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르네상스의 의미
2. 르네상스 음악의 특성
3. 세속음악
4. 15세기 음악
5. 르네상스음악의 새 방향
6. 독일 음악의 성장
7. 15세기 독일 르네상스 음악에 대해
8. 15세기 독일의 르네상스 작곡가들
참고문헌
2. 르네상스 음악의 특성
3. 세속음악
4. 15세기 음악
5. 르네상스음악의 새 방향
6. 독일 음악의 성장
7. 15세기 독일 르네상스 음악에 대해
8. 15세기 독일의 르네상스 작곡가들
참고문헌
본문내용
리갈의 융성은 눈부신바가 있다. 이탈리아 후기 마드리갈 작곡의 끝을 맺는 몬테베르디의 마드리갈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마드리갈중 첫 4권은 르네상스적인 무반주 다성 성악 앙상불의 곡이고, 다음 2권은 바로크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것이며, 콘체르토(Concerto)라고 제목을 붙인 마지막곡집인 제 7집은 기악반주를 갖는 독주, 이중주곡으로 뚜렷이 바로크적인 양식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의 후기 마드리갈은 초기 마드리갈과 달리 음악 동기가 레시타티브와 같이 낭송적이며, 짜임새도 다성적이 아니라 베이스의 화성적 반주를 갖는 이중주적인 것으로 이미 바로크 경향이 무르익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몬테베르디의 위대함은 르네상스의 전통적 음악서법(제 1작법)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독창성으로 바로크(제 2작법) 세계를 개척했다는 점이다. 몬테베르디의 손에 의해 이탈리아의 마드리갈은 공전의 극적 표현력을 획듬함과동시에 붕괘점에 도달한 르네상스 마드리갈은 몬테베르디에 의해 바로크 양식의 아리아 내지 칸타타로 변화되어 해체되었다.
4. 15세기 음악
15세기는 미술, 문학, 철학에 있어서 특히 현저하게 나타난, 중세기에서 르네상스(Renaissance)기로 옮겨가는 최종적인 변천을 분명하게 나타낸 시대였다. 이 시기의 음악활동의 중심지는 프랑스 및 이탈리아에서 영국 및 네덜란드 지역으로 옮겨졌다.
- 일반적인 역사적 배경
중세의 봉건제도와 교체되어 도시문화가 번영했다. 르네상스의 중요한 철학인 인문주의가 확고한 기초를 쌓았다. 역사상의 중요한 사건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아쟁쿠르(agincourt)에서의 영국군의 승리,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함락, 100년전쟁의 종결, 컬럼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등이었다. 1454년의 회전식 활자 인쇄술 발명은 궁극적으로 음악 보급에 광범한 영향을 주었다. 미술, 문학, 음악은 필립 선왕과 샤를르 용담왕의 보호 아래 부르고뉴 궁정에서 화려하게 개화하였다. 당시의 유명한 예술가들 중에는 기베르티, 도나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반 아이크, 라파엘 등이 있었다.
5. 르네상스음악의 새 방향
이 시기 이탈리아에는 뚜렷한 두 주류가 존재했다. 하나는 순전히 성악만으로 이루어진 복음악적 교회음악을 완성시킨 로마 악파였고, 아른 하나는 그것과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기악만으로 극적이면서 색채감이 풍부한 근대적 음악을 확립시킨 베니스 악파였다.
