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놀린 스타일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복식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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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크리놀린 스타일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복식특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근대 서양의 의복
2. 크리놀린(Crinoline)의 어원
3. 문화적 배경과 복식의 특징
4. 의복종류
5. 근대 서양복식사 (엠파이어, 로맨틱, 크리놀린, 버슬, s자형스타일)
6. 크리놀린의 문제점들
7. 크리놀린의 쇠퇴
8. 오늘날의 크리놀린
참고문헌

본문내용

물로 만들었고 스탠딩칼라에 앞가슴에는 터커장식이 있는 것이 등장 했다. 이브닝웨어에는 프릴 달린 셔츠를 입었고 정장에는 흰색 타이를 매었다.1850 년 이후는 현대와 같은 접히는 셔츠칼라가 나와 넥타이는 좀 더 좁게 축소되어 끈과 같은 스트링타이,보우타이,매듭타이 를 매게 되었다.
c.바지
바지통이 약간 넓어져서 색코트와 조화를 이루었으며 바지길이 는 발등을 덮을 정도로 길어지고 발걸이의 끈은 1859년 이후 에는 없어졌다. 니커버커는 사수의 바지에서 유래된 것으로 무릎 아래에 버클로 밴드를 묶거나 고무줄로 묶게 되어 있었다.
d.오버코트
프록코트와 같은 모양의 허리가 꼭 맞고 아래 스커트 부분이 약간 후레어진 프록그레이트코트가 무릎길이 인 것에서 발목길이 인 것까지 여러 가지 길이의 것이 유행했다. 짧은 체스터 필드코트 는 벨벳칼라에 박스형이고
허리선 아래에 뚜껑이 있는 주머니와 슬릿포켓이 달려 있었다. 이 외에 여행할 때나 저녁 파티,극장에 갈 때 케이프가 달린 인버네스 케이프를 입었다
*여자복식
a.크리놀린
1850년 대부터 1860년 대에 스커트를 넓게 퍼지도록 하기 위해 입었던 속치마를 말한다.
b.가운
가운의 바디스는 몸에 꼭 끼며 허리선이 앞중심에서 예각을 이루는 16세기 스타일과 유사 해졌는데. 목둘레는 둥근 목둘레에 레이스 칼라 가 달린 것이 있으며 무도용 가운은 목둘레가 많이 파여 지고 레이스 로 목둘레를 장식 하거나 버더칼라가 달렸다.1850년 대 가운의 스커트는 수평으로 많은 플라운스가 있는 스커트가 유행하여 15줄이상 의 플라운스가 달린 것도 있있었다. 소매 디자인은 어깨는 꼭 맞고 팔꿈치 나 소매 끝으로 갈수록 퍼지는 벨 슬리브나 파고다 슬리브,타이트 슬리브 등이 대표적인 소매다.1860년 대에는 스커트 길이가 짧아 지면서 뽈로네이즈 가운이 다시 출현하여 스커트의 겉자락을 드레이프 시키고 아래로 여러 가지 색의 페티코트가 보이게 입었다.
c.외투
크리놀린을 입으면 스커트가 넓게 퍼지므로 가운위에 두르는 숄이 유행 하였다
d.헤어스타일과 모자
남자들의 헤어 스타일은 머리카락이 뒷목에 닿지 않을 정도로 짧고 콧수염과 볼수염을 길렀다. 여자의 헤어 스타일은 유제니 왕비 의 붉은 갈색 머리칼과 가운데 가리마를 타고 돌돌말린 소시지컬을 양쪽으로 늘어뜨리는 형이 유행 하였는데.1860년 대 일반 여성들은 유제니 왕비와 같은 머리색을 만들기 위해 염색약 과 탈색제를 사용하였다.
d.신발
남자는 궁정복에 팜프스형을 신었고 1860년 대에는 앞부리가 네모 나고 헝겊과 가죽으로 된 옆에서 단추로 잠그는 그두가 나왔다. 무릎까지 올라가는 부츠는 승마와 사냥할 때 신었고 반장화가 애용 되었다. 여자들은 작은 힐이 붙은 것으로 앞부리는 네모난 형과 둥근형, 뾰족한 형이 있었고 반장화는 옆에서 단추나 끈으로 엮어서 채우는 형 이었다.
