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앙경찰기관 중 포도청의 설치배경이 무엇이었는지와 조직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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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중앙경찰기관 중 포도청의 설치배경이 무엇이었는지와 조직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포도청
2. 포도청 설치배경
3. 조선시대 의금부와 포도청의 차이
4. 조선시대 포도청 관직
5. 포도청의 업부 분담
6. 포도청의 조직운영

본문내용

1540년(중종 35)이다. 이기(李岐)의 하인들이 도적을 잡아 포도청에 고했는데 받아주지 않은 것은 포도대장들이 부하를 소홀히 한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4년 후 포도청에 도적을 신중하고 자세하게 심문하라는 전교(傳敎)가 내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포도청이 포도대장과 달리 조선왕조실록에서 드물게 보인다. 이는 단일 기관이 아니고 좌·우포도대장을 장으로 양립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포도청의 실존은 성종 초부터 중종 이전으로 볼 수 있다. ≪속대전≫에서는 좌·우포청에 각각 대장(大將, 종2품) 1인, 종사관(從事官, 종6품) 3인과 부장(部將) 4인, 무료부장(無料部將) 26인, 가설부장(架設部將) 12인, 서원(書員) 4인씩을 두었다. ≪만기요람≫에는 대장과 종사관은 이전과 같고, 부장 (部將)은 없고 군관(軍官) 각 70인, 군사(軍士) 각 64인씩으로 되어 있다. 포도대장은 포도청을 지휘, 감독하는 책임자로 다른 군사 지휘관을 겸할 수 없으며, 왕의 행차 때 수행하였고, ≪대전회통≫에 좌·우윤(左右尹)을 지낸 사람으로 임명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종사관은 문무당하관(文武堂下官)으로 임명해 포도대장을 보좌하고 죄인의 심문을 주관하는 등 실무를 담당하였다. 부장·무료부장·가설부장은 군사를 지휘해 포도나 순라에 임하였고, 서원은 중인신분으로 사무기록을 담당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에 좌·우포청을 폐합해 경무청(警務廳)을 설치하고 내무아문(內務衙門)에 부속시켰다. 그러나 책임자인 경무사(警務使)는 왕과 직결되어 독립된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경찰지휘권을 이용해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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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1.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19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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