1) 베니스 악파
교황청이 위치한 로마는 음악도 보수적인 경향을 띄고 있었으나, 지중해의 입구에 위치한 상업도시인 베니스에서는 색채감이 풍부한 화려한 교회음악이 애호되었다. 베니스 음악문화의 심장이자 중심지는, 비잔티움식의 돔(dome)과 금빛 찬란한 모자이크, 그리고 엷은 초록빛을 띠는 황금색으로 가득차 있는 넓은 내부를지닌, 저 웅장한 11세기의 성마르코 대성당이었다. 성 마르코 대성당의 음악은 국가 관리들의 감독을 받아 왔다. 대성당에는 두 대의 오르간과 함께 엄중한 시험을 거쳐 선발된 오르간 주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언제나 명성을 누렸다. 빌라르트는 16세기의 성가대 지휘자였고,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그리고 그의 조카인 조반니 가브리엘리는 오르간 주자였다. 16세기의 많은 베니스 작곡가들은 특히 마드리갈에 공헌하였다. 또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홀륭한 오르간 음악을 만들어냈다. 베니스의 음악은 그 구조가 선명하고 꽉 차 있으며, 대위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호모포니적이며, 음향에는 변화가 많고 색채가 짙은 것이 특징이었다. 모테토에서도, 다성적인 선들이 서로 얽혀 있는 네덜란드 작곡가들의 작품과는 달리 무게 있는 화현적 화성이 일반적이었다. 빌라르트의 시대부터 그리고 그 이전에도, 베니스의 교회음악 작곡가들은 성마르코 대성당의 양쪽에 있는 오르간과 같이 분리 배치된 두 성가대를 위해 종종 이중합창곡을 썼다. 이러한 Cori spezzati(‘분리된 합창대‘라는 의미)가 베니스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또 베니스만의 고유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법은 베니스 작곡가들이 선호하던 호모포니적 유형의 합창곡 작법과 광범위한 리듬 조직에 적합하였으며, 그것들을 더욱 장려하였다. 더욱이 베니스는 로마와 달리, 아 카펠라 연주에 대한 관념에 묶여 있지는 않았다. 오르간뿐 아니라 다른 많은 악기들도 성부와 함께 연주되었다. 모테토는, 베니스의 거장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조반니 가브리엘리의 손을 거쳐 전례 없는 크기로 확대되었다. 즉 합창단이 둘에서 네 개, 혹은 다섯 개까지 쓰였으며, 각 합창단은 고성부와 저성부를 서로 다르게 조합하였다. 또 각각 다양한 음색의 악기들이 혼합되어 있어서 안티포나식으로 선율을 서로 주고 받기도 하고, 독창 성부들과 교체되기도 하다가, 무게있는 음향상의 절정을 이루기 위해 하나로 합류하기도 하였다. 합주음악은 베니스 악파에 의해 발전되기 시작했다. 안드레아와 지오반니 가브리엘리가 이끈 베니스 악파의 합주음악에서 <심포니아>나 <소나타>와 같은 용어가 기악곡의 제목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아직 그 제목들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기악곡이라는 정도의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베니스 악파의 합주음악은 다중합창과 합주가 교대되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곡들은 소나타 또는 심포니아와 같은 제목을 갖고 있다). 이런 구조가 바로크 음악의 중요한 기원인 근거는 “대조“라는 개념의 도입에 있다:같거나 유사한 음향의 조화(예:아카펠라)가 르네상스 음악의 이상이라면, 대조와 대극의 추구(예:콘체르토)는 바로크 음악의 중요한 특성이 된다.
아드리안 빌라르트 (Adrian Willaert 1480/90경-1562)
플랑드르 악파 제3세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빌라르트는 무통(Mouton)과 죠스깽의 제자이며 모든 음악 장르를 다양한 양식으로 섭렵했다. 그의 음악은 죠스깽 이후의 플랑드르 다성음악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다양하다: 미사(8개,패로디), 모테토(330개), 마드리갈(60개), 빌라넬라, 샹송, 악기를 위한 3성부 리체르카르 등. 음악 문헌에 끼친 그
4. 15세기 음악
15세기는 미술, 문학, 철학에 있어서 특히 현저하게 나타난, 중세기에서 르네상스(Renaissance)기로 옮겨가는 최종적인 변천을 분명하게 나타낸 시대였다. 이 시기의 음악활동의 중심지는 프랑스 및 이탈리아에서 영국 및 네덜란드 지역으로 옮겨졌다.
- 일반적인 역사적 배경
중세의 봉건제도와 교체되어 도시문화가 번영했다. 르네상스의 중요한 철학인 인문주의가 확고한 기초를 쌓았다. 역사상의 중요한 사건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아쟁쿠르(agincourt)에서의 영국군의 승리,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함락, 100년전쟁의 종결, 컬럼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등이었다. 1454년의 회전식 활자 인쇄술 발명은 궁극적으로 음악 보급에 광범한 영향을 주었다. 미술, 문학, 음악은 필립 선왕과 샤를르 용담왕의 보호 아래 부르고뉴 궁정에서 화려하게 개화하였다. 당시의 유명한 예술가들 중에는 기베르티, 도나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반 아이크, 라파엘 등이 있었다.
