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들어가며
- 1. 지식인과 친일
- 2. 여성
- 3. 종교
- 맺음말
- 1. 지식인과 친일
- 2. 여성
- 3. 종교
- 맺음말
본문내용
났다). 또한, 독립된 개인의 시대에서 신여성이란 마땅히 개인으로 거듭난 여성들에 한정해야 한다고 하며 여성의 욕망의 자유와 몸의 해방을 이야기 했다.
근대와 여성을 이야기한 이 챕터를 읽으면서 난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이 생각났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한다. 이 책은 70-80년대의 어두운 뒷골목의 세계와 함께, 인신매매 등 억압적인 현실로 엄청난 고통을 받는 매춘 여성들, 하지만 자신의 위층에 사는 남학생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빚에 쩌든 생활이지만 그에게 전기밥통을 선물하는, 또 자신을 착취하는 기둥서방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 우리와 다를 것이 전혀 없는 오히려 더 인간적인 여성들을 이야기 했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매춘 여성’에 대한 문제가 단순히 뒷골목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도 남성중심주의적이며 그래서 권위적인 우리의 사회를 아우르는 전반적인 사회·문화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글에서 현대 매춘 여성들과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의 남녀평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박노자는 현대의 성매매가 기존의 윤락가를 벗어나서 인터넷을 통해 패티쉬클럽, 대딸방 등의 새로운 풍속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하였고, 허동혁은 이전과 다르게 현대의 매춘은 교육 받은 중산층 출신의 여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현대의 성매매는 이 전의 ‘강요형’에서 ‘선택형’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노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88만원의 세대에 살고 있는, 삶이 각박한 젊은 여성들이 ‘전국성노동자연대’가 주장한 ‘성노동자(이면서 비정규직)’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선택형 성노동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 여자후배는 나에게 성매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나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우리나라에서 성매매 산업이 곧 ‘불패산업’이 된 배경이라고 반박했고, 성매매라는 것이 계속되면 남성이 여성을 무의식적으로 ‘성적도구’로 느낄 것이며 그것이 곧 남녀차별의 간극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경제적 이유로 스스로 성매매의 지옥으로 들어간 여성들의 간절한 사정, 이 시대의 경제가 만들어낸 88만원세대의 그 간절한 사정을 백번 이해하지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며 남성중심주의적인 사회를 유지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여후배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러나 이 여후배는 매춘 여성을 교화의 대상으로 낮추어 보는 남성 주류문화의 담론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성매매라는 것이 또 그녀들의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노동’에 대해서는 그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지만, 근대의 매춘 여성이건, 현대의 매춘 여성이건 그녀들을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아닌 개인으로, 한 나라의 국민으로 바라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둠의 자식들>에서 한 매춘 여성은 “‘내가 내
근대와 여성을 이야기한 이 챕터를 읽으면서 난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이 생각났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한다. 이 책은 70-80년대의 어두운 뒷골목의 세계와 함께, 인신매매 등 억압적인 현실로 엄청난 고통을 받는 매춘 여성들, 하지만 자신의 위층에 사는 남학생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빚에 쩌든 생활이지만 그에게 전기밥통을 선물하는, 또 자신을 착취하는 기둥서방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 우리와 다를 것이 전혀 없는 오히려 더 인간적인 여성들을 이야기 했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매춘 여성’에 대한 문제가 단순히 뒷골목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도 남성중심주의적이며 그래서 권위적인 우리의 사회를 아우르는 전반적인 사회·문화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글에서 현대 매춘 여성들과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의 남녀평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박노자는 현대의 성매매가 기존의 윤락가를 벗어나서 인터넷을 통해 패티쉬클럽, 대딸방 등의 새로운 풍속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하였고, 허동혁은 이전과 다르게 현대의 매춘은 교육 받은 중산층 출신의 여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현대의 성매매는 이 전의 ‘강요형’에서 ‘선택형’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노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88만원의 세대에 살고 있는, 삶이 각박한 젊은 여성들이 ‘전국성노동자연대’가 주장한 ‘성노동자(이면서 비정규직)’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선택형 성노동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 여자후배는 나에게 성매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나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우리나라에서 성매매 산업이 곧 ‘불패산업’이 된 배경이라고 반박했고, 성매매라는 것이 계속되면 남성이 여성을 무의식적으로 ‘성적도구’로 느낄 것이며 그것이 곧 남녀차별의 간극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경제적 이유로 스스로 성매매의 지옥으로 들어간 여성들의 간절한 사정, 이 시대의 경제가 만들어낸 88만원세대의 그 간절한 사정을 백번 이해하지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며 남성중심주의적인 사회를 유지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여후배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러나 이 여후배는 매춘 여성을 교화의 대상으로 낮추어 보는 남성 주류문화의 담론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성매매라는 것이 또 그녀들의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노동’에 대해서는 그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지만, 근대의 매춘 여성이건, 현대의 매춘 여성이건 그녀들을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아닌 개인으로, 한 나라의 국민으로 바라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둠의 자식들>에서 한 매춘 여성은 “‘내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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