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민족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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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러시아의 민족 분쟁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릿말

Ⅱ. 민족주의와 소수민족문제에 관한 논의

Ⅲ.소련 연방의 해체에 따른 의미와 러시아연방

Ⅳ. 연방국가 러시아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민족적 특징

Ⅴ. 체첸 분쟁

Ⅵ. 결론

본문내용

4년 현재 는 인구성장 0.2%를 보이고 있다. 1988년의 인구밀도는 12.7/㎢로 인구밀도는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구 소련시대에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이후 개방화정책이 취해지면서 반체제 인사나 유태인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해외이민이 가능하게 되자 1980년대 후반부터 이민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의 경제적 생활이 어려워지자 1990년대에 들어 이민하는 수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② 민족구성
러시아는 100여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 러시아인이 81%로 가 장 많고 타타르계가 4%, 우크라이나인이 3%에 달한다. 또 3만 5,000명의 사할린 거주 한인을 포함하여 총 한인은 10만 7,000명으로 나타난다. 각 민족은 각각 역사, 언어, 문화, 생활습관이 다르고 독자성을 지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한인들도 우리말에 의한 신문발행이나 연극상연 등이 인정되고 있다.
구 소련 연방 내에 거주하던 러시아인들의 러시아로의 이민과 분쟁지역에서의 탈출하는 난민 등으로 민족구성은 약간 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통계는 없는 실정이다.
③ 민족문제
구 소련 연방이 무너지고 나서 민족의식이 대두되기 시작하여 타타르와 체첸잉구세티야 두 공화국은 완전 독립과 CIS 정 회원국의 자격을 요구했다. 이 공화국들은 1992년 3월 각각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과반수이상의 지지를 얻어 독립을 선포하였다. 같은 해 3월 체결된 신 연방조약을 거부하였는데 특히 가장 완강한 입장을 보인 체첸에 대하여 옐친 대통령은 1994년 12월 9일 무력개입을 승인하는 포고령을 발표하고 12월 11일 무력개입을 단행하였으나 체첸 정부의 완강한 저항으로 많은 손실을 입었다.
결국 러시아군은 1995년 1월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하였으나 산악으로 옮긴 체첸군의 게릴라전으로 장기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르고, 알타이, 하카스, 카라치예보, 체르케스 등 5개 자치주와 10개의 자치공화국도 공화국으로의 승격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구 소련 연방 국가에서의 러시아인에 대한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발트 3 국은 러시아군의 조기철수를 요구하고 있고 에스토니아는 소련연방 이후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과 그 후손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어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드네스트로지역은 몰도바 내 러시아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으로 이곳의 러시아인들은 드네스트로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1990년 9월) 몰도바에서의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같이 구 소련 연방의 각국들의 러시아인들이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간의 유혈분규와 타지크 내란사태 등으로 러시아로의 이민과 난민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 정치적으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④ 민족성
러시아인과 연방의 시민들은 오랜 기간을 거쳐 무력에 의한 지배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어려운 단계에 있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은폐되어 온 사회 사람들의 불만을 폭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시장경제를 목표로 하는 개혁은 반대로 생활수준을 저하시켰다. 러시아인 애국자이지만 정치구조에 대한 태도는 다르고, 따뜻하고 지적인 국민들이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러시아인들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회, 경제적인 면의 변화에는 부정적이다. 일반인들은 자본주의 시장보다 저임금이라도 보장되어 있는 공산주의적 노동을 좋아한다. 그들은 대체로 평등주의 원리의 신봉자이지만 그 의미는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자신의 태도를 개선하기보다는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이 후퇴하기를 바라는 편이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적을지도 모른다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러시아인은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순수하고 소박하며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한번 관료주의에 빠져들면 비지니스로 접할 때는 무서운 상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국주의와 상냥함, 관료주의와 일상생활에서의 융통성, 과학기술에의 강한 의지와 정신주의,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와 성급함 등의 반대적인 요소를 갖고 균형을 유지시키는 면이 있는 국민들이다.
Ⅳ. 연방국가 러시아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민족적 특징
다민족 사회 러시아의 정치과정에 민족적 요소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은 그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해 왔다. 단지 체제 변동의 과도기에 민족운동으로 전개된 사회 불안정의 요소로서 한정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와 같이 다민족 사회의 성격과 국가 권력의 구성 정도에 따른 민족운동의 변화 그리고 민족적 특성이 강한 국가에서의 민족운동은 그 발전의 주체인 민족집단의 발전의 과정과 운동의 세계사적 과정과 깊이 결부되어 왔다. 러시아 사회 내부의 민족운동의 전개과정은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집단(엘리트)들의 사상적 대립과 그 정치적 구현 방식으로서의 국가 구조(연방제)의 건설, 그리고 민족과 민족간, 국가와 주민간의 상호 벡터관계 등 정치과정 일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A. 러시아 민족국가 형성의 역사적 특성 : 다민족성
러시아 국가가 역사적으로 안고 있는 민족적 특성은 다민족 사회라는 점에 있다. 러시아가 여러 민족이 혼합된 다민족 국가로 탄생한 것은 이미 16세기 중엽 이반 4세(뇌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권력을 장악한 그는 볼가강 유역의 몽고제국의 잔류 국가인 카잔 한국(1552), 아스트라한 한국(1556)을 병합함으로써 강력한 모스크바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때 슬라브계 민족이 아닌 볼가따따르, 추바쉬, 마리이쯔, 모르드바, 바쉬끼르 민족이 복속되어 모스크바 왕국은 비로써 다민족 사회가 되었다. 그 후 러시아는 제정 러시아(1721-1917), 소비에트 러시아(1922-1991)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라는 연방국가로 전통이 이어지면서 지배민족인 슬라브계 민족(루스끼, 우크라이나, 벨로루스, 폴란드)에 터키계 민족(카프카즈 지역 - 아제르바이쟌, 체첸, 잉구쉬, 오세찐 등, 볼가강 유역 - 바쉬끼르, 추바쉬, 중앙아시아 지역 - 우즈벡, 카자흐, 키르기스, 투르크멘, 따직(이란계)), 핀계 민족(핀란드, 우드무르트, 마리이쯔, 꼬미), 몽골계 민족(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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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5.19
  • 저작시기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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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47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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