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식민지 근대화론과 수탈론(제 3세계의 정치)
1. 들어가는 말
2. 근대화론의 이론과 세 가지 입장
3. 수탈론의 등장배경과 분석
4. 맺음말
1. 들어가는 말
2. 근대화론의 이론과 세 가지 입장
3. 수탈론의 등장배경과 분석
4. 맺음말
본문내용
가 제대로 가능하게 된 것은 한국 사회내에 자본주의를 발달시킬 수 있는 토양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근대화론은 시기에 따라 크게 세가지 입장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현대의 한국 자본주의는 ‘성장의 모터’가 제대로 가동하는 정상적인 것이며, ‘자본주의적 선진화’가 당면 과제이다. 둘째, 현재와 같은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신민지 공업화에 의해 축적된 인적, 물적 자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셋째, 식민지하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근대 한국 사회의 특질에서 기인하는 바, 그것은 잠정적으로 ‘소농사회의 발전’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3. 수탈론의 등장배경과 분석
수탈론에서는 식민지하의 자본주의가 결국은 수탈을 위한 목적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즉, 일본 독점자본주의의 토지약탈, 식량의 기아수출, 농민의 농노화 및 대륙진출의 병참기지화 등으로 이어지면서 각종 자원과 모든 권익의 수탈에 따른 조선인의 빈화(貧化)현상에 주목했다. 식민지배는 특히 농민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켜 민족의식 각성과 민족운동 발흥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경제외적 강제와 봉건적 고율지대는 생산력의 정체를 불러와 증산정책에도 불구하고 농촌 경제의 근대화, 곧 자본주의화는 기대할 수 없었고 본건적 부재지주는 영농에 관여하지 않은 채 소작지대에 기식함으로써 기술혁신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원시농업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이래 농업에 대한 고전적 인식 틀, 즉 ‘토지소유의 근대성과 생산양식의 봉건성’ 테제는 해방 후 맑시스트적인 방법론이 배제된 채 답습되면서 특히 일제의 토지수탈론은 해방 이후 더 확산 되었다.
식민지 공업화에 대해서도 1930년대 이전에 식료품 및 섬유공업, 1930년대부터 침략정책에 따라 중화학공업이 발전했지만, 일본인이 자본, 기술을 지배하고 원료 공급지로 규정된 가운데 부문간의 상호관계 없는 불균형 발전으로 해방 후 경제 건설에 장애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일본 독점자본에 의한 조선 공업화를 한국의 근대화 또는 자본주의화로 이해하는 것은 주체가 누구였는가, 또 그것이 일본 경제의 한 부속물에 불과한 점을 간과한 일본인 어용학자의 견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선인의 저축을 약탈하고 노동자를 노예화시키는 조건에서 발전한 일본 독점자본의 수탈적 측면을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민족자본을 몰락하게 하고 조선인을 노
근대화론은 시기에 따라 크게 세가지 입장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현대의 한국 자본주의는 ‘성장의 모터’가 제대로 가동하는 정상적인 것이며, ‘자본주의적 선진화’가 당면 과제이다. 둘째, 현재와 같은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신민지 공업화에 의해 축적된 인적, 물적 자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셋째, 식민지하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근대 한국 사회의 특질에서 기인하는 바, 그것은 잠정적으로 ‘소농사회의 발전’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3. 수탈론의 등장배경과 분석
수탈론에서는 식민지하의 자본주의가 결국은 수탈을 위한 목적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즉, 일본 독점자본주의의 토지약탈, 식량의 기아수출, 농민의 농노화 및 대륙진출의 병참기지화 등으로 이어지면서 각종 자원과 모든 권익의 수탈에 따른 조선인의 빈화(貧化)현상에 주목했다. 식민지배는 특히 농민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켜 민족의식 각성과 민족운동 발흥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경제외적 강제와 봉건적 고율지대는 생산력의 정체를 불러와 증산정책에도 불구하고 농촌 경제의 근대화, 곧 자본주의화는 기대할 수 없었고 본건적 부재지주는 영농에 관여하지 않은 채 소작지대에 기식함으로써 기술혁신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원시농업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이래 농업에 대한 고전적 인식 틀, 즉 ‘토지소유의 근대성과 생산양식의 봉건성’ 테제는 해방 후 맑시스트적인 방법론이 배제된 채 답습되면서 특히 일제의 토지수탈론은 해방 이후 더 확산 되었다.
식민지 공업화에 대해서도 1930년대 이전에 식료품 및 섬유공업, 1930년대부터 침략정책에 따라 중화학공업이 발전했지만, 일본인이 자본, 기술을 지배하고 원료 공급지로 규정된 가운데 부문간의 상호관계 없는 불균형 발전으로 해방 후 경제 건설에 장애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일본 독점자본에 의한 조선 공업화를 한국의 근대화 또는 자본주의화로 이해하는 것은 주체가 누구였는가, 또 그것이 일본 경제의 한 부속물에 불과한 점을 간과한 일본인 어용학자의 견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선인의 저축을 약탈하고 노동자를 노예화시키는 조건에서 발전한 일본 독점자본의 수탈적 측면을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민족자본을 몰락하게 하고 조선인을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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