5. 근대 서양복식사 (엠파이어, 로맨틱, 크리놀린, 버슬, s자형스타일)
1) 엠파이어 스타일 시대
프랑스 형명의 격동기를 지나 시민 사회가 성숙되면서 영국 모드의 영향을 받은 남성복이 근대적인 시민복으로 완성되어, 코트, 조끼, 바지의 기본 의복으로 현대 남성복의 수트(suit)가 정립된 시기이다. 1797년 나폴레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제1제정기(1804-12년)에 걸쳐서는 고대적 취미가 모드의 중심이 되는데, 이 시기의 모드를 네오크라시즘(Neo-Classicism)이라든가 엠파이어 스타일(Empire style)이라고 말한다. 백색 머슬린으로 만든 하이 웨이스트 라인의 슈미즈 드레스가 대표적인 스타일이며, 고대풍으로 팔을 드러내고, 신체의 선이 드러날 정도로 아주 얇은 직물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스핀서라는 짧은 길이의 재킷, 펠리스, 르뎅고트를 외투로 착용하였다. 남자들은 짧은 머리형태에 비버해트나 바이콘(bicorn)을 썼으며, 여자들은 그리스의 헤어 스타일을 재현하면서 조화 장식이 있는 밀짚모자를 애용하였다. 남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부츠와 구두를 신었고, 여자들은 슬리퍼를 즐겨 신었다. 남자들은 늘어뜨려진 시계줄장식 과 지팡이를, 여자들은 파라솔, 머프, 작은 핸드백을 애용하였고, 남녀 모두에게 장갑은 중요한 장신구였다.
2) 로맨틱 스타일 시대
1820년경이 되면,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로코코에 대한 관심이 로맨틱 스타일이라고 불리우는 X자형의 스타일로 등장한다. 남자들은 부풀려진 소매와 목 수건으로 어깨가 넓어 보이도록 하여 X자형 실루엣을 표현하였으며, 여자들은 소매의 위쪽을 크게 부풀린 양다리형의 소매와 가는 허리, 그리고 페티코트를 여러 겹으로 겹쳐 입어 부풀려진 스커트로 실루엣을 표현하였고 러플, 레이스, 터커장식을 많이 사용하였다. 남자들은 크라운이 높은 실크해트를 즐겨 썼고, 여성들은 아폴로 노트 헤어 스타일과 소시지 컬이 유행하였다. 앞 부리가 네모난 구두와 부츠는 남자들의 신발 형태이며, 여자들은 굽이 없는 슬리퍼 형태의 신발과 부츠를 애용하였다. 남자들이 애용한 장신구는 지팡이, 장갑이며, 여자들은 파라솔과 머프, 레이스 장식이 있는 손수건과 함께 스톨을 즐겨 사용하였다.
3) 크리놀린 스타일 시대
1850년경에 크리놀린(crinoline)이라는 스커트 버팀 도구가 등장을 하면서, 스커트가 역사상 가장 넓은 스타일을 형성하게 된다. 당시 패션계의 여왕은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유제니(Eugenie)로 영국의 디자이너인 찰스 워스를 초청하면서 파리에 오트 쿠튀르가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 모드를 지배하게 되었다. 또한 재봉틀의 발명과 함께 의복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되면서 기성복 산업이 추진되었다. 남자들은 코트와 바지를 같은 옷감으로 만든 디토수트를 착용하였고, 바지의 옆선에는 다른색으로 된 선 장식을 하기도 하였다. 여자들은 크리놀린으로 인하여 로브의 스커트가 돔형, 피라미드형, 새장형 등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하였으며, 보디스는 몸에 꼭 맞도록 코르셋으로 조이면서 허리를 가늘게 만들어 주어 X자형의 실루엣을 나타내었다. 스커트의 너비가 넓어지면서 외투보다는 숄이나 맨틀이 더 유행하게 되었다. 남자들은 짧은 헤어 스타일에 수염을 즐겨 길렀으며 중절모자, 실크해트, 밀짚모자를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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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1.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17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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