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머리말
Ⅱ.한중수교 이전 한국․조선족 관계
Ⅲ.한중수교 이후 한국․조선족 관계
Ⅳ.최근의 한국․조선족 관계
Ⅴ.맺음말
※참고문헌
Ⅱ.한중수교 이전 한국․조선족 관계
Ⅲ.한중수교 이후 한국․조선족 관계
Ⅳ.최근의 한국․조선족 관계
Ⅴ.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베트남
120,982
일본
45,065
필리핀
43,158
[中略]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 2012년 10월 통계월보
총 체류외국인 수의 1/3에 육박한 수치이다. 점점 한국과 조선족의 관계가 긴밀해져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건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관계가 긴밀해질 수록 좋은 사건도 있지만 불미스러운 사건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 기사를 읽어보자.
연변일보, 2012.10.16
이러한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런 저런 사건사고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과 조선족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해야 하겠는가? 최근 기사를 살펴보면서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연변일보, 2012.11.13
2012년 11월 기사이다. 여전히 조선족은 한국에 일을 해서 돈을 벌 목적으로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에 오고 있는 것이다. 늘어나는 조선족의 인구수를 감안하면, 오히려 경제적인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한중수교 직후처럼 경제적인 측면이 강하게 나타날 것인가? 이런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래의 기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연변일보, 2012.6.20
한국 또한 조선족과의 관계에서 실리적인 측면을 중요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 한국·조선족의 관계를 이해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1992년 한중수교 직후에는 체류 조선족의 수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한국·조선족의 관계교류가 시작하는 시기여서 실리적인 측면이 강하게 나타났다는 하나의 관점으로 이해해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같은 민족이라는 측면 보다는 확실히 경제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체류 조선족의 수가 급증했고, 그 사이에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떠한 하나의 측면만으로 지금 이시기에 한국·조선족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위의 기사에서도 보았듯이 경제적인 측면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하지만 한국과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다 라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류초기에는 민족적 측면이 쉽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교류를 시작한지 어느덧 20여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속에서, 대립과 포용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민족적 측면이 부각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한국과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다음 자료를 살펴보도록 하자.
흑룡강신문, 2012.10.09
한국과 조선족은 둘 다 한글을 쓴다. 조선족 사람이 광화문광장에 한글 서예대회에 함께 참여한 사진이다. 제목도 동포라고 쓰면서, 한국과 조선족이 같은 민족임을 의식하고 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조선족은 이전보다 훨씬 더 끈끈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또 다음 자료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연변일보, 2012.10.30
서울 속에 조선족 거리를 찍은 사진이다. 한국과 조선족이 같은 문화권 안에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임을 볼 수 있다. 결정적으로 대표적인 조선족 신문인 연변일보와 흑룡강신문의 목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흑룡강 신문
연변일보
왼쪽의 흑룡강 신문을 보면 해외조선족과 재중한국인 두 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것은 한국인과 조선족이 같은 민족이라는 측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오른쪽 연변일보를 보아도 겨레의 창이라는 부분에서, 우리가 하나의 겨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과 조선족의 관계의 민족적 측면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조선족 관계에서 민족적 측면이 경제적 측면보다 더 우세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경제적·실리적 측면이 훨씬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조선족에서 꾸준히 맥을 이어온 민족정신과 한국의 민족정신이 하나라는 사실은 결국 위의 예와 같이 민족적 측면이 서서히 나타나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최근의 두 관계는 기존의 실리적 측면에서 민족적 측면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실리적인 측면이 강하고, 민족적 측면이 상대적으로 약하기는 하지만, 이런 추세로 흘러간다면, 한국·조선족 관계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측면까지 나아갈 수 도 있을 것 같다.
Ⅴ.맺음말
지금까지 한중수교를 분기점으로 한국·조선족의 관계변화를 살펴보았다. 기본적으로 한국과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라는 점을 살펴보았고, 그 민족정신이 한중수교이전·이후·지금까지 계속해서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중수교 이전에는 한국과 조선족의 실질적 교류가 없었음을 살펴보면서, 이 시기를 ‘단절의 시기’로 규정했다. 그리고 한중수교 이후에는 조선족의 한국에 대한 시각이 변화되면서 활발한 교류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실리적 측면이 강하게 나타남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더욱 그 교류의 폭이 확대되어서 다양한 측면의 이해가 필요함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실리적 측면이 가장 우세했고, 점진적으로 같은 민족이라는 민족적 측면도 나타남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앞으로의 한국·조선족 관계를 예측해 본다면 서로 간에 화합과 포용의 폭이 더 깊어 지면서, 민족적 측면이 실리적 측면을 넘어 설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해 본다.
