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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이들은 2월 1일에 처음 만나 25일까지 서로의 거처를 오가며 필담을 나누었다. 이 짧은 만남은 이들의 삶에 영원히 남을 만남이었다. 그들의 마지막이 기록된 <건정동필담>의 한 장면을 보면 그들의 사이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홍대용 : 우리는 다만 천하의 기이한 선비를 만나 한번 생각을 나누고자 했을 뿐인데 다행이 두 분을 만아 친하게 되어 큰 소원을 이루었으니, 참으로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다만 다시 만날 기약이 없으니 한스럽습니다. 이 애모의 정을 어느 날인들 잊겠습니까?
엄성 : 우리는 솔직한 성격으로 아직까지 참된 지기를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이 모임에서 서로 헤어지게 되니 절로 코가 시리고 마음이 상합니다. 다시 만날 기약이나 있다면 이렇게 슬프지는 않을 것입니다.
홍대용 : 이렇게 이별해야 하니 처음부터 서로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군요.
반정균이 붓으로 ‘붓으로 처음부터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한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고는 서운해서 흐느꼈다. 엄성 역시 몹시 비통한 기색이었다.
이들의 사귐은 홍대용의 귀국 이후에도 이루어 졌다.
일생 최대의 경험이 였던 연행에서 돌아온 후 홍대용에게는 중국 선비와 사귄 일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이안은 화이변<華夷辨>이라는 글을 지어 그를 비판, 산림학자 김종후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홍대용을 괴롭게 했으며 그들의 입장에 대한 홍대용의 입장은 이러했다.
“우리 동방이 오랑캐가 된 것은 지계地界가 그러하기 때문인데 무슨 거리낄 필요가 있겟습니까? 오랑캐 땅에 태어나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진실로 성인이 될 수고 있고 대현이 될 수고 있으니 참으로 큰일은 우리에게 달린 것인데, 무엇을 혐의스럽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 동방은 중국을 본받아서 오랑캐 소리 면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이글은 상대가 오랑캐라 하더라고 현인이 될수 있다는 점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북학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사실 그도 청으로 가기 전 쓴 글을 보면 청을 오랑캐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들이 강성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 바탕이 되는 학문과 기술력 등은 인정했다. 그렇기에 그는 청으로 가는 일은 고민스러워 하면서도 더욱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가서 그는 조선에서만 듣고 보아왔던 것과는 다른 드넓은 세계를 직접 경험했고 그 이후 그는 조선으로 돌아와 당시의 가치관에 반하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는 현재에 근접한 가치관으로 하늘아래 인간은 평등하며, 더욱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실용적으로 쓰일 수 있는 학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홍대용’이란 사람은 이공계 학생이든 문과계열 학생이든 그의 일대기는 한번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가 과학자로써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학자로써 어떤생각을 가졌는지, 사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는지를 찾아 보았으면 좋겠다.
* 참고 문헌
1. 홍대용 - 김태준 지음, 한길사
2.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 김도환 지금, 책세상
3.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김아리 편역
홍대용 : 우리는 다만 천하의 기이한 선비를 만나 한번 생각을 나누고자 했을 뿐인데 다행이 두 분을 만아 친하게 되어 큰 소원을 이루었으니, 참으로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다만 다시 만날 기약이 없으니 한스럽습니다. 이 애모의 정을 어느 날인들 잊겠습니까?
엄성 : 우리는 솔직한 성격으로 아직까지 참된 지기를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이 모임에서 서로 헤어지게 되니 절로 코가 시리고 마음이 상합니다. 다시 만날 기약이나 있다면 이렇게 슬프지는 않을 것입니다.
홍대용 : 이렇게 이별해야 하니 처음부터 서로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군요.
반정균이 붓으로 ‘붓으로 처음부터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한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고는 서운해서 흐느꼈다. 엄성 역시 몹시 비통한 기색이었다.
이들의 사귐은 홍대용의 귀국 이후에도 이루어 졌다.
일생 최대의 경험이 였던 연행에서 돌아온 후 홍대용에게는 중국 선비와 사귄 일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이안은 화이변<華夷辨>이라는 글을 지어 그를 비판, 산림학자 김종후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홍대용을 괴롭게 했으며 그들의 입장에 대한 홍대용의 입장은 이러했다.
“우리 동방이 오랑캐가 된 것은 지계地界가 그러하기 때문인데 무슨 거리낄 필요가 있겟습니까? 오랑캐 땅에 태어나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진실로 성인이 될 수고 있고 대현이 될 수고 있으니 참으로 큰일은 우리에게 달린 것인데, 무엇을 혐의스럽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 동방은 중국을 본받아서 오랑캐 소리 면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이글은 상대가 오랑캐라 하더라고 현인이 될수 있다는 점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북학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사실 그도 청으로 가기 전 쓴 글을 보면 청을 오랑캐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들이 강성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 바탕이 되는 학문과 기술력 등은 인정했다. 그렇기에 그는 청으로 가는 일은 고민스러워 하면서도 더욱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가서 그는 조선에서만 듣고 보아왔던 것과는 다른 드넓은 세계를 직접 경험했고 그 이후 그는 조선으로 돌아와 당시의 가치관에 반하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는 현재에 근접한 가치관으로 하늘아래 인간은 평등하며, 더욱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실용적으로 쓰일 수 있는 학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홍대용’이란 사람은 이공계 학생이든 문과계열 학생이든 그의 일대기는 한번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가 과학자로써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학자로써 어떤생각을 가졌는지, 사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는지를 찾아 보았으면 좋겠다.
* 참고 문헌
1. 홍대용 - 김태준 지음, 한길사
2.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 김도환 지금, 책세상
3.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김아리 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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