5. 르네상스음악의 새 방향
이 시기 이탈리아에는 뚜렷한 두 주류가 존재했다. 하나는 순전히 성악만으로 이루어진 복음악적 교회음악을 완성시킨 로마 악파였고, 아른 하나는 그것과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기악만으로 극적이면서 색채감이 풍부한 근대적 음악을 확립시킨 베니스 악파였다.
1) 베니스 악파
교황청이 위치한 로마는 음악도 보수적인 경향을 띄고 있었으나, 지중해의 입구에 위치한 상업도시인 베니스에서는 색채감이 풍부한 화려한 교회음악이 애호되었다. 베니스 음악문화의 심장이자 중심지는, 비잔티움식의 돔(dome)과 금빛 찬란한 모자이크, 그리고 엷은 초록빛을 띠는 황금색으로 가득차 있는 넓은 내부를지닌, 저 웅장한 11세기의 성마르코 대성당이었다. 성 마르코 대성당의 음악은 국가 관리들의 감독을 받아 왔다. 대성당에는 두 대의 오르간과 함께 엄중한 시험을 거쳐 선발된 오르간 주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언제나 명성을 누렸다. 빌라르트는 16세기의 성가대 지휘자였고,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그리고 그의 조카인 조반니 가브리엘리는 오르간 주자였다. 16세기의 많은 베니스 작곡가들은 특히 마드리갈에 공헌하였다. 또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홀륭한 오르간 음악을 만들어냈다. 베니스의 음악은 그 구조가 선명하고 꽉 차 있으며, 대위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호모포니적이며, 음향에는 변화가 많고 색채가 짙은 것이 특징이었다. 모테토에서도, 다성적인 선들이 서로 얽혀 있는 네덜란드 작곡가들의 작품과는 달리 무게 있는 화현적 화성이 일반적이었다. 빌라르트의 시대부터 그리고 그 이전에도, 베니스의 교회음악 작곡가들은 성마르코 대성당의 양쪽에 있는 오르간과 같이 분리 배치된 두 성가대를 위해 종종 이중합창곡을 썼다. 이러한 Cori spezzati(‘분리된 합창대‘라는 의미)가 베니스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또 베니스만의 고유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법은 베니스 작곡가들이 선호하던 호모포니적 유형의 합창곡 작법과 광범위한 리듬 조직에 적합하였으며, 그것들을 더욱 장려하였다. 더욱이 베니스는 로마와 달리, 아 카펠라 연주에 대한 관념에 묶여 있지는 않았다. 오르간뿐 아니라 다른 많은 악기들도 성부와 함께 연주되었다. 모테토는, 베니스의 거장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조반니 가브리엘리의 손을 거쳐 전례 없는 크기로 확대되었다. 즉 합창단이 둘에서 네 개, 혹은 다섯 개까지 쓰였으며, 각 합창단은 고성부와 저성부를 서로 다르게 조합하였다. 또 각각 다양한 음색의 악기들이 혼합되어 있어서 안티포나식으로 선율을 서로 주고 받기도 하고, 독창 성부들과 교체되기도 하다가, 무게있는 음향상의 절정을 이루기 위해 하나로 합류하기도 하였다. 합주음악은 베니스 악파에 의해 발전되기 시작했다. 안드레아와 지오반니 가브리엘리가 이끈 베니스 악파의 합주음악에서 <심포니아>나 <소나타>와 같은 용어가 기악곡의 제목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아직 그 제목들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기악곡이라는 정도의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베니스 악파의 합주음악은 다중합창과 합주가 교대되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곡들은 소나타 또는 심포니아와 같은 제목을 갖고 있다). 이런 구조가 바로크 음악의 중요한 기원인 근거는 “대조“라는 개념의 도입에 있다:같거나 유사한 음향의 조화(예:아카펠라)가 르네상스 음악의 이상이라면, 대조와 대극의 추구(예:콘체르토)는 바로크 음악의 중요한 특성이 된다.
아드리안 빌라르트 (Adrian Willaert 1480/90경-1562)
플랑드르 악파 제3세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빌라르트는 무통(Mouton)과 죠스깽의 제자이며 모든 음악 장르를 다양한 양식으로 섭렵했다. 그의 음악은 죠스깽 이후의 플랑드르 다성음악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다양하다: 미사(8개,패로디), 모테토(330개), 마드리갈(60개), 빌라넬라, 샹송, 악기를 위한 3성부 리체르카르 등. 음악 문헌에 끼친 그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