※ 참고문헌
-단행본-
권태환, 중국 조선족 사회의 변화,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9)
고영일, 중국 항일전쟁과 조선민족, (서울: 백암, 2002.8)
김종국 外, 중국 조선족사 연구,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신문-
연변일보 http://www.iybrb.com/
흑룡강신문 http://www.hljxinwen.cn/
동아일보 http://www.donga.com/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
매일경제신문 http://www.mk.co.kr/
-사료-
「조선왕조실록」, 영조
-기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
http://www.immigration.go.kr/HP/TIMM/index.do?strOrgGbnCd=104000
120,982
일본
45,065
필리핀
43,158
[中略]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 2012년 10월 통계월보
총 체류외국인 수의 1/3에 육박한 수치이다. 점점 한국과 조선족의 관계가 긴밀해져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건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관계가 긴밀해질 수록 좋은 사건도 있지만 불미스러운 사건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 기사를 읽어보자.
연변일보, 2012.10.16
이러한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런 저런 사건사고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과 조선족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해야 하겠는가? 최근 기사를 살펴보면서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연변일보, 2012.11.13
2012년 11월 기사이다. 여전히 조선족은 한국에 일을 해서 돈을 벌 목적으로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에 오고 있는 것이다. 늘어나는 조선족의 인구수를 감안하면, 오히려 경제적인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한중수교 직후처럼 경제적인 측면이 강하게 나타날 것인가? 이런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래의 기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연변일보, 2012.6.20
한국 또한 조선족과의 관계에서 실리적인 측면을 중요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 한국·조선족의 관계를 이해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1992년 한중수교 직후에는 체류 조선족의 수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한국·조선족의 관계교류가 시작하는 시기여서 실리적인 측면이 강하게 나타났다는 하나의 관점으로 이해해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같은 민족이라는 측면 보다는 확실히 경제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체류 조선족의 수가 급증했고, 그 사이에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떠한 하나의 측면만으로 지금 이시기에 한국·조선족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위의 기사에서도 보았듯이 경제적인 측면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하지만 한국과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다 라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류초기에는 민족적 측면이 쉽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교류를 시작한지 어느덧 20여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속에서, 대립과 포용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민족적 측면이 부각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한국과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다음 자료를 살펴보도록 하자.
흑룡강신문, 2012.10.09
한국과 조선족은 둘 다 한글을 쓴다. 조선족 사람이 광화문광장에 한글 서예대회에 함께 참여한 사진이다. 제목도 동포라고 쓰면서, 한국과 조선족이 같은 민족임을 의식하고 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조선족은 이전보다 훨씬 더 끈끈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또 다음 자료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연변일보, 2012.10.30
서울 속에 조선족 거리를 찍은 사진이다. 한국과 조선족이 같은 문화권 안에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임을 볼 수 있다. 결정적으로 대표적인 조선족 신문인 연변일보와 흑룡강신문의 목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흑룡강 신문
연변일보
왼쪽의 흑룡강 신문을 보면 해외조선족과 재중한국인 두 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것은 한국인과 조선족이 같은 민족이라는 측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오른쪽 연변일보를 보아도 겨레의 창이라는 부분에서, 우리가 하나의 겨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과 조선족의 관계의 민족적 측면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조선족 관계에서 민족적 측면이 경제적 측면보다 더 우세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경제적·실리적 측면이 훨씬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조선족에서 꾸준히 맥을 이어온 민족정신과 한국의 민족정신이 하나라는 사실은 결국 위의 예와 같이 민족적 측면이 서서히 나타나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최근의 두 관계는 기존의 실리적 측면에서 민족적 측면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실리적인 측면이 강하고, 민족적 측면이 상대적으로 약하기는 하지만, 이런 추세로 흘러간다면, 한국·조선족 관계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측면까지 나아갈 수 도 있을 것 같다.
Ⅴ.맺음말
지금까지 한중수교를 분기점으로 한국·조선족의 관계변화를 살펴보았다. 기본적으로 한국과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라는 점을 살펴보았고, 그 민족정신이 한중수교이전·이후·지금까지 계속해서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중수교 이전에는 한국과 조선족의 실질적 교류가 없었음을 살펴보면서, 이 시기를 ‘단절의 시기’로 규정했다. 그리고 한중수교 이후에는 조선족의 한국에 대한 시각이 변화되면서 활발한 교류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실리적 측면이 강하게 나타남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더욱 그 교류의 폭이 확대되어서 다양한 측면의 이해가 필요함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실리적 측면이 가장 우세했고, 점진적으로 같은 민족이라는 민족적 측면도 나타남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앞으로의 한국·조선족 관계를 예측해 본다면 서로 간에 화합과 포용의 폭이 더 깊어 지면서, 민족적 측면이 실리적 측면을 넘어 설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해 본다.
※ 참고문헌
-단행본-
권태환, 중국 조선족 사회의 변화,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9)
고영일, 중국 항일전쟁과 조선민족, (서울: 백암, 2002.8)
김종국 外, 중국 조선족사 연구,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신문-
연변일보 http://www.iybrb.com/
흑룡강신문 http://www.hljxinwen.cn/
동아일보 http://www.donga.com/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
매일경제신문 http://www.mk.co.kr/
-사료-
「조선왕조실록」, 영조
-기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
http://www.immigration.go.kr/HP/TIMM/index.do?strOrgGbnCd=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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