 신진사대부 세력들은 전제 개혁 이전에는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신진사대부 세력들이 나뉜 것은 전제개혁의 진행방향에 대한 의견차이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1389년 온건개혁파 세력들이 포함된 이성계 살해 및 우왕 복위계획이 발각되고, 급진 개혁파 세력의 전술은 이때부터 비로소 중흥에서 혁명으로 전환되게 된다. 정도전에게 선택을 강요한 것은 1391년 4월 공양왕으로부터 내려진 구언교서 사건이었다. 그것은 신진사대부들간의 내전이 표면화 되는 사건이었으며 급진 개혁파와 온건 개혁파, 이제는 혁명파와 중흥파로 불릴 수 있는 이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 후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척살될 때까지의 고려 조정은 가히 전쟁이라 할 수 있는 혼란 속에 있었다. 구언교서로 양 측에서는 서로의 진영을 헐뜯는 상소가 빗발쳤고, 정도전이 9월에 박자량 사건으로 좌천되어 중앙 정계와 떨어져 지내는 가운데 정몽주의 주도로 연립정권이 성립된다. 말 뿐인 연립정권 속에서 사태의 국면을 전환시킨 것은 처음부터 주자주의에 큰 뜻이 없었던 신흥 무인세력이었다. 또한 조준과 같은 무리들과 달리 정도전은 대대적 숙청이나 조선 왕조 수립을 위한 작업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이 책은 주자 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욕에 의한 왕위 찬탈에 이루어진 조선 왕조의 개국 과정에 정말로 정도전이 개입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혁명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정도전은 다른 이들과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급진 개혁파 정도전의 혁명사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정도전의 혁명사상은 주자의 혁명사상에서 그 뿌리를 가진다. 주자는 엄격하긴 하나 혁명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올바른 혁명을 위해서 무력의 존재를 필수 불가결 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정도전은 주자의 혁명사상과는 조금 다른 그 자신만의 혁명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도전이 \'한국\' 정치가들에게 주는 올바른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주자학은 분명히 중국의 것이며, 정도전 또한 중국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도전은 주자의 혁명사상을 한국의 현실에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혁명 존재의 의의를 찾는 것은 주자의 혁명사상과 같이 역사 속에서였지만 그로 인해 세워진 왕조의 정당성을 찾는 것은 정도전 자신만의 해석이 존재했다. 그가 보기에 고려에서는 중국에서와 같은 무력행사가 필요한 상황은 없었고, 그는 이를 고려의 상황에 적용해 무력보다는 왕명을 이용한 정통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정치사상 적으로 후발국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타율적, 수용적으로 중심국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문제의식을 한국화하고, 중국 사상과의 동화의식을 거부한 것은 서양사상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타자 화하고 있는 현대의 주변국 학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올바른 정치 사상가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정도전에게는 두 번째 선택의 기로가 놓여있다. 그의 바람대로 정국은 움직여주지 않았고 그를 배제한 채로 조선 건국을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그가 선택할 것은 그가 원치 않았던 국가의 관리로 출사하느냐, 아니면 은둔하느냐 하는 것 이었다. 처음 출사할 때의 정도전이었다면 그는 은둔하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노련한 정치가였으며 권력의 힘을 알고 있는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는 권력을 아는 정치가답게 출사를 준비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는 주자학자로서의 변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자가 이미 말한 것과 같이, 도(道)는 천하에 존재하여 하루도 없는 날이 없다. 道가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기(氣)가 잘못 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정도전은 불의를 바로 잡고 도를 실현하기 위해서 출사하게 된다.
그가 찬탈 권력 속에서 도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이 찬탈 권력을 법제화하여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왕조의 전통성이란 \'담론적\' 정당화로는 완성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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