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선비 조광조, 그가 배운 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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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진정한 선비 조광조, 그가 배운 도학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은 많고 왕도를 행하는 사람은 드무니, 패도를 숭상하는 자가 비록 국부國富와 강병은 이룬다 해도 어찌 인의의 도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왕도를 행하는 것은 비록 하루아침에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으나 오래 시행하시면 크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맹자께서 제나라와 초나라를 두루 돌아다니시면서 정녕 계고한 것은 바로 왕도을 권하여 행하도록 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靜庵集』卷4, 「元子輔養官時啓(二)」: 自古人君 多好覇功 鮮行王道 尙覇者 雖易致國富兵强之效 豈復有仁義之道乎 行王道雖未見朝夕之效 悠久而大成矣 故孟子 歷聘齊梁 丁寧告戒者 只是勸行王道而已, 『정암 조광조의 도학사상』 이상성, 심산, 서울 2004, p.162 재인용
민생의 의식주가 이미 후하게 되어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 뒤에 고례古禮를 행하려고 하면 이미 늦습니다. 대저 힘써 고도古道를 행하되 보민을 근본으로 삼으면 될 것입니다. 『靜庵集』卷3, 「侍讀官時啓(十一)」: 民生衣食旣厚 凡事畢擧而後 欲行古禮則緩矣 大抵力行古道而以保民爲根本 則可矣
정암 도학사상의 정치적 전개, 그 사례- 이상성, 『정암 조광조의 도학사상』 심산, 서울 2004, p.149-165 발췌 인용
정암 도학사상의 사회적 구현
●함여유신咸與維新과 융평사회隆平社會
정암은 자신이 의도했던 지치주의적 개혁의 실천에 있어ㅇ서 그 방향과 목표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융평隆平’ 과 ‘함여유신咸與維新’을 통하여 ‘태화지역泰和之域’을 성취하는 거이었다.
정암의 지치주의적 개혁 실천은 ‘융평’으로 ‘덜 것[損]은 덜어내고 더할 것은[益] 더해주어’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균평하게 살 때까지 평등사회를 지속적으로 지향에 올라가는 것이다.(이는 덜 것과 더할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지만, 내용상 경제적 손익損益을 말하며, 이는 빈익빈, 부익부 요소가 있는 세제를 개선하여 경제적인 평등을 이루려는 일차적 요청이었다.)
함여유신이란 모두가 더불어 힘을 합쳐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모두 함께 참여하여 법제와 세제들을 새롭게 하여 새로운 정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자는 의미이다. 이종호, 『정암 조광조』, 일지사, 1999, p.197-198-『정암 조광조의 도학사상』 이상성, 심산, 서울 2004 재인용
함여유신에서는 인물의신분이나 출신이 등용에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암의 선진적 견해에서 드러난다.
‘함여유신’과 ‘융평’을 통하여 이룩하고자 했던 ‘태화지역’은 경제적정치적 측면에서 평등한 복지사회를 뜻한다.
●시폐혁신 時弊革新과 변통론
정암 도학은 그 사상의 내용이나 실현 방법 등에 있어서 확고한 원칙과 기준을 강조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변화에 대해 경직된 입장을 가진 것으로 보이나, 절대적인 원칙이나 원리를 중시하는 경향은 변화나 변혁의 절차나 방법과 관련된 점이 중요하다. 이는 정암 도학은 그 사상이 지향하는 이상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현실에 대하여 끊임없는 변혁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실제 정암 출사이후 그의 현실개혁 업적은 당시 사회의 일반적 변화개혁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었음에 유의해야 한다.
정암은 중종의 극력반대에도 불구하고 소격서 혁파와 왕실불사의 폐지를 단행했다. 그는 개혁이 단행했다. 선대 조종에서 신봉하여온 구법이라 할지라도 현재의 시점에서 불합리 한다면 개변하는 것이 마땅하며, ‘조종시사祖宗時事’라는 이유나 변명은 구차할 뿐 아니라 오히려 고치는 것이 전열前烈을 빛나게 한다는 적극적인 변통 논리를 펼쳤다. 보편 타당성이 있는 것이라면 개변이나 변통할 필요성이 없겠지만, 잘못되고 폐단이 있는 것이라면 총명과단하게 개변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정압의 변통론은 매우 강력한 것이었다. 과연 얼마나 현실에서 절실한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지, 다만 전대의 전통이라 하여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정암 도학사상의 사회적 구현-이상성, 『정암 조광조의 도학사상』 심산, 서울 2004, p.170-181 발췌 인용
●태화지역泰和之域과 이상사회
태화지역은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백성이 중시되는 사회다.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의 의식주를 보호하며 지켜주는 곳이 바로 태화의 세계이다. 그런 까닭에 군주와 대신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식을 분명하게 제기 하였다.
정암이 말하는 ‘태화지역’은 궁극적으로 공균평화(공 균 평 화) 등의 정치경제사회적 형평이 이상적으로 이루어진 ‘대동사회(대동사회)’를 지향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암은 ‘태화지역’을 말하면서 구체적 예로써 ‘요순시대’를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로의 복고復古라기 보다는 이상적이고 구체적인 전형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암 도학사상의 윤리적 실현
●화민성속化民成俗과 도덕 교화론
정암에 의하면 다스림의 근본은 도에서 나오지만, 그 도는 어디까지나 인간에 의해 구체적인 현실에서 행하여지는 것이니 인간이 주체적으로 덕으로써 교화를 베풀겠다는 의지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정치의 원칙은 도에 있으나, 그런 정치의 실현 여부는 치자의 의지와 선택에 좌우 된다는 의미다. 임금이 어진정치를 펼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암은 연산군의 폭정에 의해 많은 백성의 삶이 유린당하고, 수많은 선비들이 참화를 입었던가를 인식하고 있었다. 한사람의 군주에 의해서 얼마나 폭력적인 참화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덕으로 교화하는 정치를 현실구제의 당면과제로 제시 했던 것이다
●공의(公義)와 사리(私利)의 분변
정치적 무능과 부패로 얼룩진 전대의 잔재가 중종반정 이후 십여 년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민생의 고통은 심화되었다. 이는 근본적으로 치자(治者)와 관료 및 학자들이 의리분변과 공사구별을 철저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고 군주는 국가의 병통이 되고 있는 이원을 제거하고, 관료와 학자도 염두에서 아예 사욕을 제거해야 된다고 하였다.
●강상(綱常)과 윤리의 회복
정암은 학문의 순수성과 의리의 정통성을 강조함으로써 강상과 윤리를 회복하고자 했다. ㅈ정암 이전과 이후로 정신사적인 정통성이 명확하게 구분되는데, 이를 테면 포은의 문묘종사나 한훤당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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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5.29
  • 저작시기2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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